200화. 그가 기연이다 (3)
크아아아! 캬캭!
좀비를 넘어서서 백골이 다 된 언데드들이 몰려왔다.
삭아 버린 옷, 손에 든 녹슨 검. 파도처럼 몰려오는 그 수는… 약 이백.
“하, 같잖아서.”
“방심은 금물이야.”
저번에 천 마리도 상대해 본 적 있다 보니 이백이란 숫자는 이제 그냥 우습게 느껴졌다. 그런 일행들에게 운소령이 일침을 가했다.
“아, 뭐, 그래. 그런데 음…….”
퍼걱! 퍼걱! 파사삭!
“저런 걸 보고 있으면 방심 안 하는 게 이상하다고.”
마법사 하백운이 턱짓을 했다.
“으아아아아! 차차차차!”
전방에서 말 그대로 날아다니는 사천 당문의 후예.
쉬쉬쉭! 파바바박!
그녀의 손에서는 쉴 새 없이 비황석이 쏘아져 나갔다. 그에 맞은 언데드들은 일격 일살.
한 번에 십여 개씩 쏘아 낸 암기에 십여 마리의 언데드들이 쓰러지니, 2백이라는 숫자가 무색하게 한 식경 만에 반토막 이하로 줄어들었다.
“덤벼! 덤벼 봐! 이것들아!”
손이 한 여덟 개쯤 되어 보이게 잔상을 남기는 당무련.
언데드는 죽지 않는 대신 느리다. 그리고 느리고 무력한 상대에게 당문의 암기는 최대의 위력을 발휘한다.
지난번과는 달리 마법사의 동결의 도움도 없이 이뤄지는 일반적인 학살.
그 위력의 비밀은 바로 성수였다.
“하아… 하아…….”
첨벙. 후드득.
당무련은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비황석이 든 암기 낭에 성수 한 통을 그냥 부어 버린 것이다.
덕분에 신성한(?) 돌팔매질을, 그것도 골통에 정통으로 맞아 버리니 오래되고 약한 해골들 따위는 순식간에 머리통이 삭제되어 버릴 수밖에.
“하… 하하! 봤냐! 이것들아! 이것이 사천의 패자의 위용이다!”
덕분에 속이 후련해진 당무련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청성이나 아미가 없어서 다행이야.”
당무련의 광오한 자화자찬에, 괜히 소진이 찔끔거리며 중얼거렸다.
당문이 한때 사천 제일의 패자로 군림했었다 한들, 그건 까마득한 과거의 이야기다.
같은 사천의 기둥, 그것도 구대문파인 아미나 청성이 저 소리를 들었으면 발칵 했을 것이 당연지사다.
“자아! 이제 마무리! 아주 끝을 내…….”
“적당히 해라. 당가 계집애야.”
멈칫!
암기 낭을 아주 쏟아 낼 듯하던 당무련이, 천마의 말에 우뚝 굳었다.
“더, 더 할 수 있는 데…….”
“더 할 수 있긴? 손이 퉁퉁 부었는데? 가문의 녹피수투는 어따 팔아먹고 왔냐?”
“어…….”
화다닥.
화급히 두 손을 등 뒤로 돌리는 당무련. 아닌 게 아니라 그녀의 손끝은 발갛게 부어 당장이라도 물집이 잡히려고 하고 있었다.
본시, 사천당문은 암기나 독을 무기로 사용하기에 방독처리 된 두터운 사슴 가죽 장갑을 항상 착용하고 다닌다.
당무련도 원래는 그랬었지만, 지난번 언데드 떼 몰살을 시킬 때 겨냥이 미묘하게 빗나가는 것을 느끼고 이번에는 착용하지 않은 것이다.
“아니, 그게… 녹피수투를 끼면 손끝이 둔해져서…….”
비황석은 표면이 거칠다. 굴곡진 돌이 맹렬하게 날아가며 회전으로 경로가 휘어지기에, 그만큼 손끝의 민감함이 필요했다.
해서 수투가 아닌 맨손으로 날린 것이다.
효과는 있었다. 손끝을 혹사하긴 했지만, 그만큼 정확한 힘 배분이 가능했다.
덕분에 뿌리는 족족 적중. 날리는 비황석이 십 할로 언데드의 두개골을 박살 낸 것이다.
“그럼 더 연마해야 할 거 아냐. 더 쓰고, 더 만지고, 네 살갗으로 적응해야지. 지금 날리는 비황석에 성수가 아니라 독이 묻었다고 생각해 봐라. 그때도 맨손으로 잡을래?”
“으…….”
정론중의 정론이다. 당무련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예전처럼 대놓고 천마에게 대든다든지 하지는 못했다.
“천일검, 백일창. 그다음에 뭐였지?”
“…십일투. 기억하고 있어.”
그도 그럴 것이, 어느새부터인가 천마는, 막무가내로 당무련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혼낸 다음에 천금 같은 가르침을 줬던 것이다.
“그래. 돌 던지기. 그게 인간이 가장 먼저 손에 든 무기다. 역사와 기원을 따지자면, 창검에 비할 바가 아냐.”
검은 만병지왕이라 불린다. 모든 병기 중에 가장 다양한 범용성을 가지고 있다. 찌르기, 베기, 치기의 세 동작을 통해 무수히 많은 무예를 쏟아 낼 수 있는 병기다.
창은 전장지존이라 불린다. 검이 분명히 우수한 병기지만, 숙달에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나 창은 기본적으로 날이 달린 긴 장대다.
새로 뽑은 신병이 검사로 거듭나려면, 삼 년이 넘게 걸리는 고련을 해야 한다. 하지만 창수로 그럭저럭 역할을 하기에는 고작 석 달 열흘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투석, 돌이라면?
어깨만 좋으면 어린애도 던져서 사람 머리통을 깨뜨릴 수 있다. 다소 과장된 표현이 있기는 하나, 성실히 연습하면 열흘 만에 쓸 수 있는 병기가 투, 투석, 짱돌이다.
“비황석, 철질려, 회선표, 그리고 비침 등. 너네 가문은 무기가 다양한 게 장점이야. 그걸 잘 발휘하려면 힘이 아니라 정교함, 영활한 손놀림이 더 필요해.”
“응…….”
끄덕끄덕.
천마의 말에 바로 끄덕이는 당무련.
당문은 기본적으로 암기를 무기로 한다. 무게도 크기도 작은 암기로, 일격에 치명상을 입히기 위해서는 비침이나 회선표 같은 작은 날붙이에 극독을 바르는 법이었다.
“기혈을 보니 독공은 대성하지 못한 거 같은데… 네가 만독공을 익혀서 손이 독에 저항을 가지기 전에는 수투에 의존을 해야 해. 영 불편하다면 차라리 용피갑을 쓰든가.”
용피갑. 실제로 용의 껍질은 아니고, 특별한 뱀의 껍질을 가공하여 만든 얇은 장갑.
얇기가 매미 날개 같아 움직임에 지장을 주지 않는, 맨손이나 다름없는 촉감을 유지하게 한다.
내기를 싣지 않은 칼날에는 흠집도 나지 않고, 수화불침에 백독을 무효로 돌리는 당문의 보물.
“그거, 본문의 직계에게나 내려지는 거라고…….”
“뭐래? 너는 직계 아냐? 천무학관 왔잖아?”
“…….”
“아, 저런. 미안하게 됐다.”
천마가 드물게도 사과를 했다.
분명히 천무학관에 올 정도의 실력이고, 그럼에도 직계가 받는 신표를 갖지 못하고 왔다면…….
‘사생아로군.’
천마는 대충 짐작했다. 전생이나 대격변을 겪은 지금이나, 서얼 혈통 문제는 항상 복잡한 법.
방계는 아니다. 성씨가 아예 달라 데릴사위로 가문에 들어온 방계와 달리, 아버지가 당문 사람이니 따져 보면 직계다.
그리고 그건 또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흠, 반쪽짜리라?”
사천당문은 독과 암기를 함께 쓰는 가문이다. 그런데 천마는 이제껏 당무련이 독분이나 독연을 쓰는 것을 보지 못했다.
카르삭 왕릉에서도 독액이 든 항아리를 나누어서 투척했다고 하지 않던가. 암기만 다루고 독공은 쓰지 못하는, 사천당문의 이름을 달기에는 반쪽짜리 계승자다.
‘하기야 사생아로 뒤늦게 가문에 입적된 거면… 나이가 좀 차서 들어왔을 테니 독공을 연마할 시간이 없었겠지.’
당문의 고수는 어려서부터 암기는 물론이고, 먹는 음식과 바르는 약물에 각종 독을 섞어서, 독에 대한 저항성을 높인다.
그리고 독물의 기를 혈맥에 끌어들여, 특유의 독공을 연마한다.
온몸에 독이 흘러 다니는 독인. 그 정도가 되어서야 독분이든 독연이든 뿌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 전에 했다가는 본인이 먼저 중독될 테니까.
거기서 문득, 천마는 하나를 떠올렸다.
“…야, 당가 계집애야. 너, 몇 년 됐냐?”
“몇 년이라니……?”
“암기 잡은 지 몇 년 됐냐고. 너, 어릴 때부터 배우지는 못했을 거 아냐.”
“…년.”
고개를 푹 숙이며 당무련이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뭐? 안 들리는데?”
“3년 됐다고! 햇수로 3년! 만으로 2년 조금!”
빽! 하고 설움이 복받쳐서 고함지르는 당무련.
천마는 예상한 그대로라 피식 웃었다.
“과연.”
원래 당문은 오대세가 중에서도 폐쇄적이기가 가장 극한인 가문이다.
여인은 출가하면 외인이 될 수 있기에 당문 고유의 독술이나 암기술도 가르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여자를 천무학관에 보냈다?
당문의 정예, 독과 암기에 정통한 다른 인물이 아닌, 출신은 사생아인 데다 독공은 입문도 하지 못한 이런 애를? 대체 왜? 답은 간단했다.
“천재네.”
당무련은 어지간한 직계 혈육보다 더 크게 성장할 싹수가 있었다는 의미인 것이다.
비침, 회선표, 금매령, 철질려 등 당문의 유명한 암기는 모두 48종.
천무학관에 대표로 보낼 정도면, 그걸 다 통달했다는 이야기일 텐데, 그걸 고작 2년 조금 넘는 시간으로?
앞서 투술이 십 일이라고 했지만, 그건 그냥 짱돌을 던지는 정도일 뿐. 한번 던지면 날아가며 방향을 바꾸는 회선표, 가늘기가 쇠털 같은 비침 등, 제대로 익히려면 족히 10년은 걸린다.
당무련은 그래서 독공을 못 배우고도 천무학관에 들어온 거다. 즉, 암기 투척에 한해서는, 기막힌 자질이 있다는 이야기다.
‘이거 진짜… 먹어 버려야겠는데……?’
우르릉! 쾅쾅! 빠가각!
마법사와 전사들이 당무련이 남긴 해골들을 부수는 동안, 천마는 히죽히죽 웃음을 지었다.
어쩌면, 노달의 말대로 이 녀석들 전부가 다 인재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 * *
사아아악.
지역을 한참 이동하자 바람이 불어왔다.
진한 물비린내. 습지에 서식하는 수초와 정체 모를 작은 생물들이 내는 냄새다.
척.
“잠깐 정지.”
선두에 선 서문영이 몸을 낮추고 주먹을 쥐었다.
사삭. 사삭.
일행은 다들 그 신호에 따라 몸을 낮추고 사위를 경계했다.
“뭐 해? 아무것도 없는데?”
그런 모습에 천마가 불퉁스럽게 툭 내뱉었다.
이미 탈마에 접어든 그는, 사방 백 장의 사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집중하면 그보다 훨씬 더 멀리도.
“쉿, 가만.”
거기서 운소령이 손을 내저었다.
그녀 역시 기감이라든가, 주변의 괴물이 나타나는 것에 대해서는 서문영보다 이한이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서문영 또한 그걸 알 만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바싹 땅에 엎드려 있다는 건…….
“…쟤 뭐 해? 흙 먹어?”
킁킁! 비비적비비적!
천마의 말처럼, 서문영은 질척한 땅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코로 냄새까지 맡았다.
가뜩이나 썩은 진흙. 지독한 냄새가 피어오르는 흙바닥을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여기저기 한참을 기어 다니다가 일어났다.
“이상한데.”
“뭐가?”
운소령이 묻자, 서문영이 손에 든 흙덩이를 까 보였다.
“이거 봐. 아무리 습지라 해도… 말이 되나?”
바작.
온통 진흙으로 덮인 덩어리 사이에서, 작고 하얀 껍질이 보였다. 덕분에 운소령 역시 묘한 얼굴이 되었다.
“…조개?”
“으음… 강이나 하천에 민물조개 같은 게 있다고 듣기는 했었는데… 소진?”
“어? 어.”
아무리 패스파인더 수업을 받은 서문영이라도, 조개의 생태까지는 모른다. 하지만 일행 중에는 다행히 어지간한 책은 죄다 머릿속에 집어넣고 사는 인간이 있었다.
자박. 자박.
소진은 서문영에게서 조개껍질을 받아 들고, 잠시 살펴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따개비잖아?”
“따개비? 배 바닥에 붙는다는 그거?”
“어, 따듯한 바다에 사는 조개야. 염도가 높은 바닷물에서나 사는 놈인데… 어떻게 여길?”
“뭐, 죽은 시체도 걸어 다니는 판국인데, 조개 하나 가지고…….”
심드렁하게 보는 천마에게 서문영이 손바닥을 폈다.
스윽. 자갈자갈.
“한두 개가 아니야.”
얼핏 봐도 예닐곱.
그게 조금 전에 땅에 엎드려 서문영이 찾아낸 것들이었다.
고작 반각도 되지 않는 사이에.
툭. 으직! 주르륵.
가볍게 힘을 주자 죽은 따개비의 껍질이 깨어지며 살점이 흘러내렸다. 역겨운 악취가 풍기고 다들 인상을 썼지만, 서문영은 심각한 얼굴이었다.
“보다시피 다 썩었어.”
“언데드의 땅이니까, 조개 따위가 죽는 게 이상하지는 않잖아?”
“아니, 이상하지. 죽었다는 건 원래 살아 있었다는 말이잖아. 대체 어떻게? 어둠나무 지대에서 바다까지는, 최소 천 리 길은 떨어져 있을 텐데?”
“허…….”
그 말에 천마의 눈빛이 바뀌었다.
말인 즉, 따개비는 살아 있을 때 와서 죽었다. 그럼?
여기서 또 하나의 질문을 떠올릴 수 있다.
누가, 혹은 어떻게, 바닷물에 사는, 그것도 따듯한 남해안에 사는 따개비를 대량으로 내지 한복판에 뿌렸을까?
“온통 민물인 습지대에서 바닷조개라… 그러고 보니 롤란드랬나, 그 검은 기사가 그렇게 말했지.”
구멍이, 다른 곳으로의 연결이 되고 있다고.
애초에 그도, 그를 따르던 듀라한들도, 심지어 중원 땅에서 있을 리 없었던 서역인들의 시신이 언데드로 출현했다.
그 말은.
“아무래도 이곳 어딘가에 ‘통로’가 있는 것 같군.”
‘제법이야. 아주.’
결론을 내는 서문영을 보고 천마는 흡족해했다.
아무리 그라고 해도, 이런 것까지 알 수는 없었다.
평생 쌈질만 하고 무예 파기에 바빴던 몸이, 바닷조개와 민물조개의 차이 따위를 알아서 어디다 쓰겠냔 말이다.
“확실히. 그러고 보니 말인데…….”
팔락.
문득 운소령이 지도를 펼쳤다. 그러고는 눈을 좁혔다.
“여기, 이쯤에서부터야.”
“뭐가?”
“지난번 데스나이트와 조우해서 미처 탐색하지 못한 지역.”
“……!”
꿀꺽.
천마를 제외한, 모두의 목울대가 긴장으로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