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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203화 (204/310)

203화. 해선 (2)

만부부당(萬夫不當)이라는 말이 있다. 군병 일만이 모여도 감당할 수 없는 용맹한 장수를 말하는 것.

초패왕 항우를 칭한 것에서 시작되어, 삼국지연의의 관우, 장비, 여포가 그런 이름으로 불리운다.

반면 독불장군(獨不將軍)이라는 말도 있다. 아무리 용력이 강한 이라도, 혼자서는 장군이 될 수 없다는 것.

강하다 해도 한 손으로 열 손을 이길 수는 없다. 항우는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라 하여, 산을 뽑아 던질 힘이 있었다지만, 결국 사면초가의 고사에서처럼 군병이 모두 사기를 잃으니 패전 끝에 자결하고 말았다.

인중룡이라 불리던 여포도, 관우, 장비도 결국 죽었다. 여포는 수성을 계속하던 끝에 역심을 품은 병사들에게 포박당했다. 장비는 술에 취해 잠든 중에 목이 잘렸다.

신장(神將)이라 불리던 관우는 그나마 싸움터에서 붙잡혔지만, 그를 말에서 끌어 내린 것은 이름난 용장의 칼이 아니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달려든, 이름 없는 병졸들의 창칼이었다.

‘나 혼자라면 어땠을까.’

천마는 턱을 쓸었다. 갑자기 그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파티원들 때문이었다.

“자폭병이다! 조심!”

치이이이--!

사람 머리통만 한 탄환을 들고, 해골 병사가 어기적어기적 걸어온다. 일반적인 탄환이 아닌 작렬탄, 폭발하는 포탄이다.

심지가 불꽃을 튀기며 타들어 가는 모습이 선뜩하다. 그런 놈들이 좁은 복도에 너댓이나 나타났다.

“당무련!”

운소령이 외치자, 파티원 전원이 좌우로 벌어져 벽에 붙었다. 저격에 용이한 각도를 만드는 것이다.

“차앗!”

쐐액! 쐐액! 쐐액!

당무련의 손에서 날이 예리한 표창이 휘우듬하게 쏘아졌다. 회전을 잔뜩 머금은 회선표는 곡선을 그리며 폭탄의 심지를 썽둥! 잘라 버렸다.

끼르르르.……? 퍼걱!

해골 병사는 갸웃하고, 뭔가 이해가 안 되는 모습을 보이다가, 화살처럼 날아든 주먹질에 작살이 나 버렸다.

“아미타불-!”

펑! 펑! 끼르르르르!

파사현정의 기운을 가득 담은 금강권. 다른 물리적 타격에는 오독오독 뼈들이 재조립되어 살아났지만, 방윤의 주먹질에 맞은 놈들은 그냥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드드드득!

“또 온다!”

선내의 벽이 멋대로 쪼개지며 다시 통로가 만들어졌다. 시커먼 어둠 속에서 캬아아아! 하는 시퍼런 인광들이 떠올랐다.

“시야를! 하백운!”

“컨티뉴얼 라이트!”

치이이잉!

어둠은 마물의 것. 빛은 인간의 것이다. 새로 열려 버린 선창의 어둑어둑한 천장에, 하백운은 강렬한 빛을 박아 버렸다.

“프로텍트 프롬 이블!”

뒤이어 이경이 사악한 기운에 대한 방어를 캐스팅했다. 원래는 성직자 전용의 마법이지만, 마법사도 소수지만 흉내 정도는 낼 수 있는 이들도 있었다.

“헤이스트!”

“슬로우!”

“야아아압!”

파직! 파가각! 퍼걱!

뒤이어 버프와 디버프가 마구 걸리고, 움직임이 날렵해진 서문영, 운소령, 당무련이 마구 공격을 퍼부었다.

캥! 캥! 콰득!

상대는 언데드. 그것도 어두운 심처의 언데드다. 팔을 날리고 다리를 날려도 곧 재조립되어 부활한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시간 끌기. 끼득거리며 버둥거리는 해골 머리에, 마지막 일격이 꽂힌다.

“후움! 후움! 타아아아!”

퍼걱! 퍼걱! 파사삭!

언데드의 천적. 신성력에 가까운 불문의 내공이다. 다른 무인들이 움직임을 둔화시키면, 방윤의 일권이 두개골을 깨뜨려 마무리 한다.

“갈림길이야! 어디지?”

“구조로 봐서는 이쪽일 거야! 서문영?!”

“맞는 것 같아! 가자!”

우르르르!

언데드로 안 되자, 유령선은 내부에 미로를 만들었다. 수많은 갈림길을 내고, 원래는 있지도 않던 벽을 세웠다.

구드드득!

수밀격벽. 배가 물에 한 번에 잠기는 것을 막기 위해, 언제든지 한 곳을 막아 둘 수 있는 두터운 벽.

“필리아!”

“오래 묵은 나무여! 거부해 왔던 세월을 받아들일지언저!”

꽈드득! 우드득!

하지만 필리아의 정령술을 두드려 맞자, 두터운 나무벽은 삽시간에 부식되어 버렸다. 거기에 일행의 공격이 작렬하자, 벽은 절단이 아니라 아예 박살이 나 버렸다.

투닥! 투닥! 쇄애액!

“머리 조심!”

탱! 탱! 캉!

뾰족한 나무 파편이 화살처럼 날아들면, 운소령의 쾌검술과 방윤의 날랜 권장이 그것들을 쳐 날렸다. 일행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마법사와 몸이 둔한 소진을 보호했다.

“끝까지 왔어! 소진?”

“계단이 있을 거야! 살펴봐!”

“어둠 조심! 컨티뉴얼 라이트!”

팟! 팟! 팟!

완전히 물이 올랐달까. 파티는 한 몸이 되어 민활하게 움직였다. 전원이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찾고 있었고, 누구도 헛되게 움직이는 일이 없었다.

“계단이다! 내려가!”

우르르르르!

방어가 뛰어난 전위가 앞서서 몸을 날려 자리를 잡는다. 다음으로 마법사가 주위를 밝히고, 방어와 지형지물 파악에 나선다.

마지막으로 후위가 내려오고, 혹시 모를 습격에 대비해, 뒤쪽을 막아 버린다.

“스톤 월!”

“메탈라이즈!”

꽈드득!

필리아가 만들어 낸 돌벽을, 마법사가 금속처럼 단단하게 바꾸어 버렸다.

팟! 팟! 팟!

벌써 세 층. 아니, 네 층째인가. 목표로 했던 선박의 최하층까지는 지척이었다.

우드드드…….

두둑. 두둑.

“…좀 이상한데?”

“움직임이 멈췄어. 음… 기운도.”

“이한?”

잠시간, 이제껏 발광을 하던 유령선이, 흔들림을 멈추고 잠잠해졌다. 쉴 틈 없이 이제껏 달려오던 파티원들은, 잔뜩 경계를 돋웠다.

“어, 한쪽으로 몰려 있네. 힘을 모으는 모양이다.”

“…한숨 돌리자. 우리도 기력을 회복해야 해.”

천마의 단정에 서문영은 바로 등을 기대고 숨을 몰아 쉬었다.

“괜찮을까?”

“괜찮을거야. 우리에게는 확실한 한 방이 있으니까.”

말과 함께 흘깃, 천마를 돌아보는 서문영. 그리고 그는 곧 고개를 가로 저었다.

“이참에 정리 좀 할까. 소진, 아까 밸러스트가 어쩌고 하지 않았어? 그게 뭐야?”

“아… 바닥짐을 말하는 거야. 서역의 군선은 잘라 보면 단면이 역삼각형을 띠거든.”

“역삼각 구조… 좀 위험하지 않아? 파도만 세게 맞아도 뒤집힐 수가 있을텐데.”

“위험한 거 맞아. 그래서 아래를 아주, 아주 무겁게 하는 거지. 보통은 돌, 아니면 모래 자루. 그런 중량이 무거운 걸로 선체를 지탱해. 오뚜기 생각하면 알 거야.”

헉헉대는 와중에도, 소진의 말은 또렷했다. 만물박사답게 서역의 선박에 대한 지식까지 있다는 것이, 일행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아까 선장실도 어쩌고 하지 않았어? 왜 굳이 배의 가장 바닥으로 내려와?”

“뭐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결코 보통의 놈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아. 최소 그 롤란드인가 하는 검은 기사, 그 정도겠지. 그럼 가장 위험한 건 가장 나중으로.”

당무련의 말에 서문영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운소령과 방윤이 끄덕였고, 필리아는 살짝 눈을 반개한 채, 어둠 속을 노려보고 있었다.

피식!

“그래… 그냥 힘만 세다고 다가 아니지.”

천마는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하는 일행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한? 뭐라고?”

“아냐, 그냥 혼잣말.”

일행이 바짝 주목을 해 왔지만, 그는 고개만 내저었다.

이들 파티는 어느새부터인가, 천마가 나서기도 전에 난관을 해결하고 있었다. 그건 딱히 천마를 배제하려는 것이 아니다.

가급적이면, 자신들의 힘으로 뭔가를 해 보려는 것이었다. 그런 노력하는 모습. 나쁘지 않았다. 반면 천마는 좀 묘한 감흥에 빠졌다.

‘무조건 내가 맞는 건 아닐지도.’

이 군선, 아니, 유령선을 천마 혼자서 탐사했다면… 그냥 다 부수고 박살 내는 걸로 끝이었을 것이다.

죽여도 죽여도 안 죽는 언데드? 여차하면 염화공으로 싹 다 불질러 버리면 그만이다.

혹 상대가 영 까다로우면, 힘껏 퍼부은 후 물러섰다가, 다시 힘껏 퍼붓는 식으로 일격 이탈을 계속해서 어떻게든 깨부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천마 혼자였다면.

이 습지대를 탐사하지도, 이 유령선을 발견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설령 발견했다 해도, 이런 경험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째 묘한 감흥에 빠져, 천마는 일행들을 돌아보았다. 이제껏 인정하기 싫었지만.

‘이거… 나보다 나을지도.’

진지하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껏 검진이니 합격술이니 하며, 여럿이서 몰려다니는 것들을 천시했다. 적어도 예전의 생애서는 항상 그랬다. 강자는 스스로 오롯한 것이 당연하다 여겼다.

하지만 지금 그가 보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서문영, 운소령, 방윤, 당무련, 필리아, 하백운, 이경, 거기에 소진까지.

하나하나가 자신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이들이다. 하지만 협력하고, 협조하며, 모두가 하나가 되어 각각의 능력을 합친 것보다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낸다.

이를 무어라 받아들여야 할까?

‘생각보다 제법이란 말이야…….’

수하로 들이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잘하게, 녀석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쉬운 실마리 정도를 던져 주었다.

그랬더니 녀석들은, 천마에게 호의적이고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기 시작했다. 딱 생각했던 대로다.

하나 그렇게 파티로 움직이며 천마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있었으니, 바로 자신의 마음이었다.

‘부러워하는 건가? 이 내가?’

평생을 무에 바쳤던 인생이었다. 다른 여타의 감정을 모두 버리고, 수하도, 신도도, 모두 멀리하며 오롯이 혼자 무의 극한을 보고자 살았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무(武) 라…….”

한자로 무란, 창을 멈추게 한다. 싸움을 그치게 한다는 뜻이다.

약한 자가 강한 자에게 대적하기 위한 수단. 그것이 어떤 자에게는 검이고, 어떤 자에게는 암기이며, 어떤 자에게는 마법이다.

그렇다면 조직력과 협력이라는, 인간에게 있는 고유한 힘을 굳이 배척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이전의 생은 이미 이전의 생이다. 지금의 천마는 이한이라는, 십 대 소년의 몸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새 삶을 얻어 다시 탈마에 이른 지금, 반드시 예전처럼 홀로 독야청청하게 매진할 필요가 있을까? 애초에 신화경이라는 전대미문의 경지를, 어찌 보면 이미 실패한 방법으로 다시 두드리는 것이 과연 옳을까?

“…….”

“…….”

“…뭐 하냐? 늬들?”

한참 그렇게 생각에 빠져 있다 돌아오니, 유달리 주변이 조용했다. 천마가 물어보자 크흠, 크흠, 방윤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어… 뭔가, 깨달음을 얻고 있는 것 같길래. 방해할까 봐.”

“…….”

피식!

천마는 다시금 실소했다.

물론 생사를 걸고 싸우다 얻는 심득, 무인에게 이런 깨달음의 기회가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건지? 화경의 끄트머리도 잡지 못한, 그것도 소림승 녀석이 자신을? 그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했다.

“대충… 적당히 쉰 것 같으니 다시 움직일까?”

“음.”

부스슥.

서문영의 말에 일행이 다시 몸을 일으켰다. 이제 보니 진작에 회복이 되었는데 천마가 생각에서 깨어나기를 기다려 주었던 모양이다.

‘어, 이러다 진짜 정들겠는데.’

가슴 한편이 간질간질해지는 기분에, 천마는 쓴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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