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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205화 (206/310)

205화. 왕가의 위엄 (2)

쿠우웅! 와직!

사람보다 더 큰 주먹이 배의 바닥에 쑤셔 박혔다. 이를 가볍게 피했던 방윤이 기막힌 비명을 질렀다.

“미친!”

움푹 팬 자국은 거의 사람 하나가 들어갈 정도.

공격을 막는 게 아니라, 회피하는 방윤이라 천만다행이었다. 혹여 방패로 저걸 막으려다간 그대로 피 곤죽이 되고 말았으리라.

“와! 스님이 욕한다!”

“…아, 아미타불! 망령되이 입을… 아니! 이럴 때가 아니라!”

천마의 놀림에 방윤은 버럭 하다 말고 정신을 차렸다.

“다들 조심하길! 스쳐도 황천길이다!”

“극락왕생이라고 해야 하는 거 아냐?”

“아! 제발! 좀!”

천마의 놀림에 짜증을 낸 방윤. 하지만 묘하게도 그런 농담이 몸을 움츠리지 않게 해 주고 있었다.

“괜찮아! 강하지만 둔해!”

카캉! 쾅!

등 뒤를 후려갈긴 서문영의 외침. 그에 골든 골렘이 화난 듯이 몸을 돌렸다.

구드드득!

쇠는 무겁다. 그런데 금은 그런 것들 중에서도 가장 무거운 금속이다. 머리통만 한 덩어리만 되어도 성인 장정이 끙끙대며 혼자 들기 힘겨울 정도다.

하나 지금 그들의 앞에 나타난 황금의 골렘은, 거의 집채만 했다. 무게가 얼마나 나갈지 측정 불가.

부우우웅! 콰앙!

“둔하긴 한데! 만만하게는 못 보겠어!”

채챙! 카카캉!

쾌검을 쓰는 운소령이 외쳤다. 그녀는 검도 몸도 빠르게 움직이는 타입. 넓고 개방된 공간이 주 싸움터다.

구우우우!

하지만 지금 골렘이 주먹을 날려 오는 공간은 밸러스트 층. 선박의 가장 하단으로, 높이가 겨우 2-3미터에 불과했다.

콰콰쾅!

“꺄악!”

“으악!”

또 빗나간 주먹질에 당무련과 소진이 비명을 질렀다. 분명 둔하지만, 한 방 한 방이 저승길로 우습게 보낼 막대한 힘을 담고 날아온다. 좁은 선내 공간인 데다, 금주먹이 후려갈긴 선박의 벽이 산산조각 나며 파편을 튀겼다.

“제기랄! 왜! 왜! 다 이런 것들이냐고!”

파바박! 파바박!

당무련은 분통을 터뜨렸다.

암기라는 가벼운 무기를 주 무기로 쓰는 그녀에게, 골렘은 말 그대로 상극이었다.

안 그래도 언데드들 때문에 그간 고역을 치르다가, 겨우 성수에 담근 비황석으로 이득을 보았는데 이번엔 무거운 황금 골렘이라니.

상대가 안 좋아도 너무 안 좋았다. 전력으로 암기를 날려 봐야 이빨도 안 들어갈 상대였다.

“하백운! 이경! 마법 좀 써 봐!”

“제기랄! 골렘한테 뭘! 그것도 마나 메탈인데!”

당무련의 질책에 하백운이 성질만 부려댔다.

골렘은 기본적으로 어지간한 마법에 내성을 가지고 있는 몬스터다. 게다가 철도 아니고 황금. 단순히 값비싼 귀금속이 아니라, 전기나 열을 잘 전달하는, 마나 메탈이었다.

“슬로우! 위크니스! 큭… 안 먹혀! 역시!”

이경이 디버프를 걸어 보다가 역류된 마나에 숨 막혀 했다. 마법은 분명 강력한 기술이지만, 무효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아예 파훼될 경우, 마법사는 상당한 피해를 입는다.

마치 주먹으로 석판을 부수려 할 때, 석판이 깨지지 않으면 타격한 주먹이 큰 상처를 입는 것과 같았다.

“야, 하백운. 너, 마법사잖아. 네 마법으로 저거 어떻게 못 해?”

“못 해! 시발!”

하백운이 욕을 했다.

분명히 압도적인 마법으로 골렘을 무력화시키는 방법도 존재했다. 하지만 하백운으로서는 그렇게 파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애초에 골렘은 그냥 움직이는 쇳덩어리가 아니다. 녀석은 마법 생명체, 아니, 마법적인 존재다. 마법으로 움직이며, 그만큼 강력한 반마법진을 몸에 두르고 있다.

“심지어 소재가 황금이라고!”

황금은 수용력이 높은 마나 메탈이다. 전도율이 극히 높아, 어지간한 마법 간섭은 전신으로 흐트러뜨려 흡수해 버린다. 크기마저 집채만 하니 저걸 장악하려면 대마법사급의 꿈도 못 꿀 마력이 필요하다.

“어, 황금이 불에 약하지? 열로 녹여 버리는 건 어때?”

“미쳤냐! 우리가 숨 막혀서 죽어!”

천마의 말에 하백운이 또 한 번 버럭 했다.

분명히 황금은 열에 잘 녹는 금속이다. 하지만 천마의 말처럼 강력한 화염 마법으로 지졌다간, 여기 있는 모두가 질식사하고 말 것이다.

지금 장소는 밸러스트 층. 가뜩이나 좁고 밀폐된 선박 내의 최하층이다. 창문도 없는데 불 질러서 일어나는 열기와 연기를 어떻게 감당하란 말인가.

“핵을! 핵을 찾아야 해!”

부우우웅! 쾅!

서문영이 그나마 정석을 말했다.

황금 골렘. 아무리 마나 메탈이라 마법의 성능을 잘 살려 움직이는 존재라 해도, 결국은 골렘이다.

놈의 움직임을 제어하고 행동하게 하는 핵을 부수면 제압 가능하다. 문제라면.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부우웅! 채채챙! 카가가각!

느린 골렘의 움직임을 이용해, 서문영과 운소령이 여러 번 칼날로 놈의 몸을 깎아 냈다.

스르륵. 스륵.

하나 깎여 나간 부위는 기묘한 소리와 함께 천천히 다시 들러붙었다.

“재생까지 한다고! 이거!”

챙챙! 캉캉!

차라리 단단한 철 골렘이나 돌 골렘이라면, 단단한 만큼 쉽게 깨뜨릴 수 있었을 것이다.

애초에 골렘은 오랜 세월 파수꾼 역할을 할 것을 염두에 두고 만드는 구조물. 스스로 파손될 경우, 천천히 자가 수복을 하는 기능 정도는 탑재하는 법이다.

그래서 여차하면 겉을 깎아서 부수는 방식으로, 피해를 축적시켜 마나 소모를 강요, 말려 죽일 수 있었다.

하나 지금 이놈은 황금 골렘이다. 품고 있는 마나양이 어마어마한데다, 무르기까지 한 금속. 날붙이로 깎으면 다시 들러붙고, 둔기로 찍으면 다시 살이 채워진다.

“어, 어쩌지… 어떻게 해야 하지…….”

선벽에 바싹 붙어, 소진은 오들오들 떨고만 있었다. 당무련과 함께 이번 싸움에서는 전혀 전력에 보탬이 되지 않는 그였다.

“쯧.”

천마는 그들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투지를 가지지 못한, 스스로 마음이 꺾여 버린 녀석들에게는 가르침을 줘도 먹질 못한다.

어찌 보면 무리도 아닌 게, 하필이면 황금 골렘을 상대로는 뭘 하려고 해도, 방해만 될 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으니까.

“부처님… 부처님……! 크윽……!”

“호오?”

한데 그 와중에 필사적으로 눈을 붉히고 있는 녀석, 방윤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진땀을 흘리고, 그러면서 어떻게든 골렘의 시야를 자신에게 이끌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맨손으로.

-야, 땡중.

보다 못한 천마가, 혀를 차며 전음으로 그에게 물었다.

-너, 그거 안 가지고 왔냐? 지금 딱일 거 같은데?

“…이한?!”

퍼뜩. 방윤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챙! 채앵! 캉!

“큭! 칼날이…….”

세검으로 쾌검을 쓰는 운소령이 점점 구석으로 몰려 가고 있었다.

아무리 부드럽다고 하나 황금은 기본적으로 금속. 그것도 밀도가 높고 무거운 금속이다. 날아드는 충격량 자체가 어마어마하니, 가볍고 날카로운 그녀의 검이 버티질 못하고 있었다.

“샤프니스! 스트렝스!”

시잉!

“고마워!”

이경이 보조 마법에 특화된 마법사인 것이 다행이었다. 삐걱거리던 운소령의 세검에서 희미한 빛이 나고, 근력 강화의 버프를 받자, 운소령은 곡예에 가까운 몸놀림을 보일 수 있었다.

팟! 파밧! 팟!

“야아압!”

벽과 천정을 걷어차며, 그녀의 몸이 거꾸로 뒤집혔다. 위에서 아래를 노리는 쾌검이, 벼락처럼 황금 골렘의 머리를 가르고 지나갔다.

카드득!

크어어어!

두 뼘가량 베인 상처에, 골렘이 처음으로 고통스러운 듯한 괴성을 질렀다.

“머리다! 머리가 약점이야!”

처음으로 소득이라 할 만한 공격이 먹혔다.

골렘은 기본적으로 호문클루스. 인간의 형상을 따라 만든 마법의 존재다.

핵이라 할 수 있는 위치는 당연히 머리, 혹은 심장, 그쪽에 있는 게 효율이 가장 높다.

“소재가 너무 좋았군! 뻔하잖아!”

하나 대개의 경우, 약점이 너무 뻔한 마법 기물은 파훼가 쉽게 되는 법.

그래서 대부분의 골렘은 효율을 다소 포기하더라도 변칙적인 위치. 발뒤꿈치라든가, 엉덩이라든가, 그런 애매한 위치에다 핵을 둔다.

하백운이 처음에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도, 급소가 어디인지 전신을 다 두들겨야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데 이놈의 제작자는 그런 트릭을 전혀 쓰지 않았다.

“윈드 커터! 에어로 봄!”

파바바방! 바사삿!

쾌재를 부르며 공격 마법에 나선 것은 당연. 머리로 날아드는 공격에 골렘이 반사적으로 막는다.

실제 대미지는 황금이라서 거의 박히지 않아도, 스스로를 지키려는 움직임이 나오는 것이다. 자연히 움직임에 제약이 걸렸다.

“이경! 버프 좀 걸어 줘!”

타닷!

거기에 방윤이 가세했다. 이제껏 맨손으로, 가벼운 몸놀림으로 골렘의 공격을 유도만 하고 있던 그가, 처음으로 등에서 꺼내 든 무기는.

“삽? 제기랄! 멋진데! 샤프니스!”

우웅!

삽, 흔히 방편산이라 불리는 무기. 거기에 마법의 힘이 깃들었다.

천하공부출소림이라는 말이 있다. 세상의 모든 무예는 소림에서 비롯되었다는 뜻이다.

달마가 천축에서 넘어오기 전부터, 소림은 존재했었다. 그가 전한 신비한 무예를 후대에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 저 이름 높은 소림 칠십이종 절예일 뿐.

불도(佛道)의 기본 원리는 싸움을 피하고, 피를 보는 것을 꺼리는 것.

하나 사람이 깊은 산에 거하며 생활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위협에 직면하게 된다. 굶주린 맹수, 혹은 도적 같은 위협. 아무리 대자대비한 고승 대덕이라도 자기 자신은 지켜야 했다.

혹은 까까머리 어린 사미승이나 사찰을 찾아 불공을 드리는 시주들의 안전을 제가 손 쓰기 싫다 하여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소림 무예의 시작은 거기서 비롯되었다.

애초에 승려들이 출가하여 몸과 마음을 닦는 동안, 불도에만 매진하느라 허약해질까 봐 일부러 신체 단련을 시키던 것이 정립되어 권각술이 되었다.

지키고 물리치는 것. 공격보다는 수비에 주를 두는 성향이 기본적이며, 창검 같은 실제 병기보다는 곤이나 봉, 혹은 낫이나 쇠스랑 같은 농기구를 다뤘다.

따라서 소림의 무예는 기본적으로 실천적(實踐的)이었다. 실전적(實戰的)이 아니라.

-야, 넌 왜 무기 안 써?

-무기랄 게… 없는 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너, 소림 아냐? 장병술 하나도 안 배웠어?

-배우기는 했지만… 방편산이라서.

지난번에 천마가 물을 때 방윤은 조금 얼굴을 붉혔다.

그는 어려서부터 체격이 좋아 소림에서 자라는 동안 힘쓰는 일을 많이 했다. 길을 닦고, 홍수가 지나간 뒤 무너진 비탈을 파내고.

때로는 불도에 매진하는 선대 고승들의 거처를 정비하는데, 그러는 동안 가장 많이 손에 들고 써야 했던 도구가 삽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익힌 삽질이 나중에 장병술을 배울 때 영향을 미쳐 방편산을 선택하게 되었다.

-뭐야, 좋은 거 알고 있었잖아. 근데 왜 안 써?

-그게 좀… 모양새가…….

-모양새? 출가인이 별걸 다 신경 쓰네. 칼을 손에서 내려놓으면 부처다. 불경에서 그리 말하지 않아?

천마는 방윤의 선택에 미묘하게 웃음을 지었다.

대저, 병기란 흉험함이 다가 아니다. 손에 익을수록, 수행자의 성향에 맞을수록 위력을 발휘하는 법.

방편산은 무기로서의 특성이 가미되었지만, 그 근본은 삽이다. 흙을 파내고, 길을 다지고, 남과 다툴 일 없이 조용히 자신을 가다듬는 것. 그것이 방윤의 천성이었다.

누군가를 해치는 것이 목적이 아닌.

그저 장애물을 치우고, 걷어 내기 위한 움직임.

-야, 이번에 나갈 때는 꼭 챙겨서 와. 너한테 제일 잘 어울리는 무기, 아니, 도구다.

천마는 그런 방윤의 성정을 알았다. 그래서 모양새가 어떻든, 한번 가지고 휘둘러 보라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방윤이 휘두르는 방편산은, 경지에 상관없이 우직하고 강한 기세를 담고 있었다.

“으아아아!”

퍼억!

그리고 그건 지금 이 순간, 여지없이 발동되었다.

마법의 힘으로 예리하고 강해진 삽날은, 방어 자세를 취하고 있는 황금 골렘의 팔뚝을 그대로 파고들어 무른 금속을 흙처럼 크게 떼어 냈다.

“으와아아! 으압! 으압!”

퍼억! 퍼억! 퍼억!

“저, 저거!”

“우와아아!”

갑자기 가세해서 괴력을 발휘하는 방윤. 그의 움직임에 일행 모두가 놀랐다. 딱 한 사람, 천마만 빼고.

“하하, 이건 뭐, 진짜…….”

그는 방윤의 방편산 날에 서린, 희미한 서기를 보고 웃었다.

“신검합일… 아니, 신산합일이라고 해야 하나?”

역시, 세상 만물은 다 쓸데가 있는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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