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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207화 (208/310)

207화. 왕가의 위엄 (4)

쿵! 쿵! 콰드득!

거대한 황금 뭉치가 선벽을 후려쳤다. 파편이 튀고 아이들이 와르르 무너진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천마는 자문했다. 손이 근질거렸다.

당장 저 거슬리는 금덩이를 뭉개 버리고, 한 손을 탁탁 털며 모든 것을 끝내 버렸으면 싶었다.

예전처럼.

‘아니, 아니야. 예전처럼은 안 돼.’

하지만 그런 생각을 애써 떨쳐 내는 천마였다.

아직 성질머리가 남아서 수시로 다 깨부수는 깽판을 치긴 하지만, 그도 약간은 생각이 바뀌었다.

이한의 몸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되고 난 이후로.

다른 무엇보다 영원할 것 같던 천마신교의 몰락과, 약해 빠진 줄 알았던 중원 무림의 놀라운 진화가 충격이었다.

‘신교는 너무 곱게 키웠지. 그러니……!’

막 스스로를 다지던 천마의 눈이 커졌다.

부우웅!

전방에서 삽으로 황금의 발을 파 내던, 방윤의 머리 위로 거대한 주먹이 내려 꽂힌다. 저거 위험… 하고 천마가 막 움직이려는 순간.

“방윤! 등짝에!”

마법사가 기지를 발휘했다. 그는 파티원에게 피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럴 틈이 없었다.

쉬이익! 펑! 펑!

“끄악! 야! 이게 무슨…….”

매직 미사일. 아군에게 등짝을 공격당한 방윤. 그가 차마 욕은 못 하고 항의만 하려던 순간.

쿠우우웅!

섬찟할 정도로 무거운, 황금의 주먹이 내려 꽂혔다. 조금 전 바로 그가 있던 그 자리로.

“무슨 뭐?”

“고… 고맙다고!”

사정을 안 방윤은 머쓱했다.

갑자기 등짝을 맞아서 기분이 좀 뭐했지만, 그래도 짓이겨지지 않은 게 어디인가.

방금은 말하고 알아듣고 피하고 어쩌고가 불가능했다. 그러고 있었다간 내려찍힌 황금의 뭉치에 분명 짓이겨진 고깃덩어리가 되었을 터였다.

“차아아압!”

카가가각!

뒤이어, 서문영이 검뢰를 뿜으며 골렘을 밀어붙였다. 덕분에 살짝 불안정했던 방윤은 곧 자세를 회복했다.

“후우……!”

“…….”

필리아가 크게 가슴을 쓸어내렸고, 겉으로 태는 안 냈지만 천마역시 내심 긴장했던 것을 풀었다.

‘이거야 원.’

그러고는 긴장했던 자신에게 쓴웃음을 지었다. 정말로 정이라도 든 것일까.

신교의 인물도 아니고, 소림승이 죽을 뻔한 것에 이토록 걱정을 했다니.

“저어… 이한.”

“응?”

“나도 뭔가 하면 안 될까? 이대로 보고만 있기에는 너무…….”

“너는 지금 나설 상황이 아니다. 계집애야.”

참전하고 싶다는 필리아의 의사를, 천마는 단번에 거절했다.

기분 같아서는 당장 그 역시 내심 나서고 싶었다. 하지만 참는 중이다. 그런데 어딜?

“여기가 끝이 아니야. 다음이 있다. 거기서 힘을 써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는 힐끗, 천장 너머로 불길함이 잔뜩 느껴지는 공간, 이 배의 선장실일 듯한 곳을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필리아는 예비 전력이다. 그녀가 나선다면 지금의 대치는 금방 끝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천마는 그녀를 꼭 붙들어 놓고 있었다. 저렇게나 딱 맞는 적수를, 어디서 또 구해?

“써야지 는다. 얘네들도 손발 좀 맞춰야지.”

좋은 적은 좋은 친구만큼이나 만나기 힘든 존재다.

카캉! 카캉!

황금 골렘과 파티의 싸움은 백중세, 아니, 파티가 약간 모자란 열세였다.

골렘은 점차 피해가 누적되고 있긴 하지만, 그 움직임에 거리낌이 없었다. 반면 파티는 약간의 우세로 계속 피해를 주고는 있지만, 피로가 쌓여 움직임이 느려지고 있었다.

“허억… 허억…….”

방금도 방윤이 죽을 뻔했던 건, 지쳤기 때문이다.

그의 전신에서 만두를 찌는 것처럼 허연 김이 일어났다. 죄다 땀이었다. 내공을 극한까지 끌어올리고 있는 것이다.

무럭무럭!

무리도 아니었다. 그의 공격은 서문영이나 운소령처럼 검기를 담아 휘두르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었으니까.

퍼억! 퍼억!

기를 잔뜩 머금은 삽으로 계속 골렘을 퍼내는 일. 선이 아니라 면으로 소모되는 내공이다. 소림 특유의 심후한 내공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나자빠졌을 일이었다.

심지어.

“흡! 하압! 차아!”

부우웅!

상대는 십여 톤은 우습게, 어쩌면 수십 톤이 나갈지도 모르는 금덩어리다.

스치면 죽는다. 저 압도적인 무게를 방어나 비껴내기로 상대하려다간 바로 피 곤죽이 되고 말 터.

그래서 그냥 피해야 했다.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공격은 물론이고 방어에도 허초를 섞어야 했다.

애초에 갑옷과 방패로 방어를 하는 일반 탱커와, 아예 안 맞고 피하면서 적의 시선을 끄는 회피형 탱커 사이에는 이처럼 움직임이 훨씬 많이 요구되는 차이가 있었다.

“허억… 허억… 허억…….”

“방윤! 괜찮아?!”

그러니 체력이고 내공이고, 삽시간에 말라 버릴 수밖에. 저러다 지치게 되면 삽시간에 피 곤죽이 되고 말 터였다.

“괘, 괜찮아! 하루 종일도 할 수 있어!”

“…….”

뻔히 보이는 허세다. 운소령의 얼굴이 침중해졌다.

하지만 무리하지 말고 물러서라고 할 수도 없었다. 지금 당장으로서는 현 상황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벅찼으니까.

“서문영! 아무래도!”

운소령이 외쳐 불렀다. 이제 한계이니 그만 천마에게 도움을 요청하자는 의미였다.

“…조금만 더.”

부르릇! 카각!

하지만 서문영은 그 부름을 들은 체 만 체 했다.

운소령이 살풋 눈살을 찌푸렸다. 괜히 자존심 부리지 말라고 입을 열려는 순간.

“……?!”

서문영이 뿌려 낸 검기에서, 뭔가 이상한 흔들림이 보였다.

부웃! 파캉!

분명 직선으로 뻗어 나갔을 검기가, 갑자기 갈라지며 비스듬하게 여러 방향으로 번져 나간 것이다.

‘마법……? 검에 인챈트 된……?’

잠시 상식과의 괴리에 머리가 굳었다. 조금 전의 검기는 운소령이 아는 일반적인 검기와는 확연히 달랐다. 어떻게 보아도 마법이 인챈트 된 검을 쓰는 것 같은 공격.

‘설마……!’

“운소령! 틈을 내 줘!”

그 기이함을 깨달은 것은 운소령만이 아니었다. 뒤에서 싸우는 광경을 보고 있던 당무련이 빼액! 소리를 내질렀다.

“하앗!”

운소령은 반사적으로, 즉각 몸을 날렸다. 그녀 역시 제갈 세가의 일원. 머리가 영민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이다.

부우웅! 바밧! 카가각!

거대하고 무거운 주먹을 피하고, 천장을 박차며 다시금 속도에 박차를 올린다. 특히 머리 쪽을 노린 공격에 골렘의 경계가 그녀에게 쏠린다.

부우웅!

아래에서 위를 향한 공격. 하지만 아무리 마법 기물이라 해도, 이런 공격은 느려지게 마련이다. 무겁기로는 철보다 더한 황금은, 더욱 그랬다.

“흡!”

파밧!

그리고 이런 공격은, 피해 내고 나면 옆구리가 훤히 비어 버린다. 그 틈을 포착한 것은.

“허업!”

눈이 살짝 흐려진 방윤이었다. 완전히 무방비 상태가 된 옆면. 그곳으로 기를 가득 두른 삽이 향하려 할 때.

“방윤!”

“멈춰! 빡대가리야!”

“……?”

두 사람의 호통에 끼긱! 황급히 방윤이 멈추면서 거리를 유지했다. 그게 천행이었다.

“트압!”

구구궁.

반 박자 정도 늦게, 서문영이 뻗은 검기가 섬광을 뿜으며, 갈지자처럼 방향을 꺾으며 내려 꽂혔다.

번뜩! 따아앙!

“우왁!”

“꺄악!”

일순 섬광과 폭음이 일었다.

배 안에서 절대 있을 수 없는, 애초에 사람이 낼 수 없는 강렬한 충격음에 저도 모르게 주춤하고 만다. 그건 분명 마법에 필적하는 공격이었다.

“방금… 뭐?”

“라이트닝(Lightning:電擊)이야! 최소 3서클!”

덕분에 마법사들은 잠시 현 상황과 상식 간의 괴리에 버벅거렸다.

그들이 알기로 서문영은 순도 백 퍼센트의 무인이었다. 그런 그가 마법을 썼다. 무인이 절대 쓸 수 없는!!!

그으으으.…….

파직! 파지직!

신음하는 골렘. 그 온 전신에 금빛의 휘황함이 아닌, 다소 섬뜩한 푸른빛의 불꽃이 일고 있었다.

뚝. 뚝. 뚝.

그 움직임은 조금 전과 달리, 무언가 걸리적거리는 기계와 같았다. 파직파직 푸른 불꽃이 튀고, 마치 전신을 경련하는 듯한 황금의 거체를 향해.

“조금 더.”

우득. 구구궁!

서문영이 살짝 멍한 얼굴로 다시 검을 휘둘렀다.

번쩍! 따앙!

그리고 다시금 터진 뇌명(雷鳴)!

“이게 무슨……!”

“맙소사!”

조금 전에는 황당할 뿐이었지만, 이번에는 똑똑히 모두가 보았다.

분명 검기일진대, 그 검기가 전격 마법과 같은 효과를 낸다. 그것도 그저 옆에서 보고 있던 다른 사람들도 놀랄 만한.

그러니 하물며, 그 공격을 받은 대상이라면?

크극, 크극, 크그극……!

골렘은 이제 충격을 숨기지도 못하고 버벅댔다. 찬란했던 황금의 동체 위로, 이제는 시퍼런 뇌광이 번득였다.

파직파직파직!

우득. 우득. 우득.

시퍼런 불꽃을 튀기는 황금의 골렘.

“회로가… 꼬인 모양이야!”

“제기랄! 대단한데!”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던 이들은 마법사뿐이었다.

그들은 마법 기물을 움직이는 코어, 핵의 존재가 강한 전격에 충격을 받았다는 것을 즉각 알아차렸다.

철조차도 벼락을 맞으면 시뻘겋게 달아오르는 법이다. 전기가 통하는 순간, 철 자체의 저항력이 있으니까.

“저항력 어쩐 거야! 씹어 먹었어?!”

“몰라! 금이라서 그런가 봐!”

황금은 달아오르는 대신, 전격을 그대로 투과시켜 버린다. 그러니 아무리 녀석이 마나 메탈이라도, 아니, 마나 메탈이기에 더욱 피해가 컸을 것이다.

그 어떤 마법 회로나 코어도, 그 자체를 순수하게 황금으로 만들지는 못하니까.

따라서 피해는 온전히 골렘의 마법 핵에 그대로 집중되었을 터. 지금 입힌 충격은 이제껏 물리적으로 낸 공격 모두를 합친 것보다 훨씬 강했을 것이다. 외부가 아니라 내부를 정통으로 흔들었으니.

문제라면.

“서문영? 서문영! 야! 정신 차려!”

“타압!”

번쩍! 따아앙!

파직! 파직!

검으로 뇌천벽력도를 깨달은 서문영. 그가 한참 몰입해서 계속 전격을 날리고 있다는 거였다.

끄드드득… 쿠웅!

휘청거리는 골렘. 녀석의 눈은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어 당장이라도 폭주하거나 혹은 멈추거나 할 듯했다. 하지만 놈은 황금. 그리고 놈 주변도 온통 황금 천지였다.

파직파직!

전기를 잘 투과하는 마나 메탈의 특성대로, 놈에게 휘감긴 고농도의 전격은 사방으로 뻗쳐 나가고 있었다. 특히나 바닥에 사방에 널린 금 조각에.

“으억!”

“꺄악!”

치지지직!

가까이서 공격하려던 운소령과 방윤까지, 놈이 맞았던 전격의 부가적인 피해를 받고 있었다.

운소령은 검을 투과한 전격에 몸이 굳었고, 방윤의 삽은 중간의 나무 부분이 새카맣게 타올랐다.

“서문영! 서문영!!! 이 칼잽이야! 정신 좀 차려!”

“어…….”

“너, 뭐 한 거야! 저, 전기를… 으어……!”

주춤주춤.

서문영이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상황은 하나도 나아지질 않았다.

쿠드득. 구드득.

온몸에 벼락을 두른 황금 골렘. 지금까지와는 다른 의미로 위험해진 적이다. 일행은 섣불리 다가가지 못하고, 주춤주춤 물러섰다.

“이, 이한! 야! 저거! 좀 어떻게 해 봐!”

이제껏 최대한 자제했던 당무련, 그녀가 결국 백기를 들고 말았다.

저건 못 당한다. 스스로 불러들인 재앙이 되고 말았다. 맞으면 피 곤죽이 되는데, 이제는 닿기만 해도 전기에 통구이가 되고 말 테니까.

“뭐, 이 정도면 잘들 했…….”

타다닥!

막 천마가 고개를 끄덕이며 나서려는 순간, 일행의 안색이 변했다.

“소진!”

“야! 미쳤어?!”

파티 최약의 전력. 전투 수단이라곤 당무련만도 못한, 가장 약한 녀석이 골렘의 앞으로 뛰쳐나간 것이다.

“&^%$#&!!!”

탕탕!

언제 떼어 냈는지 선벽에 있던 문양, 사자와 왕관과 검이 아로새겨진, 상감된 벽화를 두 손으로 들고.

그르륵!

“*&$%^#@!!!!”

골렘의 눈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이미 느려지고 뚝뚝, 움직임이 멈춰져 있었지만, 여전히 그 주먹에는 소진 하나 정도는 납작하게 만들고도 남을 힘이 있었다.

그러나.

“&*^%^#@[email protected]!!!”

철컥. 철컥. 철컥.

소진이 알아듣지 못할 괴상한 말을 외치며, 떼어서 들고 온 벽화를 내밀자.

덜컥. 덜컥. 쉬우우웅.

괴상한 소리와 함께, 눈에서 빛이 사라졌다.

철컹. 퉁.

와르르르!

그러고는 완전히 쓰러져 행동이 정지되어 버렸다.

“이건 뭐……?”

“긴급 정지 명령…….”

콜록콜록!

고래고래 고함질렀던 소진이, 잔뜩 쉰 소리로 말했다.

“멈추라고 하는 명령어가 있었어… 제기랄, 겨우 비슷하게 발음했네…….”

“아.”

정말 뜻밖에도 이 마법 기물을 정지시킨 것은, 무인도 마법사도 아닌, ‘아는 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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