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211화 (212/310)

211화. 천마가 가지지 못한 것 (2)

콰르릉! 콰직!

벼락이 떨어져 내렸다. 뾰족한 마스트는 뇌전을 빨아들이다시피 하며 그대로 직격당했다.

피식! 화르르륵! 파박!

불이 붙었다. 유령선의 오래 묵은 나무는, 시커먼 연기를 뿜어내며 타올랐다.

후드득. 후득.

낡아서 부스러기가 많아 그런가, 불티가 사방으로 날았다. 불은 곧 해어진 범포에까지 번져, 빠르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키이이이이--!

유령선이 드드드득 진동하며, 화난 듯 격하게 움직였다.

쿠그르륵.

불붙은 마스트가 휘영청 휘어지고, 끊겨서 치렁치렁한 로프들이 채찍처럼 휘둘러졌다.

휘리리릭! 쐐애액!

“조심해! 흐읍---!”

방윤이 경고했다. 운소령을 향해 날아드는 로프 뭉치를 보고.

어지러운 움직임. 구렁이처럼 구불거리며 날아드는 로프.

채찍은 본시 거리를 두고 휘둘러질 때 최대의 위력을 발휘한다. 수십 미터 가까이 휘둘러지는 로프는, 그 속도와 힘만으로도 사람을 찢어발길 만했다.

하지만 이 배는, 그 자체가 언데드.

“타아---! 하!”

쩌르르릉!

방윤이 소림의 사자후 신공을 터뜨렸다. 은은한 금빛과 함께 퍼져 나가는 파사현정의 공능을 가진 음파.

우뚝!

날뛰던 유령선이 순간 정지하다시피 했다. 마치 명치라도 맞은 것처럼. 덕분에 로프의 기세가 죽어 운소령은 피할 수 있었다.

“고마워! 이야압!”

팟!

그녀는 허공에 뜬 상태로 다시 공중제비를 넘으며 날아올랐다. 무당의 제운종이었다.

패리리리릭!

전설의 허공답보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공중에서 체중을 분산시켜, 한 번 두 번 정도는 더 몸을 날릴 수 있는 절정의 경신술.

그르르르릉…….

팟! 팟! 팟!

유령선이 마비에서 풀려났다. 하지만 운소령의 발은 빨라도 너무 빨랐다. 그녀는 유령선의 마스트와 활대를 박차며, 까마득히 높은 망루까지 솟아올랐다.

“대단해…….”

그 모습에 소진은 감탄했다.

가뜩이나 몸이 가볍고 움직임이 빠른 운소령은, 마치 한 마리 작은 새가 나는 듯했다. 체중 감소와 깃털 낙하 아이템의 덕이었을까.

“감탄은 나중에. 제일 높은 저게 맞지?”

이경이 물었다. 보조 마법사인 그는, 두 손을 교차해서 겨냥이라도 하듯 운소령을 향하고 있었다.

“어? 응, 맞아. 미즌 마스트!”

“좋아! 타깃 록! 컨센트레이션-헤이스트!”

우우웅.

이경이 캐스팅했다. 뭔가 잔뜩 공을 들인 것인지, 그의 손에서는 은은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퀴잉!

그리고 기묘한 소리가 나며, 허공에 솟아오른 운소령에게 버프가 걸렸다.

씨잇!

그러자 그렇지 않아도 빠른 운소령이, 휘뜩 여러 개의 잔상을 남기며 더욱 빨라졌다.

“야아아아---!”

순간.

날카로운 기합과 함께, 칼날의 회오리바람이 일었다.

파밧! 파바밧! 파바바바바밧!

실전되었다던 월녀검이, 까마득한 세월을 지나 세상에 다시 나온 듯했다. 운소령의 검은 가벼웠지만, 대신 면도날처럼 예리했다.

피비빗! 피비비빗!

일 초에 서너 번, 혹은 너댓 번도 더 휘둘러지는 칼날.

이경의 특제 버프 없이는 상상도 못 할, 지독한 쾌검의 연격이었다.

“좋았어! 통한다! 이게! 이게 되네!”

불끈!

갑판에서 수십 미터 위의 상공을 보며 이경이 주먹을 쥐었다.

* * *

“그래서. 보스란 놈하고는 어떻게 싸우지?”

밸러스트 층에서 갑판까지 올라올 동안, 일행은 그저 잡담만 하고 있지 않았다. 중간중간 그들은 싸울 상대에 대해 대책을 세우려고 했다.

“글쎄다. 걍 다 때려 부수는 게 답 아닌가?”

“…아이고.”

단순한 천마의 말에 다들 머리를 싸맸지만, 유독 소진만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어쩌면 그게 답일지도 모르겠는데.”

“무슨 소리야?”

“이한의 정령, 페이탈리스트가 했다는 말 말야.”

그림자의 정령은, 상대가 ‘유령선 그 자체’라고 말했다.

배에 빼곡히 들어찬 언데드. 그리고 이제껏 들어오는 동안 멋대로 통로가 열리고 벽이 움직이는 등, 실제로 이 배는 나무토막 주제에 진짜 생명체처럼 움직였다.

“배지만 배가 아냐. 하지만 그럼에도 배는 배지.”

“…농담하는 거야, 아니면 수수께끼 내는 거야?”

“말 그대로야. 이 배는 전열함, 서역식 범선이지. 아무리 유령선이고 언데드가 되었다고 해도 배의 형체를 가지고 있어.”

스윽, 슥.

소진은 바닥에 깔린 먼지 위로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는 서역식 범선의 구조와, 그 구조가 가지는 약점을 알고 있었다.

“범선이라는 기물은 거대한 연과 같아. 혹은 쏠 일이 없이 팽팽하게 당겨진 강궁과 같아.”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아……! 나 알 거 같아! 이거 그거야! 역궁!”

탁! 벌떡!

뜻밖에도, 소진의 말을 바로 알아들은 이는 다름 아닌 당무련이었다.

“둥글게 거꾸로 말린, 평소에는 팽팽하게 되어 있는 강궁! 그거 활시위가 끊기면…….”

“아!”

“아아!”

투사 무기의 전문가가 지적한 말에, 다들 입을 벌렸다.

* * *

카라랑! 카가가각!

불꽃이 튀었다. 수차례 칼날을 맞고도 단단한 고정 삭구는 끊어지지 않았다.

“역시! 나름 대비는 되어 있었어! 그럼……!”

“몸통을 노려! 운소령!”

팟! 팟! 팟!

운소령은 원래 몸이 가볍고 빨랐다.

거기에 이경은 다소 급조해서 엉성했지만, 상황에 맞도록 마법을 조정했다. 그게 바로 컨센트레이션-헤이스트.

움직임을 빠르게 만드는 가속 마법 헤이스트. 거기에 집중 옵션을 적용시킨 것이다.

“셋!”

파바박! 파바바박!

시간은 고작 5초. 그걸로 끝이다. 억지로 끌어다 붙인 마법이기에, 가뜩이나 짧았던 헤이스트의 지속 시간이 더 짧게 줄어들었다.

하나 그랬기 때문에 한순간만큼은 초인급으로 빠르게 움직일 수 있게 된 운소령. 그녀는 집요하게 유령선의 마스트, 중앙에 가장 높이 솟은 범선의 기둥을 가격했다.

-고정 삭구가 약점이야. 그게 끊기면 배는 큰 타격을 받아. 역궁이 시위가 끊기면 뒤로 도르르 말려 버리듯이, 배 전체가 뒤틀리게 될 거야.

-간단하네!

-그렇지…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아마 대비가 되어 있을걸? 물리 내성이라든가… 그런 식으로. 절대 끊어지지 않는 저주라든가.

-그런 게 말이 돼?

-애초에 유령선에서 말이 안 될 게 뭐 있어?

-그럼 방법이 없는 거잖아…….

-아니, 없지는 않지. 시위가 끊어지지 않는 활이라면.

슥. 스슥.

소진은 다시 활을 그리고, 시위를 그리고, 다음으로는 활의 끝부분에 동그랗게 동그라미를 그렸다.

-시위가 연결된 활의 끝부분을 깎아 버리는 거야.

-…….

-어쨌든. 이건 먼저 서문영이 확인해 줘. 배 선체가 타격을 받는지 안 받는지. 근데… 아마 먹힐걸?

바바박! 바가가각!

“둘!”

쾌검은 예리한 대신 충격량이 크지 않다.

운소령은 몸이 가벼운 데다 검도 날씬한 세검이니, 두터운 마스트를 단번에 베어 낼 수는 없었다.

전열함 같은 거대한 범선의 메인 마스트는 최상단의 굵기조차도 사람 몸통보다 더했으니.

“하나!”

파바바박! 카가가가각!

그래서 운소령은 연속으로 일점을 집중 공략 했다. 마치 얇은 원형 톱날이 세차게 돌아가면서 두터운 나무 기둥을 갉아 내듯이.

부스스스. 후드드득.

톱밥이 사방으로 튀었다. 목재를 가공하는 제재소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그리고 그건.

“끝났어! 운소령!”

“야압!”

뿌득! 챙강!

아슬아슬하게 통했다. 사람 몸통보다 더 굵던 미즌 마스트. 서역 범선에서 가장 단단히 고정되는 부분이며, 배 전체를 지탱하는 핵심이 꺾여 나갔다.

피핑! 피핑! 티팅!

촤르르륵! 촤르르륵! 촤르르륵!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전열함. 서역의 뭇 범선 가운데 가장 거대하고 튼튼한 기물이, 갑자기 힘을 잃으며 비틀리기 시작한 것이다.

“조심해!”

“우와악!”

팅! 팅! 퓨퓨퓩! 파박!

갑판이 벌어지고, 사방 기둥과 벽에서 녹슨 못이며, 리벳이니 쇠사슬이니 하는 것들이 멋대로 튀었다.

-범선이라는 기물은 거대한 연과 같아. 혹은 쏠 일이 없이 팽팽하게 당겨진 강궁과 같아.

소진은 그렇게 말했다. 과연 그대로였다.

꾸드득! 꾸드드득!

좌우로 휘우듬하게 휘어진 선체. 그 압도적인 장력을 중앙으로 고정시켜 배 전체로 잘 분산시키는 게 바로 미즌 마스트.

범선의 가장 중앙이자, 삼각의 꼭짓점이다.

-시위가 끊어지지 않는 활이라면, 시위가 연결된 활의 끝부분을 깎아 버리는 거야.

운소령은 그걸 깎아서 부숴 버렸다.

덕분에 꼭짓점을 잃은 유령선은, 그 스스로의 무게로 붕괴 수순에 돌입했다. 실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다.

구오오오---!

-크아아아!

두터운 나무 갑판이 쩌억 벌어지고, 일직선으로 통로가 드러났다. 빠끔히 입을 벌린 통로의 끝은, 갑판에 반쯤 몸을 묻은 선장실.

“드디어 나오시는군…….”

“전원, 경계.”

천마가 느긋하게, 서문영이 나직하게 말했다.

타다닥.

파티원 전원이 온몸에 경계를 두르고, 사위를 살피며 한곳에 모였다.

휘르륵… 타악!

추가로 허공에서 운소령이 낙하했다. 선녀처럼 우아하게 착지한 그녀는 묘하게도 온몸에 부연 빛 무리를 머금고 있었다. 그녀는 가쁘게 숨을 내쉬다가.

“에에에---에이취!”

“…….”

“…….”

요란하게 재채기했다. 이제 보니 그녀가 머금은 빛 무리는 그냥… 톱밥과 먼지였다.

“…왜?”

“아냐.”

“…발동됐어.”

다소 긴장감이 흐트러지던 가운데, 이제껏 거의 말이 없이, 경계를 최고조로 유지하던 정령사가 입을 열었다.

슈르륵- 슈르르륵.

검은 연기. 기분 나쁜 기운이 배 전체로 번져 나갔다. 그 근원은 선장실. 어둑어둑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는 깊은 구멍이었다.

-크으으…$%%^$&@[email protected]#!!

그것은 사람의 형상을 한, 기괴한 것이었다. 좀비도, 구울도 아닌, 스켈레톤이 되다 만 것 같은 언데드.

“어… 저게 뭐지?”

“죽다 만 시체.”

얼굴의 반은 산 사람처럼 멀쩡하고 핏기가 돌았다. 그리고 나머지 반가량은 뼈만 남아 시퍼런 귀화를 흘리고 있었다.

“살아생전에는 좀 높았던 모양이네.”

“선장이니까.”

그 옷은 해어졌으나, 예전에는 휘황찬란했을 것이다. 빛바랜 옷감 위로 주렁주렁 쇠붙이가 달려 있었다. 아마도 훈장이나 계급을 표시하는 그런 상징물이었을 터.

-네놈들… 감히, 여왕께 바치는 내 충성을 빼앗으러 왔는가!

“헛……!”

“이건……?”

귀화를 번뜩이며 분노하는 반인 반골.

뭐라고 외치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뜻은 분명히 전달되었다.

지능이 있는 언데드. 그만큼 위험한 존재.

“오오… 이거 신기한데?”

하지만 그런 것을 전혀 거리껴 하지 않는 천마는 실실 웃으며 짝짝 손뼉을 쳤다.

찰칵.

그리고 검은 기사 롤란드에게서 받은, 검은 검을 들고 반은 해골이 된 유령선의 선장에게 까닥거렸다.

“그래, 이 새끼야. 황금 내놔.”

-감히!

드드드득!

선장이 노해 외치고, 오래 묵은 유령선이 변이를 시작했다.

파---지지직!

꾸드드득! 쏴아악!

세월이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희한하게도, 원래 낡아 있어야 할 쇠붙이가 죄다 새것처럼 번쩍거렸다. 도르래, 쇠사슬, 혹은 날붙이나 뾰족한 창의 촉 등이 모두 되살아났다.

-우오오오!

-호이! 호이! 세일 호!

벌컥벌컥.

그리고 계단 아래서, 이제껏 보이지 않던 수백의 언데드들이 칼을 번득이며 나타났다.

“야, 서문영.”

“알아.”

천마의 부름에 서문영은 픽, 웃으며 검을 들었다.

상대는 금속, 금속, 금속들이다. 전부 쇠붙이다. 그리고 쇠붙이는 전격에 약하다.

“뇌천-벽력도!”

쏴아악! 파직!

벼락이 뻗어 나가 수십 갈래로 갈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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