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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212화 (213/310)

212화. 천마가 가지지 못한 것 (3)

치지직! 빠지지직!

뇌(雷)는 천지간에 가장 강력한 힘의 하나. 또한 부정하고 삿된 것을 태워 버리는 힘을 가진다.

크아악! 캬아악!

쇠붙이를 들고 있던 해골들은 삽시간에 튀겨져 버렸다. 허옇게 뼛가루가 되어 흘러내리는 이들.

크아아아-!

부하들을 꺼내자마자 잃자, 유령선의 선장은 당연히 화를 냈다. 그는 허옇게 흘러내리는 가루들에 대고, 새카만 지휘봉을 휘둘렀다.

-심해의 이름으로 일어날지니! 씨- 서펜트여!

푸으으읏! 구르르륵.

시커먼 어둠이 허연 가루 뭉치에 스며들고, 흐느적거리다가 형상을 이루었다.

주우우욱.

길고 거대하게 뻗은, 뼈만 남은 뱀의 형상으로. 그 크기는 거의 십 장에 달했기에, 다들 기가 막혀했다.

“저거 재활용까지 되나 본데?!”

“당무련! 큰 단검! 이마에!”

“어? 아!”

갑작스런 고함에, 사천당문의 후예는 버벅거렸다.

그도 그럴 게, 방금은 서문영이 아닌 천마가 지른 고함이었기 때문이다.

“무슨 생각하는 거야? 너!”

패앵!

그래도 일단은 하고 본다. 막 몸을 일으키던 씨-서펜트의 해골에, 그녀는 정확하게 단검을 박아 넣었다.

“서문영! 한 방 더! 하백운! 워터 볼!”

“어? 알았어!”

“워터 볼……? 미친! 천재다 너!”

지시를 들은 마법사는 뭔가 알았는지, 킬킬 웃으며 바로 마법을 캐스팅했다. 이마에 쇠 단검을 꽂은 거대한 뼈로 이루어진 뱀에게.

“워터 볼!”

푸화악!

물 덩이가 날아가 터졌다. 사방으로 물이 흘러내려 전신이 젖어 버린 백골의 뱀.

“아하! 최곤데!”

그제야 노림수를 알아차린 서문영이, 킬킬 웃으며 다시 검을 뿌렸다.

“먹어라! 뇌천벽력도!”

파---직!

벼락이 빨려들었다. 당무련이 꽂은 비수에. 막 몸을 일으키던 뼈 뱀은 온몸으로 버둥대며 몸부림쳤다.

지지직! 지지직!

축축하게 젖어서 전격의 여파가 물을 타고 전신으로 번진 것이다.

솨아아아… 후드드득.

어마어마한 양의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거대한 뱀으로 화했던 뼛가루는 바짝 말라 다시 우르르 쏟아졌다. 그 양이 무슨 밀가루를 포대로 퍼부은 것 같았다.

“마법사! 저거 날려! 바람!”

“오오! 거스트 오브 윈드!”

푸아악!

쏟아지는 뼛가루를, 마법사가 돌풍을 일으켜 흩어 버린다. 막 거기에 뭔가를 하려던 유령선의 선장은, 대상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작전 좋았어!”

“이한! 나는 뭐 해?”

방윤, 소진, 필리아, 운소령.

파티의 모두가 천마를 보고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에 천마는.

“…아.”

덜컥했다. 가슴 안쪽에서, 아주 오래되고 그리운 감정.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던 무언가가 떠올라 버렸다.

“그래… 그러고 보니.”

‘나도, 이랬던 때가 있었구나.’

그는 천마. 마교의 교주였다. 그럼에도 교의 일에는 거의 신경 쓰지 않고 방치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세상사 뭐든 그렇듯.

그도 처음부터 그러지는 않았었다.

* * *

천마신교(天磨神敎). 세칭 마교(魔敎).

그 근원이 어디서 왔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혹자는 서역에서 전해진 배화교라고 말했고, 혹자는 불교에서 파생된 백련교라고 했다.

또는 비슷한 풍습을 들어 끽채사마교와의 유사성이 보이기도 했고, 마니를 섬기던 마니교가 변하여 마교가 된 것이라고 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뿌리가 무엇이었건.

그들 모두는 배척받은 자들이었다.

배화교는 페르시아에서 발생했으나, 회회교(이슬람)들에게 축출당해 중원으로 흘러 들어온 이들이었다.

백련교는 처음 불교에서 기원했으나, 소림사의 교리와 충돌하기에 마귀 마(魔)를 붙여 이단으로 배척받았다.

마니교는 창시자이자 교주였던 마니부터가 이단으로 잡혀 죽었고, 살생을 금하자는 끽채와, 죽은 이의 옷을 벗겨 땅에 묻는 나장 풍습이 유생들이 보기에는 역겹다 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이들은.

조정에서, 나라에서, 높으신 어르신들에게 탄압받았다.

-사람이 평등하다고? 하! 하늘의 명을 받는 천자와, 밭 가는 무지렁이 농부가 어찌 같을 수 있단 말이냐!

벼슬하는 높으신 분들은, 그들이 백련교든 배화교든 마니교든 상관없었다. 그들은 세금을 쥐어짜내고, 노비를 부리고, 군졸을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감히, 그들이 들이대면 반드시 따라야 하는 지엄하신 천자의 명을 두고도, 너무 가혹하다고, 천리에 어긋난다고 하는 무리들이 있지 않은가.

그러니 그들에게 가차 없이 마(魔)의 이름을 붙였다. 죽이고, 불태우고, 벌을 주고, 색출했다. 그렇게 도망 다니던, 마귀의 이름이 붙은 백성들이 서로 만나게 되었다.

-그쪽도 쫓겨 오셨소?

-…그쪽도?

그것으로 충분했다.

서로 교리는 달라도, 배척받은 자들은 동병상련으로 서로를 돕게 되었다. 그리고 뭉치게 되었다.

서로 반목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기에 느슨하게 연대했다. 추방당한 이들끼리 싸우다가 자멸하지 않도록, 서로의 교리를 이해하며 배웠다.

그 수는 점점 늘어났다. 그들은 조금 살기 편해졌지만, 조금 슬프기도 했다.

-언제고 이 고통이 끝나기를 바랄 뿐인데…….

-어찌 미륵을 기다리는 것을 죄라 하는 것인가…….

대부분은 그저 농민, 가난뱅이, 삶이 애달픈 서민들이었다. 한 해를 꼬박 뼈 빠지게 농사를 지어도, 겨울을 지나 봄이면 누군가 굶어 죽었다.

그래서 너만큼은 고생하지 말라고 애비가 주린 배를 참으며 키운 자식은, 체격이 좋다고 군역으로 끌려갔다. 미색이 곱지만 아직 어렸던 딸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그래서 백성들은 울었다.

세상은 어찌 이리도 힘들고 괴로운 것인가? 슬픔에 빠져 있던 이들에게 너무도 고마운 말이 찾아왔다.

-어차피 이 세상은 헛것일지니. 언제고 고통이 끝나고 편안한 극락정토가 그대들에게 올 것이오.

-아아…….

그 이름들은 달랐다. 누구는 백련교라 했고, 누구는 배화교라 했고, 누구는 마니교라 했다.

그게 뭐든, 무식한 농투성이들에게 이름 따윈 아무래도 좋았다. 그저 이 힘든 삶이 언제고 끝나고, 그 뒤에 천신(天神)의 자비가 있다는 것에 위안을 받았을 뿐.

하지만 그렇게 얻은 작은 평안이, 대체 높으신 분들에게는 왜 위협으로 보였던 것일까.

-세금을 못 내? 때려라. 죽여라. 본보기를 보이면 일을 하겠지.

-무어라? 죽음을 겁을 안 낸다고? 이 무슨 해괴한 소리냐!

역사적으로, 중원의 왕조는 수도 없이 많이 일어나고 다시 사멸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폭압적인 수탈과, 그 수탈에 저항하여 일어난 농민들의 봉기가 원인이었다.

태평도는 원래 음양오행의 도교적인 사상이었다.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을 구휼하며, 언제고 이 힘든 때가 끝나고 새날이 올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는 가르침이었다.

하나, 환관과 외척에 의해 부패할 대로 부패한 조정은 수탈을 그치지 않았고 폭정은 더욱 극심해졌다.

그저 참고 기다리기만 하던, 언제고 온다는 새날을 기다리던 민중은 결국 머리에 노란 두건을 썼다.

기다리는 대신, 스스로 나가기로 했다.

-창천이사 황천당립(蒼天已死 黃天當立: 푸른 하늘은 이미 죽었으니, 마땅히 누런 하늘이 서리라)

후한 말기. 때는 갑자년.

먹고살기 힘들어진 백성이자 민초들이 난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렇게 일어난 이들은, 높으시고 귀하신 분들에게 베여 죽고 찔려 죽고 불타 죽었다.

유비, 조조, 손견. 그 외의 많은 이름들.

조정에서 벼슬을 받고, 영웅이라 불렸다. 그 영웅에게 죽은 이들은 황건적, 더러운 도적이라 불렸다. 혹은 혹세무민하는 사악한 종교. 마교의 잔당이라 했다.

-후한이 망한 것을 잊으면 아니 된다. 그 시작은 황건적이었으니. 또한 전조가 어찌 무너졌는지를 기억하라. 바로 홍건적이 아니었더냐.

때는 원나라 말기.

척박했던 초지의 전사들. 배고픔에 중원으로 침범했던 몽골인들은 길이 들었다. 쥐어짜도 쥐어짜도 계속 나오는 곡식, 술, 고기가 있었다.

하나 누군가의 먹을 것은 누군가의 살이었다. 몽골인들의 지속적인 탄압에 참다못해 머리에 붉은 두건을 쓰고 일어난 한족들이 있었다.

그들은 같은 민족, 같은 전우였다. 힘을 합쳐 몽골인들을 몰아내고 다시 나라를 세우니, 새 이름을 명(明)이라 했다. 그렇게 새로 나라를 세운 주원장은.

-마교도다! 마교도야! 잡아서 전부 죽여라!

-아아아악!

어제까지 함께 싸웠던 백련교도들을 마교라 몰아붙이며 박멸했다.

종교의 힘은 민초를 군대로 만들 수 있다. 나라를 무너뜨리고 새로 세울 수 있었다. 주원장 그 자신이 그랬기에 누구보다 종교의 위험을 잘 알고 있었다.

위험은 사라져야 했다. 새 나라, 새날을 위하여. 천하의 평화를 위하여.

그래서 함께 싸웠던 이들이 불타 죽었다. 밝은 나라가 오면, 환란이 끝난다고 들었는데, 반란을 일으킬 수 있다며 죽였다.

-배, 백련교에서 나오겠습니다! 살려만 주십시오!

-그냥 죽어라! 너희는 사악한 마교의 주구들이니 이미 구제할 수 없느니라!

-아아악!

백련교도도 죽고, 백련교도가 아닌 이들도 죽었다. 억울한 죽음과 핍박이, 누군가에게는 승진할 실적이었다.

그래서 살아남은 이들은 쫓기고 사냥당하며 도망쳤다. 먼 곳, 척박한 곳. 세금이고 뭐고 나올 것도 없는, 그저 먹을 것 찾기에도 급급한 황량한 북서쪽으로.

-그쪽도 마교도요?

-…그쪽도?

처참하고, 황량한 모습들이었다. 개중에는 별로 선량하지 않아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얼굴은 험상궂고, 옷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배교, 혈교, 혹은 다른 이름의 범죄자들이었다. 조정에서 말하는 진짜 마교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힘이 있었다. 무공이라는 것을 다룰 줄 알았고, 백성처럼 쫓겨 다니며 죽는 것이 아니라 저항하며 죽일 수도 있는 무인이었다.

-같이 뭉칩시다. 우리만 억울하게 죽을 이유가 있소?

-…….

죽을 수는 없었다. 죽지 못해 살던 이들이, 악만 남아 사나워진 이들이, 가리지 않고 뭉치기 시작했다.

무예를 배우고, 군대와 싸웠다. 때로는 이상한 주술이니 의식이니 하는 것도 치렀다. 그러면서 점점 강해졌다.

연거푸 승전을 계속하던 어느 날, 어마어마하게 강한 사람들이 공격해 왔다. 조정의 협조를 받은 구대문파의 무인들이라고 했다.

-무림맹이군……. 세간에서 정파라 부르는 것들이지.

-…정파? 올바른 무리? 정의로운 무리?

-그게 뭐요. 그럼 그들과 싸운 우리들은 뭐가 되는 거요?

-하, 뭐긴 뭐겠소.

물음을 받은 사람이 사납게 퉤, 하고 침을 뱉었다.

그는 범죄자라고 했다. 그래서 쫓기고 죽고 했었다.

하지만 범죄자가 아닌 이들도, 쫓기고 죽고 했었다.

똑같은 처지였고, 똑같이 피를 흘렸다. 똑같이 싸우고, 똑같이 손에 누군가의 피를 묻혔다.

-마교지.

-마교…….

그러니 마교의 뿌리가 뭐든, 그런 건 별로 상관없었다. 마교는 나무가 아니라 커다란 강(江)이었으니까.

배화교, 백련교, 마니교, 배교, 혈교.

그 외의 수많은 이름들이 각각의 지류에서 흘러 하나로 뭉쳤다. 흐르고 흘렀던 백성들의 눈물과 피가, 혈해(血海)를 향해 내려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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