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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213화 (214/310)

213화. 천마가 가지지 못한 것 (4)

-천자는 거짓이다! 새빨간 거짓이다!

나이만큼 긴 수염을 기른 신교의 사제가 외쳤다.

천자(天子). 하늘을 대신하여 백성을 다스리는 자. 고대로부터 황제를 신격화하여 이르는 말이다.

그런 천자가 거짓이라니. 저잣거리에서 외쳤다면, 구족이 멸해졌을 위험한 말을 꺼내 놓은 늙은 사제. 그는 분노한 음성으로 하나하나 꼬집었다.

-정말로 천명을 받은 이라면, 애초에 환관이나 썩은 관리들에게 놀아나지 않았을 것이다! 신교의 수많은 사람들이 억울한 누명을 썼다는 것도 당연히 알 것이다! 마귀가 아니라, 미륵과 아후라마즈다를 모신다는 것도 알 것이다!

사제의 말에 사람들이 끄덕였다.

그들의 옷은 찢어지고 해어져 있었고, 여기저기 상처입어 말라붙은 피가 검게 굳어 있었다.

-우리는 오늘도 아침에는 채소를 먹고, 점심에는 두부를 먹었다! 그런데 저들은 우리가 어린아이를 죽여 간을 꺼내 먹는다고 거짓을 떠들어댄다!

나이 든 사제의 목소리는 차디찼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는 분노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끄덕끄덕.

그 열기에 어린 신도들도 달아올랐다. 억울함과 분노로 얼굴이 발갛게 되어 있었다.

-…그냥 힘없으니 당한 거잖아.

유달리 어린 소년 한 명만 작게 중얼거렸다.

나이 든 사제는 다시 한번 노성을 질렀다.

-정파도 거짓이다. 놈들은 권력만 탐하는 위선자다! 조정이 백성의 고혈을 쥐어짜는 것을 보고도 눈을 돌린다!

군부의 움직임만 조심하던 신교는, 난데없이 침습해 온 구대 문파에게 크게 해를 입었다.

강호인. 관과 무림은 서로 간섭하지 않고 내외하는 것이 불문율이거늘. 옛부터 강물은 우물물을 범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거늘, 그런 오랜 도리를 구대 문파는 깨뜨렸다.

신교의 사람들은 너무 순진했다. 생각해 보면 소림은 가장 먼저 백련교의 이름에 마(魔)를 붙인 이들이었다.

그리고 무당, 화산, 청성 등의 도관은 명목상으로나마 황실에서 내린 관직이 있었다. 도관 인근의 경작 권한. 조정이 그걸 내밀고 흔들자 그들은 나설 수밖에 없었다.

구대 문파의 칼은 매서웠다. 수도 셀 수 없는 신도들이 죽고 다쳤다. 군병과도 싸워서 이기던 신교의 정예들이, 강호인 하나 잡는 데 열 명, 백 명이 죽어 나갔다.

-그들이 진정 상제를 모시고! 부처를 모시는 것이 맞다면! 어찌 거짓 가득한 주씨 조정의 말을 듣는가! 죄 없이 억울한 본 교의 사람들을! 어찌 상하게 한 것인가!

고작 재물 때문에.

강호인들은 조정의 앞잡이가 된 대신 관직과 더 넓은 땅을 대가로 받아 챙겼다.

참으로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자들. 높은 산에서 유유자적하며 청렴한 척만 해 온 탐욕스러운 자들의 맨얼굴.

아무리 권력이, 법이 무섭다 해도, 세상에는 도리라는 것이 있다. 죄 없는 양민 수만 명이 마교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어 가는데, 그들은 조정과 한패가 되어 칼을 겨눴다.

도리와 법리를 논하는 출가인이라면,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팔아 먹은 자들이, 스스로를 정파-정의로운 자들이라고 자칭하다니.

-거짓과 부패로 가득한 더러운 세상! 경전에 부정한 자들이 스스로를 정의롭다 칭하니, 이는 곧 말세라! 세상이 뒤집어지는 때라 하였다!

-그렇다면 부정하다 칭해지는 우리야말로 정의를 세울 테니! 불로써 심판할 것이다! 사악함을 살라 먹는 정화의 불이 세상에 번져 나가리라!

나이 든 사제가 선언했다. 그리고 그 말은 실현이 되었다.

-말세다!

-불로써 정화하리라!

구대 문파는 이유도 없이 그들을 핍박했다. 이에 그들은 구대 문파에게 그 이유를 만들어 주겠다고 맹세했다.

그렇게 마교라고 불린 신교의 사람들은, 이제야 진정한 마교인, 악마처럼 무서운 이들로 돌변했다.

-아군은 급조한 반면, 상대는 평생 무예를 닦은 이들입니다.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삼개전단.

배교, 혈교, 그리고 사파의 각종 무예를 집대성한 마교의 군대가 진군했다.

-걱정할 것 없다. 정파라고 자칭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라.

나이 든 사제는 정파의 무인이라는, 스님과 도사의 시신을 가져왔다.

파르라니 깎은 머리. 혹은 길게 틀어 올린 머리.

하나 이들의 얼굴은 허여멀갰다. 입은 옷은 비단이었다.

무인이라 근골은 좋지만, 척 봐도 노동과는 거리가 먼 몸이었다.

-굶어 본 적 없고, 한뎃잠 자 보지 않은, 고생해 보지 않은 자들이다. 분명 이들의 검은 날카로웠지만, 본 교의 끈질김이 더할 것이다.

신교-이제 마교도가 된 이들은, 평생을 도망치며 쫓겨 다녔던 사람들이다. 잠입과 은신은 일상이었다.

한때 신교의 상징이었던 하얀 옷을 때 안 타는 검은 옷으로 갈아입자, 마교도들은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농사꾼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조용히 차곡차곡 구대 문파의 본산으로 교인들을 스며들게 한 후, 삼개전단의 대장은 물었다.

-이제 어찌하시렵니까.

-불을 질러라. 모든 것을 정화할 것이다.

마교도의 사제. 이제 마교 교주가 된 이가 명했다.

-불이야!

-이게 무슨 일이냐!

겨울의 밤.

중원 각처의 명산이라 불리는 산은 죄다 불타올랐다. 건조한 겨울의 바람을 먹고, 산불은 일주야를 타올랐다.

풍광이 수려한 명산일수록, 땔나무는 풍성했었다. 그런 명산에 자리 잡은 거대 문파의 도관과 사찰은, 문인들을 총동원해서 겨우 전소되는 것을 면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한 번 일어난 불은 산과 들과 논밭을 모두 지워 버렸다. 대문파에 먹을 것을 올리던 농가 마을도 사라졌다.

먹을 것도, 때울 것도 없어지고, 참배객도 찾아들지 않았다. 그 와중에 화재로 집을 잃은 주변 마을 사람들이 그나마 횡액을 피한 도관과 사찰에 몰려들었다.

-아이고 부처님!

-상제님!

고픈 배를 쥐고, 자비를 구하는 거지 떼.

문주는 그 많은 입을 보고 사색이 되었다. 이들은 원래 도관과 사찰에서 소작을 하던 이들.

정파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이상, 수십 년을 보아 온 얼굴들에게 나가라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신령한 불이 그쳤으니 진짜와 가짜가 가려지리라…….

삼개전단의 단주가 웃었다. 모든 것이 불타 새카만 잿더미 속에서.

-어디 한번 굶주림 속에서도 정의로운가 보자.

그는 한때 배화교였다. 검은 옷을 입고 숨은 마교도들 중 많은 이들도 그랬다.

옷 아래로 앙상해 보이는 팔다리는, 질긴 근육과 굳은살만 남아 있었다. 오랜 굶주림에 익숙한 몸. 기아와 갈증에도 생존할 수 있는 몸.

마교도들에게 배고픔은 일상이었다. 도망 중에 풀뿌리나 나무껍질로 배를 채우는 날은 형편이 좋은 쪽이었다. 쓰린 속을 어떻게든 달래기 위해, 흙을 먹고 버틴 때도 있었다.

물만 있으면 일주일도 우습게 버틸 수 있는 이들이 마교인.

반면 명문 거파의 제자들, 몸을 쓰는 무인들은 생전 처음 겪는 굶주림에 고통을 호소했다.

-배… 배고파…….

-식량은 언제 오는 거냐! 이러다 다 굶어죽겠다!

갑작스러운 산불에 난민들까지 모여들었으니, 평시 챙겨 두던 식량은 사흘 만에 고갈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우물이나 수원지에 부패된 동물의 사체가 떠오르기까지 했다. 먹을 것은 물론이고, 마실 것도 없는 지경.

사람이 많은 명문 대파일수록, 형편은 더욱 안 좋았다. 이러다간 자칫 일파의 문주가 밥을 굶을 지경.

그중 종남파는 용단을 내렸다. 내력이 심후하고 발이 빠른 장로급 인원들은 졸지에 식량 배달이라는 문주의 특명을 받고 밤이 되어서야 투덜대며 돌아왔다.

-살았다… 이게 얼마 만이냐.

-감사합니다. 무량수불…….

모처럼 배를 불린 문도들은, 문주의 결단을 칭송하며 포만감에 깊이 잠이 들었다. 그런 그들의 단잠을 깨운 것은, 새벽녘에 울린 날카로운 비명 소리였다.

-적이다! 습격이다!

-아아악!

문파의 담장 안에서, 농민인 척 숨어든 마교도들이 불시에 칼을 빼어 들었다.

-죽어!

-죽여!

신교를 버리고 마교가 되어 버린 이들은 악만 남았다. 마교도들은 불시에 달려들었고, 몸을 사리지 않았다.

오른팔이 날아가면 왼팔로 무기를 휘둘렀다. 칼에 몸이 꿰뚫리면, 적을 붙잡고 동귀어진을 서슴지 않았다.

-이, 이놈들…….

-대체 뭐야!

허를 찔린 종남파의 제자들은, 습격에 대처하다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핏발이 선 얼굴. 빼빼 마른 몸.

그 움직임은 기이할 정도로 민첩하고, 신법은 바닥을 기다시피 괴이했다.

하나 무엇보다 광기와 독기로 가득 찬 눈! 간신히 가슴을 찔러서 걷어찬 후, 종남파 제자는 눈을 의심했다. 분명히 심장 어림을 뚫었는데, 죽기는커녕 더 맹렬하게 달려들다니!

-크르르르……!

-이 무슨… 사술! 사술이다! 마교 놈들이다!

낭설이라고 생각했던 소문 중 하나.

칼에 맞아도 아픔을 모르고, 목을 잘라도 시신이 움직인다는 사악한 술수.

실은 배교의 술법이라지만, 어차피 그놈이나 저놈이나 마교이긴 했다. 적을 알아차린 종남파의 장로가 불현듯 한 가지를 더 떠올렸다.

-피해라! 놈들이 폭……!

콰아앙! 콰아앙!

하나 이미 늦었다. 부상을 아랑곳하지 않고 끈질기게 달라붙은 마교도들이, 종남파의 문인들을 붙잡고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사람이 벽력탄처럼 폭발한 것이다.

-포… 폭술?!

전신의 진기를 폭주시켜 아픔을 모르게 만들고, 숨이 멎는 순간까지 움직일 수 있게 한다. 죽는 순간 온몸의 뼈와 살을 터뜨려 함께 죽음으로 끌고 가는 저주스러운 수법.

죽을 것을 전제로 하는 자살 공격이지만, 마교도들은 개의치 않았다. 그들은 이미 각오를 마쳤다.

콰아앙! 콰아앙! 콰아앙!

어차피 명문 정파를 무공으로 이길 수는 없었다. 아무리 술수와 비전이 더해진다 해도, 통합된 마교의 역사는 너무 짧았다. 제대로 된 무인을 성장시킬 시간이 없었다.

-천마시여! 제 영혼을 받으소서!

그러므로 정파에게서 시간을 빼앗아야 했다. 그것이 이번 정화의 목적이었다. 마교도들은 전원, 어리거나 젊은이들을 표적으로 붙잡고 자신의 생명을 터뜨렸다.

콰아앙! 콰아아앙!

-지… 독한! 소문보다 몇 배는 더하구나……!

종남파 장문인은 치를 떨었다.

한 명 한 명이 향후, 종남파의 미래를 이끌어 갈 동량이었다. 자질을 가려 뽑고, 수많은 시간을 들여 키운, 자식 같은 제자들이었다.

그런 이들을 하루아침에 잃었다. 이로 인한 피해는 최소 십 년. 그 정도는 지나야 인적 물적 피해를 복구할 수 있을 터.

-자. 장문인!

하나 그러고도 아직 남은 것이 있었으니. 며칠 뒤, 종남파 문주는 더 끔찍한 소식을 들었다.

-도, 독입니다! 장로께서 구해 온 식량에 독이 들었답니다!

-……!!!

그건 마교가 남긴 마지막 패였다.

그들은 마지막까지, 입힐 수 있는 피해란 피해는 다 입혔다. 구대 문파의 본산을 불태우고, 젊은이들을 폭사시키고, 음식에는 독을 뿌렸다.

-극독은 아닙니다… 느리게 작용하는 만성 독이군요.

-다행이군…….

문주가 가슴을 쓸어내리자, 의원은 고개를 내저었다.

-…다행이 아닙니다. 문주, 이건 비소나 수은을 주로 한 광물 독입니다…….

즉효성이 아니기에 며칠에 걸쳐, 음식으로 차곡차곡 섭취된 독.

그건 뼈에까지 스미고, 평생 병고에 시달리게 만든다. 무엇보다 광물 독은 한번 사람을 중독시키면.

-해약이 없습니다… 많이 섭취한 이는 폐인이 되어 죽을 것입니다…….

의원도 해독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환자는 독으로 고통받고 병에 시달리다 죽는다.

천천히. 느리고 고통스럽게.

털썩.

-마교…….

종남파 문주는 주저앉고 말았다.

아무리 내공이 신묘막측한 힘이라도, 뼈에 스민 광물을 밀어내지는 못한다. 어떤 영약으로도 치료가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들은 전부 종남의 사람들이었다.

자랑스럽던 인재들은, 평생 병구완이나 받아야 하는 중환자가 되고 말았다.

그는 이제 피해가, 십 년이 아니라 수십 년을 들여도 복구가 될까 말까 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현재로서는 측정조차 불가하다는 것도.

-마교오오오---!

소문은 틀리지 않았다. 마귀를 섬긴다는 악독한 자들은, 종남에 끔찍한 저주를 걸었다.

종남파 문주는 피눈물을 흘리며 부르짖었다.

-마교……?

-마교가……! 으아아아!

그리고 이런 일은 중원 곳곳에서 일어났다.

마교의 간악한 술수에 피해를 입은 문파는, 분노에 치를 떨며 이 사악한 무리들을 성토했다.

무림맹에 속한 모든 문파가, 마교와는 적이 될 것을 천명할 정도였다. 하나 그런 가운데 분명히 심어진 것이 있었으니.

-그… 뭐시냐. 마…….

-어허, 쉬잇!

그건 바로 끔찍함. 그로 인한 공포와 두려움이었다. 맹독을 품은 복어는 상어조차 건드리지 않는 것처럼.

마교의 초대 삼개전단은, 전원이 사망하는 대신 마교가 내실을 다질 시간 수십 년을 벌었다.

-힘이 있어야 한다. 강한 힘이…….

한 소년이 청년이 되고, 무인이 되어, 이윽고 호법사자가 될 때까지의 평화로운 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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