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화. 천마가 가지지 못한 것 (6)
콰르릉! 파작!
뇌전의 기운이 뻗어 나가 배의 기물을 때렸다. 불꽃과 연기가 일고, 목재가 새카맣게 타들어 간다.
치이이익!
그걸 방어하기라도 하듯 시커먼 기운이 배의 기물을 감싼다.
휴르르륵.
까맣게 타들어 갔던 목재가 원래의 색을 되찾고, 벌겋게 달아올랐던 철, 놋쇠, 구리 등의 금속이 식어 간다.
“거스트 오브 윈드!”
솨아아악!
하백운은 돌풍으로 시야의 연기를 걷어내고, 예리한 눈으로 주변 광경을 살폈다.
공격도 방어도 괴이하다. 서문영이 뿜어내는 검기는 분명히 뇌전의 속성을 담고 있었다. 위력도 상당하다.
마법에 준하는 속성을 담은 검기라… 분명 그런 것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건 까마득히 높은 고수들의 경우다. 화경이나 현경이라는 독보적인 경지에 오른.
검기성강. 흔히 말하는 검강이나 강기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궁극적인 에너지다. 그 집약된 힘을 변환하여 뇌전이나 빙결 같은 다소 하위 단계로 쓸 수는 있다.
하나 검기는 그보다 한 차원 아래의 기술이다. 자신과 같은 동급생, 2학년 학관생들 중 검기를 발현해 내는 이들은 허다하게 많다. 하나 그중 누구도 검기에 속성을 넣는 경우는 없었다.
‘나중에 붙잡아서 물어봐야겠어. 반드시.’
애초에 그게 그렇게 쉬우면, 검사가 마법검으로 무장하는 경우가 왜 있겠는가? 어쨌든, 그건 나중에라도 알 수 있는 것이고, 지금 당장은 유령선의 힘을 관찰해야 했다.
“차아!”
치지직. 수와아악!
로프와 선내 기물이 하얗게 얼어 간다. 운소령의 마법검이 뿜어내는 냉기에, 전열함의 크레인이 딱딱하게 굳는다.
카득! 카득!
쉬이이익!
하지만 막 냉기로 부서지기 직전, 다시금 시커먼 언데드의 기운이 불어넣어지고, 원래대로 아무 피해가 없었던 모습으로 돌아갔다.
“…….”
콰르릉! 퍽! 콰직!
멀리서 방윤이 진각을 구르며 희뿌연 권기를 쏘아낸다. 아마도 백보신권으로 예상되는 파괴력. 그에 유령선의 갑판과 선벽에 쩍쩍 금이 간다.
쉬르르륵.
하나 그 또한 시커먼 기운이 스며듬과 함께 원래대로 돌아가 버렸다.
그걸 지켜보고 있던 하백운의 눈이 좁혀 들었다.
‘이건… 시간 속성?’
언데드. 부정한 기운. 생자의 목숨을 갉아먹고, 부패와 죽음을 퍼뜨리는 기운.
흔히 사령 마법이라 부르기는 하나, 저걸 실제로 마법이라고 하기는 힘들다.
애초에 마법은 마(魔)라고는 불리되, 엄연히 세상의 이치를 따르는 학문이다. 마나라는 세상의 기운을 캐스팅이라는 절차를 통해 발현한다.
‘하지만 사령 마법은 그와 달라.’
지수화풍(地水火風). 세계를 구성하는 사 원소 가운데 어떤 속성에도 맞지 않으며, 발현의 체계 자체가 다른 정의하기 힘든 기운이다.
그 어떤 마법이 죽은 자를 다시 일어나게 하고, 그렇게 일어난 자가 죽은 자를 또 되살리는, 증식과 번식의 속성을 지니던가.
“하아아아!”
파지직! 콰드득!
또 어떤 마법이 신성력이라는 생명을 축복하는 기운과 반발하여 폭발을 일으키던가.
학계의 정론으로 볼 때, 언데드 마법의 속성은 사악이다. 그 사악한 속성 자체는 저주에 가깝다.
하지만 사악하다고 해서 다 시체를 일으키는 힘이 있는 것은 아니다.
쿠드득. 우지지직!
하물며 지금처럼 본시 생명체도 아니던 선박의 기물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힘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이는 이 힘을 발휘하는 유령선이 대단히 특수한 개체이거나, 혹은.
‘아니면… 다른 모든 언데드들의 기원에 가깝거나……?’
번뜩!
하백운의 뇌리에 벼락치는 듯한 충격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건 영감, 혹은 깨달음이라 부를 수 있는 무엇이었다.
“야! 하백운! 뭐 해!”
파바밧! 바바바박!
암기를 열심히 날리던 당무련이 빽! 고함 질렀다.
분명 좀 전까지 마법으로 지원이나 공격을 착실히 하던 하백운이, 갑자기 멀거니 서서 멍때리고 있는 것이다.
피리리릭! 탱!
한참 싸우는 와중에 정신 줄을 놓다니. 위험하기 짝이 없다. 당무련은 마침 그에게 날아들던 파편을 쳐 내고 다시 고함을 질렀다.
“하백우운-!”
“놔둬! 놔둬 봐!”
꽈르르릉!
벼락 치는 소리를 뿜어내며, 서문영이 그의 앞을 보호했다.
유달리 눈이 좋은 그는, 하백운의 얼굴 근육이 경련을 일으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채채챙! 타탕!
“하백운이 뭔가 실마리를 잡았어! 각성 단계야! 이한! 그를 보호해 줘!”
“…알았다.”
“다들! 마법 공격은 잠시 공백이다! 없다고 생각하고 싸워!”
“으아앗…….”
“제길! 부럽다!”
타다다닥!
파티가 살짝 진형을 바꿨다.
서문영이 잠시 시간을 벌어 준 사이, 천마가 하백운의 앞에 나서 주었다. 이로써 키퍼(Keeper)는 문제없다.
서문영은 발을 박차고, 다시금 검기를 뿌려댔다.
빠—직! 타당!
이제는 완연히 선명한 뇌전의 기운. 처음만 해도 흐릿했던 것이, 점점 쓰면 쓸수록 익숙해진다.
후우욱!
단전에서 끌어올린 내기를 기경팔맥으로 돌리는 가운데 일어나는 변화. 서문영은 그 방향과 현상을 차곡차곡 기억에 쌓으며, 힐끗 하백운을 돌아보았다.
툭. 툭. 툭.
동공이 바쁘게 움직이는 마법사. 지금 그가 느끼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서문영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지금 그에게 시간은 천금과도 같으며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세상이 달리 보일 것이라는 것.
‘기연이라. 그래. 이런 걸 기연이라고 하는군.’
기연.
흔히 영약이나 상승의 무술서를 습득하는 것을 기연이라 부른다. 겉으로 보이기엔 그만큼 특별한 계기이기 때문이다. 하나 진정한 기연은 그런 것이 아니다.
일체유심조.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되는 법.
해골 물을 마시는, 끔찍한 경험에서 불법을 깨닫는다거나. 바람이 불어오며 풀이 눕는 것을 보고 검술의 근원을 깨닫거나 하는 등.
‘자격이 필요하다. 아니, 준비가 필요한 것이겠지.’
생각해 보면 세상에 그런 기연의 실마리는 무수하게 많았다. 그리고 그중 가장 큰 것은 바로 사람.
피식!
서문영은 지금도 귀찮아 보이는 무표정, 심드렁한 동급생 이한의 얼굴을 보면 웃음이 나왔다.
저 불친절하고 모난 공 같은 동급생이, 서문세가의 숙원이라 할 뇌천벽력도의 실마리를 줄 줄 누가 알았을까.
운소령은 그가 곧 우리 모두의 기연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말이 사실이라는 걸, 최소한 한 사람은 알고 있었다. 서문영 자신이 실제로 겪고 느꼈으니까.
“타하아!”
빠---직!
그리고 지금 또 한 사람이 생기려고 하고 있었다. 서문영은 충분히 든든한 키퍼가 있음에도, 하백운의 앞을 보호하며 쉴 새 없이 검기를 뿌렸다.
두우웅. 두우웅.
귀가 먹먹했다. 주변 세상이 느릿하게 반전되고 있었다. 그걸 느끼면서도 하백운은 방금 떠오른 생각에 매달렸다.
‘번짐… 전염… 번진다는 것 자체는 불 속성과 유사하다고 볼 수도 있다…….’
사령 마법. 언데드의 기운.
신성력과 반발하기에, 그 근원이 사악이라고 지칭되는 현상(懸象).
마법이라 부르면서도, 마법이라고 정의할 수 없는 것이 사령 마법의 체계였다. 그것이 이제껏 쌓여 온 마법 학계의 정설이었다.
하지만 지금 하백운은 그게 선입견이 아니었을까 하고 자문했다.
학문은 이치와 자료를 통해서 성립된다. 현상을 보고 가설을 정립한 후, 가설에 따라 현상이 움직이는 것을 확인하고, 그에 증명을 거쳐 하나의 논리로 구성되는 법이다.
하나 그런 논리나 이론은, 태생부터 안고 출발하는 허점이 있다. 바로 선입견.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오류. 지금의 하백운은 원래라면 말도 안 되는 가설을 떠올렸다.
‘불과 죽음이 다를 것이 뭐가 있지?’
지수화풍. 그중 가장 격렬한 원소인 불.
불은 모든 것을 원점으로 되돌린다. 사악한 것은 소멸시키고, 삿된 것을 몰아낸다. 살아 있는 것을 죽이고, 형태 있는 것을 무너뜨린다.
한번 불타 버린 나무는 어떤 마법으로도 원래대로 되돌릴 수 없다. 그럼에도 불을 사악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사악함……. 사악함…….’
힐끗.
하백운의 시선이 잠시 앞을 향했다. 거기에는 언제부터인지, 자신을 지키듯 서 있는 천마-이한이 있었다.
슈르르르…….
그런 그의 등 뒤에서는 뭔가 기이하고 꺼림직한 기운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분명 이질적인, 그리고 천무학관에서 배우기로는 ‘사악’이라 부르는 방향의 기운이.
‘이한은 사악한가?’
어찌 보면 참 터무니없는-동시에 사실에 가까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고, 하백운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한. 괴이한 녀석이고, 하는 짓은 해괴하다. 그럼에도 누구보다 높은 무위를 지니고, 언데드나 온갖 위험한 몬스터들을 때려잡았다. 파티에게 도움이 되었다.
‘성 속성… 소림사…….’
방윤과 그의 사제들은, 이한에게 기묘한 반발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제 와서 알게 된 것이지만, 그건 당연한 반응이었다. 이한은 어떤 경위로 마교의 무공을 얻었고, 그 무공의 속성은 소림의 무공과 상극에 가까웠으니까.
‘그럼 이한은 마인인가? 마인이라면 어째서 몬스터에게 그 공격이 통하는가?’
또 한 번 당연한 물음. 어이없는 것을 자문했다. 마법사는 끊임없이 수수께끼를 찾아 헤매는 자. 법칙을 따른다면서 법칙을 뒤집어 엎는 모순적인 존재.
파이어 볼 마법. 말 몇 마디로 화염의 구를 만들어 낸다. 소 한 마리 잡기 힘든 연약한 육체의 마법사들이 수십 명의 장한을 떼죽음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
하나 그는 엄연한 법칙에서 출발한다. 어린애 손에 벽력탄이 쥐어져 있다면, 상대가 무림 고수라 해도 쓰러뜨릴 수 있다. 마법은 이와 같다. 벽력탄이라는 물체는, 아무리 강인하게 단련한 무인의 육체도 터뜨릴 수 있는 법(法)이다.
‘언데드란… 죽음은 무엇인가.’
갈래로 빠져서 탐구한 하백운의 사고가, 다시 고민하던 주제로 돌아온다.
언데드(Undead). 죽지 않는 자. 그건 이미 죽었기에 죽음이라는 것이 의미가 없는 존재다. 그렇다면 죽음을 고찰하기에 앞서 물어야 한다. 삶이란 무엇인가.
살아 있다는 것, 생명 활동을 한다는 건 무엇인가.
‘빛…….’
언데드. 어둠. 죽음. 혼돈.
빛. 질서. 정립. 움직이는 것.
‘살아 있는 것은 움직인다. 그렇다면 나무는 생명인가?’
그렇다. 고개를 끄덕인다. 동물과 달리 식물은, 움직이지 않지만 분명히 생명이다. 그렇다면 언데드는? 스스로 움직인다. 하지만 살아 있지 않은 존재다.
여기서 모순과 괴리가 느껴졌다. 세상을 관조하던 당연한 시선에 균열이 생겼다. 마법사는 수수께끼에 탐닉했다.
움직이지 않지만 살아 있는 나무.
움직이고 있지만 죽어 있는 언데드.
‘생장……?’
대체 생명은 무엇이고 죽음은 무엇인가. 나무는 움직이지 않지만 생장한다. 풀잎을 피워 내고, 가지를 뻗으며 점점 크게 자란다.
그럼 언데드는? 증식한다. 죽어 있지만 그 수를 불린다. 존재 자체로 사기를 뿜어내며 주변에 더 많은 죽음을 부르고, 그 죽음이 중첩되면 진화하기까지 한다.
이는 분명 생장의 조건. 그렇다면 다시 자문한다. 대체 살아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마법은 세상의 요소를 지수화풍의 4원소로 정의한다, 무공은 세상을 금목수화토의 오행으로 정의한다. 이제껏 그걸 그냥 그러려니 하고 생각했다. 너무 당연해서 의문을 품을 이유도 없었다.
애초에 무예와 마법은 궤가 다른 학문. 일으키는 현상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하나.
하백운은 얼마 전부터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무공을 쓰는 서문영이, 검기에 뇌전의 기운을 담는 것을.
‘지수화풍. 그게 다인가? 정말로?’
자문했다. 어쩌면 이제까지 배워 온 마법이라는 것, 세상을 설명하는 학문은, 그저 하나의 잣대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고.
지수화풍은 분명 세상을 구성하는 원소이지만, 땅과 물과 불과 바람을 섞어도, 사람을 만들수는 없다.
사람이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고, 물과 바람과 열이 일어나지만, 그것을 다시 모아 뒤섞어도 다시 사람으로 만들어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산불이 지나가고 난 뒤의 숲이, 그저 잿더미인 것처럼.
‘부족하다… 무엇이 부족하지?’
시간. 생명. 두 가지 요소가 더 있어야 했다. 이는 가장 커다란 중요 요소다. 그런데 왜 마법에서는 지수화풍 외에는 말하지 않았는가. 무공에서는 왜 금목수화토로 세상을 정하는가.
‘빛… 그림자? 빛! 어둠! 음과 양!’
그리고 생각이 거기에 닿았을 때.
콰르르륵! 파지직!
뇌리에 벼락같은 생각의 가지가 뻗어 나갔다. 인간의 두뇌와 우주가 결합되는 현상. 생명의 나무. 세피로트.
‘빛과 어둠… 지수화풍. 금목수화토의 오행……. 하지만 음양오행! 애초에 넷도 아니고 다섯도 아니었어!’
빠지직! 빠지지직!
지혜가 내려왔다. 생명의 현상. 죽음의 경계. 그게 손에 잡힐 듯 또렷하게 느껴졌다. 그와 함께 하백운은.
타탕. 콰우우욱!
심장 어림에서, 이제껏 느껴 본 적 없는 강력한 마나의 회오리가 고리를 만들며 자라나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