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216화 (217/310)

216화. 천마가 가지지 못한 것 (7)

-크아아아아!

반인반골의 선장이 커틀러스를 휘둘렀다. 검은 기운이 배 전체를 향해 뿜어져 스며들었다.

“조심해!”

“알고 있어!”

타닥! 타다닥!

다들 발치를 조심하며 경계를 했다. 하지만, 그 검은 기운은 공격을 위한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구르르르릉--!

기운에 고무된 유령선이 크게 진동하며 용트림했다. 뒤이어 갑판이 사방에서 열리며 빠끔이 입을 벌렸다.

덜컥덜컥! 까드드득!

바로 아래층에서 거무튀튀한 쇳덩이들이 솟아올라 모습을 드러냈다. 뒤에는 해골 병 두엇씩을 달고.

“이런 미친! 배가 무슨 대포가 수십 문이야!”

쇳덩이가 뭔지 알아본 당무련이 욕설을 내뱉었다. 푸르딩딩한 청동제 화포. 그것도 사람이 들어갈 정도로 큰 대포였다.

“애초에 전열함은 그런 용도…….”

“아- 닥쳐! 좀!”

패배배백!

소진의 설명에 성질을 내며, 당무련의 손이 신속하게 움직였다. 거의 여덟 개로 보이는 그녀의 손끝에서 붉은빛을 내는 구체 십여 개가 날아갔다.

씨이잇! 팍! 팍!

붉은 구슬은 날아가며 시뻘건 화염을 피워 올렸다. 그러고는 갑판 위로 올라온 대포. 그 아가리 안으로 쏙 하고 빨려 들어갔다.

따다다닥! 빠강!

콩 볶는 듯한 소리와 함께 요란하게 화포가 진동하더니, 이윽고 굉음을 내며 폭발했다. 내부에 장전된 화약이, 유폭을 일으킨 것이다.

“하핫-! 먹혔다! 근데… 이거 왜 이래! 젠장!”

목표를 적중시켜 놓고도 분통을 터뜨리는 당무련.

방금 그녀가 던진 것은 당문의 신무기 중 하나였다. 필드 레이드를 가는 그녀에게 위급 시를 대비해 지급해 주었지만, 같은 무게의 금과 맞먹을 정도로 값비싼 물건이었다.

한데.

‘위력이 왜 이정도야? 전에는 안 이렇더니!’

신무기가 터지는 걸 보고 당무련의 속이 터졌다. 분명 당주 앞에서 시범 때 보인 신무기의 위력은 근사했다.

그랬던 그 신무기가 지금 터지는 볼품없는 꼴은 뭔가? 이거 분명 분명 재료를 한 급 낮은 걸로 쓴 것이다. 그러니 이렇지!

“…당 소저? 방금 그거… 대벽력탄? 아니, 용화탄 아냐?”

“아- 아냐! 그딴 구닥다리! 우리가 그런 걸 왜 써!”

당무련은 기겁해서 격하게 부정했지만, 소진은 그 격한 부정에서 오히려 알 수 있었다.

“산서벽력당……? 세상에…….”

사천당문은 주로 쓰는 병기가 암기 같은 투사체다. 당연히 총포 같은, 화약 무기의 위력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전에는 감히 손을 댈 엄두를 못 냈다.

명(明) 이후로, 조정은 화약의 관리에 극히 예민했다. 십만 대군도 우습게 뽑아낼 수 있는 대국이지만, 그 십만 대군도 몰살시킬 수 있는 것이 화약 무기였기에.

그리고 산서벽력당은,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 화기와 총포를 다루는 중원의 몇 안 되는 문파다.

‘하지만 말이 문파지, 실제로는 관부의 하부 조직이나 다름없다고 들었었는데…….’

그래서 강호인들은 산서벽력당을 꺼렸다.

애초에 조정의 암묵적인 허가가 없다면, 총포 같은 요란한 무기를 쓸 수 있을 리 없다.

또한 화약은 비싸고, 여러 가지 복잡한 공정을 거쳐야 쓸 수 있는 물건이다. 조정에서 초석이나 염초 같은 핵심 재료를 통제하면 바로 전력이 무력화될 터였다.

한데 그런 일 한 번 없이 잘도 화기를 쓰는 문파라면 그건 권력과 유착 관계가 있는 게 당연했으니까.

따다당! 따다다당!

어쨌든 조금 전 당무련이 대포 안에 던져 유폭시킨 것은 저 산서벽력당의 유명한 화기였다.

대벽력탄. 그리고 용화탄.

대벽력탄은 보통의 벽력탄을 여러 개 뭉친 것 같은 큰 폭탄이다. 그리고 용화탄은 표면에 적린과 백린을 발라, 투척해서 날아가는 중에 점화가 되는 폭탄이다.

‘대체… 언제부터?’

그리고 당무련이 쓴 벽력탄은 그 두 화기의 속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의미심장하다.

사천당문은 이미 진작에 산서벽력당의 진전을 얻어, 그 연구를 마치고 응용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 두 가지 전혀 다른 폭탄을 하나로 묶었다는 것이 그 증거다.

다만 그 위력이 전승보다 조금 모자란 것 같았지만……. 거기서 소진은 알 수 있었다.

“신철은 아직이구나… 하긴…….”

“아… 아-!!! 짜증나! 진짜!”

한편, 소진의 말에 당무련은 식식거렸다.

저 비실비실한, 아는 건 많은 놈이 뭔가 눈치를 챘다는 게 짜증 났고, 눈치채든 말든 기왕 썼는데 신무기가 제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데 더 짜증이 났다.

‘결국 다 들통났잖아! 아주!’

신철. 강철을 수십 번 정련하여 강도를 극한까지 끌어올린 철.

벽력탄 같은 작열탄-폭발하는 폭탄-이 최고의 위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단단한 강철 외피가 필수다. 외피가 강하면 강할수록 그 위력은 더욱 강해진다.

애초에 벽력탄의 원리는 화약이 점화됨과 동시에 발생하는 대량의 연무다. 그 연무를 얼마나 오래, 많이 가둬 놓을 수 있느냐가 곧 폭발력이 된다.

화약이 내는 고온 고압의 증기와 연기가 단단한 외피에 갇혀, 내부 압력이 수십 수백 배로 압축된 끝에 파열. 그로 인한 충격파와 파편으로 피해를 입히는 것이다.

산서벽력당의 위명은 그들의 화약 외에도 신철이라 불리는 고강도의 철을 자체적으로 제련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화약에 손대기 전의 그들은 ‘산서철방’이었으니까.

신철에 화약이 더해짐으로써, 산서벽력당이 된 그들은 산서를 제패할 수 있었다. 관부의 끄나풀 아니냐던 수군댐은, 그들이 중원의 악몽과 대처하는 날에 증명되었다.

대격변의 날.

파도처럼 몰려오는 몬스터 대군을 상대로, 산서벽력당은 무림맹의 지원이 미치지 못하는 가운데, 석 달이나 자력으로 버텨 내는 어마어마한 위용을 보인 것이다.

“짜증 나! 짜증 나! 짜증 나! 짜증 나!”

그러거나 저러거나 당무련은 화가 났다.

저놈의 벽력당이 한때 아무리 대단했다고 한들, 자그마치 백사십 년 전의 일 아닌가.

가문이 기술이 아직 백사십년 전의 기술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화가 났다. 그리고 그게 다름 아닌 돈… 문제라는 것이 또 화가 났다.

‘그러게 돈 좀 더 쓰라니까! 늙은 좀팽이들이!’

사실 신철은 강도를 극한까지 끌어올린 철이다. 그 말은 도검 같은 병기를 만들기에도 좋은 소재라는 것.

신철 같은 고급 소재를 한 번 만들면 오래도록 쓸 수 있는 도검류 같은 병기와, 기껏 만들어서 소모(!)해 버리는 벽력탄. 어느 쪽이 더 경제적인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돈푼 아끼다가, 정작 중요한 무기의 위력이 줄어들어서야 될 말인가?

“당무련! 아니, 당 소저! 조심!”

콱!

“너……?!!!”

한데, 갑자기 소진의 목소리와 함께 격한 충격이 몸을 덮쳐 왔다.

와당탕! 쿠당!

바닥에 쓰러진 당무련은 소진이 자신의 몸 위에 올라타 있는 것을 보고 혼백이 날아가는 듯했다.

“이 새끼가, 죽으…….”

콰우우우우웅!

그리고 다음 순간, 맹렬한 돌풍이 스치고 지나갔다.

삐----!

귀청이 울렸다. 훅 하고 뭔가가 지나간 다음, 공기가 찢어지는 날카로운 소리가 일었다. 먼지가 와라락 일어난 공간에서 놀란 비명들이 뒤늦게 터졌다.

“당 소저!”

“소진!”

“괜찮아?!”

“…….”

당무련은 사태를 파악했다. 그녀는 즉각 몸을 뒤집어 일으키고, 바닥에서 콜록거리는 소진을 보았다.

뚜둑. 뚝.

그 얼굴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강제로 엎드리게 하는 가운데, 당무련이 상시 장비하고 있는 날붙이에 베인 것이다. 그렇게 다친 녀석이, 얄상한 하얀 얼굴로 물었다.

“쿨럭… 괘… 쿨럭! 괜찮아?”

“…….”

말이 나오지 않았다. 왜 이런 때 덤벙거렸을까. 창피하고 부끄럽고 도망가고 싶은 마음에 그녀는 치를 떨었다.

“…이…….”

약해 빠진 녀석이 뭐 하는 거야. 왜 멋대로 빚을 지우는 거냐고. 왜 내가 잘못한 기분이 들게 만들어?

빠드득!

당무련은 화가 났다. 눈앞의 소진에게, 이런 꼴을 당하게 만든 해골 포병에게, 아니, 그 어떤 것보다 그녀 자신에게 화가 났다. 그런 기색을 알았을까.

“미, 미안…….”

“…….”

오히려 소진이 사과한다. 그게 더 짜증 났다.

당무련도 알았다. 조금 전 소진이 자신을 밀쳐 넘어뜨리지 않았으면, 포탄에 직격당했으리라는 것을.

키기기기! 캬가가가!

전열함. 한때 서역의 바다를 제패했던 함선. 수십 문의 대포를 장비한 유령선은 지금 그 포화를 사정없이 날려대고 있었다.

콰우우웅! 콰우우웅! 콰우우웅!

“우와앗!”

“이, 이거 안 되겠어!”

포환이 사정없이 날아들었다. 사람 몸통만 한 철 덩어리가 화살처럼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그런 것이 수십 개.

오싹!

맞으면 즉사. 스쳐도 중상. 소름이 쫙 돋아나는 가운데 당무련은.

“씨발, 너네 다 뒤졌어.”

차라락! 차라라락!

전신의 모든 곳에서, 가진 암기란 암기는 죄다 꺼내 들었다. 손가락 마디마다 날붙이가 가득했고, 소매 아래에서는 찰칵거리며 기관이 작동했다.

“호오…….”

문득, 밉살스러운 이한 녀석의 감탄이 들리는 듯했지만.

“만천화우.”

그따위 것.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 이 순간 그녀는, 온몸의 가시를 바짝 곤두세운 고슴도치. 사천에서 상종 못 할 가장 지독한 가문의 후예였다.

타닥!

패애애액! 솨솨솨솩!

허공에 솟구친 신형에서 비가 쏟아졌다. 비침. 비도. 비황석. 온갖 암기가 비처럼 휘몰아쳤다.

콰콰콰콰콰!

크켁! 캬칵!

대체 무슨 조화가 일어난 것인지, 하나하나가 전부 급소에 꽂혔다. 암기가 해골병들의 귀화가 솟구치는 안와를 통과하더니 두개골 아래쪽에 새까만 점들이 돋아났다.

연수.

인체 최고의 급소. 생명이 있을 경우 3초 안에 절명하는.

피빅! 피비비빅! 투칵!

하나 지금은 백골만 남아 의미가 없어야 할 급소, 그곳에 비침이, 날붙이가, 굵은 비황석이 날아들어 화살 꽂이처럼 만들어 버린다.

“저거……?”

“후우…….”

그게 다가 아니었다. 당무련은 착지하자마자 탁, 하고 엉덩이 어림을 후려갈겼다.

휘익! 차악!

등. 이제껏 상대가 언데드라서 쓸 일이 통 없었던, 그래서 반쯤 봉인하고 있던 또 하나의 암기낭. 그게 빙글 돌아 당무련의 심장 위치로 왔다.

독(毒).

암기와 더불어, 사천당문의 또 하나의 무기.

시체를 상대로는 효율이 좋지 않아서, 어차피 죽은 것을 다시 죽일 방법이 없어서 아꼈다. 지금도 그냥 미련한 짓이라고, 가문의 귀한 보물을 낭비하는 것임을 스스로도 자각하고 있었다.

하나.

“그게 뭐 어쨌는데?”

피식, 하고 당무련은 웃었다. 이런 때 효율이니 낭비니 따지는 거라면 이제껏 욕해 온 가문의 늙다리들과 다를 것이 뭐가 있겠는가.

지금, 당문의 자존심이 상처 입었다. 그러니.

스르륵.

그 죄, 두 번 죽어 갚게 하리라. 내공을 돋워 기경팔맥에 잠재된 독기를 끌어올리며, 당무련은 녹피수투를 차고 한 줌의 고운 분말을 손에 쥐었다.

“화골산.”

불길한 붉은 분말이, 뼈도 녹여 버린다는 극독이 되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