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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217화 (218/310)

217화. 천마가 가지지 못한 것 (8)

후르륵! 화르르륵!

붉은 연무가 피어올랐다. 당무련이 손을 뻗자, 연무는 그대로 확산하며 앞으로 좌악 뻗어 나갔다.

솨아아아…….

키륵?

범위에 걸려 든 해골병은 셋.

녀석들은 뭔가 이상하다는 듯, 죽었음에도 잠시 갸웃거리더니.

후두둑. 투둑!

그대로 한여름 땡볕에 눈 녹듯 녹아내렸다.

주르륵. 철퍽!

그러고는 다시는 일어서지 못했다. 그 광경을 본 그녀의 파티는.

“으아앗! 말려! 쟤 말려!”

“야! 야! 당무련!”

전부 질겁했다.

“화골산이라니! 미쳤어?!! 야!!!”

뼈를 녹여 버리는 독. 그리고 붉은 분말.

학관에서 수업 때 졸지 않았으면 누구나 아는 당문의 칠대 극독이다.

크아아아아!

유령선장이 다시금 검은 기운을 뿌리며 노호하지만, 녹아 버린 해골병은 전혀 되살아날 기색이 없었다.

사령술의 연결마저 끊어 버리는 극독이라니. 분명 대단하긴 하지만…….

무럭무럭!

피어나는 독연은 적아를 가리지 않는다. 허연 물처럼 녹아 버린 해골병의 잔해에선, 기분 나쁜 증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우리까지 죽는다고! 야! 미친년아!”

평소 냉정한 편이었던 이경조차 쌍욕이 튀어나왔다.

당문의 다른 칠대 극독으로 신선폐니 학정홍이니 하는 것도 있지만, 그런 것들은 극소량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거나 중독되자마자 바로 죽는 신속함을 지니고 있다.

반면 화골산은 전파 속도도 느리고, 접촉만 피하면 되기에 다소 격이 떨어지는 편이다.

하나 칠대 극독이라는 이름이 그냥 붙었겠는가. 화골산은 뼈는 물론이고 살도 녹인다! 무럭무럭 피어나는 저 독의 증기를 들이마셨다간, 그대로 폐에 손상을 입는다!

“다, 당 소저! 진정해! 이 배가 아무리 커도 독은……! 우리가 피할 수가 없어져!”

소진이 피를 뚝뚝 흘리며 허우적거렸다. 그로서는 당무련이 왜 폭주했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당무련도 아무 대책 없이 독을 쓴 것이 아니었다.

“…말 시키지 마…….”

두 손을 쭉 뻗은 채, 하나로 모아 전심전력으로 집중하는 당문의 후예.

뚜둑! 뚜두둑!

전신의 경맥에서 콩 볶는 소리가 났다. 지금 그녀는 살면서 최고조의 집중으로 독공을 운용하고 있었다.

“…포문은 모두 64개… 가능… 해!”

쫘아악!

당무련의 동공이 일순 녹광을 띠었다. 그와 함께 뭉게뭉게 피어오르던 독연이 주춤, 확산을 멈췄다.

으드득!

“차---아!”

그리고 터져 나오는 기합. 동시에 확산을 멈춘 독연이 두 갈래로 나뉘었다. 그러고는 다른 해골병, 뒤에서 대포를 조작하고 있는 녀석들에게 느리게나마 이동하기 시작했다!

솨르르륵. 솨르르륵.

“야! 하백운! 바람 마법… 아차……!”

놀라서 평정을 잃은 건 이경과 소진이 다가 아니었다. 파티 리더인 서문영이 급히 달려와 천마에게 외쳤다.

“이한! 이한! 당무련을 말려! 이러다 우리가 먼저 죽겠어!”

화골산은 뼈도 녹인다. 하지만 사실, 인체에서 뼈는 대단히 단단한 조직이고 살은 무르다. 달리 시신이 다 썩어 문드러져도, 몇 년간은 유골이 남아 있겠는가.

지금 이대로라면 죽어서 뼈만 남은 언데드가 녹아내리는 것보다, 살아서 움직이는 서문영의 파티원이 먼저 중독되어 전투 불능이 될 터다.

“이한!”

“…좀 기다려 봐.”

다시 채근했지만, 천마는 삭삭 손만 내저었다. 서문영은 그의 얼굴을 보고 당황했다.

“너……?”

이한-천마의 입꼬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지금 그가 느끼고 있는, 얼굴에 드러나 있는 감정은…….

흥미였다.

“기틀을 못 잡은 것뿐이었나… 그래도 당문이 영 천치를 집어넣은 건 아니었군.”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글쎄다.”

피식.

천마는 이제 웃었다. 지금 그의 태도는 여유로웠지만, 동시에 조마조마하기도 했다.

탈마의 경지에 이른 그의 안력은, 이미 당무련의 온몸에 흐르고 있는 독공을 세밀하게 살피고 있었다.

‘아슬아슬한데… 심맥이 버티네?’

솔직히 아까 만천화우를 날린 후 당무련이 독낭을 꺼내 드는 순간, 천마 역시 잠시 움찔했었다.

당문의 독. 그건 천마야 호신강기로 버텨 낼 수 있어도, 다른 애새끼들은 버티지 못 할 테니까.

그런데 이거 안 되겠다고 막 손을 쓰려던 순간, 당가 계집애의 눈에서 녹광이 피어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기경팔맥을 확 하고 다 열어 버리는 것도.

“빡치면 더 집중하는 성미인가……? 참 친숙하군. 저 계집애는 당문이 아니라 본 교에 왔어야 했어…….”

“이한-!”

천마의 말을 이해 못 한 서문영이 멱살이라도 잡으려고 달려들었다.

“아, 시끄러. 좀 봐 보라고.”

따악!

천마는 간단히 딱밤을 날리고, 당무련을 가리켰다.

“네 동료가 어떤 사람인지 말야.”

사르륵. 사르르륵.

말하는 순간, 둘로 나뉘어진 화골산의 독무가 다시 넷으로 나뉘어지고 있었다.

뚜드득! 뚜드드득!

“크……!”

시야가 시뻘게졌다. 눈가로 뜨듯한 것이 흘러내렸다.

“피… 피눈물?! 당 소저!”

“아, 닥치라고…….”

아마도 과하게 운용하는 바람에, 독기가 눈의 실핏줄을 다 터뜨려 버린 모양이었다.

아무리 내공의 형태를 띠었다 해도, 독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

그래서 당문의 내공심법은 손잡이 없는 칼날과 같았다. 휘두르면 휘두를수록, 시전자가 중독되고 여차하면 심맥이 녹아 죽는다.

당문이 오랜 역사 속에서 절대고수를 배출하기 힘들었던, 태생적인 한계다.

“씨발… 그래서 어쩌라고…….?”

하지만 당무련은 오로지 내공 운용에만 집중했다.

내뻗은 손으로 기감을 확장하자, 가느다란 실에 매달린 듯 위태롭게 흔들리는 독무가 느껴졌다.

‘둘… 넷… 여덟…….’

팍.

사르륵. 사르륵.

네 방향으로 갈라진 독무가, 다시 둘로 나뉘어 여덟 개가 되었다. 여기서 한 번 더 분열시키면 열여섯. 두 번 더 하면 서른둘.

이 짓을 총 세 번만 더 하면 예순넷, 전열함의 포문 64개를 다 막아 버릴 수 있다. 계산상으로는.

퍽! 주르륵!

하지만 세상만사가 그렇게 쉽게 되면 고전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여덟에서 열여섯으로 올라가려는 순간, 코가 콱 막히나 싶더니 입술에 뜨끈한 것이 흘러내렸다.

코피다. 지금 거울을 보면 며칠 동안 이부자리를 격파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눈에서는 피눈물. 코에서는 쌍코피. 정말 없어 보이는 꼴 아니겠는가.

“하… 씨발……! 쪽 팔리게……!!!”

당무련은 당문에서 독으로 대성을 이루지 못했다. 가주에게 내공 전수를 받고 영약도 제법 먹었지만, 그녀의 장기는 암기술에 있었지 독공이 아니었다.

애초에 독공은 아주 어려서부터 오랜 시간 천천히 몸에 들이는 것이다. 명문 대파의 어느 내공인들, 시작을 빨리 하는 게 당연한 법이었지만, 독공은 더욱 그랬다.

운기를 잘못하면 죽는다. 혹은 폐인이 된다.

태어나기를 당문의 담장 안에서 나지 못했기에, 사생아로서 나중에 입문했기에, 당무련의 배움은 너무 짧았다. 그나마 하늘이 내려준 재능. 암기 투척에 대한 재능이 없었다면 천무학관은커녕, 진작에 내쫓겼으리라.

하지만.

“당 소저! 야! 당무련!!!”

“…흔들지 마. 머리 울려… 야, 소진…….”

가끔은 그 재능. 하늘이 내려 줬다는 재능이라는 말이 싫었다.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그래서 더 요란하게 나대고, 속마음과는 다르게 굴었다.

“너는… 안 서러웠냐…….”

울컥! 주르륵!

기어코 목에서 피가 넘어왔다. 이젠 눈앞이 어찔어찔한 게, 시야도 흐려졌다. 차라리 잘됐다 싶어 당무련은 눈을 감아 버렸다.

입가로 피를 줄줄 흘리며.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일단 멈추고-!”

“삼음절맥… 머리 좋다고, 어차피 다 안다고… 옆에서 떠들 때… 서럽지 않디……? 나는 진짜 눈물 났는데…….”

주르륵.

뺨이 미지근해졌다. 당무련은 흘러내리는 게 피라고 생각했다. 그냥 점막의 혈관이 터져서 피가 많이 흐르는 거라고.

뚝. 뚝. 뚝.

눈물이 아니다. 울 만큼 약하지 않다. 그렇게 습관처럼 마음을 다지다, 이렇게 억누르는 게 더 괴로웠다는 게 새삼 떠올랐다.

“노력했는데… 죽도록 하는데… 재능이라잖아… 타고났다잖아… 그럼… 뭐가 되는데…….”

“…….”

그게 서러웠다. 버겁고 힘겨웠다. 그냥 재능? 타고난 재질? 그렇게 말을 들어 버리면 뭐가 되는가.

손끝이 터져 나가도록 돌을 던지고, 온몸이 아파서 이불 속에서 신음을 죽이던.

다시 해 보라고 하면, 절대 할 수 없을 끔찍했던 시간을 버텼던, 그 힘든 걸 겪어 낸 당무련은 뭐란 말인가.

“…서러워. 맞아…….”

“어…….”

투둑. 투둑.

뺨이 이제는 뜨듯해졌다. 흘러내리는 느낌이 묽었다. 이제는 정말로 피눈물이 아닌 그냥 눈물일 것이다. 그게 창피하지만…….

소진, 이 녀석은 남 같지 않았다. 이 녀석은 알 테니까.

“재능 있다고. 너 머리 좋으니까 쉽지 않냐고… 남들보다 빨리 익힌다고 칭찬하는데…….”

“기분… 참. 엿같지……?”

재능이라는 말. 타고났다는 말. 그게 듣는 사람에게 어떤 압박을 주는지.

죽어라고 해 온 노력을 부정당하는 말을 듣고도, 하하 웃으면서 고개 조아리면서.

그래요 나 재능 있어요. 별로 노력 안 했어요를 말하는 기분.

그게 어떤 건지, 이 녀석은 알 테니까.

“엿같지… 진짜, 개같지…….”

“그래…….”

“근데 말 못 하지… 노력한 겁니다. 재능 아닙니다… 그런 소릴 하면 그조차도 못 받을 거 같으니까…….”

“…참아야지. 억지로…….”

역시 안다. 이 녀석은 안다. 이 세상에 이 녀석 하나만큼은, 당무련이 어떤 기분이었는지 아는 놈이다.

-친하게 지내자.

그러니까 친해지고 싶었다. 비슷한 처지니까, 좀 친해지면 딴 연놈들 뒤에서 욕도 하면서, 살기 너무 힘들다고 한탄도 하면서, 그렇게 친해지고 싶었다. 그런 녀석을.

“후우…….”

죽일 뻔했다.

저 해골 놈의 대포 때문에. 당무련의 몸에 장비된 암기 때문에. 아니.

자신을 넘어뜨린 게 ‘그 소진’인 걸 잠시 잊고, 반사적으로 손이 먼저 나간 자신의 겁 많음 때문에.

사실 알고 있었다. 손에 감각이 남아 있었다. 소진의 얼굴을 그어 버린-.

“나중에… 사과할 게……!”

“뭘……?”

꾸욱.

그 말을 끝으로 당무련은 눈을 눌러 감았다. 이걸로.

해야 할 말을 했다. 완전히 다 한 건 아니지만… 그렇게까지 솔직해지기엔 좀 부끄러우니까.

좀 봐줘라. 소진. 그러니까.

‘시각 차단.’

미련은 없다. 이제 온전히 내기에 집중한다. 당무련은 내력을 돌려, 눈가 옆의 태양혈로 인도했다.

뚜욱.

눈앞이 캄캄해진다. 이미 피와 눈꺼풀에 덮였음에도, 약간 남아 있던 불그스름하던 감각이 완전히 마비된다.

세상이 암흑이 되었다. 시각. 인간이 세상을 살피는 가장 첫 번째 감각을, 당무련은 스스로 정지시켰다.

‘후각 차단.’

뚜욱.

피 냄새가 사라진다. 후각. 아이가 태어나며 가장 먼저 획득하는 감각. 가장 원초적인 근본 감각이, 살아 숨 쉬는 이상 항상 있어야 할 감각이 그렇게 정지되었다.

‘미각 차단.’

다음으로 맛. 생명 활동에 가장 필요한 감각. 먹어도 되는 것과 먹으면 안 되는 것을 감지하는 능력이 마비된다. 그렇게 셋이나 되는 신체의 감각을 독으로 눌러 버리자.

드드드득…….

기혈이 다시 들끓기 시작했다. 어질어질해서 감지하기 힘들던 화골산의 연무가, 손끝으로 다시 느껴졌다.

사람이 눈만 감아도 귀가 예민해지는 법이다. 오감 폐쇄는 오로지 기감, 그 하나에만 매달리게 하는 지독한 사법.

그 사법의 힘으로 당무련은 여덟 줄기 화골산에 대한 통제를 되찾았다.

‘다음… 열여섯!’

쫘아악!

멀리 허공에 있는 화골산의 연무가,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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