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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218화 (219/310)

218화. 천마가 가지지 못한 것 (9)

꾸우욱.

흔들리던 연무가 단단하게 뭉쳐졌다. 여덟 개로 나뉜 작은 구름은 조금씩 덩치를 키워 나갔다.

기존의 화골산과 바닥에서 들끓고 있는 독의 증기가 함께 엉켰기 때문이다.

지이이익. 무럭무럭.

화골산은 극독이다. 그렇기에 그 극독이 뼈나 무기물을 녹이며 피워 올리는 연기 또한, 화골산만큼은 아니라도 지독한 독이다.

그리고 본인이 뿌린 독인 이상, 당문의 사람은 자신의 독공으로 독무를 움직일 수 있었다. 당무련은 모은 두 손을 좌우로 팍! 하고 떼어내듯 벌렸다.

파앗! 쫘아악!

그러자 농도 짙게 뭉친 독이 제각각 두 갈래로 나뉘었다. 다시금 열여섯으로 늘어난 독무.

“으극……!”

하지만 그 대가는 컸다. 기껏 끌어올린 집중력이 삽시간에 흔들렸다. 내기가 바로 바닥을 치고 당무련은 정신이 혼미해졌다.

한 번에 열여섯. 쉽지 않은 운용이다. 익숙함과 어려움이 동시에 느껴졌다.

‘고작 열여섯 정도로…….’

만천화우도 펼쳐 내는 당무련에게, 한 번에 열여섯 줄기의 독무를 운용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내력이 딸렸다. 정확히는 이 정도로 내력을 끌어올린 것 자체가 이번이 처음이었다.

으득. 까드득!

본인의 이를 가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자신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 소리도.

후우욱- 위이이익!

시각, 후각, 미각이 차단되니 기감에 대한 반응은 좋아졌지만, 청각 역시 극도로 예민해져 있었다.

이건 좀 거슬렸다. 당무련은 잠시 청각도 차단할까 고민했지만, 곧 그건 곤란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소리가 문제가 아니야. 중이(中耳)와 내이(內耳)까지 닫았다간 균형을 잡을 수 없게 되고 만다.’

천무학관에 입관하고 난 후, 그녀는 본시 중원에 없었던 학문인 해부학 또한 배웠다.

그래서 세반고리관이니 달팽이관이니 하는, 귀 안에 깊이 자리 잡은 인체의 균형추의 존재도 알았다.

그저 소리가 거슬린다고 귀를 지나가는 신경을 눌렀다간, 자칫 귓속 깊은 곳의 균형추도 마비된다.

본인 몸이 기울어지는지 휘청거리는지 모르는 상태가 돼 버릴 경우 아무리 암기 투척에 자신 있는 당무련이라 해도 상황을 장담하기 어려웠다.

발판이 불안정해진다. 본인의 몸이 어떤 상태인지 느끼지 못해서야, 암기고 독무 운용이고 할 수 없어지는 것이다.

‘선대들은… 대체 이걸 어떻게 해낸 거지?’

오감 폐쇄. 기감을 극한까지 끌어올리기 위한 사법(邪法).

당문의 독문심법임에도 학관 연합에서는 공식적으로 ‘이건 쓰지 말라’고 선언했다. 물론 당문은 금지든 뭐든 그런 걸 신경 쓰지 않았지만.

-아니, 심안 수련법도 엄연히 있는데, 왜 굳이?

수련자가 감각을 스스로 닫아 다른 감각이나 기감을 예민하게 만드는 술수로는 다른 문파에도 비슷한 것이 있기는 하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심안(心眼).

눈을 가리고 소리에 집중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공격을 알아차리는 수련이다. 그리고 그 목표는 실제로 있는지 어떤지 모를 ‘초감각’을 각성시키는 것.

하지만 후각이나 미각까지 스스로 폐쇄시키는 시도는 오로지 당문에서만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당문은 독공을 연마한다. 내공의 성질을 바꿔 독기로 만들거나, 혹은 아예 독을 몸에 주입해서 그걸 자신의 내기로 바꾸거나 했다.

하지만 독은 몸에 해로운 것이다. 아무리 본인의 내공이라 한들, 인체에 해로운 독을 전신 혈맥에 흐르게 하며 수련하니 어느 날 운기 하다 말고 갑자기 눈이 멀거나 귀가 머는 경우가 적지 않게 있었다.

보통의 가문이라면 그런 이들은 그냥 가문의 짐이 되었을 것이다. 하루아침에 병 수발 받지 않으면 움직이지도 못하는 폐인이니까.

하지만 당문은 달랐다. 독은 그들의 무기였다.

-독하지 않으면 장부가 아니다. 어찌 육신에 갇혀서 마음까지 꺾이겠는가!

독은 잘만 쓰면 자신보다 까마득히 높은 절정고수도 죽일 수 있었다. 그리고 여차하면 표적 근처에 있는 양민들까지 대량 살상 시킬 수 있는 위험한 무기였다.

그래서 경지에 이른 당문의 고수들은 독했다. 독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쓰기 전에는 신중하게. 하나 쓰고 난 후로는 결코 후회 없이.

그것이 당문의 독의 고수들이 갖춰야 하는, 가장 근본적인 마음 자세였다. 그리고 그런 마음 자세는 자기 자신을 대할 때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칼을 손에 든 자, 언제든 그 칼에 명을 달리할 수 있거늘, 칼보다 더 예리한 독을 다루는 이가, 어찌 폐인 되는 것을 무서워하랴!

그들은 마음이 독했고, 끈질기기가 지독(至毒)했다. 가전의 위험한 내공심법 때문에, 눈멀고 귀 먼 반폐인이 되어서도, 그들은 독공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가열차게 매달렸다. 이미 장애가 생긴 이들에게, 남은 삶에 의미를 줄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기에.

-인체는 참으로 신비로워, 하나가 부족하면 다른 것을 취해 모자람을 채우느니.

오감 폐쇄는 그렇게 당문에서 폐인이 된 자들이 만들어 낸, 특이한 심법이었다.

전신의 감각을 스스로 차단하고, 오로지 기감, 그 하나에만 매달리게 하는 심법.

하나 운용 자체가 양날의 칼과 같은 위험성을 지녔기에 학관 연합에서는 공식적으로 사법이라 불러 금지했다.

신경을 강제로 독으로 마비시키는 것이, 부담이 없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잠시만 누르려고 했던 감각이 평생 죽어 불구가 되는 경우도 허다했으니까.

하지만 뒷감당이야 어찌 됐든, 수틀려서 적대 문파에게 포위라도 당하면 자폭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 강호인이다.

덕분에 당문의 선조들 중에서는, 감각 폐쇄를 마지막 다섯 단계까지 다 써 버리는 이도 종종 있었다.

-오감의 하나를 닫을 때마다, 기감은 배로 늘어난다. 위기 상황이라면 충분히 쓸 만한 심법이다.

오감을 모두 닫아서 식물인간이 되었다가, 겨우겨우 회복한 사람들의 말이었다. 물론, 회복되어 의사소통까지 가능해진 사람들의 말이었다.

숫자는 2할 미만. 8할은 영영 깨어나지 못하고 고목처럼 천천히 말라 죽어 갔다. 그럼에도.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 까마득한 낭떠러지에서, 떨어질 것을 알아도 한 발 더 내디뎌라.

당문은 그 사법을 포기하지 않았다. 썼다간 죽을지도 모른다거나, 평생 폐인이 된다는 사례를 보고도 포기할 수가 없었다.

오감을 모두 닫으면 2의 다섯 제곱.

이론상으로는 자그마치 서른두 배까지 기감이 늘어난다. 여차하면 진원지기까지 써서 동귀어진도 하는 강호인이, 어찌 이런 힘을 포기할까?

그드드득! 위이이익!

귀를 찢는 굉음이 전신으로 팍팍 느껴졌다. 기감도 확장되었지만, 청각과 촉각까지 확장되었기에, 유령선에서 일어나는 진동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두우웅. 꾸드드득!

“으아앗! 저… 저거!”

“당무련! 그만해! 그러다 너 죽어!”

뭐지? 무슨 일이지?

알 수 없었다. 앞은 보이지 않았고, 귀청을 찢는 굉음은 귀만이 아니라 발바닥에서까지 올라왔다.

드드드드득! 과드드드득!

진동이 둔했다. 그건 뭔가 거대한 움직임이 있다는 뜻. 당무련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뭔가 이변이 벌어지고 있다면… 그게 다 끝나기 전에 마무리해 버릴 생각이었다.

“흐으읍-!”

착!

두 손을 모았다. 내뻗은 쌍장이 하나로 합쳐졌다.

‘셋을 닫았으니 평시의 8배… 할 수 있어… 나는……! 당문의 당무련이라고!’

손바닥에 집중했다. 장심에서 뻗어 나간 독성의 내기. 그 내기는 빨랫줄처럼 팽팽하게, 열여섯 줄기로 나뉘어져 아슬아슬하게 지탱되고 있었다.

그 감각이 한층 또렷해질 때.

“야----합!”

팍!

앞으로 내민 두 손을 떼어 내듯 탁, 하고 벌렸다.

“허억…….”

“우와아앗!”

그와 함께 생생하게 느껴지는 독무의 분열. 그리고 놀라서 비명에 가깝게 들리는 아이들의 찬탄성.

“크...윽!”

휘청! 부들부들!

해냈다. 하지만 내기가 바닥을 치고, 팔다리가 벌벌 떨린다.

무리다. 못 버틴다. 몸은 그렇게 항의하고 있었다. 씨익씩. 가쁘게 내쉬는 자신의 숨소리가 피리 소리처럼 날카롭다.

그럼에도 당무련은 꺾이지 않았다.

‘까불지 마…….’

지직. 지이이익.

선명하게 느껴진다. 열여섯에서 서른둘로. 두 배로 늘어난 독무는 여전히 그녀의 기감에 걸려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이제 한 번만, 딱 한 번만 더 버텨 내면, 이 전열함인지 뭔지 하는 대포투성이 유령선에게, 커다란 엿을 먹여 줄 수 있으리라.

포문이 64개. 거기에 일제히 독무를 밀어 넣는다. 언데드든 뭐든 대포의 탄환을 쏘아내는 것은 화약. 그 화약에 독이 뿌려지면? 장담컨대 제대로 작동할 수 없으리라.

그러니까 딱 한 번만 더. 당무련은 그 생각으로 버텼다.

푸르릉! 솨아아아악!

‘어… 으윽……?!!!’

이변이 일어난 건 그때였다. 갑자기 엄청나게 거슬리는 바람 소리가 일어났다.

가슴이 선득했다. 착각인가 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콰르륵! 파다다다닥!

몸을 감싼 옷자락이 뒤로 죽죽 당겨진다. 이건 정말로 큰 바람. 자신을 향해 불어오는 바람이다.

“서, 설마……?”

“당 소저! 그만해! 안 돼! 이러다 우리가 다 죽어!”

“유령선이 마스트를 굽혔어! 돛으로 바람을 만들어 내고 있어!”

소진의 비명. 그리고 운소령의 다급한 목소리.

“……!!!”

피투성이가 된 당무련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바람. 그것도 자신을 향해 불어오는 역풍(逆風). 그건 독무를 쓰는 독술사에게 있어 최악의 상황이다.

“이익……!”

아무리 섬세하고 정확히 운용한다 해도, 독무는 기본적으로 안개 혹은 연기. 불어오는 바람을 이겨 낼 수는 없다.

-크하하하! 캬하하하하!

거슬리는 웃음소리. 그와 함께 눈앞의 상황이 그려졌다. 이 거대한 유령선은 전열함. 서역의 포격용 범선이다.

배도 크지만, 그 배보다 돛이 더 크다. 그리고 돛이 매달린 마스트는, 이미 구불텅 휘어지며 파티를 공격한 적이 있었다. 이걸 생각 못 했다니!

“씨발……!”

저 유령 선장 놈. 생각해 보니 너무 잠잠했다. 당무련이 독을 뿌려 해골병 여럿을 녹이고, 독무를 점차 늘려 나가는 동안, 어째 별 위협적인 공격이 없다 싶었다.

당황했나 싶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놈은 기다리고 있었던 거였다. 당무련이 만드는 독무가 점차 늘어나서 더욱 더 많아지기를. 왜냐하면 놈에겐 거대한 부채가 있었으니까.

‘어. 어떻게 하지……? 이제……?’

당무련은 눈앞이 캄캄했다. 폐인 될 각오까지 해 가며 죽어라고 만들어 놓은 독 안개를 고스란히 그녀 자신이, 아니, 그녀의 파티가 죄다 뒤집어쓰게 된 것이다.

아무리 경지에 이른 독술사라도, 바람을 거스르는 운용은 할 수 없다. 그게 가능하려면 전설의 심독(心毒)이나 되어야 한다.

그리고 심독은 심즉살(心卽殺), 검술에서의 심검(心劒)이라고 이르는 경지. 화경은 되어야 문턱을 넘볼 수 있는 것이고, 당무련은 당연히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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