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화. 천마가 가지지 못한 것 (11)
쾅! 쾅! 꽈광!
폭발은 한참이나 이어졌다. 얼추 십여 차례, 혹은 이십여 차례. 화약은 폭발하고, 파편은 날아다니고, 선상 기물은 죄다 부서지고 무너졌다.
타타탕! 채챙! 파캉!
말 그대로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난리 통이다!
파티원들은 혹여나 뭐에 맞을까 봐, 꼼짝도 못 하고 엎드려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천마는 가장 앞에 나서 있었다.
“이게… 뭐야…….”
천마의 얼굴에는, 가느다란 경련이 일고 있었다.
“고작해야 대포가… 이런 위력을 내?”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다. 그는 조금 전 벌어진 일을 되짚어 보았다.
처음에 해적선장이 대포로 일제사격을 해 올 때만 해도 천마는 여유로웠다. 뭐, 날아오는 철탄쯤이야 쳐 내면 그만이지? 하고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다.
뽜우우웅!
한데 완전히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굵기가 사람만 한 대포 64문. 그것들이 일제히 쏟아 내는 철탄은, 무시무시한 위력을 담고 있었다.
‘이건… 최소 검기급!’
뒤늦게 눈치챈 천마가 경악해서 호신강기를 전력으로 끌어올릴 정도로.
투두두둥! 티이이잉!
“……?!”
하지만 그가 손을 쓰기도 전에, 놀랍게도 마법의 방어막, 하백운이 여러 겹으로 설치한 실드 마법이 그 공격을 튕겨 내었다.
그것도 그냥 튕겨 낸 것도 아니고, 육십여 개의 철탄이 제각각, 포탄을 쏴댄 대포의 아가리로 정확하게 쑤셔 박혔다.
빡! 빡! 빠바박!
“허어……?”
채 포연을 뿜어내기도 전에 그 아가리에 쑤셔 박힌 포탄. 대포는 쩡! 쩡! 소리를 내며 터져 나갔다.
그러고는 뒤쪽으로 쭈우욱 밀려 버렸다. 조작하던 해골병들을 산산조각 내며.
콰드득! 빠직! 퍼어엉!
벽까지 쑤셔 박힌 대포는 경로에 있던 통 무더기들을 박살 냈다. 깨진 통들이 여기저기 날며 시커먼 가루-아마도 화약-들을 사방팔방으로 흩뿌리더니.
꽝! 꽝! 꽈광! 꽝!
어마어마한 폭발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폭발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사방으로 파편이 날고, 계속해서 화약이 터지고 터진다.
쒸잉! 쒸잉! 타타탕! 파캉!
무수하게 많은 쇳조각, 나무토막, 뼛조각들이 비산했다. 자그마치 탈마의 경지에 오른 천마의 눈으로도 다 헤아리기 힘들 정도였다.
-크아아아아……!
그리고 그 파편의 폭우에 이곳의 보스인 유령선장까지 휘말렸다.
녀석은 먼저 불길에 휩싸였고, 다음으론 빙글빙글 회전하는 대포에 깔린 다음 폭발에 튕겼다.
꽝! 꽝! 꽈광!
마치 좁은 방 안에서, 바람 잔뜩 들어간 공을 던진 것처럼 이리저리 튕겼다. 그런 와중에 수백 수천의 파편에 두들겨 맞아 걸레짝이 되고 있었다.
-끄르르르르…….
드드등! 드드드등……!
“세상에…….”
천마는 전율했다. 끝없는 연쇄 폭발의 지옥도를 보며, 그는 잠시 자신이 저기 있었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했다. 그리고 드는 생각은, 별로 유쾌한 것이 아니었다.
아마도 한번 겪어 보기 전에는 낭패를 볼 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뭐, 한번 당해 보고 난 다음에는 미리 대비할 수 있겠지만…….
“아니, 그런데 애초에 포탄 무더기에 처맞는 경우를 어떻게 상정하냐고.”
마법도 아니고 고작해야 대포 따위가 이런 위력을 보일 줄은 몰랐다. 생각해 보니 전생에서도 화약이나 화기를 쓰는 놈과 싸워 본 경험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끽해야 화승총 같은 걸 기병(奇兵)이랍시고 들고 온 놈 정도나 있었을까. 그랬기에 제대로 된 대포. 기술의 극한까지 발전된 대포가 보이는 위력에는 그저 놀랄 뿐이었다.
화르륵! 화르르륵!
콰쾅! 쾅! 씨이잉! 탱!
배는 갑판 전체에 불이 번지고 있었다. 그리고 파편들은 미친 듯이 씽씽 날아다녔다.
드드드득… 드드득…….
폭발은 거의 반각을 이어지다가 겨우 그쳤다. 납작 엎드려 고개도 들지 못하고 있던 파티원 중, 방윤이 민머리를 스르륵 들어 올렸다.
“허억… 헉… 이게……? 뭐야……!”
빼꼼. 빼꼼.
방윤이 기겁하는 소리에, 하나둘씩 아이들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이내 그와 똑같이 입이 쩌억 벌어졌다.
“어……?”
“우와아…….”
배는… 거대한 전열함은, 아주 걸레짝이 되어 있었다.
대포가 솟아올라 계단을 이루고 있던 상갑판은, 뭐가 움푹 베어 먹은 것처럼 뜯겨 나갔다. 그리고 그때까지 잔불이 남아 끈질기게 매캐한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치지직… 지이이익…….
“세상에… 이것 봐.”
하갑판도 난리가 아니었다. 사방이 뚫리거나 거대한 손톱으로 할퀴기라도 한 듯, 온통 찢겨져 있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런 파괴의 현장이 고작 파티원들 3미터 앞에서 멈춰 있었다는 것!
“허어…….”
흡사 구역이 나뉘기라도 한 걸까. 마치 비 온 뒤의 처마 아래 같았다.
소나기가 쏟아져도, 지붕이 든든하게 막아 내 바싹 잘 말라 있는 흙바닥처럼.
그래서 아이들은 너무 멀쩡한 주변과, 그 바로 앞의 상처투성이 갑판을 번갈아 보며 얼이 빠졌다.
“이게… 대체 어떻게……?”
“하하!”
서문영의 불신 가득한 얼굴에, 하백운이 기다렸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이게 다- 이 하백운님의 힘이지. 먼저 에어리얼 실드! 하나하나 일일이 실드 걸기 귀찮아서, 범위 전체에 방벽을 세웠어. 거기에 대공성 방어! 무거운 투사체가 날아들면, 직격당하지 않아도 그 충격이 끔찍하니까 그걸 대비했고.”
그렇지 않아도 그는 자신의 마법을 자랑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었다. 오랜만에 잘난 척을 할 기회가 오자, 그는 아이들 앞에서 과장되게 짜악! 팔을 펴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회심의 리플렉션! 타격을 고스란히 되돌려 주는 카운터! 그걸 실드 전면에 깔아 두었다고!”
“리플렉션……? 그거 고위급 마법 아냐……?”
“아하! 뭘 좀 아시네! 맞아. 난 이제 더 이상 저위급이라고 불리는 몸이 아니라는 말씀! 당장은 고위급… 까지는 못 되지만… 그것도 머지않았어! 이 하백운이! 고위 마법사가 되는 날도!”
광대가 출렁출렁. 어깨가 으쓱으쓱.
하백운은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그는 덩실덩실 춤을 추다 날아갈 것 같은 얼굴로 계속해서 떠들었다.
“다들 봤냐! 이게 마법이다~ 이 말이야! 감히 말하건대! 화경의 고수라도 저 포격을 이렇게 깔끔하게 받아치진 못 했을걸? 그걸 내가… 어…….”
수르륵. 퍽!
그러다가 갑자기 모로 쓰러졌다!
“하백운!”
“야!”
아이들이 기겁하고, 이경이 급히 달려가서 하백운의 목덜미를 짚어 보았다.
“일시적 탈진. 갑자기 너무 큰 힘을 써서 기절했어. 아, 무식한 놈…….”
그리고는 후- 하고 한숨을 쉬었다.
“기절? 괜찮은 거야?”
“괜찮아. 마법사가 마법 쓰다 마나 탈진 와서 뻗는 건 흔한 일이니까.”
“…흔한 일이냐. 그게?”
“흔해. 무인들은 대개 신체를 단련하잖아. 그런 무인조차도 한계를 넘는 힘을 쓰면 기절하곤 하지. 그런데 마법사는 육체 단련이 거의 없단 말야. 큰 마법에 정신력을 다 쏟아붓고 나면… 뭐, 의식을 잃는 거고.”
어쨌든 하백운은 그냥 한숨 푹 자고 일어나면 멀쩡해진단다. 마법사가 그렇게 말하니 마법사 아닌 아이들은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퍼억!
다만, 이경은 잠든(?) 하백운을 퍽! 하고 때렸다.
“그럼 뭐 일단은… 헉! 으아아악!”
고개를 끄덕이던 일행은, 뒤늦게 화들짝 놀라 급히 물러섰다.
-그르르르륵… 그르르르륵…….
지척에 유령선의 선장이 있었다! 그런데…….
꼴이 말이 아니었다.
머리는 반쯤 터졌고, 몸은 상반신만 남아 있었다. 그마저도 갈기갈기 찢겨 나가 걸레짝이 된 끔찍한 모습이었다.
“…이것도 하백운이 한 거야?”
“설마? 그만한 화력이 있었으면 방어막을 칠 필요도 없지.”
이경이 고개 저었다.
공격은 선이고, 방어는 면이다. 공격에 들어가는 에너지가 방어에 들어가는 에너지보다 더 적다.
그리고 하백운은 특히나 공격 성향이 강한 마법사다. 마법으로 유령선장을 이 꼴로 만들 수 있었다면, 굳이 힘든 방어를 선택하지 않았을 터.
“그럼 누가 한 거야……? 이한… 혹시 너?”
“아니, 화약 폭발.”
“아……!”
천마의 말에 아이들이 바로 납득했다.
하백운의 신묘한 마법 덕분에, 일행은 아무 상처가 없었다. 하지만 배 갑판은 아주 작살이 나 있었다.
생각해 보니 반각가량 계속해서 펑펑 터지고, 폭발하고 하는 바람에 머리도 못 들고 있었었다.
유령선장이 그런 연쇄 폭발의 최중심, 폭심지 한가운데 있었다면 이런 꼴이 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헉! 당 소저! 괜찮아? 당 소저!”
거기서 소진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달려갔다.
“아차! 당무련!”
“당 소저!”
한쪽이 시끌벅적해진다. 어마어마한 대폭발에 까맣게 잊고 있던 당무련을, 소진이 안고 일으키며 기겁을 했다.
“포션! 포션 줘! 이한! 어떻게 손 좀 써 봐!”
눈 코 입에서 온통 피를 쏟아 낸 당무련은, 안색이 창백했고 의식이 없었다. 거의 울먹울먹하는 소진은, 당무련의 입에 포션을 부어 넣고, 피로 얼룩진 얼굴을 닦아 주고 있었다.
“…요란 떨지 마라. 안 죽어.”
천마는 느긋하게 다가와, 물끄러미 당무련을 보고 있다가 한참이 지난 후 절래절래 고개를 저었다.
“하… 이게 이렇게 되냐…….”
“무. 무슨 소리야? 당 소저가 혹시……!!!”
“아, 좀. 자식아.”
빡! 깩!
발작하려는 소진에게 천마는 딱밤을 날렸다. 소진은 쥐 잡히는 소리를 내곤 그대로 쓰러졌다.
“…….”
“…….”
그리고 갑판 위에는 불편한 침묵이 쫘악 내려앉았다.
온통 피로 얼룩진 당무련.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천마의 얼굴이 심하게 찌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저기… 이한.”
“왜.”
이래저래 이런 때 천마에게 말을 붙일 수 있는 건 그나마 운소령이었다. 그녀는 온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있는 천마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왜 그래? 혹시… 당소저가… 안 좋아?”
“…안 좋긴. 멀쩡해. 마법사 놈하고 비슷하다. 한 이틀 자고 일어나면 회복할 거야.”
후우우! 후우!
천마의 말에 아이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이네… 그런데 얼굴이 왜 그래?”
“내 얼굴이 뭐? 아…….”
천마는 그제야 자신의 표정을 깨닫고, 얼굴을 슥슥 문질러 마른세수를 했다.
그러고는 다시금, 가늘게 신음하는 당무련과, 당무련을 기절한 채로도 꼭 안고 있는 소진을 보았다.
“…….”
한참이나 둘을 본 끝에 긴 한숨을 내쉬는 천마.
그의 얼굴은 꽤 복잡했다. 어찌 보면 웃는 듯도 했고, 어찌 보면 우는 듯도 했다. 형언하기 힘든 기묘한 감회에 빠져, 그는 조용히 내뱉었다.
“진짜 뭐 이러냐… 처음이네. 정말…….”
“……?”
운소령은 고개를 갸웃했다. 천마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기에.
하지만 천마 자신도, 지금 이게 무슨 기분인지 정확히 설명하기 힘들었다.
가슴이 부글거리기도 하고, 아릿하기도 했다. 대단히 낯설고, 어색한 감정. 그리고 불편한 감정.
확실한 건, 지금 이게 이번 생은 물론이고 전생에서도.
‘부럽다고? 내가? 왜?’
한 번도 가져 보지 못한 생경한 기분이라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