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화. 새로운 게이트 (2)
똑똑또르르르… 똑똑또르르르…….
“…하야 공 가운데에는 실체가 없고, 감각도 생각도 행동도 의식도 없으며, 색도 소리도 향기도 맛도 감촉도 법도 없나니…….”
방윤의 염불은 중반을 넘어서고 있었다.
지금 그가 외는 것은 반야심경이다.
원본은 ‘대반야바라밀다경’이라는, 석가모니가 살아생전에 제자들과 나눈 이야기, 그리고 깨달음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경전으로, 그 분량은 자그마치 서책 600권에 달한다 했다.
서책 600권! 아무리 불심 깊은 불교도라 해도, 다 읽기에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방대한 분량.
그래서 당대의 유명한 승려인 ‘현장법사’가 나서서, 중요한 부분만 추려 내어 일종의 요약본을 만드니, 이것이 바로 반야심경이다.
한자로는 고작 260자, 서책 600권 분량의 일 푼도 되지 않는 짧은 경문이다. 하나 현장법사가 과연 당대 제일의 고승이라는 말은 그냥 붙은 것이 아니었다.
후일, 원본인 대반야바라밀다경도 아닌, 요약본인 반야심경만 외다 깨달음을 얻은 이들이 나올 정도이니, 그 절묘한 기술과 경문에 서린 신령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한데 그런 신령함과 상극인 존재가 있었으니.
그어어어어…….
언데드는 방윤이 불경을 외는 동안, 바작바작 마르다 못해 가루가 될 지경이었다. 살은 진작에 말라붙었고, 뼈는 가루가 되어 주륵주륵 흘러내렸다.
유령선장은 도망이라도 가려는 것인지 어떻게든 멀어지려고 비척거리며 기어갔지만, 방윤은 저벅저벅, 그럴 때마다 선장의 머리 앞으로 가서 더욱 웅장히 염불을 외웠다.
똑똑또르르르… 똑똑또르르르…….
“…하니,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어서, 뒤바뀐 헛된 생각을 멀리 떠나 완전한 열반에 들어가니…….”
그륵. 그륵. 그르륵…….
결국 언데드는 포기하고 뻗어 버렸다.
아무리 죽지 않는 언데드라 해도, 이래도 저래도 벗어날 수가 없으니 그냥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일까.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가자. 가자. 넘어가자. 모두 넘어가서 무한한 깨달음을 이루자)…….”
똑똑또르르르… 똑똑또르르르…….
마지막 구절에 이르자, 반야심경은 그 특유의 가벼움과 진한 여운을 남기며 마무리되었다.
그우우우… 푸스스!
그리고 끈질기게 이승에 매달려 있던 유령선장도 결국 마무리되었다. 그는 온몸이 비쩍비쩍 마르더니, 마지막에는 한 줌 가루가 되어서 보사삭 흩어져 버렸다.
휘르륵.
때마침 가벼운 바람이 불어와, 남은 뼛가루를 완전히 날려 버렸다.
“옴~ 못지 사바사바하~ 부디 극락왕생 하~소~ 서~”
방윤은 고개를 숙이며 소림 특유의 반장을 했다.
그 태도는 정중하고, 망자의 안식을 바라는 경건함이 가득했다.
물론, 옆에서 그걸 본 이경은 떨떠름했다.
“…가긴 확실히 갔겠네. 극락인지 지옥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러게.”
말이 위령제라고, 길을 잃은 망자의 혼을 위로한다고 하는 건데, 실제로는 무슨 악령 퇴치가 아닌가 싶은 모습이었다.
아니. 애초에 언데드는 악령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부스슥. 우드드득. 쿠르릉!
“어이쿠.”
선장이 완전히 사라지자, 유령선 역시 한 번 더 주저앉았다.
다행히도 놀라거나 다친 사람은 없었다. 이미 이렇게 될 것 같다고 이미 일러두었기 때문이다.
“으아악! 아악! 꺄아아악!”
“어라……?”
다만 예상 못 한 비명이 좀 있었다.
돌아보니 당무련이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몸을 비틀고 있었다.
“왜 그래. 당 소저, 괜찮아?”
“안 괜찮아! 죽을 것 같다고! 아악! 이거 뭐야!”
빽빽 소리를 지르며 몸부림치는 당무련.
그 얼굴은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있었다. 아까 싸울 때 썼던 오감 폐쇄의 후유증이 뒤늦게 닥쳐온 것이다.
“아파! 너무 아파! 흐으윽… 아파서 죽을 것 같아!”
처음에 깨어났을 때는 스물스물 가렵고 불편했던 것이, 점점 심해지더니 지금은 극에 달해 숫제 눈 코 입을 불에 달군 젓가락으로 쑤셔대는 듯했다.
“흐어어… 으어엉…….”
평시의 도도하고 거만하던 모습은 어디 갔는지, 마치 어린애처럼 엉엉 울며 고통을 호소하는 당무련.
그런 그녀를 보고 천마가 피식 웃었다.
“참아, 아픈 만큼 성숙하는 거다.”
“야!”
잠깐 불편한 감정에 휘말렸던 그는 시간이 좀 지나 차분히 가라앉은 상태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무련이 아파서 난리 발광 하는 모습이 통쾌하기까지 했다.
“으… 으아아… 진통제! 마취제 없어? 그럼 혈도라도 좀 짚어 줘! 너무 아파!”
“어, 그러지 않는 게 좋을걸?”
“왜!!!”
“지금 너는 독공의 경지가 크게 올랐어. 감각이 폭주하는 까닭은 그 때문이고.”
천마는 부들부들 경련하는 당무련의 얼굴을 보며.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다.
오감 폐쇄. 신체의 감각을 독으로 마취시켜, 오로지 기감에만 집중시키는 사법.
본래라면 당무련은 평생 반폐인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눈이 멀고 후각과 미맹이 되어서.
“쇠그릇으로 생각해 봐. 네 본래 그릇의 크기는 조막만 했다. 그런데 네가 아까 쓴… 심법? 그걸로 수박만 한 내용물이 갑자기 들어온 거야.”
본래라면 그릇이 깨지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참으로 천운이 닿았는지, 그녀는 거기까지 가지 않았다.
“운이 좋다고 할까, 너는 그 수박을 다 담을 수 있게 그릇이 강제로 커졌어. 대신 쇠 그릇이 종잇장처럼 얇게 펴진 상태랄까? 평소 담기던 내용물보다 몇 배는 많은 게 들어왔고, 그릇은 약해졌으니, 당연히 몸이 아프지.”
“그, 그럼 어떻게 해……?”
“어쩌긴? 참아. 지금 네가 겪는 고통은 네 몸이 정립, 재배치되는 과정이야.”
정확히는 아픈 게 아니다. 눈 코 입의 기존 감각이, 수십, 수백 배로 예민해졌을 뿐이다.
하지만 자극이 너무 강렬해서 고통으로밖에 안 느껴지는 것이랄까.
“이걸 어떻게 참아! 당장 죽을 것 같은데!”
“그래서 피하게? 당장 괴롭다고 지금 이 순간을 넘겨 버리면… 네 독공의 경지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텐데?”
“…어?”
당무련이 뚜욱, 멈췄다.
독공, 경지라는 말에 아파서 죽겠다고 고래고래 고함 지르던 것도 멈춰 버렸다.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천마는 웬일로 그답지 않게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지금 네가 고통으로 느끼는 거, 그건 고통이 아니라 그냥 자극이야. 그리고 그 자극이 있어야 기감을 감지하는 감각이 발달하는 거라고.”
아이가 세상에 처음 태어날 때는, 다들 격한 울음을 터뜨린다. 너무 아프고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어머니 배 속에서 보드랍게 자란 살결은, 세상의 공기와 닿으며 지독하게 고통스러워한다.
소리, 냄새, 피부의 느낌 등, 이제껏 없던 감각이 생겨난다. 처음 세상을 마주하게 되며 태아는 당연히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너무도 막대한 정보가 몰려드니까.
하지만 이는 당연한 증상이고,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그 통증을 통해 감각과 신경이 발달하고, 울음을 터뜨릴수록 폐활량이 늘어 숨을 잘 쉴 수 있게 되니까.
그런데 만약 아이가 우는 것이 아파 보인다고, 혹은 시끄럽다고, 마비산 같은 마취제나 수면제를 먹여 재워 버리면 그 아이는 어떻게 되겠는가?
“알겠냐? 지금 네 몸은 일종의 벌모세수(伐毛洗髓)를 거친 상태야.”
“…….”
전설상의 동방삭. 삼천 갑자를 살았다는 옛사람은, 골수를 씻고 털을 새로 나게 하여 그 수명을 늘렸다 한다.
이것이 나중에 강호인들에게 전해지며, 벌모세수는 환골탈태와 함께 신체가 가장 깨끗하고 청명하게 조율된 상태를 이르는 것이 되었다.
“기맥에 끼어 있던 찌꺼기. 자라면서 천천히 둔해지게 된 감각. 거기 껴 있던 굳은살을 몽땅 긁어 낸 청정 상태라는 거지.”
본래 벌모세수는 온갖 영약에 수많은 시침법을 통해서 행해지는 과정이다. 한데 당무련의 경우는 혈맥을 타고 흐르던 독이 영약의 역할을 대신했다.
애초에 약은 과하게 쓰면 독이 된다. 영약이라 해도 잘못 먹으면 폭주해서 주화입마를 일으킨다.
그처럼 독도 적당히 잘 조절해서 쓰면, 영약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 당무련이 바로 그 경우다. 하지만 그 확률은 지극히 희박했다.
“바늘을 던져 또 다른 바늘 끝을 맞히는 정도랄까. 진짜 운이 좋은 거야, 너는. 똑같은 심법으로 똑같은 독을 흘려보내도, 다시 이렇게 되기는 힘들거든.”
“…….”
오감 폐쇄. 아무리 천마라도 당문의 비전 내공 심법을 알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게 어떤 원리로 작용하는지는 몰라도, 결과를 살펴보면 대충은 방향을 알 수 있었다.
‘본교에서 뻑하면 쓰던 수법인데 뭘.’
그도 그럴 것이, 마교에서 많이 쓰는 방식이었으니까. 기량이 부족한 자가 뒷감당 생각 안 하고, 죽든 말든 일단 있는 힘 다 끌어다 내 쓰는 것은 마교의 유명한 행태다.
그들은 애초에 역혈신공. 피를 거꾸로 돌아가게 하는 것부터, 기경팔맥에서 진기를 충돌시켜 일부러 주화입마를 유도하는 등, 후유증 많고 위험한 심법을 ‘신공’이랍시고 연마하는 자들이었다.
“뭐, 그래도 아파서 못 하겠다면 할 수 없지. 나 참. 하늘이 내린 기회를 제 발로 걷어차는군… 수혈 짚는다-?”
“…마.”
느긋하게 천마가 말끝을 늘이자, 당무련이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작게 중얼거렸다.
“엉?”
“하지 말라고! 씨발! 그냥 버틴다고! 아아악! 개새끼들! 으아아아악! 아파아아!”
그리고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엉엉 우는 당무련.
아무리 아파도, 겨우 얻은 경지 상승을 포기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고통을 참느라고 이를 바득바득 갈고, 그러다가 이가 아파서 으아악 비명을 지르고…….
“클클클클…….”
천마는 그런 당무련의 모습을 보며 악동처럼 웃었다. 그러다가 뭔가가 생각난 듯, 눈길을 돌렸다.
“참, 필리아?”
“네? 네?!”
후다닥!
눈길을 받은 파티원들이 헛숨을 들이마시며 급히 고개를 돌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천마는 궁금한 것을 물었다.
“너, 아까 무슨 수를 쓴 거냐? 정령사가 원래 치료나 이런 것도 가능한 거였어?”
그는 당무련이 제 몸에 독을 부어 넣어 흐르게 하는 걸 똑똑히 보았다. 위기 상황에서 아슬아슬하게 잘 버티긴 했지만, 분명 그 후유증은 반폐인이 될 만한 것이었다.
한데 한 이틀은 지나야 깨어날 거라 생각한 당무련이 금방 의식을 찾았고, 몸 상태도 너무 멀쩡했다. 천마는 그게 그녀의 상태를 살피던 필리아가 원인이라고 추측했다.
“아. 음… 그게.”
필리아가 복잡한 표정을 짓다가, 두 손을 모아 천마에게 내밀었다.
찌릭.
작고 반투명한 개구리 하나가, 필리아의 손안에서 천마를 보고 파르르 몸을 떨었다.
“뭐야 이건?”
“포이즈너스(Poisonus). 독의 정령… 까지는 안 되고, 그 아래의 유사 정령 같은 거예요. 당소저의 녹피수투와 독낭에 서린 독의 기운을, 제가 임시로 정령화를 시켜봤어요.”
“…아하.”
천마는 끄덕였다. 과연, 인간이라면 몰라도 정령이라면, 그것도 독의 정령이라면, 혈맥에 타고 흐르는 위험한 독기를 흔적 없이 뽑아낼 수 있었으리라.
찌릭!
개구리는 천마를 보고 두려운 듯 몸을 떨더니, 곧 팍! 하고 사라져 버렸다. 그에 천마는 쩝쩝 입맛을 다셨다.
“야, 너 이런 거 더 만들 수…….”
드드등! 쿠궁!
그때였다. 다 부서진 유령선이, 갑자기 크게 진동하며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조심해!”
“우왓!”
타닥! 파박!
파티원들은 급히 몸을 날리며, 하백운, 소진, 당무련을 부축했다. 바직바직 부서지는 배에서 나와, 오랜만에 다시 축축한 습지를 디딜 때.
쿠우우웅---! 두우우웅!
“…뭐야. 이게.”
산산조각 난 배의 파편에서, 커다란 그림자가 솟아났다. 빛을 빨아들이는 듯한 검은 구체. 그걸 보는 순간 천마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주인이시여.
페이탈리스트. 그림자의 정령이 다급하게 말을 걸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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