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224화 (225/310)

224화. 게이트 (1)

후르르르. 솨아아악.

바람이 불어왔다. 습하고 차가운 바람이었다.

찌르륵!

그 속에서 물씬 피어나는 악취. 시체가 부패하는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후으읍.

매소봉은 숨을 크게 들이켜고, 헝겊 뭉치로 코와 입을 꽉 싸맸다. 그리고 말했다.

“이쪽입***. 여기* 돌아가야 합**.”

타닥. 탁. 사박.

땅에 거의 몸을 붙이다시피 하며 걷는 매소봉.

단단히 싸맨 헝겊 때문에, 그가 말하는 소리가 뭉개져서 웅얼웅얼하는 것처럼 들렸다.

사박. 사박. 사박.

어둠나무로 향하는 길은 주의와 경계의 연속이었다. 약간의 방심도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올 수 있었다. 그래서 매소봉은 주륵주륵 이마에서 땀이 흘렀다.

지난번 이 길을 달리며 도망칠 때는, 다시는 이쪽으로 돌아보지도 않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랬는데 지금 그 길을 다시 걷고 있었다. 그것도 제일 앞에 앞장서서 사람들을 이끌고.

운명이란 참 얄궂은 놈이었다.

사박. 사박. 사박.

약간의 높이가 있는 구렁을 돌며 매소봉이 삭, 사삭, 하고 손을 들며 말했다.

“부대 *에. 각* 존방 주이. 3조 5조 후앙**인.”

“아, 거 진짜 짜증 나게. 뭔 소리인지도 모르겠군.”

뒤에서 따라오던 마법사가 투덜거렸다.

길잡이를 맡은 매소봉이 지시를 내리는데, 코와 입을 감싼 헝겊 때문에 웅웅거려서 제대로 들리지가 않는 것이다.

그나마 경험이 있다 보니, 상황상 무슨 지시인지 대충 짐작이야 가지만, 저런 뭉개진 소리를 하나하나 되짚어 가며 움직이자니 그로서는 답답함이 컸다.

“그냥 그거 벗고 말하면 안 되오? 상황 전파가 제대로 안 되지 않소. 이러다 뭔 사태 터지면 난리 나겠구만.”

“…지금 죽으라고 고사 지내는 게요?”

마법사가 불평하는 소리에 교관이 인상을 썼다.

그는 매소봉의 소리가 잘만 들렸다. 무예는 몸만 단련하는 게 아니라 신체 전반의 능력을 높인다. 당연히 귀에 내력을 집중하면 또렷히 들리는 것이다.

“나쁜 냄새는 대개 독을 품고 있는 법. 별생각 없이 들이마셨다가, 나중에 중독된 걸 깨닫게 되는 때는 이미 늦는거요.”

“허, 참. 화경이나 되시는 양반이 잘못 알고 계시는구만. 전후가 바뀌었소이다. 나쁜 냄새가 독을 품은 게 아니고, 독이나 부패가 나쁜 냄새를 일으키는 거요.”

그런데 교관이 책망하는 말에 마법사가 얼굴을 붉히고, 와다다다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개체가 생존을 위해서 위험한 조짐을 미리 알아차리는 것. 그게 감각기관의 발달 원리요. 부패 시에 나는 역한 냄새나 독물이 풍기는 독한 냄새를 꺼리는 건, 지극히 자연선택적인 원리. 후각은 물론이고 미각에서도 그런 이치가 뚜렷하게 나타나는데, 달고 고소한 맛은 영양학적으로 우수한 음식이라 맛있게 느끼지. 반면 쓴 맛은 대개의 경우 약하게든 강하게든 독성을 지니고 있소. 그래서…….”

“아니… 이, 이 사람이……?”

무인 교관은 얼떨떨한 얼굴이 되었다.

그냥저냥 가볍게 툭 던진 말에, 저렇게나 핏대를 올리며 떠들어 댈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심지어 마법사는 천무학관에서 말 없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자그마치 몇 년을 함께 교무를 보았는데, 이렇게나 격한 반응을 보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만. 그만. 그만하시오. 마법사 양반.”

유장위가 손을 내저어 말렸다. 마법사가 눈을 번뜩이며, 이제 그에게까지 뭐라 하려는 순간, 유장위가 앞질러 말했다.

“나도 그런 심도 깊은 이야기를 좋아하오. 그러니 이번 일이 끝나고 난 다음에 다시 논해 봅시다. 지금 우리는 적진에 침투 중이오. 무릇 일에는 선후가 있는 것 아니겠소?”

“어, 흠. 어흠…….”

현경의 고수가 웃으며 하는 말에, 마법사는 헛기침을 하며 입을 다물었다.

“그 말씀이 맞습니다. 제가 너무 흥분했군요.”

“그것도 나쁘지 않소이다. 과한 긴장이나 두려움보다는 훨씬 좋지 않소? 매소봉 교관이 말한 대로라면, 어둠나무의 기이한 생태를 목도할 좋은 기회요. 그러니 조금만 자제하십시다.”

“그러지요.”

마법사의 눈이 또 한 번 번뜩였다. 그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꾹! 입을 다물었다. 다시 앞을 향하는 그는 불평 한마디 꺼내지 않고 숨을 죽이고 있었다.

“허… 아니, 이게 무슨…….”

“마법사를 지식으로 누르려고 하면 안 되오.”

황당해하는 무과 교관. 유장위가 허허 웃으며 그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저들은 단련이 아니라 지식으로 평생을 쌓아 온 이들. 어설프게 가르치려 들었다간, 저들은 엄청나게 격한 반응을 보입니다. 자기 인생이 부정당하는 것처럼 느껴서.”

마법사와 무인 간의 충돌.

이건 유장위도 클랜을 운영하던 중에 수시로 겪었다.

본래라면 조용히 협조하던 이들이, 별 같잖은 말 실수 때문에 사생결단을 내려고 드는 모습을 여러번 보았다.

처음에는 그도 화가 나고 어이가 없었지만, 이내 어쩔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서로 살아온 삶이 다르고, 보는 시야가 다르니까.

그렇게 납득하고 나니, 의외로 훨씬 쉬운 길이 보였다. 말로 잘 도닥이고 관심 가져 주는 척을 하면, 마법사들은 당근을 앞에 둔 말처럼 고분고분해졌다.

“그냥 우리가 조심하고 참는 게 속 편합니다. 마법사들은 원래 반쯤은 미친… 아니, 정신 나간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그리고 그건 무인들도 딱히 다르지 않았다. 유장위가 일부러 소리를 죽여 속삭이듯 말하자, 무과의 교관은 커흠, 흠, 헛기침을 하며 한결 편해진 얼굴로 꾸벅 고개를 숙여 보였다.

“가르침에 감사하오이다. 과연 유 대협이시오.”

“별말씀을.”

그저 조용히 마법사의 험담을 짧게 한 것만으로, 그는 유장위가 자신과 같은 사람이라 여기게 된 것이다.

“빠르게 이동하겠습니다. 다들 기척을 주의하십시오.”

때마침 매소봉이 헝겊을 잠시 내렸다가 달려 나갔다.

타다닥. 타다다닥.

마법사도 무인도, 사방을 경계하며 그 뒤를 따랐다. 가장 뒤에서 모두를 살피는 유장위는 좀 전의 훈훈한 표정을 지우고 싸늘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확실히 딱 이 정도가 좋아. 교두들은 지나치게 뻣뻣하게 군다니까.’

지난번, 리그웨더의 경고(?)를 받은 후, 유장위는 실적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는 예의 문제가 된 어둠나무를 위력정찰 하기로 결정하고, 적당히 2선급의 교관과 교수들로 조를 꾸렸다.

제운비와 뇌천벽, 천무학관의 쌍벽을 이루는 고수들은 주둔지에 남겨놓았다. 후방을 믿고 맡길 사람이 필요하다는 핑계로.

‘그 두 놈… 눈깔이 마음에 들지 않아. 고작해야 화경에 머무른 조무래기들이.’

거기에는 심리적인 이유도, 그리고 상대적인 이유도 있었다.

제운비와 뇌천벽. 그 두 사람은 유장위가 입맛대로 주무르기엔 지나치게 노련했다.

그리고 그들은 자타가 공인하는 천무학관의 쌍두마차.

저 두 사람을 데리고 임무를 수행하면, 성공하는 게 당연하게 여겨질 것이다.

‘돋보이는 건 나 하나로 족하지.’

그래서 유장위는 일부러 좀 실력이 어설픈, 부족한 이들로 조를 편성했다. 교두는 싹 빼고, 교관 내지 교수들로 인원을 꾸렸다. 심지어 4학년 학관생도 하나 넣었다.

그게 여러모로 좋았다. 현경이란 이름 앞에 바로 고개를 숙이는 이들이라 조절이 쉬웠으니까.

혹여 전력이 부족해서 사상자가 생기더라도, 그건 그것대로 좋았다. 그만큼 유장위 자신이 위험한 일을 도맡아서 한 것으로 보일 테니까.

사삭. 사사삭!

“흠…….”

일각이나 지났을까. 선두에서 기민하게 움직이는 매소봉. 그의 뒷모습을 보고 유장위는 눈에 이채를 띠었다.

‘초절정이라 들었는데… 그 이상인걸? 신법만 놓고 보면 거의 화경이라고 봐도 모자라지 않아.’

스슥. 스스슥.

몸을 바싹 숙인 채, 거의 바닥을 기듯 하며 달려 나가는 기이한 보법. 그건 마치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 움직이는 듯한, 본능적인 발놀림이었다.

특히.

‘그리고 감각도… 대단하군. 기감이 거의 내 반절가량에 달하지 않나. 허, 저걸 저기서 느낀다고?’

멀리서 그르륵, 그르륵거리며 움직이는 언데드의 물결.

그사이로 매소봉은 기민하게 움직였다.

수가 너무 많으면 조금 방향을 바꿔 우회하고, 적당히 흩어져 있다 싶으면 사이의 좁은 틈으로 비집고 들어간다.

분명 거리상으로 한참이나 멀리 있는데도, 거기에 언덕이나 구덩이 등으로 가려져서 보이지가 않을 터인데도, 마치 일대를 손금 보듯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죽다 살아나면서 감각의 눈을 뜨기라도 했나… 이보게 흑객, 자네가 매 교관을 구출해 왔었지? 그때 상황이 어땠었나?”

“…아.”

유장위 바로 앞에서 대열을 따라가던 4학년 학관생, 흑객이 조금 늦게 반응했다.

“크게 대단한 것 없었습니다. 정신이 혼미하셨다고는 해도, 매 교관은 어떻게든 위험 지대를 피해서 복귀하고 있었으니까요.”

“허, 그래?”

“예. 제가 한 거라곤, 이미 외따로 떨어져 나온 매 교관을 찾아서 데리고 온 것뿐입니다. 정신력도 뛰어나고, 신법과 감각은 유달리 탁월한 사람입니다.”

흑객은 그냥 매소봉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둘러댔다. 그 당시에 그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었고, 자신이 얼마나 고생해서 그를 구해 왔는지는 일절 말하지 않았다.

말했다간 괜히 흑객 자신이 주목을 받고, 자칫하면 흡혈귀라는 사실까지 발각될 수 있으니까.

‘뭐, 리그웨더 학과장은 그냥 넘어가는 모양이지만.’

그래도 비밀은 가급적 드러나지 않는 것이 좋은 법이다. 학과장은 용인해 줘도, 흡혈귀를 꺼림칙하게 여기는 사람은 얼마든지 나올 수 있으니까.

“과연, 그래서 살아 돌아올 수 있었던 건가. 음……?”

문득, 유장위가 묘한 소리를 냈다. 그가 바라보는 쪽을 본 흑객은 속으로 혀를 찼다.

‘어, 저런저런.’

차분하게 조심조심, 길을 잘 뚫고 있던 매소봉. 그가 갑자기 딱 굳어서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유장위에게 신경을 할애하느라, 집중의 도가 좀 흐트러진 모양이었다. 흑객은 다시 정신을 모아, 매소봉에게 목소리를 보냈다.

끼르르륵. 삐이이이.

초음파. 인간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가늘고 미세하여 가청 영역을 벗어난 소리로.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죽지 않습니다.

“허억… 헉!”

부르르르!

매소봉의 마비가 풀렸다. 멀리서 짙게 피어오르는 어둠나무의 기운. 그걸 느끼고 잠시 몸이 얼어붙기는 했으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죽지 않습니다.

붉은 눈. 핏빛 광망을 흘리는 눈의 주인. 그의 절대적인 목소리가 두려움을 눌러 버렸다.

‘네, 주인이시여.’

불뚝! 불뚝!

문득 목 언저리가 뜨끈뜨끈해지며 따가웠다. 하지만 그 가벼운 통증이 매소봉에게는 더욱 안심을 가져다주었다.

피의 연결. 흡혈귀의 지배력은 매소봉이 가지고 있던 공포를 압도적으로 짓눌렀다.

‘주인께서 나를 가호하신다. 나는… 죽지 않는 몸이다.’

그리고 애초에 두려움이란 죽음에서 비롯되는 법.

그 죽음이 자신에게 해당되지 않는다고 알게되자, 매소봉은 점차 마음이 차분해지고 담담해지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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