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화. 게이트 (2)
사삭! 사사삭!
바람을 감지하며 매소봉은 기민하게 움직였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그의 자세는 사람이라기보다 동물에 가까워졌다. 흡사 도마뱀이 기듯, 매소봉은 낮게 깔린 몸으로 손발을 다 쓰는 사족보행을 했다.
푸쉬익. 푸쉬이익…….
두텁게 코와 입을 가린 헝겊 뭉치가 호흡을 방해했으나, 그 정도는 참을 만했다. 왜냐하면.
띠이이잇! 삐지지직!
-11시 방향에 언데드 일곱 마리. 3시 방향에 다섯 마리.
‘감사합니다. 주인이시여.’
죽다 만 시체들이 어디에 있는지, 주인께서는 훤히 보고 계셨으니까.
“크흐흐흐…….”
덕분에 너무 편했다.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이전에 몬스터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 숨도 못 쉬고 긴장하던 것에 비하면 지금은 땅 짚고 헤엄치는 격이었다.
피가 바작바작 마르는 극도의 공포. 두터운 헝겊 뭉치 따위는 그런 긴장에 비길 것이 아니다. 그때는 아무것도 막는 게 없어도 숨 쉬는 것도, 침 삼키는 것도 힘들지 않았던가.
푸쉬익. 푸쉬이익…….
‘으…….’
스르륵. 휘르르륵.
바닥을 낮게 달리기 때문인가, 어느 순간부터 서늘한 한기가 몸을 조여 왔다.
그와 함께 떠오르는 기억. 자다가도 소스라치게 놀라 깨는 악몽의 근원.
-어둠나무.
기억났다. 이건 놈이 뿜어내는 부정한 기운이었다.
피부에 닿는 끈적거리는 불쾌감은, 그날의 끔찍한 일그러짐-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을 뒤틀리게 만드는, 검은 공포를 떠올리게 했다.
실로 얄궂었다. 그걸 다시 겪을 바에야 심맥을 끊고 죽어버리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했는데.
-거의 다 왔소, 어둠나무가 지척이요.
흔들리는 매소봉의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 멀리서 달래듯이, 위압적으로 눌러오는 강한 목소리가 있었다.
-걱정 마시오. 지금 우리는 현경의 고수와 함께하고 있소. 저 말라비틀어진 나무가 무슨 재간을 부리건, 유장위의 검을 막아 내지는 못 할거요.
“…….”
매소봉은 마음이 복잡했다. 분명 틀리지 않은 말이지만, 그게 맞는 말이지만, 별로 안심되는 내용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내가 당신의 뒤에 있소. 당신의 주인이. 그러니 무서워할 것 없소.
차라리 이 말이, 훨씬 위안이 되었다.
“…예, 주인이시여.”
피의 유대. 생과 사를 함께하는, 절대적인 상위 존재가 말한다. 그의 말에, 매소봉은 두려움이 사르륵 녹아드는 것을 느꼈다.
사박. 사바박. 파밧.
가까이. 좀 더 가까이.
일각가량을 그는 바닥을 기며 접근했다. 그 속도는 어지간한 걸음보다 더 빨랐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그는 심장이 두근거려 입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점차로 저 악몽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그건 더 심해졌다.
두근. 두근두근.
‘아니, 아니야.’
몸을 울리는 울림에 그는 고개 저었다. 이제 보니 이건 그의 긴장한 심장 소리가 아니었다.
멀리서 기분 나쁜 메아리가, 차갑고 썩은 내 나는 공기를 두들겨 대고 있었다.
드드득. 두두두둑.
흡사 죽음이 내는 심박 소리.
하지만 매소봉은 더이상 얼어붙지 않았다.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데, 아까처럼 두렵게 느껴지진 않았다. 오히려 두렵기는커녕…….
‘저쪽… 저쪽이군.’
점점 피가 뜨거워지고, 전신에 힘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후욱. 훅.
시커먼 바위 무더기 뒤에서 매소봉은 숨을 고르며 마음을 다졌다.
그는 가슴속에서 피어나는 용암 같은 열기를 느꼈다. 당황도 잠시, 그는 그게 자신의 마음임을 알게 되었다.
이제야 알게 된 것이지만, 그건 억눌려 있었던 분노였다. 무인으로서 당한 치욕이었다.
“그래… 그랬지…….”
‘그건’ 너무도 강대하고 지독해서, 그 모습을 눈에 담은 것만으로 정신이 무너졌다.
마치 개처럼.
개가 거대한 호랑이를 마주했을 때, 놀라서 오줌을 지리고 발작하며 정신을 놓아 버리는 것처럼.
하지만 지금의 매소봉은 그때의 개가 아니었다.
호랑이를 앞에 두어도, 개가 겁먹지 않는 때가 있다. 바로 든든한 주인이 뒤에 있을 때.
매소봉은 이빨을 드러냈다. 그는 공포를 씹어 부수고, 다시금 투지를 되찾았다.
스르륵. 스윽. 팍!
뒤로 뻗은 손을 꽉 주먹 쥐고, 앞을 가리키는 매소봉. 그는 잠시 후, 고개를 들어 그의 악몽과 대면했다.
과연…….
꿀럭꿀럭!
본능이 전해 주는 바는 정확했다. 거리는 사십여 장가량. 그 앞에 있었다.
거대수(巨大樹)가.
전에 보았을 때처럼 불길한 어둠을 연기처럼 피워 올리며, 나무의 가지에서 열매가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그 높이는 대략 삼십여 장.
크기를 생각하면 코앞까지 다가선 것이다. 전보다 더 가까이 접근했기에, 매소봉은 전보다 더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
쩍쩍 갈라진 나무 둥치는 기괴하게 비틀려 있었다. 시커먼 곰팡이와 이끼가 피어 있는 줄기는, 기분 나쁜 검은 진액을 울컥울컥 뿜어냈다.
척 보아도 저건 분명히 죽어 있었다.
드르르륵.
그럼에도 움직였다. 분명 죽었음에도 움직이는 나무. 주변의 빛을 다 빨아들이는 듯, 일렁이는 어둠을 품고 있는 나무.
그렇기에 그렇게 불리웠다.
“어둠나무…….”
매소봉은 으르렁거렸다.
개처럼. 한때 자신의 영혼에 상처를 입힌 괴수에게 겁먹은 개가 그러하듯, 그는 정신을 놓고 도망쳤었다.
하지만 그때의 두려움이, 공포가, 지금은 분노로 변해 불타올랐다. 그때의 매소봉에겐 없었지만, 지금은 강대하고 사나운 주인이 있었다.
눈앞의 어둠 나무가 거대한 맹수, 호랑이라고 한다면.
그의 등 뒤에 계신 존재는 지고한 용(Drakul)이었다. 한없이 강건하고 위대한 흡혈귀의 왕.
“반갑다. 이 썩은 새끼야…….”
크르르륵.
매소봉의 눈에서 옅은 혈광이 피어올랐다.
“으윽……!”
“세, 세상에…….”
한편, 매소봉의 신호를 본 정찰대도 하나하나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어둠나무를 목격했다.
기괴하게 비틀린 거대한 나무. 그게 눈에 들어온 순간.
“저게 그…….”
유장위는 와락 눈살을 찌푸렸다.
찌리릭!
보는 순간 욕지기가 왈칵 치밀어 올랐다. 시뻘겋게 달군 쇠젓가락이, 눈을 통해 뇌까지 파고들어 헤집어 놓는 기분이 들었다.
그저 보기만 해도 사람이 정신을 놓게 하는 흉악한 존재. 이제껏 보고를 듣고도 설마설마했었는데, 막상 와서 목도하니, 오히려 모자란 감이 있었다. 저건 충분히 그럴 만했다.
주르륵. 꾸르르륵.
토사물. 누군가 토해 놓은 오물이 한 무더기 있으면, 그저 지나가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더러워지는 법이다.
그리고 시산혈해. 눈에 담기조차 끔찍한 학살의 현장을 보면 사람은 정신이 나가 버린다. 그게 당연하다.
“…지독하군.”
유장위는 치를 떨었다. 그는 현경의 고수. 지금 온 정찰대 중에서 가장 안력이 좋았기에, 누구보다도 자세하게 어둠나무를 살필 수 있었다.
꾸르륵. 우드드드득.
멀리서 보이기로는 검은 진액 같은 것.
그건 사실 수많은 벌레들의 물결이었다. 크기가 손바닥만 한 송충이랄까. 그리고 끔찍하게도 그 벌레의 머리는, 사람-그것도 어린아이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부걱… 부걱… 아아아아…….
비틀린 나무둥치에서는 길게 뻗은 촉수가 있었다. 그건… 젖이었다.
누렇거나 시퍼런 젖이 흐르는 것을, 사람 얼굴을 한 송충이가 입을 벌리고 받아먹는다. 그렇게 오밀조밀하게 모인 덩어리들은, 멀리서 볼 때 이끼나 곰팡이처럼 보였다.
구물구물.
나무가 흘리는 젖이 기분 나쁜 원색을 띠고 있었기에, 오히려 검은 벌레의 물결은 더욱 두드러졌다. 그래서 멀리서 보기엔 칙칙한 색감.
그러나 그 불경함은 시각을 초월해서 전해지는 것이었다.
“으으… 크억!”
“우어어억!”
정찰대의 두엇이 참지 못하고 속을 게워냈다.
일부러 기가 약한 자들만 가려 뽑았기 때문일까. 저들은 유장위만큼 자세하게 보지도 못했으면서도, 미친 듯이 괴로워했다.
“성수를, 그리고 파사부를 씹으시게.”
하나, 유장위는 그들의 반응이 과하다고 보지 않았다.
저 거대수, 어둠나무를 보는 순간 엄습해 오는 감각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죽음에 대한 거부 반응, 혹은 기피. 인간이 살아 있는 이상, 당연히 느끼는 근원적인 불쾌감이다.
저 거대한 나무는 그 크기만큼이나 많은 죽음이 모인 집합체였다. 가히 대지 위로 기어 나온 지옥(地獄)이랄까.
인간이 지옥을 직접 마주하면, 정신이 나가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유장위는 침착했다.
“꿀꺽꿀꺽… 으으윽…….”
“마법사부터. 자가 정화가 가능한 사람부터 먼저 하도록. 무인들은 눈을 감고 뭔가 다른 걸 떠올리게. 운공을 해도 좋고, 아무거나 때려 부수는 상상도 좋아.”
그는 이미 지옥을 여러 번 겪었으니까.
몬스터 웨이브.
특히 오크 같은 놈들이 심하다.
괴물들이 파도처럼 한바탕 거하게 휩쓸고 지나가면, 작은 마을은 초토화된다. 남는 것은 시체로 가득한 대지. 불타는 집터 등.
하지만 작은 마을보다 큰 도시의 경우는 더 끔찍했다. 더 많은 시체. 더 많은 폐허. 학살과 대학살의 차이는, 숫자나 크기가 아니었다.
죽은 시체보다 더 끔찍한 것은, 가끔 살아 있는 사람이 발견되는 것이다. 사지가 잘려 나가고, 벽에 꼬챙이로 꿰어진 채 숨만 붙은 사람들.
-죽여 주시오! 제발… 제발 죽여 주시오!
그들은 눈물이 말라 버려 꺽꺽대며 애걸했다. 정말 고통스러운 광경이었다. 특히 마음이 바르고 몬스터에게서 사람을 구하는, 정의로운 길을 꿈꾸던 사람들에겐 더 그랬다.
그중 유독 처참했던 광경은… 그렇게 살아남은 사람들 중에 임산부, 아이를 가진 어머니의 경우였다…….
-이걸… 이걸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그런 참상, 끔찍한 광경은 멀쩡하던 사람들까지 미치게 한다.
마을을 정리한 후, 누구는 비탄에 빠져 스스로 목을 그었다. 누구는 성정이 비틀어져 몬스터가 아닌 인간을 죽인다. 괴물을 상대하다가 괴물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사람의 피가 주는 희열에 빠져, 인간 도살자가 되어 버린 이들을 수십 보았다. 때로는 다른 클랜에서. 때로는 자신의 클랜에서.
-…세상은 지옥이다.
얼마 전까지 멀쩡했던 사람이, 웃으며 헤어졌던 사람이 눈 뒤집힌 광인으로 다시 나타나는 건,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마침 그 광인이 약간이라도 친분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그 끔찍함은 제곱으로 커졌다. 그런 광인, 인간 도살자를 최소 수십을 베었다. 그중에는 동향 친구도, 혹은 십년지기도 있었다.
그랬기에 유장위는 현경에 오를 수 있었다.
“정신들 차리게. 제군들! 처음 겪는 일이라 실수할 수는 있네. 하지만! 계속해서 이리 엎드려져 있는 꼴을, 자네 사부들이나 제자들이 알게 될 게 부끄럽지 않은가!”
유장위는 차분하게, 하지만 동시에 엄중하게 무인들에게 질타를 날렸다.
몬스터의 피만 보며 오를 수 있는, 그런 쉬운 길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현경이란 경지는 산에서 도를 닦으며 깨달음을 얻는 고고함만으로는 닿을 수 없다. 외려, 고귀한 것보다 끔찍한 참상을 더 많이 겪어야 오를 수 있었다.
“으윽… 크으윽!”
유장위가 수없이 겪었던 눈뜨고 못 볼 꼴에 비하면, 지금 허우적대는 천무학관의 교관들은 얌전한 편이었다. 그들은 침착한 질타에 하나둘씩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