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226화 (227/310)

226화. 게이트 (3)

“커억! 으으읍… 큽!”

정신을 차리고 하나둘 움직이기 시작하는 이들. 무인들은 운공으로 뇌호혈을 방어하고, 마법사들은 인근 유명 사찰에서 축성한 성수를 마시고 도문의 파사부를 씹었다.

“큭… 퓨리파이 셀프. 프로텍션 프롬 이블……!”

피직. 픽! 파아앗!

여러 번 캐스팅을 실패했었지만, 그래도 집중적으로 도움을 받은 마법사 하나가 기어코 방비를 구축했다.

자가 정화와 사악으로부터의 보호. 이는 본래 성직자들 고유의 신성 마법이다.

리그웨더가 본래 차원에 있었을 때의 신들은, 아쉽게도 중원과의 연결이 잘되지 않았다. 그래서 신성력을 쓸 수 있는 사제급 인물은 천무학관에서도 드물었다.

우우우웅!

하나 지혜로운 금룡의 일족답게, 리그웨더는 유사한 효과를 낼 수 있는 유사한 마법을 창시했다.

그 마법으로 일단 정신 방어가 완성되자, 그는 곧 안색이 나아졌다.

“아윽… 으… 제기랄! 이 부적이……!”

“안 돼! 태우지 말게. 고통스러워도 조금만 참아!”

그는 마법사 하나가 파사부를 태우려는 것을 말렸다.

본시 사악함에서 보호를 받으려면, 성수는 머리에 뿌리고, 부적은 태워서 발동시키는 게 맞았다. 외부에서 스며드는 사기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이들은 어둠나무의 지척에 있었다. 파사현정의 힘이 너무 강하게 펼쳐지면, 어둠나무가 이쪽을 알아차릴 가능성이 컸다.

우적! 우적! 꿀꺽!

그러니 도문의 부적을 입에 넣어 씹고, 성수는 목으로 넘겨 마시는 것이다. 이런 사용법은 원래 효과의 반도 끌어낼 수 없지만, 차라리 그게 안전했다.

당장 정찰조는 그저 가만있어도 어둠나무의 기운을 느낀다. 그리고 성스러움은 사악함과 상극.

2학년 학관생 중 일부가 사자후신공을 썼다가, 언데드 천 마리가 몰려왔었다는 보고는 이미 교관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이야깃거리가 되었던 터다.

“으으윽… 무량수불……! 세상은 한낱 꿈이라. 꿈결에 나비가 하늘을 나는 것을 꿈꾸니, 이는 나비가 나의 꿈을 꾸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나비의 꿈을 꾸는 것인가…….”

“후우… 흡! 후우… 흡!”

무인 교관 둘이 장자의 호접몽을 외며 정신 방어를 시도하고 있었다. 기감을 뻗어 느껴 보니 아마도 종남파의 진전을 이은 듯했다.

‘흠, 역시 명문은 다르군.’

사기에 저항하는 사람은 크게 두 가지로 갈린다.

하나는 소림이나 무당 같은, 유서 깊은 문파에서 배운 정신 수양을 완전히 몸에 배이게 한 경우.

그리고 또 하나는, 끔찍한 경험을 이미 여러 번 했기에 사기에 기본적으로 내성을 가진 사람이다.

유장위는 따져 보면 둘 다 해당된다. 그의 출신 학관은 여명학관. 옛 도가 문파인 공동파의 명맥을 이은 곳으로, 한때 황제의 스승인 광성자가 도를 닦은 도가의 성지다.

‘아주 산골의 오지였었지만.’

하나 여명학관은 공동파를 잇는답시고, 변방인 감숙에 위치한 작은 학관이었다.

유장위는 혈기 넘치는 젊은 시절에 답답한 산문을 뛰쳐나왔고, 종남, 곤륜, 점창 등의 다른 도문의 검술을 배워 스스로 집대성했다. 그 후에 수많은 수라장과 혈겁을 겪으며 완성이 된 무인이었다.

“호오…….”

좋게 말하면 대종사. 나쁘게 말하면 이것저것 섞인 잡탕이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흑객에게 관심이 쏠렸다.

“크으…….”

잔뜩 찌푸리고 있긴 하지만, 다른 무인들처럼 엄청나게 고통스러운 기색은 없었다. 고작해야 4학년 학관생이.

유장위가 끌어온 정찰조의 인물들은, 초입이라고는 해도 화경의 고수들이다. 그들도 헉헉거리는데, 흑객은 그에 비하면 상당히 멀쩡한 편이었다.

정신 방비만 놓고 보면 화경 이상이다.

“자네, 참 대단하군. 어떻게 그런 진전을 쌓은 겐가?”

유장위는 새삼 그의 내력이 궁금해졌다.

“네……?”

조금 멍하게, 최선두에 선 매소봉을 바라보고 있던 흑객이 한 박자 늦게 반응했다.

“어인 말씀입니까. 그건.”

“다른 사람들과 달리 자네는 지금 잘도 버티고 있지 않나. 딱히 성물이나 파사부를 쓰지도 않고. 연유가 궁금하네만?”

“…하.”

유장위의 진득한 눈길에 흑객은 풀썩 웃었다.

“제 사문은 이미 알고 계실 겁니다만, 유 대협. 그리고 제 몸에 깃든 다른 존재도요.”

스윽.

그는 한쪽 손을 날카롭게 만들어서, 다른 팔의 손목 어림을 가볍게 그었다.

주르륵. 투둑.

붉은 피가 쏟아지다가, 갑자기 허공에서 멈춘다.

스르르륵.

그러고는 다시금 피는 원래 흘렀던 상처로 되돌아가고, 흑객 자신이 만든 상처는 씻은 듯이 나아 버렸다.

“묘하군… 대개 어둠을 밀어내는 것은 빛이건만. 그런가. 너무 짙은 어둠은 다른 검은 먹을 묻혀도 태가 나지 않는다는, 그런 건가?”

“…말씀이 지나치시군요. 제 몸에 괴이한 힘이 들어와 있긴 하지만, 애초에 본 교의 진신 내공도 호락호락한 것은 아닙니다만?”

흑객이 다소 도전적으로 사나운 눈길을 보냈다.

“푸흐흐흐… 그래, 그래. 내가 실례했네.”

유장위는 그에 웃었다.

아무리 시일이 많이 지났다 해도, 마교는 마교. 한때 호전적이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그곳의 진전을 이었기 때문일까. 흑객은 자신에게 꿀리는 기색이 없었다.

그리고 애초에 아무리 현경의 고수라 한들, 감히 다른 사문의 내공에 대해 빛이니 어둠이니 하는 말은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대격변 이전이라면, 혹은 근처에 흑객의 사부라도 있다면, 사생결단을 내겠다고 달려들어도 할 말 없는 일. 유장위는 슬그머니 말을 돌렸다.

“그래서, 자네가 보긴 어떤가. 저기 저거.”

턱짓으로 가리킨 것은 어둠나무.

꿀럭꿀럭. 우드드득.

녀석은 계속해서 열매를 만들어 터뜨리고 있었다.

색은 검었다. 어쩌면 푸른빛. 혹은 보랏빛의 무엇일지도 몰랐으나, 빛을 모두 잡아먹는 나무의 줄기였기에, 드러나는 색은 검었다.

퍽.

부풀어서 터진 어둠나무의 열매는, 쪼개어져 내부의 씨앗을 땅으로 뿌렸다. 칠흑처럼 검은 과육에서, 혐오스럽고 기분 나쁜 점액이 흘러 땅을 적셨다.

주르륵. 꾸르르륵!

“이게 그 어둠나무라니. 사전에 들었던 바와는 달라도 너무 달라. 자네가 보기에는?”

“…제가 보기에도 확실히 그렇습니다.”

흑객이 얼굴을 굳히며 끄덕였다.

전해져 오기로 어둠나무는, 엘프들의 ‘세계수’와 뿌리를 함께한다고 한다. 가장 신령한 수목. 오래 묵은 나무가 축복을 받아 세계에 닿는 나무. 그런 것이 세계수다.

그리고 어둠나무는 세계수가 될 만큼 신성을 가진 나무가 사령 마법이나 저주 등으로 인해 타락한 존재.

그래서 부정한 사기를 사방에 퍼뜨리는, 어둠의 생명이다. 그게 일반론이었다.

“이번 레이드에 참가하기 전에, 선행자들의 기록을 되는 대로 찾아보았네. 하지만… 저런 건 써 있지 않았어. 보았다면 분명 기록이 되었을 터인데.”

“…둘 중의 하나겠지요.”

투툭. 투툭.

크에에… 캬아아…….

흑객이 보는 가운데 땅에서 죽음이 돋아났다.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검은 이형의 괴물. 얼핏 보면 사람의 모습을 따라 한 일그러진 괴물이, 스스로 비틀려서 형상을 갖추지 못하고 버르적거리며 움직였다.

“매소봉 교관의 경우처럼, 너무 가까이 접근했던 이들은 정신이 오염되어 죽었을 겁니다. 저… 것들처럼.”

슈르르륵. 툭. 파삭.

일렁이던 그림자가 툭툭 갈라지더니, 땅에 널브러진 시신에 스며들었다. 그러자 반쯤 백골이 드러난 시체가, 꿈틀꿈틀 움직이더니 몸을 일으켰다.

추으으윽.

시커먼 어둠이 물감처럼 피어오르고, 검은 영기를 몸에 갈무리한 시체가 일어섰다. 녀석은 흰자 없는 검은 눈을 번뜩이며, 일어서서 기괴한 포효를 내질렀다.

무오오오-----오엥!

사슴? 소인가? 어느 쪽이든 이미 사람의 형상이 아니었다. 머리에 잔뜩 돋아난 뿔은, 제 몸만큼 컸다. 길이가 1장은 되는 사슴 머리의 언데드.

놈은 일어나자마자 비척비척, 갓 태어난 사슴처럼 잘도 걸음을 옮겼다.

“혹은, 그냥 멀리서 대충 썼겠죠. 그러니 전승이 다르고, 어둠나무가 이 정도로 위험한 존재라고는 모르게 되었을 테고.”

“그래… 자네는 그리 보나 보군.”

“유 대협께서는 생각이 다르신가 봅니다?”

“나는, 글쎄. 음…….”

흑객이 되묻자, 유장위는 턱을 쓸었다.

꿀럭꿀럭. 주르륵!

그는 나무 주변에서 이리저리 서성이는 사슴 머리의 언데드, 웬딩고를 보고 있었다.

놈들의 전신에서 피어오르는 찐득하고 끈적거리는 어둠. 그 어둠은 얼핏 보면 흑객의 마공과도 닮았다. 하지만 근본은 완전히 다르게 느껴졌다.

흑객의 어둠이 그림자처럼 투명하고 가볍다면, 저 언데드들에게서 피어오르는 어둠은 질척하고 끈끈한, 시커먼 폐유를 솥에 넣고 부글부글 끓이고 있는 것 같았다.

“숙성(熟成). 혹은 개변(改變)이 아닐까 생각하네.”

원래는 저 정도는 아니었으되, 뭔가의 계기로 더 한층 지독한 변형을 일으켰다. 그런 의미의 말. 흑객은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물었다.

“…진화(進化)라도 했다는 말씀입니까?”

“혹은 혼합이거나. 심히 실례이지만…….”

유장위는 슬쩍, 조심스럽게 말을 골랐다.

“자네 또한 그런 경우와 비슷하지 않나? 천마신교의 유서 깊은 신공에, 흡혈귀의 힘… 보통은 하나도 버티지 못하고 자멸해 버린다네. 자네는 아주 특별한 경우고.”

“…….”

흑객은 다시 눈살을 찌푸렸다. 내용은 분명 기분 나쁘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예절을 차린 발언이었으니까.

세상이 천마신교를 대충 마교라 부르는 것을 흑객은 모르지 않았다. 그리고 마공을 유서 깊은 신공이라고 말해 준다는 건, 유장위 딴에는 말을 조심해 준 것이다.

“그리고 저건, 나쁜 의미에서 아주, 아주 특별한 경우가 되겠지. 그렇게 밖에는 생각되지 않아. 노부에겐.”

“…듣고 보니 그것밖에 없겠군요. 제 짧은 견문으로서는 달리 생각나는 게 없습니다… 아.”

흑객이 동의하다 말고 와락, 눈살을 크게 찌푸렸다.

“…벌레?”

“응?”

유장위가 무슨 소리냐는 듯했지만, 흑객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눈길은 저 앞의 어둠나무, 그리고 그걸 가까이서 살피는 교관 매소봉. 이 둘에 쏠려 있었으니까.

퍽. 주르륵. 파삭!

매소봉이 코피를 흘리면서도 집중해서 보고 있는 것. 그건 어둠나무의 열매. 거기서 피어오르는 어둠이었다.

시커멓게 피어올라서, 사르륵 흩어지는 어둠. 하나 안력을 돋워, 가까이에서 보게 되면…….

“검은… 벌레.”

이제껏 검은 영기(靈氣)라고 보였던 것은, 사실 영기가 아니었다. 사르륵 피어오르는 그건, 색이 그림자처럼 새카맣고 크기가 좁쌀만큼 작은, 수많은 벌레 떼였다.

“거대하고 끔찍한 존재가 있습니다. 병을 옮기고 수많은 벌레들을 다스리는 왕… 그 왕이… 흘려보내는 힘의 일부? 그런 느낌이 드는군요. 이… 하아. 설명하기 너무 어려운데…….”

“아니, 괜찮네. 벌레… 라? 호오.”

유장위는 뜬금없는 흑객의 소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아무리 많은 수라도를 겪었다 해도, 그의 근본은 인간. 빛과 어둠 사이에서 빛에 가까운 위치다.

반면 위험하고 음습한 마공을 익힌 데다 흡혈귀까지 섞인 흑객. 그는 중립보다 좀 더 어둠에 가까운 존재다.

늑대는 같은 늑대를 알아보는 법. 악인을 가장 잘 파악하는 것은 심판관이 아니라 같은 악인이다.

흡혈귀로서의 직감인가. 어둠의 존재가 더 많이 섞인 흑객이 하는 말이라면, 가벼이 들어서는 안 되었다.

“자네들 벌레, 혹은 구더기와 관련이 있는 마물을 아는 게 있나?”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