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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227화 (228/310)

227화. 게이트 (5)

유장위는 일단 사람들을 다독여 후방으로 인원을 모았다. 당장 가시거리에서 어둠나무가 사라지자, 그럭저럭 정찰조는 정신을 차려 갔다.

유장위는 그중에서도 마법사들을 따로 모아 물었다.

“벌레… 요?”

“어, 벌레처럼 생긴 마물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니면 벌레를 조종하는 놈을?”

“양쪽 다 생각해 보게. 나는 이런 쪽은 문외한이니 자네들의 지식을 빌리고 싶네만.”

유장위는 기본적으로 무인이었다. 아무리 클랜장으로 오래 활동했다 해도, 마물이나 저주에 대한 전문적인 학식은 없었다. 그런 것을 쌓을 시간도 부족했다.

애초에 한 클랜의 클랜장이 모든 것을 다 잘 아는 무불통지가 될 필요는 없다. 그리고 뒤늦게 학식을 쌓아 봐야 이미 평생을 바친 해당 분야의 전문가에게 미치지 못한다.

그러니 그런 전문가를 찾아 잘 다독여서 부리면 된다. 그것이 무리의 우두머리, 클랜장에게 필요한 능력이었다.

“아마도 아주 위협적인, 상위의 존재일 거야. 보통 마계의 대공-여기서 흑객이 괜히 움찔거렸다-이라 부르는 것들. 그런 놈들 중에 누구, 짚이는 것 없나?”

힘이 모자라면 빌리면 된다. 지식이 모자라면 얻으면 된다. 우두머리 본인이 딱히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다.

필요할 때 전문가를 시켜 해결할 수 있으면, 어차피 마찬가지 아닌가.

“그리고 알아둘 게 있네. 자네들도 저기 저 나무를 봤겠지만…….”

유장위는 곧이어 어둠나무에 흐르는 진액, 그리고 곰팡이처럼 보이는 무늬가 실은 수많은 송충이, 사람 얼굴을 한 인면충들이 달라붙은 거라고 일러 주었다.

“우엑…….”

“그리고 어둠나무가 피워 올리는 검은 연무. 저건 사실 작고 새카만 파리입니다. 나무 아래의 땅은 구더기로 드글거리고 말입니다.”

“으허억…….”

뒤이어 흑객이 첨언하자, 마법사들은 상상만으로도 속이 울렁거리는지 한참을 진저리 쳤다.

“벌레… 파리……. 구더기…….”

웅성웅성. 중얼중얼.

어쨌든, 그렇게 머리를 맞댔다.

마물이나 저주에 대한 건, 기본적으로 흑마법사들의 소양이다. 천무학관에 흑마법사는 없었지만, 그래도 마법사는 마법사라고, 이리저리 보고 읽은 것들은 있었다.

그래서 다들 자신이 아는 지식을 끌어냈고, 서로서로 지적하며 보완했다.

“아바돈… 아닐까요? 악마서에 따르면 수많은 벌레의 군집, 황충의 지배자이자 역병의 주인이라는데…….”

“아니, 황충은 메뚜기이지 파리는 아니잖소? 물론 메뚜기가 더 무섭긴 하지. 한 번 떴다 하면 작물이고 풀이나 나무도 다 갉아 먹으니까.”

학식 많은 마법사들이 파리, 구더기 등에 대해 아는 대로 말을 주고받았다. 그러다가 문득, 누군가가 괴상한 소리를 입에 올렸다.

“그럼… בעל זבוב는 어떻소?”

“에이, 그건 너무 갔소. 아무려면 그거겠나.”

“그리고 송충이하고는 연관이 없으니까. 으음… 제기온이나 라마왕도 해당되나? 대체 어느 놈이람?”

“흑… 큭! 으윽……!”

그러던 중, 흑객이 휘청거렸다. 분명 이제껏 멀쩡했었던 그의 얼굴 한쪽이, 갑자기 부들부들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방금… 방금 누구요? 뭐라고 한 거요?”

“예? 벌레들의 군주 제기온 말입니까?”

마지막으로 말한 마법사가 손을 들었다.

“아니, 당신 말고. 줄무늬 로브. 당신이 꺼낸 이름.”

흑객이 고개를 젓고, 중간에 낀 마법사를 지목했다.

살짝 소심하게 생긴 그는, 눈을 부릅뜬 흑객을 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혹… בעל זבוב? 그 존재 말씀입니까?”

찌리릭!

“…그게 이름이오?”

흑객은 이거다, 싶은 느낌이 팍 하고 왔다.

괴이한 소리였다. 분명 코앞에서 듣고도 따라서 발음할 수가 없는 희한한 단어.

그리고 되새기려는 순간, 지이잉 하고 귀에서부터 격한 거부 반응, 극도의 불쾌감이 치밀어 오른 것이다.

“그놈 같소. 설명은 잘 못 하겠지만, 내 느낌에 왠지…….”

동시에 익숙한 기시감도 있었다. 아마도 그와 몸을 공유하는 흡혈귀의 감정의 편린인 듯했다.

“맙소사…….”

“설마…….”

술렁술렁.

흑객의 말에 마법사들의 얼굴이 흐려졌다.

잔뜩 낭패한 마법사들의 눈에 떠오른 것은, 다름 아닌 두려움이었다. 유장위는 그런 마법사들에게 잠시 시간을 준 후 물었다.

“그래서 그게 뭐 하는 놈인가? 들어도 발음도 못 따라하겠군. 바르… 제풉? 바라랄?”

“유 대협, 마의 존재는 원래 언어로 낼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함부로 입에 담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마법사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딱 한 번만 비슷하게 말하겠습니다. 바엘, 혹은 바알제불, 때로는 벨제뷔트. 이 이름에 뭔가 느껴지시는 것이 있으십니까?”

마법사가 소근소근, 속삭이듯이 말했다.

“…그렇소.”

“세상에…….”

“오. 젠장. 이걸 어째…….”

흑객의 답에 마법사들이 얼굴을 부여잡았다.

“진정들 하게. 그래서, 대체 그놈이 뭔가?”

“파리대왕…….”

“벌레와 역병의 군주입니다.”

유장위의 물음에 마법사들이 하나씩 입을 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덜덜 떨며 마법사가 한 말에.

“마계 72 악마왕. 그 수많은 마왕 가운데 첫 번째 위를 맡은 자입니다. 말 그대로… 마의 왕이라 할 존재입니다.”

바엘, 혹은 바알제불, 또는 벨제뷔트.

그 뜻은 본래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자다. 중원에서 먼 어느 땅의 신으로서 군림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많은 전쟁과 싸움으로 인해 악명이 붙고, 그리고 그 악명이 신격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리하여 바엘이라던 존귀한 이름은 바알제불, 혹은 벨제뷔트라는 멸칭으로 불렸다.

이름은 그 존재를 규정짓는 법. 그리고 그 영향은 본질에까지 닿는다.

풍요롭던 땅의 작은 신은 불타는 땅의 군주, 지옥의 대공작, 거대한 파리 대왕. 이렇게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웠다. 그러면서 신성이 아닌 마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마법사들이 꺼려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는 말이 있었다. 귀신도 제 말 하면 돌아본다는 말도 있고.

하물며 진짜 마(魔) 그 자체인 존재는, 입에 담는 것조차 마법사들 사이에서 터부시되었다.

마법도 애초에 말을 통해 펼쳐지는 것 아니던가.

-심연을 들여다보는 자는, 심연 또한 자신을 들여다봄을 기억해야 한다.

마법사들에게 있어서, 그건 격언이 아니라 명확한 법칙이었다.

“정리하자면… 모종의 이유로 저 어둠나무에 깃들었다는 말인가? 그 발인가 손인가 하는 녀석이?”

유장위가 말 끝에 농담을 섞어 넣었다.

그게 조금이나마 먹혔는지, 마법사 하나가 푸슬 웃으며 손짓했다.

“거기까지는 아닐 것 같습니다. 정말 ‘그 존재’가 손을 뻗었다면, 저 정도로 멀쩡할 수가 없었을 테니까요.”

“저게 멀쩡한 정도라고?”

온통 썩어서 문드러진 일대. 어둠나무 주변을 보며 유장위가 혀를 찼다.

“마계 72 악마왕의 하나. 심지어 그중 제일이라 불리는 존재입니다. 그의 힘이 제대로 펼쳐졌다면… 이곳은 사람의 출입 자체가 불가능할 겁니다.”

하지만 마법사는 다시금 고개를 내저었다.

마계의 주인들. 그들의 영역은 일종의 성역에 가깝다. 허락받지 않은 존재가 범위 안에 들어서면 불타 죽거나 병들어 죽거나 하는 식으로.

“대단하구만. 저 리치왕인가 하는 그놈보다 더한 녀석인 모양이야.”

“더합니다. 비교도 안 될 만큼.”

“…….”

농담처럼 한 말인데, 돌아온 대답은 유장위마저 긴장시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마법사는 진지했다.

“전승에 따르면 리치왕은 자신을 사역하는 마왕의 절반, 그 정도의 기량을 낼 수 있는, 살아 있는 재앙이라 말할 수 있지요. 하나 그 마왕의 마계 서열은 고작 40위권 내외… 서열 1위인 ‘저 존재’와는 민가의 어린아이와 무림 고수 정도의 차이가 있습니다.”

“끔찍해서 좋군. 아니, 간단해서 좋다는 말일세.”

다시금 농담으로 흰소리를 하는 유장위. 그의 배짱에 무인들도, 그리고 질려 있던 마법사들도 표정이 풀어졌다.

‘제법인데 저건.’

유독 냉랭하게 주변을 담담하게 살피고 있던 흑객은, 그 모습에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싸움에서 사기란 실력만큼이나 중요하다. 분명 해볼 만한 싸움인데도, 미신이나 헛소문에 동요되어 붙어 보기도 전에 전의를 상실하는 경우는 수도 없이 많았다.

유장위도 분명 작금의 사태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은 알 터였다. 그럼에도 허세인지, 혹은 진심인지, 평소와 별로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주변 사람들의 동요를 효과적으로 막아 내고 있는 것이었다.

‘저런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탈마에 도달할 수 있는 건가? 하긴… 당장 교주님만 해도…….’

절레절레.

생각하다 말고 흑객은 고개를 내저었다. 문득, 뭐 하면 밥밥거리던 천마의 어처구니없는 행동까지 생각나 버린 것이다.

* * *

“에엣취!”

천마는 쿨쩍. 재채기를 한 뒤 귀를 박박 긁으며 파 냈다.

“왜 그래? 이한.”

“아, 몰라. 누가 내 욕 하나 봐. 어으으.”

귀 안을 긁어 내고 나서, 손끝을 후후 불어 낸 천마.

“언 놈인지. 잡히기만 하면 아주 다져 놓아 버릴 테다.”

* * *

“…그래서, 작금의 사태는 아마도 일종의 부수적 간섭으로 보입니다.”

정찰조는 다시금 머리를 맞대었다.

휘이익. 후르르륵.

어둠나무가 뿜어내는 검은 기운은, 여전히 절찬리에 확산 중이었다.

일분일초가 지나갈 때마다 주변의 환경이 뒤틀려, 저 마물들을 퇴치하고 난 후에도 본래대로 돌아갈 수 있기나 할지 걱정되는 상황이다.

죽음이 완전히 뿌리 박힌 땅. 아마도 이곳은 몬스터들을 몰아내고 난 후에도 계속 음산한 기운을 머금고 있을 터.

하지만 그런 환경적인 문제야 어쨌든. 지금은 적을 물리치는 것이 먼저였다.

“악마왕… 일단 이렇게 부르지요. 그가 누군가와 싸움이 붙었을 거라 예상됩니다. 상대는 천족, 혹은 천사일 겁니다만, 다른 사악한 존재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어쨌든, 그 힘의 여파가 다른 차원을 부순 후 다시 그 충격이 번지고 번져 우리 세상까지 온, 그런 경우로 예상됩니다.”

“흐음.”

싸움에 대해 유장위의 지론은 정석을 따르는 쪽이었다.

전투하기 전에 상대를 먼저 파악하고, 작전 계획을 짜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 그는 마법사들의 말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듣다가 물었다.

“직격당했다면, 우리 차원은 송두리째 날아갔을 테니까?”

“맞습니다. 그리고 송충이야 어쨌건, 저 어둠나무가 뿜어내고 있는 기운은 사기, 그리고 냉기입니다.”

“역병과 파리를 주관하는 악마왕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저 악마왕의 이름 중 하나는 불타는 평원의 군주… 조금이라도 그 영향이 미쳤다면 여기는 습지나 산지가 아니라 사막이 되었을 겁니다.”

“한데 저기 움직이는 놈들은 웬딩고, 냉기를 기반으로 하는 언데드. 힘의 우위를 인정하고, 굴복해서 따르고 싶어도 따를 수가 없는, 속성이 맞지 않는 왕입니다.”

“호오…….”

유장위가 끄덕였다. 그는 이제야 대충 얼개가 그려지는 듯 했다.

“매소봉 교관은 저기 저대로 있어도 괜찮을까?”

“괜찮습니다.”

흑객이 대답했다.

흡혈 의식을 거친 후, 그는 완전히 매소봉 교관을 자신의 권속으로 받아들였다. 흑객의 몸에 흡혈귀의 존재가 있어 사기에 내성을 가지고 있는 이상, 그의 권속인 매소봉 또한 부담이 없지는 않겠지만 그럭저럭 버틸 만은 할 터였다.

“좋아… 그럼 사전 계획대로 움직이세. 매 교관에게는 휘말리지 않도록 신호를 넣고.”

“예.”

스슥. 스스슥.

마법사들이 캐스팅할 준비를 하고, 무인들이 둘러멘 배낭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푸스슥. 후득. 후득.

봉인된 껍질을 까자, 하얀 가루가 잔뜩 묻은 둥그런 구체가 드러났다. 그리고 그 구체는.

후르륵. 쉬이이익!

공중의 습기가 닿자마자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자아. 그럼.”

뒤에서 마법사들이 근력 강화의 버프를 영창하기 시작했다. 장갑으로 손을 보호한 무인들이 히죽 웃으며, 자리를 잡고 투척할 준비를 했다.

그런 그들의 손에 들린 것은.

“한번 먹어 봐라… 백린벽력탄.”

얼마 전 소가상단에서 카르삭 왕릉 토벌 때 성능 확인을 받은, 백린벽력탄. 사방으로 불길과 열기를 퍼뜨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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