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화. 게이트 (7)
성역은 아군에게 천상, 적에게는 지옥이 되는 땅이다. 이쪽이 때리는 공격은 몇 배로 강하게 들어가고, 저쪽이 하는 반격은 무효, 내지는 그에 준하는 경상으로 끝난다.
쉽게 말해 무적.
비록 효과가 떨어지는 유사 성역이라고는 하나, 마스터급 마법사 셋이서 손을 잡아 만들어 낸, 물리 ‘배척’의 효과는 그만큼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가세. 시간은 아직 반각 남았네!”
“예!”
“으음…….”
도객이 조금 망설이지만, 권사는 전의가 충만했다.
대개 권사들은 무인 중에서도 특히 저돌적이었다. 많이 죽어서 문제지, 죽지 않은 이는 더 빠르게 강해진다.
무예란 본시 일촌이 짧아지는 만큼 일촌 더 강해지는 법.
적수공권으로 적을 상대하는 이들은, 더 많은 위기를 겪고 더 아슬아슬한 싸움을 겪는다.
그렇게 화경에까지 이른 이가, 자신의 주먹에 대한 자신감이 없을 리가 없을 터.
타닥! 파앗!
유장위는 선두로 화살처럼 땅을 박차고 뛰어 나갔다.
파직파직!
그런 그의 검은 시퍼런 뇌전의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검사로서 처음 각성한 날 이래 몇천만 번을, 아니, 몇억 번을 휘둘렀는지 모를 검, 또 하나의 전우.
치잉! 휘익!
그 검에 기운이 가득 담겼다. 어기충검. 검에 기를 채울 수 있는, 검사로서 이제 좀 태가 나는 단계.
굳이 나누자면 검기상인-검기를 쏘아 내어 사람을 해침-의 아래 단계다. 하지만 유장위는 검기, 검강을 풍풍 뿜어내는 것보다 직접 검에 담은 채로 휘두르는 것을 오히려 더 선호했다.
“흐아아아!”
씻! 콰득! 파아아악!
경지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검도 고수는 거리에 영향을 받지 않게 된다. 검기를 쏘아 내고, 검강을 뿜어 내며, 경지에 따라 십 장, 백 장 밖의 적도 격살할 수 있게 된다.
딱히 격차를 나누기 어렵지만, 그래도 보통 이쯤 되면 완전히 검(劒)을 마음대로 부릴(御) 수 있다 하여 어검(Sword Master)이라 한다. 검의 주인이라 부르며, 흔히 화경이라 부르는 경지가 여기서부터다.
하나 싸움터에서 그런 단계를 나누어 무엇 하는가.
“유 대협! 놈들이 뭉칩니다!”
“알고 있네!”
펑! 펑! 콰득!
유장위가 몰려드는 웬딩고와 반쯤 썩은 오크, 그리고 애초에 왜 죽었는지 모를 트롤들을 날려 버렸다.
끼르륵!
모가지가 날아간 트롤이 제 머리를 찾아 허우적대는 모습이 듀라한을 연상케 했다. 그런 놈의 몸통을 아예 펑! 터뜨려 버리며 권사가 달라붙는다.
“유 대협은 좀 다르시군요!”
“뭐가!”
씨잇! 씨잇! 씨잇! 파득파득!
연달아 언데드 셋의 목을 날리는 유장위. 그의 검격에 맞은 놈들은 온몸으로 경련을 일으키며 발작했다. 이미 썩은 몸이라 해도 아직 전격에는 경직을 일으키는 것일까?
“현경쯤 되면, 보통 어… 지저분한 꼴을 피하시지 않습니까? 격 떨어진다고?”
“하! 격? 칼잡이가 무슨?”
그런 말이었는가. 유장위는 냉소를 지으며 검에 내력을 가득 불어넣었다.
치이잉! 휘이이익!
검명. 내력이 가득 찬 검이 울어댄다.
쏴아악! 피릿피릿!
검사. 검기가 가득 충만해진 검이 기운을 흘려 낸다. 예리한 실 같은, 스치는 모든 것을 베어 버리는 기운.
뚜우욱. 구우웅. 쏴아아악!
검강. 그 검사가 압착되고 밀도가 높아지며, 실이 천이되고 덩어리가 된다. 접촉하는 모든 존재를 파괴하는 압도적인 힘(에너지). 인간이 쓸 수 있는 가장 파괴적인 힘.
“이런 거 말인가?”
패액! 쉬익!
그 검강을 깃들게 한 유장위는, 검에서 뿌려 내듯 적에게 쏘아 냈다. 작게 뭉친 한 무리. 예닐곱 마리의 언데드가 검강에 맞아 박살이 났다.
펑! 콰드드득!
사방으로 썩은 육편이 비산하고, 질척한 피와 흙, 돌 등이 쏟아진다. 엄청난 파괴의 위력에 권사가 감탄성을 냈다.
“예! 그런 거! 멋지지 않습니까!”
“멋지기는 개뿔!”
“…예?”
휘익! 휙! 쒸아아악!
권사가 볼 수 있도록, 유장위는 검을 휘둘러 내던졌다. 저 멀리서 무리를 모으는 또다른 언데드를 향해.
퍼거걱! 팡! 푸학!
일시에 너댓 마리의 걸어 다니던 시체가, 진짜(…) 시체 조각이 되어 바닥에 드러눕는다. 몬스터들을 베다 못해 짓이겨 버린 유장위의 검은.
즈즈즈즈- 파앙!
괴이한 소리를 내더니 허공에서 급격히 방향을 틀어, 또 한 무리의 언데드를 향해 날아갔다. 그 모습을 보고 권사는 비명 지르듯 크게 경호성을 냈다.
“맙소사! 이기어검!”
검강을 쓸 수 있는 고수가 신검합일의 단계에 이르면, 검이 곧 신체의 일부가 되고, 몸을 검처럼 쓸 수 있게 된다.
이를 통해 나아간 단계가 바로 어검술.
휘릭휘릭! 피리릭!
수어검(손), 목어검(눈), 심어검(마음)의 단계를 거쳐, 오랜 기간 숙고해야 완성이 되는데, 이쯤 되면 검사는 더 이상 거리에 제약을 받지 않는다.
길이 삼 척에 불과하던 검으로, 십 장이든 백 장이든 인지하는 곳에 있는 적을 격살할 수 있게 되니까.
퍼엉! 퍼엉! 퍼엉!
하나 그저 먼 거리의 적을 죽이는 것은, 따지고 보면 비검술, 그저 검을 던지는 기예로도 할 수 있다. 그런 건 사실 어검술이 아니다. 어검술의 진정한 위협은.
콰드득! 와직! 파자자작!
검 그 자체가 무인처럼, 검사의 인지가 닿는 모든 곳과 모든 것에 파괴의 힘을 쏘아 낼 수 있다는 것.
케에에엑! 케레레렉!
검기가 그물처럼 펼쳐지고, 허공을 날아다니는 검이 그 그물로 언데드를 휩쓸고 지나간다. 그물에 걸리는 것들은 언데드든, 썩은 나무든, 바위든, 좍좍 조각 나거나 크게 튕긴다.
“이게‧ 이게 그 어검술…….”
듣기만 했던 경지를 눈앞에서 목도하자, 권사는 경악하다 못해 감격에 빠질 지경이었다.
“아니. 그래 봐야 잔재주일세.”
하지만 그런 그에게, 유장위는 고개를 저었다.
“어검술이요?”
“그렇다니까!”
쉬이이익! 파밧!
손짓하자 가까이 날아와, 크게 몸을 흔드는 검.
부우우웅!
언데드 수십을 꿰고 뚫으며 묻은 지저분한 것들이, 거센 진동에 떨어져 나간다. 물에 씻은 듯 깔끔해진 검을, 유장위가 손을 뻗어 잡았다.
착!
“내가 직접 휘두르면, 저만큼 할 수 있을까, 없을까?”
“…음.”
권사는 벌린 입을 다물었다.
어검술. 검이 날아가서 벌인 파괴적인 행위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그 검을 움직인 것이 누군가? 유장위다. 그런 그가 하는 말이다.
“똑같은 위력을 낼 수 있는데, 내력이 열 배는 많이 들어. 가끔 재미로 감을 잃지 않으려고 쓸 뿐, 나는-”
말을 하다 말고, 유장위가 사라지듯 앞으로 도약했다.
팟. 쉐에엑!
다음 순간 그는 십 장 밖에 도달해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거대한 괴물, 플래시 골렘을 상대로.
퍼걱! 콰으으응!
시체와 시체를 짜깁기하듯 만들어진 흉측한 놈. 크기가 근 육 장에 달하는 거체의 목이 유장위의 일검에 날아갔다.
번쩍! 파지직!
다음으로 그는, 놈의 몸을 세로로 갈랐다.
“-나는 굳이 고르라면 이쪽이 더 좋네.”
타닥.
말과 함께 착지한 유장위. 그가 휘릭! 검을 휘둘러 달라붙은 핏물을 뿌리자.
콰---드드득! 파박! 파박! 파박!
뒤늦게 세로로 두 조각이 난 플래시 골렘. 놈의 전신이 폭죽을 터뜨린 듯, 산산조각이 나며 허물어져 내렸다. 그 어마어마한 광경에 권사도 도객도 입이 쩍 벌어졌다.
“…….”
“…세상에.”
“어차피! 심검 전에는 거기가 거기야! 그리고 심검에 닿고 난 다음에도 비슷할걸? 검이라는 거는.”
심검.
검술의 최종 단계. 검도 고수가 누구나 꿈에 그리며, 도달하기를 원하는 마지막.
그걸 너무도 쉽게 언급하는 유장위였다.
새삼 그가 하늘같이 까마득한, 현경의 고수라는 걸 천무학관 교관들은 실감했다.
“뭐가… 비슷하단 말씀입니까?”
“음~~~ 뭐, 검이 검이라는 말이지. 왜 굳이 검을 들고 무예를 깨닫나? 마음이 동하면 바로 이루어지는데. 하지만 역시 검은 검이라, 없으면 검객이 아니고 검사가 아니란 거지.”
그리고 그의 가벼운 말 한마디에도, 때로는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이치가 담겨 있다는 것도. 새삼.
“심즉살(心卽殺)…….”
“검은… 검이라……?”
지금 유장위가 말하는 것은, 무형검이라고 부르는 심검의 단계에서 깨달은 이치 중 하나다. 동급의 상대가 아닌 이상, 죽이겠다고 인지를 가지면 바로 상대를 격살할 수 있는 의념 경지.
“어허! 뭣들 하나? 지금은 지도 대무 시간이 아닐세. 남은 시간이 반의반 각도 안 되니 서두르게.”
“아…….”
“아아…….”
교관 둘은 탄식을 흘렸다.
조금 전 뇌리가 간질간질한 게, 유장위의 놀라운 무위를 보고 그가 던진 말에 뭔가 깨달음의 실마리를 얻을 것 같았는데, 사정없이 끊긴 것이다.
하지만 유장위도 괜히 심술을 부린 것이 아니었다. 치열한 격전 중에 무인이 깨달음을 얻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지만, 지금 그들은 촉박한 시간 속에서 싸우는 중이었다.
“괜한 돌멩이 붙잡고 옥인지 아닌지 애 쓰지 말게나. 자네들은 나와 길이 다르니, 내가 뭐 화두를 던져 줘 봐야 도움은커녕 해가 될 수도… 자넨 거기서 뭐 하나?”
말하다 말고 눈을 홉뜨는 유장위.
그의 시선을 받은 매소봉. 땅에 엎드려 있던 교관이 스윽, 고개를 들었다. 그 눈에 가득한 핏발.
왠지 보기에 꺼림칙한 느낌이라, 유장위는 턱을 긁었다.
“그러고 보니… 자네도 이놈들에게 유감이 많지? 같이할 텐가?”
“아니오. 기다리겠습니다.”
“…진심인가? 심마인 거 같은데, 이참에 떨쳐 내지 그러나?”
유장위는 드물게 호의적으로 제안했다.
심마. 마음에 마가 낀 것으로, 본래 의미는 광증. 하지만 심한 집착이나, 무인이 수시로 겪는 벽에 부딪힌 상태를 말하기도 한다.
지금 그가 보기로 매소봉은, 전형적인 심마에 사로잡힌 상태였다. 아마도 어둠나무와 대면했던 끔찍한 정신적 충격. 그게 아직 뇌리에 남아, 무인 특유의 당당한 기세를 잃고 있는 것이다.
충격, 복수심, 열등감 등 심리적인 문제다. 이런 경우엔 직접 그 대상을 다시 마주하게 해서 본인 손으로 쓰러뜨리게 하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아니오. 기다리겠습니다.”
“…….”
매소봉은 거절했다. 그는 그 나름대로, 더 이상 심마에 휘둘리지 않고 있었으니까.
어둠나무에 대한 두려움 따위는 이미.
‘제 주인이 오실 때까지.’
흡혈귀의 피의 유대가 씹어 먹어 버린 후였으니까.
“…마음대로 하게. 그럼.”
차악.
유장위가 가볍게 기분 상한 얼굴로 검을 뿌려 냈다. 오랜만에 순수한 호의. 매소봉의 노고 덕에 일이 쉬워졌다 싶어서 호의를 베푼 건데, 면전에서 거절당한 것이다.
쉬아악! 크르르륵!
그리고 그 사나워진 심사는 바닥을 까맣게 수놓은, 수많은 인면충 무리들을 튀겨 버리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무슨?”
“언제…….”
“다들 조심하게.”
솨아아악.
땅이 검게 물든다. 어둠나무에 기생하고 있던 인면충의 무리가 숙주를 지키기 위해 떼로 몰려오고 있는 것이다.
두두두두.
그리고 저 멀리서는 대지가 진동한다. 웬딩고, 그리고 온갖 잡다한 언데드들. 이제껏 어둠나무가 소환했던 수많은 시체 무리가, 어미 나무의 위기를 알고 몰려오는 것이다.
“기막을 펼쳐 전신 모공을 다 막게! 정찰은 이제부터가 진짜네!”
남은 시각은 약 1분.
거리는 10장. 정찰조는 어둠나무의 본체에 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