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화. 게이트 (8)
싸움의 이치는 간단하다.
내가 적을 때리고, 적이 나를 때린다. 그리고 더 센 놈이 서 있는 것.
그리고 그런 건 대개는 첫 방에 감이 온다.
한 방 날리고 자신과 상대를 보면, 아, 이놈은 이길 수 있겠구나, 혹은 아, 이놈은 안 되겠구나 하는 것이.
타닥! 파바밧!
그래서 유장위는 반드시 처음 만나는 놈은 일단 한 칼 먹이고 나중을 생각하는 타입이었다.
마침 상황도 좋았다. 물리 배척이라는, 마법사들이 만들어 준 사기적인 환경.
저쪽이 날리는 공격은 안 맞고, 이쪽이 날리는 공격은 몇 배로 들어간다.
그러니 지금이다.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이런 기회를 얻겠는가?
“흡!”
그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허공으로 도약했다. 그리고 공중에서 그가 지금 날릴 수 있는 가장 큰 일격을 날렸다.
“차아압!”
빠---탕!
검강이 뇌전처럼, 벼락 치는 굉음과 함께 어둠나무에 꽂혔다. 썩은 줄기가 터져 나가고, 휑한 내부 공간이 드러났다.
화르륵!
오래 묵은 나무에서 불길이 일고, 중간 둥치가 우지직! 하고 비틀어졌다.
한데 그 순간.
“……?!!”
쉬---르르륵!
어둠나무 안에서, 이상한 검은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가 사라졌다. 너무도 찰나간의 일이라 유장위도 긴가민가했다.
‘잘못 봤나? 아니면 놈의 방어 수단?’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분명히, 제대로 먹히는 일격이었다.
물리 배척은 둘째 치고, 현경의 고수가 날린 검강. 그것도 뇌전 속성이다. 파사의 기운을 가진 뇌전.
언데드 같은 부정한 존재에게 극상성인 공격이 먹혔으니, 본래라면 나무가 통째로 불타도 이상하지 않았을 터.
시르르륵. 우드드득.
하지만 어둠나무는 멀쩡했다. 좀 전에 맞은 타격이 무위로 돌아간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맞긴 했는데, 맹수를 건드린 것처럼 날뛰기 시작했다.
솨아악. 솨르르르.
진액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하늘이 어둑어둑해졌다.
나무를 숙주로 삼고 있던 벌레들이, 벌집을 건드렸을 때의 벌처럼, 유장위를 향해 날아들었다.
“…미친.”
그는 판단을 내려야 했다. 물러서든가, 아니면 더 나아가든가.
‘남은 시간은 대략 40초… 그냥 이대로? 아니면 한 번 더?’
중요한 선택의 기로였다. 어둠나무의 방어력이 그의 공격을 웃도는 정도라면, 깔끔하게 여기서 물러서야 했다.
-사냥을 해야지 싸움을 하면 안 된다.
그게 그의 방식이었다. 몬스터는 그에게 사냥감이었다. 싸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싸움은 천신만고 끝에, 어떻게든 적을 쓰러뜨리는 것. 사지 중 하나를 잃거나, 극심한 내상을 입어 수명이 깎여도 살아남으면 이기는 것이다.
하지만 사냥은 다르다.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여력을 남긴 채로 잡을 수 있는, 그런 놈들을 잡는 것이다.
팔 하나 날려 먹고 황금의 산을 얻으면 이익인가? 거기에 동의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장위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이번 레이드에 사냥을 하러 왔다. 목숨을 걸고 아등바등 달려드는 싸움을 하러 온 것이 아니다.
“이게…….”
탁. 탁. 타닥!
그는 급하게 몸을 빼서 뒤로 물러섰다. 머리가 복잡했다. 조금 전에 그의 일격을 맞은 어둠나무는, 분명 큰 피해를 입었다. 유장위는 자신의 공격이 통하는 것을 봤다.
‘1회성인가? 아니면 계속?’
하지만 지금은 멀쩡히 서 있다. 어떻게 된 걸까. 재생? 아니면 회복? 생각해 보았지만 불가능하다 싶었다.
사기적인 권능을 가진 몬스터는, 대개 그 존재가 알려지는 법이다. 게다가 식물 계열의 몬스터에게 그런 막대한 권능이 있다고 보기 힘들다.
‘소환. 사령 속성. 이것만으로도 이미 평균치를 넘었어.’
파바바박!
몬스터에게도 잠재력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개나 소나 다 진화하고 강대해지는 것이 아니다.
특별한 환경이 없이는 땅바닥에서 일어난 해골, 스켈레톤이 리치나 데스나이트로 진화하기란 막 칼 잡은 무인이 현경의 고수가 되는 정도의 확률이다.
그렇다면.
‘아직… 손맛을 못 봤어. 직접 타격해 본 다음에도 늦지 않다.’
멀리서 쏘아 내는 검강이 아닌, 유장위 본인이 직접 검으로 타격해 봐야 알 수 있다. 아무리 그가 현경의 고수라 한들, 손에 검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천지차이다.
어기충검.
검강을 뽑아 낼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검에 실어서 직접 타격한다면, 분명 답을 알 수 있겠지. 사냥의 대상인지 싸움의 대상인지.
‘문제는…….’
이제 남은 시간은 30초 미만. 어쩔 것인가. 마법사들의 분발을 기대하며 요행수를 노려? 아니다. 그보다 더 확실한 수가 그에게는 있었다.
“네놈이 요상한 실드를 가지고 있다면…….”
훗.
냉막한,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유장위는 힐끗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열렬히 싸우며 다가오는 천무학관의 교관이 둘 있었다.
“뭐, 이쪽도 고기 방패 한둘은 써 보도록 하지…….”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아주 작은 읊조림과 함께, 그는 일행에 합류했다.
“유 대협!”
“괜찮으십니까!”
“괜찮네! 아무래도 얕았던 모양이야! 조심들 하게!”
솨아악! 솨아아악!
현경의 고수가 돌아오자마자, 바로 땅이 검게 물들었다.
“으헉!”
이미 들은 바 있었지만 끔찍한 광경이다. 수많은 인면충, 벌레의 파도가 덮쳐 오는 모습은.
스물스물. 구물구물.
크기가 손바닥만 한 송충이들. 게다가 그 머리는 어린아이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얼굴들이 앳되다.
-아아아아. 하아아아.
찌이이잉!
음공인가? 잡스러운 재주다. 귀를 찌르고 전신을 짜르르 진동시키는 게, 어설픈 무인이라면 선 채로 기절하든가 아니면 미치든지 할 기괴한 음파의 물결.
“이것들이!”
쿠웅!
유장위는 교관들의 앞에 나서서 거세게 진각을 밟았다.
출렁!
대지가 크게 일렁이며 강한 진동이 뻗어 나간다. 반쯤 썩은 흙은, 이런 때 오히려 좋은 매질이 되었다.
콰콰콰콰!
현경의 고수가 작정하고 내기를 불어넣은 진각에, 땅은 물결치듯 뒤집어지며 벌레들을 덮쳤다.
-깨애애액! 애애애액!
-으애애앵! 아아아앙!
“으큭…….”
“크으……!”
권사와 도객. 딴에는 화경에 이른 고수인데도, 천무학관의 교관들이 치를 떨었다.
저 마물들이 쏘아 내는 기분 나쁜 음파. 귀신이 호곡하는 듯한 소리는 귀를 막아도 징징거리며 머리까지 울려 왔다.
-끼에에에엑! 꺄아아아악!
-으아앙! 마아아아-마아아아-!
특히 죽으면서 내뱉는 단말마는, 마치 인간의 어린아이 수백이 떼죽음 당하는 느낌을 주어, 더욱 고통스러웠다.
“뇌호혈을 방어하게! 저건 귀로 들어오는 소리가 아니야!”
“엇…….”
“알겠습니다!”
유장위가 내지른 소리에, 교관들은 내기를 귀가 아닌 뒤통수, 백회혈 주변으로 모았다.
지이잉. 띠이이잉.
그러자 정말로 거짓말처럼 머리가 맑아졌다. 저 마물들의 단말마는 소리가 아니라 사기(邪氣)로 정신을 어지럽히는 종류였던 모양이었다.
“이… 더러운 것들이!”
파삭. 푸아아앙!
도객이 분노하며 도강을 쏘아 내 갈겼다.
그는 조금 전 인면충들이 내지르는 단말마에, 예전에 잃었던 딸자식이 떠올랐었다. 그리고 그게 부끄럽고 수치스러웠다.
고작 이따위 사술에 넘어가다니! 이런 사악한 것들의 울음소리에 령아를 떠올렸다니!
콰드득! 파드득! 퍼어엉!
“어우…….”
분노한 도객의 도강은 인면충 무리를 쓸어버리고, 그 뒤의 땅까지 죽죽 터뜨리며 뻗어 나갔다. 권사가 그 광경에 기막힌 듯 탄성을 질렀다.
‘저 친구가 저 정도였나?’
-깨애애액! 빼애애액!
물리 배척 때문인가, 아니면 원래 내구력은 별것 아닌 놈들인가. 도강에 휩쓸린 버러지들은 그대로 증발했고, 뒤집힌 땅에 휩쓸린 것들은 껍질이 터져, 죽는다고 비명 지르며 피눈물을 흘렸다.
어린애의 얼굴로.
으드득. 와드드득.
“으.… 더러운 것들!”
그리고 그리 피 흘리는 인면충을, 다른 놈들이 물어뜯어 씹어 댄다. 동족 포식. 그 끔찍한 참상에 도객은 더욱 분노했다. 혐오감이 깃든 분노로, 그는 연달아 강기를 마구 쏘아 댔다.
쉬악! 쉬악! 쉬악!
펑! 퍼엉! 콰드득!
“저… 저…….?”
어마어마한 힘이다. 저러고도 몸이 버티나? 권사가 도객의 위용에 경악하는 가운데, 유장위의 일침이 떨어졌다.
“진정하게! 교관! 놈들이 심마를… 벌레들을 조심해!”
“알고 있습니다! 이따위 것들……?!”
도객은 끄덕이며 검을 되돌리다가, 컥! 하고 주저앉았다. 갑자기 내장이 진탕되는 것이, 마치 목 너머로 잘못 넘긴 유리 조각에 찔린 듯 했다.
울컥!
터져 나오는 선혈. 색이 새빨간 피는, 지금 막 생긴 출혈을 의미하고 있었다. 그 핏덩이 안에서.
위이이이잉…….
피에 젖어 바르작거리는 작은, 파리 떼들이 있었다.
“이건… 초파리?”
“벌레를 조심하라니까! 전신을 기막으로 둘러싸!”
그제야 교관들은 알아차렸다.
유장위가 조심하라 말한 벌레는, 땅에서 와글와글 몰려드는 손바닥만 한 인면충이 아니었다.
흡사 벌 떼처럼, 아니, 비바람처럼 몰아치는 작은 초파리, 놈들이 사방에 가득했다. 수를 셀 수 없을 정도였다.
후와아아앙!
그 크기는 좁쌀만 했다. 하지만 힘이 엄청났고, 딱딱하기까지 했다! 그런 놈들이 삽시간에 전신에 달라붙어, 피를 토한 도객은 즉각 몸이 새까맣게 변했다.
“익! 이익! 이놈들이! 쿨럭……!”
“이보게 사현영! 사 교관!”
권사가 비명을 질렀다.
이미 조심하고 준비하고 있었던 유장위. 그리고 권사라는 특성상, 평소에 호신기공으로 몸을 감싸는 것이 습관이 된 그와 달리, 도객은 미처 대비를 못했다.
물리 배척. 마법사들의 마법을 너무 믿었고, 인면충들의 음공에 추태를 보인 것에 흥분했다. 그래서 여력을 남기지 않고 검강을 뿌려 댔고, 그것이 그의 패착이었다.
“그아아악! 아아아악!”
호신강기로 전신을 밀어내지만, 이미 그사이에 살갗 안쪽까지 파고든 파리들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는 비명을 지르며 땅을 나뒹굴었고, 그런 그를 구하려고 권사가 달려가는 것을.
“…….”
유장위는 제지하지 않고 말없이 보고 있었다.
위이잉! 위이이잉!
끔찍하게 날아드는 벌레들.
파리는 자연의 청소부다. 썩은 것. 죽은 것. 약한 것이 있으면 가장 먼저 알아차리고 달려든다.
초파리의 경우, 주 먹이인 과일이 조금만 변해도 몇백 미터 밖에서도 냄새를 맡고 몰려든다. 제 크기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거리인데도.
“꺼어어억… 끄윽…….”
“으아악! 아아악! 이놈들이!”
그리고 한번 파리가 꼬인 음식은, 급속도로 부패하는 법. 새까맣게 몸이 뒤덮인 도객은, 꿈틀꿈틀 경련하더니 입에서 허연 점액을 토해 냈다.
우글우글. 바글바글.
그건 좁쌀보다 더 작은, 하얀 구더기들이었다. 이 저주받을 마물들은, 산 사람에게 달라붙어 알을 까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깨어난 구더기는, 도객, 사현영 교관을 구하려던 또 한 명의 교관에게도 옮겨붙었다.
“아악! 악! 유 대협! 도와주십…….”
“이런!”
비명이 일자 유장위는 짐짓 크게 낭패한 소리를 외쳤다.
그는 이제껏 기다리고 있었다. 어둠나무의 주의가, 자신이 아닌 다른 두 천무학관의 교관, 그들에게 쏠리는 순간을.
‘지금이다!’
“이…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제기랄! 아아! 이걸 어떻게 떼어 내야 하는 건가!”
그는 허우적허우적, 크게 팔을 휘두르고, 요란하게 검기망을 펼쳐 교관들 주위로 휘둘러 댔다.
‘역시. 먹이군. 적이 먹이로 떨어졌으니 시선은 이들에게 몰릴 터.’
이 모든 걸 계산했던 유장위. 그의 눈빛은 냉혹하고 차가웠지만, 얼굴은 충분히 당황한 것으로 보일 만했다.
멀리, 거리를 둔 마법사들에게는.
“빌어먹을! 에에이! 저 사달 맞을 죽은 나무가 원흉이야! 촌각만 버티게! 내가 처치하겠네!”
타닥! 팟!
그리고 이 모든 변명거리를 만들어 둔 후, 유장위는 달렸다. 어둠나무를 향해. 그런 그의 신형은 쭈욱 늘어난 듯, 환영을 남기며 뻗어 나갔다.
“야아아아아!”
차악!
거리는 3장. 지척이다. 유장위는 이번 일격에 전력을 기울였다. 전신 내공을 다 끌어내어 검에 불어넣었다.
채앵! 그그극. 카강!
검이 벼락 맞은 듯 불꽃을 튀겼다. 뇌전의 힘을 끌어올린 유장위에게, 달려들던 파리들이 팍! 팍! 허공에서 터져 나갔다. 그리고.
쾌애애액!
시퍼런 뇌광의 창이, 거대한 검은 나무를 꿰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