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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231화 (232/310)

231화. 게이트 (9)

콰드득! 퍼엉!

파편이 폭발하듯 쏟아져 내렸다. 일검으로 어둠나무의 왼쪽 반 가량을 베어버린 유장위는 표정이 밝았다.

‘손맛이 있었다…….’

흡사 해면(스펀지)이나 수세미를 벤 것처럼, 반쯤은 허공을 가르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분명히 베었다.

우지직! 우드드득!

부서지는 소리는 크지 않았다. 이제껏 떨어 왔던 요란에 비하면 허무할 정도.

하기야 애초에 다 썩어 있었던 나무다. 그 안이 착실하게 채워져 있었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했을 터.

“흐---음!”

타닥!

그는 진기를 돌리며 몸을 날려 거리를 벌렸다.

조금 전에 전신 내력을 다 끌어올려 퍼붓는 바람에 단전이 허전해졌다. 그러니 잠시 시간을 끌며, 내력을 충전할 생각이었다.

처음에는 일격 이탈. 한 대만 치고 빠지려고 했지만, 생각을 바꿀 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참에 그냥 끝낸다!’

방금 부딪혀 본 어둠나무. 직접 검을 들고 베어 본 결과, 놈의 방어력은 대단할 것이 없었다.

생각해 보면 그럴 법도 했다. 각자무치(角者無齒). 뿔이 달린 놈은 이빨이 없다. 그게 세상의 이치.

뿔은 주로 초식 동물의 무기다. 거리를 두고 몸을 지키기 위해, 녀석들은 긴 뿔을 창처럼 무기로 삼았다.

반면 육식성 맹수들은 이빨과 발톱으로 사냥한다. 날카로운 송곳니와 예리한 발톱. 최소 스물이 넘는 칼이다.

이런 무장을 하고도 뿔까지 갖추는 놈은 없다. 그건 낭비이니까.

타닥!

“네놈이 무슨 리치왕도 아닌 이상!”

왜애앵! 왜애애앵!

초파리의 무리가 비 오듯, 아니, 파도가 몰려오듯 쏟아져 온다. 기울어진 어둠나무 주변을 돌며, 유장위는 뇌기를 끌어올려 몸을 보호했다.

파바박! 바바바박!

어찌어찌 달라붙기는 해도, 몸 가까이 닿는 순간 뇌기에 터져 나가는 벌레들.

타앙! 화르륵!

진각으로 죽은 벌레들을 털어 내며, 유장위는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네놈에게도 한계는 있을 터!”

보는 순간 사람의 정신을 잃게 만드는 사기.

괴이하기 짝이 없는 언데드들의 소환.

여기에 수많은 벌레 무리를 만들고 조종하는 것까지.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보스급 몬스터다.

수하를 잔뜩 부리는 걸 생각해 보면, 어둠나무는 마법사 계열이라 할 수 있었다. 그것도 소환 쪽.

그리고 유장위가 이제까지 경험해 왔던 바로는.

소환을 잘하는 마법사가, 자기 자신까지 강대했던 적은 없었다. 단 한 번도!

“흡!”

쐐아아악!

조금 모인 내력을 끌어올리며, 유장위는 어둠나무를 향해 시위하듯 달려들었다.

왜애애앵! 왜애애앵! 크하아아아-

그러자 벌레 무리가 화들짝 놀라 그를 막아선다. 하늘이고 땅이고 할 것 없이, 온 사방의 벌레란 벌레는 다 모여서 벽을 이루고 있었다.

부---즈즈즈즈!

위협적인 울림에, 유장위는 크게 뒤로 뛰어 물러났다.

“푸하핫! 그래! 역시 그렇구나!”

벌레들이 쌓아 올린 두터운 벽.

저게 생김으로써 공격하기 힘들어졌지만, 유장위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예상했던 바가 맞아 들었기에 더욱 기뻤다.

그저 접근하는 것만으로도 질겁해서 막아서는 모습이라니!

이건 두말할 것 없이, 어둠나무 스스로가 근접 공격에는 약하다는 걸 인지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러니.

팟! 팟! 팟!

유장위는 더 빠르게 내달리며 틈을 노렸다.

정확히는 틈을 노리는 시늉만 하며, 달리는 중에 운공을 계속했다.

왜애애앵! 슈르르르르!

칠 듯 말 듯하며 신경전을 벌이자, 맹렬하게 그를 따라오는 벌레 무리.

놈들은 화가 난 듯 사방으로 퍼져서 유장위를 포위하려 들었다.

“흐읍--- 파아!”

그에 방향을 바꿔, 정면으로 벌레 무리를 뚫어 버린 유장위.

파지직! 퍽! 퍽! 퍽!

반척 거리. 그와 접촉한 벌레들은, 파리건 송충이건 가리지 않고 터져 나갔다.

평소 하는 짓이 다소 가벼워 보이는 게 있지만, 유장위는 엄연한 현경의 고수. 서역의 표현으로는.

그랜드 소드 마스터다.

빠지직! 빠지지직!

그는 차오르고 있는 내공을, 약간 덜어 몸 전신으로 뿌렸다. 그것만으로도 벌레들 상대로는 충분했다. 그의 독문기공, 뇌신지공의 힘이었다.

“일섬(一閃)이 갈라져 양의(兩儀)라. 하늘, 땅, 사람의 삼천(三天)이 사방(四方)에 이르러…….”

지직. 지직. 지지직.

유장위의 전신에서 뇌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행공(行功). 보통의 무인들이 그러듯, 바닥에 앉아서 좌선하는 운기법이 아니라 달리면서 내공을 도약시키는, 움직이면서 하는 운공의 극.

“…오행(五行)이 돌고 돌며 육합(六合)이 될 제에, 북녘 하늘에 칠성(七星)이 내리비춰 팔괘(八卦)를 돌리니……!”

파박! 파바박! 퍼억!

그의 발은 마치 별자리를 짚는 듯했다. 전후좌우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것은, 땅 위로 흐르는 벼락의 모습을 상정한 것.

우르르릉! 우르르릉!

달리면 달릴수록 뇌전의 힘이 울어댔다. 애초에 벼락은 가만히 있는 존재가 아니다. 동녘 하늘에서 서녘까지 일시에 달려 나가는 광폭한 힘. 눈부시게 빠른 빛 무리다.

“이에-! 구궁(九宮)의 문이 열리고-! 십위(十衛)를 하나로 모아 빛살처럼 내려치니 이것이 곧 일성(一成)이라!”

보법을 밟는다. 하나에서 열까지. 그 열이 다시 하나가 되어 시작이 된다. 그 시작이 다시 하나에서 십(十)으로.

한자의 십은 그저 숫자 열이 아니다. 하나의 완성이며 모든 것이라는 뜻을 담는다. 시작이자 끝. 완성. 무한히 순환하며 이루어(成) 나가는 기파.

쿠르르릉!

두어 바퀴를 돌고 난 후, 유장위의 몸은 시퍼런 뇌전을 품고 있었다. 몸에서 흘러 나오는 뇌기는, 처음의 반척 거리에서, 이제는 삼 척 가까이로 길어졌다.

그우우우. 우지직. 우직.

그러자 놀랍게도 거대한 나무가 비틀비틀 일어섰다. 땅에 박은 뿌리를 뽑아, 다리처럼 움직인 것이다.

“하.”

유장위는 그에 웃었다. 그래 봐야 도망. 애초에 땅에 뿌리를 박고 있던 놈이 움직여 봐야 얼마나 빨리 움직일 텐가? 그는 어기적어기적 뒤로 물러서는 나무를 향해.

즈으으윽.

돌진할 시기를 쟀다. 몸 밖으로 흘러넘치던 뇌기를 온전히 끌어모아, 전신이 번개 그 자체가 되었다.

부즈즈즈즈! 스르르르르!

어둠나무 역시 유장위와 자신 사이에 벌레의 장벽을 세워 방어 태세를 갖췄다.

지지지직!

몸을 서로 붙인 벌레 무리가, 땅에서 솟은 나무뿌리처럼 삐죽삐죽 여기저기 가지를 뻗었다.

마치 피뢰침처럼, 유장위의 전격을 좌우로 흩어 내기에 좋은 대비였다.

“호. 제법.”

일촉즉발. 서로서로 틈을 보며 대치하는, 약간의 시간이 흐르던 중.

-------!

“……?”

귀를 찌르는, 기묘한 소리가 있었다. 유장위는 차마 뒤를 돌아보지 못했지만, 그를 마주한 어둠나무는 크게 요동쳤다.

쿠아아아--!

부우우우우!

‘…뭐지?’

틈이 보인다. 하지만 뒤에서 접근해 오는 기척이다. 유장위로서는 방심할 수 없는 상황.

퍼덕퍼덕! 퍼덕퍼덕!

거칠고 조잡한 날개 소리. 그것도 수십, 아니, 수백이다. 인간이 내는 소리는 아닐 테니, 어둠나무의 원군인가? 그렇게 유장위가 긴장의 끈을 더 높였을 때.

파다다다닥! 끼이이이이!

날카롭게 귀를 후벼 파는 소리. 그리고 수백은 되는 검은 그림자가 유장위의 등 뒤에서 앞으로 날아들었다.

그림자는 작은 악마 같은 머리, 그리고 흉측한 발톱과 어설픈 피막의 날개를 달고 있었고.

“…박쥐?”

----!

유장위의 혼잣말에 대꾸라도 하듯, 수백 마리의 박쥐가 벌레들을 향해 날아들었다.

푸드드득! 바즈즈즉! 씨이이이잇!

새카만 벌레들을 번들거리는 검은 피막이 덮쳤다. 벌레 무리가 갑자기 난입한 박쥐들에게 정신이 팔린 그때.

“타아!”

콰---르르릉!

유장위가 다시 한번 섬광의 창이 되어 돌격했다.

* * *

“허억… 허억…….”

귀에서 삐--- 하는 이명이 울렸다. 한 번에 너무 많은 힘을 써 버린 흑객은, 헛구역질을 하며 숨을 골랐다.

타닥! 파바밧!

저 앞으로 달려 나가는 유장위와 학관의 교관들. 그들을 따라 발을 박차다가, 그는 휘청 하고 고꾸라질 뻔했다.

“제길……!”

쾅! 쾅!

수치심에 땅을 두드리는 흑객.

뱁새가 황새의 뒤를 따르려다 가랑이가 찢어진다던가?

직전에 유장위의 신위에 가까운 무위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과한 힘을 끌어내 썼다.

지금의 그의 몸은 그걸 가능하게 했다. 막대한 양의 피를 대가로 해서.

피이잉!

현기증. 빈혈 때문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숨이 가쁘고 팔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런 그의 눈에는 저만치 앞서가는 유장위와 천무학관의 교관들이 보였고.

-피를…….

“…웃기지 마.”

-피를… 마셔라…….

귀에서는 흡혈귀가 속삭이는 울림이 있었다. 흑객은 진저리를 치며 비척이는 몸을 바로 했다.

우드득!

한데, 거기서 갑자기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비틀리는 왼손.

“…개같은. 결국 이러는 거냐?”

흑객의 얼굴이 굳었다.

역시, 방심해서는 안 되는 놈이었다. 지금 그의 몸에 깃든 귀신은, 피를 마시는 미친 귀신. 호의적으로 군다고 해서 그걸 넙죽 믿어서는 안 되었었는데.

꾸드득. 꾸드득.

“안 돼. 안 돼! 하지 마… 이러는 걸 마법사들이 보면… 어?”

팔이 제멋대로 뒤틀리는 걸 보고, 흑객은 소리를 지르려다 말고 멈칫했다.

스르륵.

은빛 금속성을 내며, 갈고리처럼 구부러진 흑객의 왼손. 그 끝은, 혹시나 걱정했던 것처럼 후방에 있는 마법사들을 노리는 게 아니었다.

스르륵. 툭. 툭.

조금 전에 땅에 흩어진, 흑객 자신의 등짐을 뒤지는 금속의 손. 그건 한참을 휘적휘적 뭔가 찾아 헤매다가.

불쑥!

크기가 어른 주먹만 한, 작은 유리병을 집어 올렸다.

“…아.”

흑객의 눈이 그에 크게 흔들렸다. 투명한 유리병. 그 안에 찰랑이는 붉은 피.

저게 무엇인지, 그리고 얼마나 유용하게 쓰였는지는, 잠시 그도 잊고 있었으니까. 가급적 그래야 했으니까.

‘교주님의…….’

-피를…….

-마셔라…….

“……?”

하지만 지금 이 순간, 흡혈귀는 흑객에게 말하고 있었다. 요구? 권유? 뭐라고 받아들여야 할지 애매했다. 하지만 확실한 건.

-버러지들… 저것들을 쓸어버려……. 내게 주어진 권능으로… 내 수하들을 불러라……! 어서!!!

“…….”

이놈이 분노하고 있다는 것. 나직하게 꺼냈던 어조는, 당장 폭발이라도 할 듯 격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

대체 왜? 어째서?

드드득. 뽕.

꿀럭꿀럭! 주르륵!

하지만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흑객의 의지에 반해, 갈고리로 변한 금속의 손은 삐걱삐걱대며 기어이 유리병의 마개를 뽑아, 흑객의 입에 밀어 넣었으니까.

천마의 피를.

‘이 자식이……! 보자 보자 하니까 감히……!’

-감히! 보자 보자 하니까!

드드드득!

동시였다. 묘하게도 흑객이 분노하는 순간, 마계의 대공 드라쿨 역시 그의 목을 통해 창노한 외침을 터뜨렸다.

쏴아아악!

탈마급 고수의 피가 흡혈귀의 목으로 넘어간 순간, 흑객은 설명하기 힘든 ‘연결’을 느꼈다.

부즈즈즈. 부즈즈즈.

어둠나무 인근에 있는 수많은 검은 파리들과.

----! 키륵. 키륵.

이 인근 사백 리 범위에 있는 모든, 자신의 날개 달린 수하들의 존재를.

‘이… 게, 대체……?’

-와라! 나의 권속들이여! 일어나라!

흑객이 상황을 이해 못 하고 어리바리하는 사이, 용공 블라드 드라쿨은 이미 싸울 준비를 마쳤다.

그는 날카로운 발톱 같은 손을 앞으로 내밀며, 근방에 있는 모든 짐승 수하들에게 명령했다.

-베르제부트! 더러운 파리 새끼의 권속을 모두 짓씹어라! 이는 황혼에서 여명까지 밤을 걷는 자의 뜻이니라!

끼이이이이---!

사람의 귀에 들리지 않는 포효. 가청 불가의 초음파가 사방으로 넓게 넓게 뻗어 나가고.

파드득. 파드드득!

흑객을 중심으로 사백 리 안의 모든 동굴에서, 박쥐란 박쥐들은 죄다 튀어 날아와 몰려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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