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화. 게이트 (10)
파다다닥! 파다다닥!
박쥐의 날갯짓은 유려하지 못하다. 깃털로 연결된 새의 날개와 달리, 피막으로 벌어진 날개는 거칠다.
하나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애초에 박쥐는 새가 아니니까. 녀석은 새와는 다른 세계를 본다. 바로 소리로 이루어진 세상을.
휘익! 콰직!
박쥐의 주 먹이는 벌레다. 곤충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 안에는 파리도 포함된다.
어둠 나무 인근에 나타난 박쥐들은, 맹렬하게 허공의 파리들을 흡입하듯 먹어 치웠다. 한 마리당 수십 마리씩을.
…끼르르륵!!!
물론, 박쥐는 곧 몸을 뒤틀며 허공에서 떨어져 죽었다. 잡아먹은 것이 애초에 평범한 파리가 아니었기에.
그래도 박쥐들은 계속해서 날아들었다.
파다다닥. 파다다닥. 파다다다닥!
파리의 수는 무수히 많았지만, 박쥐의 수 역시 만만치 않았다. 어둠나무를 중심으로 펼쳐진 지대는 습지와 산지. 그중에는 동굴과 구덩이가 끝도 없이 많았다.
그리고 최중심지 외의 다른 곳에는, 사기(邪氣)에 물들지 않은 그냥 파리나 벌레도 많았다. 다르게 말해.
그걸 먹고 사는 박쥐들 역시 엄청나게 많았었다.
---!!!
---!!!
사방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메아리쳤다.
가청영역. 인간의 귀로 들을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수많은 짐승들의 고함 소리.
밤도 아닌 낮에 보금자리인 동굴에서 이유도 없이 뛰쳐 나온 박쥐들. 놈들은 그저 본능, 까마득한 상위종의 존재가 자신들을 부르는 것에 몸이 움직였다.
푸더더덕! 파다다닥!
박쥐들 때문에 하늘이 어둑어둑해질 지경이었다.
어둑한 저녁도 아니라 햇볕 쨍쨍한 창공이 눈을 찔렀지만, 박쥐는 어차피 시력이 거의 없는 녀석들이었다.
휘익! 콰직! 텁! 텁! 텁!
그저 본능에 따라 벌레를 쫓아 잡아먹는다. 사방이 파리 천지니, 떨어져 죽기까지 많게는 백 마리를 배 속에 욱여넣은 박쥐도 있었다.
----!!!
----!!!
어디냐. 어느 쪽이냐.
녀석들은 서로서로 외치며 본능에 따라 움직였다. 사방으로 그들끼리만 들리는, 들리지 않는 외침을 쏘아대며.
“허엇……!”
흑객은 정신이 아득해질 지경이었다.
와르르륵!
눈이 아팠다. 사실은 눈이 아니라 귀였겠지만, 감지되는 감각은 시야로 들어오고 있었다.
음파 시야.
초음파와 소리를 통해 세상을 보고 듣는 박쥐들. 녀석들이 보고 느끼는 시야가 전달되며 통합된다. 갑자기 수천 개의 눈알이 생긴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둠나무 인근. 수백 리 내의 모든 것이 감지되는 느낌은…….
뇌가 타들어 갈 정도였다.
“크윽! 카… 허억!”
흑객은 머리를 내저어 감각의 빈도를 낮췄다.
수천 개의 시야가 동시다발적으로 느껴지다니. 처음 겪는 일이라 혼란스러웠다. 그는 휘청거리며 팔을 휘둘러 앞을 내저었다.
마치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하… 어질어질하군.”
터억.
사실 그건, 안 보여서가 아니라 너무 잘 보여서 문제였다. 평소에 두 개의 눈으로 움직이던 인간에게, 갑자기 수천 개의 시야가 더해지니 그 반동이 보통이 아니다.
한참을 허덕허덕하다 겨우 익숙해져서 인근을 살필 수 있게 되었는데, 그건 또 그것대로 아찔했다.
“…언데드. 천삼백? 아니, 천사백… 정도인가. 제기랄.”
그는 한 눈을 감고 한 눈으로 보았다. 총천연색인 오른쪽 시야와 달리, 감은 왼쪽 눈의 망막으로는 흑백의 그림자들이 꿈틀거렸다.
띠---- 띠----
우글우글 몰려오는 시체 무더기들.
이제껏 어둠나무가 아무렇게나 뱉어 놓다시피 소환한 언데드다. 놈들이 소환의 주체인 어둠나무의 위기를 알고 개미 떼처럼 몰려오는 것을 보는(듣는) 것이다.
갑자기 어디서 저런 숫자가 나타났을까? 분명히, 아까 유장위 및 교관들과 함께 이 주변에 있는 웬딩고는 죄다 쓸어다 잡은 줄 알았는데…….
---!!!
---!!!
“망할, 언데드였지.”
의문을 품자마자 기묘한 장면이 뇌리에 떠올랐다.
질척한 진흙을 헤치고, 땅 위로 기어 나오는 시체 무더기들. 놈들은 땅 위에만 있지 않았다. 땅속에도 있었다.
새삼 정찰조에 낀 것이 다행이다 싶었다. 이걸 모르고 달려들었다간 크게 낭패를 당할 뻔했으니까.
-신경 쓰지 마라……. 그래 봤자 흙에 묻힌 시체들. 저런 잡다한 뼈 무더기보다는 당장 눈앞의 저 버러지들이 더 위험하다…….
“……?”
한데 인상을 쓰는 흑객의 뇌리를 스치는 목소리.
지금 그의 몸에 깃들어 사는 마족. 드라쿨이었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그 목소리에는 선명한 분노가 담겨 있었다.
흑객은 조심스레 물었다.
“어이, 이봐. 당신 뭐… 파리하고 원수라도 졌어? 왜 그래?”
-하, 원수라. 비슷하군. 그래. 저놈들은 내 원수다.
쿠르르륵.
흑객의 물음에 답하는 목소리. 마치 이를 악무는 듯했다.
동시에 흑객의 뇌리로 기분 나쁜 영상이 떠올랐다.
-흐으으으으… 끄르륵…….
하얗게 말라 죽어 가는 사람들. 주로 여자와 아이들.
뾰족하게 원뿔 같은 모자를 쓴, 이국의 사람들이 바닥을 쓰러져 기고 있었다.
위이잉. 위이이잉!
그 위로 작고 새카만 죽음의 전령이 찾아든다.
아직 숨이 넘어가지도 않은 사람의 눈으로, 입으로, 시커먼 파리들이 달라붙었다.
부들부들. 뿌르륵.
그리고 연약한 점막에 알을 깐다. 놈들은 약한 인간을 먼저 찾아서 바쁘게 전달하고 있었다.
전염병을.
아아아아…….
죽음과 탄식이 감도는 땅.
시체에, 썩은 것에, 오물에 몸을 부빈 파리가 윙윙 날아 인가로 몰려든다. 놈들은 물에 들어갔고, 음식에 들어갔고, 민가에 습한 곳에는 다 달라붙어 체액을 옮겼다.
병과 함께.
지이이잉!
그리고 또 다른 광경이 있었다.
붉게 불타는 벌판. 그 위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전투.
-크아아악! 아아아악!
검은 갑옷을 입은 병사들. 안색이 창백하고, 송곳니가 길게 뻗은 이들. 그들이 가슴을 궤뚫리며 파스슥 재로 흩어져 사라진다.
척. 척. 척.
흡혈귀의 심장에 창을 박아 넣은 무리. 검은 군대가 일사불란하게 대열을 갖추며 진군한다. 건장하고 거대한 그놈들의 머리는.
사람이 아닌 파리의 것이었다.
확!
“…크윽!”
환각이 사라졌다. 뒤이어 뇌를 찌르는 듯한 격통에 신음하는 흑객.
그런 그에게 나지막한 목소리가 일렀다.
-바알. 혹은 바알제붑. 때로는 벨제뷔트. 놈의 이름이다.
처음의 불타는 듯한 격노는 차분하게 가라앉아, 잠잠해져 있었다.
하지만 그건 용암처럼 무겁고 끈적하게 가라앉은, 더욱 뜨거운 열기를 담고 있었다.
-살아서도 내 백성들을 잡아먹은 놈이, 죽은 다음에는 내 군세를 여러 번 방해했지. 못 봤다면 모르되, 이렇게 만난 이상, 그냥은 못 넘어간다.
으드득 하고, 분명 사념일 터인데 이를 가는 느낌이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갑자기 너무 떠밀리는 느낌이라 흑객은 조금 주춤했다.
“너… 너무 열 내는 거 아냐? 고작해야 파리 떼한테…….”
-농담하는 건가. 너, 저것들이 그냥 평범한 파리로 보이나? 진심인가?
딴지를 걸었더니, 어마어마하게 진지한 목소리가 돌아왔다. 흑객은 조금 머쓱하게 머리를 긁었다.
“…아니. 그건 아니지만.”
들들들들.
한데 갑자기 대지가 진동했다. 그리고 이내 인근 땅이 솥 안의 물처럼 끓기 시작했다.
---!!!
---!!!
뒤이어 박쥐들의 초음파로 파악되는 주변 광경.
지표에서 멀리 떨어진, 땅속 깊이까지 파고 들어갔던 시체들이 끓어 오른다.
부드득. 부드드득.
썩은 땅을 헤집고 비어져 나오는 손.
마치 지하수가 터져서 뿜어져 나오는 꼴이다. 기가 막힌 것은, 점점 그 숫자가 더 늘어나는 것 같다는 점이다.
“…대체 얼마나 되는 거야?”
이대로 있다가는 저 시체의 물결에 휘말린다! 그렇게 경각심을 가졌을 때.
-상관없다. 수는 많지만 거리는 충분하니…….
피이이잇!
날카로운 소리가 울리고, 흑객의 몸을 움직이던 어색함이 사라졌다.
“…어?”
-놈들은 내가 막는다. 몸 주인. 너는 저들을 도와라.
뚜웃.
갑작스레 몸의 자유를 되찾은 흑객은, 눈앞으로 떠오르는 기묘한 광경에 입을 벌렸다.
“지… 도?”
왼쪽 눈의 망막에, 이 주변의 인근 지형이, 그리고 그 지형 위로 수많은 붉은 점과, 녹색 점들이 떠올랐다.
그게 뭔지는 한눈에 바로 와닿았다.
“…피아 식별이군. 괜찮은데?”
타닷!
시간이 별로 없어 보였다. 다소 등 떠밀리는 기분이 들었지만, 흑객은 드라쿨의 의도에 어울려 주기로 했다.
“어이, 너… 아니, 당신. 나한테 빚 하나 지는 거야. 알았지?”
-…….
어차피 위력정찰을 나온 이상, 상대인 어둠나무의 전력을 직접 확인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리고 조금 꺼림칙한 놈이긴 해도 유장위, 현경의 고수가 지금 같은 편으로 있는 입장.
간질간질.
조금 기묘한 느낌이 있었다. 마치 뇌리에서 사방팔방으로 뻗어 나간 자잘한 실타래 같은 것들. 마치 머리카락처럼, 감각은 없지만 뭔가가 느껴지는 것.
흑객은 이게 뭐냐 싶다가 곧 알아차렸다. 바로 주종의 ‘끈’이다. 인근 수백 리까지 길고 긴 연결이, 거의 만에 달하는 박쥐들과 이어져 있는 것이다.
“…좀 써도 되겠지?”
파다다닥!
인지하기 무섭게, 박쥐 수십 마리가 맹렬하게 앞으로 날아들었다.
휘이익! 콰득! 콰득! 텁!
녀석들은 허공의 파리 떼를 먹어 치우며, 몸이 내부에서 터지기 전까지, 계속해서 앞을 지워 나갔다. 그리고 그 수는 더욱 더 늘어났다.
푸드드득. 파다다닥!
“으와…….”
모이는 속도도 무시무시했다. 아무리 한낱 미물이라 해도, 땅을 딛는 사람과 허공을 나는 동물의 차이는 적지 않은 것.
흔히 경공의 고수라 하면, 달리는 말보다 빠른 것은 기본이다. 허나, 그런 경공의 고수들 중에서도, 하늘을 나는 날짐승을 추월해서 달릴 수 있는 이는 손에 꼽는다.
그러다 보니 장관이었다.
파---드드득!
그저 가벼운 손짓 한 번에, 수백에 달하는 박쥐가 죽죽 파도처럼 뻗어 나가는 광경이라니.
처음에는 징그러운 미물. 못생긴 짐승 정도로 생각했던 박쥐가, 이렇게 보니 제법 든든했다.
흑객은 흡사 자신이 수많은 날짐승들의 지휘관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대단한데… 엇?”
멀리, 어둠나무 앞에서 대치하고 있는 유장위. 그리고 땅을 뒹굴고 있는 천무학관의 교관 둘이 보였다.
그런데… 상황이 영 좋지 않아 보였다.
“끄아악! 아아아악!”
온몸이 새까맣게 벌레들에게 덮여,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교관들. 그리고 그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어둠나무를 노려보고 있는 유장위.
“일단…….”
파다다닥! 파바박!
구해야겠다. 흑객이 그렇게 마음먹은 순간, 그새 몰려든 박쥐 수백 마리가 전방위로 뻗어 나갔다.
---!!!
---!!!
귀에 들리지 않는 호통. 교관들의 몸에 달라붙은 파리 떼들에게 박쥐들이 초음파로 고함친다.
바르르르! 왜애애앵!
그러자 마치 검은 자루가 벗겨지듯, 교관들의 몸에서 흠칫 떨어져 나오는 파리의 군집.
“타아---!”
콰르르릉! 꽈웅!
“어이쿠…….”
한데 그게 마침 틈을 만들어 준 건가. 유장위가 작정하고 어둠나무에 몸을 던지는 것이 보였다. 기회로군. 흑객은 그 뒤를 따라 후속타를 치려 손을 긴 금속의 창으로 만들었다.
찌이이익!
-멈춰……! 위험하다!
“어?”
끼긱!
한데 거기서, 다급하게 흑객을 붙드는 목소리가 있었다. 드라쿨이 몸의 지배권을 빼앗지도 않았는데, 반사적으로 흑객은 발을 멈췄다.
우지직! 쿠드드득!
어둠나무가 반 동강 난 자리에.
위이이잉…….
새카만 구체가 떠올라 있었다. 그에 질색하며 커억! 하고 황급히 전력으로 몸을 빼는 현경의 고수 유장위.
-게이트다. 역시… 저 냄새나는 놈이 올 길이라곤 이것뿐이지.
그와 함께 드라쿨이 냉소했다. 흑객은 살짝 입을 벌린 채 굴혈, 혹은 게이트라 불리는 차원의 문을 보았다.
쉬이이이…….
어둡고 검은, 문이라기보다는 거대한 공 같은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