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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233화 (234/310)

233화. 게이트 (11)

우우우웅. 우우우웅.

소리가 울렸다.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소리가.

음산? 공포? 불길?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저 거대했다. 표현하기도 쉽지 않은 거대한 소리.

굉음이나 폭음 같은, 귀를 찢는 큰 소리를 말하는 게 아니었다. 마치 지진처럼. 혹은 화산의 폭발처럼. 거대한 존재감을 나타내는 소리였다.

우오오옹…….

소리 자체는 오히려 나지막했다. 약간의 금속성 울림이 느껴지지만 그 외에는 고요할 정도의 소리였다. 하나.

우드드---득!

거대한 자연현상이 일어날 때 느껴지는 그런 무엇에, 주변의 소리가 모두 잡아먹힌다.

“---!!!”

“---?!!”

비명도 고함도 들리지 않는다. 그저 오롯하게 주변의 모든 것을 무시하는 어마어마한 현상.

그래서 거대하게 여겨졌다. 지금 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미증유의 사건은, 주변의 모든 사건을 묻어 버렸다.

격렬한 태풍이 불어닥칠 때, 태풍 외의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듯이. 지진이 일어날 때 지진 외의 다른 현상은 묻혀 버리듯이.

오로지 저 현상이 일으키는 것만, 그런 주변의 흔들림만이 소리로 들린다.

그래서 압도적으로 거대한 소리였다.

“…으윽!”

유장위는 전신 공력을 끌어올려 몸을 소리에서 보호했다.

피하기에는 너무 가까웠다. 그런 짓을 하다가는 확실히 죽을 거라는 예감이 팍팍 뇌리에서 솟구치고 있었다.

퍽. 주르륵!

눈, 코, 귀의 여섯 구멍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악물고 있는 입에서 피가 나왔으면 칠공에서 피를 쏟는다는 말이 현실이 되었을지도.

하지만 그는 현경의 고수. 격렬한 충격의 음파가 몸을 곤죽으로 만들고 있었지만, 그 와중에도 의식은 명료했다.

‘충격이 오면… 그걸 타고 밀려 나간다……!’

드드득.

검을 든 손아귀가, 손등까지 갈기갈기 찢겨 나간 것이 눈에 들어온다. 운철을 섞은 검은 비명을 지르며 뒤틀리고 있었다.

이래서야 제대로 막을 수 있을지 도통 감이 오지 않는다. 이 검으로, 이 몸으로 다가올 충격을 막는다?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쓸 수 있는 수단은 이것뿐.

검으로 오롯이 자신의 벽을 두 번이나 넘은 검사는, 세상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이 오로지 그 자신의 검뿐이었다. 그렇기에 단호한 행동이었고, 유일한 방어였다.

우----웅.

‘언제… 언제냐…….’

거대한 충격이 올 터였다. 유장위는 그걸 확신하고 있었다. 온몸의 전신 모공이 올올이 깨어나 지르는 비명이, 기경팔맥을 타고 흐르는 기운들 모두가 그걸 알려 주고 있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 위기에 대한 경각. 그 모든 감정이 일제히 깨어나 경종을 울리는… 혼돈스러운 감정의 폭주 속에서 유장위는.

일부러 그 자신에게 여유를 부렸다.

“…경지가 크게 늘겠군. 오래 살고 볼 일이야. 아무렴.”

위태로울 때 웃는다.

오로지 역전의 용사만 가능 한 일. 죽음은 분명 두렵지만, 때로는 초개와 같이 보아야 했다.

두렵기에 오히려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 그게 유일한 길이었다. 죽기를 각오해야 살아남는다? 아니, 이건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그저.

“이 몸이 바로, 유장위 어른이시니라.”

그저 그뿐이었다.

검으로 일어선 자. 오로지 검에 자신을 맡길 뿐.

통하든 통하지 않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그저 이곳에 자신의 마음과 의지를 다지고, 몸과 검을 오롯이 세울 뿐.

그것이 유장위가 아는 유일한 길이자, 이제까지 살아온 궤적이었다. 그는 오만했고, 당당했으며, 세상을 우습게 보았다. 그런 지독한 고집이 있었기에 이 경지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후우우욱---!

“참… 불공평하군.”

하나 그런 그도 칠흑의 구,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세상을 휘저어 버리는 존재 앞에서는 작게 움츠러드는 느낌이었다, 유장위는 작게 혀를 찼다.

기백 년을 쏟아부었는데, 고작해야 자연현상 하나 당해 내지 못하다니. 너무도 초라하고 작지 않은가.

물론 이건 유장위의 감정일 뿐, 그조차도 다른 무인들이 보면 어이없어할 경지다. 일개 인간으로서 자연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것이니까.

하나 그렇기에 현경. 자연지경인 것.

드드드득!

한낱 인간으로 태어나, 그 인간을 초월하는 것이 화경.

그리고 그 화경조차 초월하여, 자연 현상에 가깝게 이른 것이 현경이다. 불가해와 불가해 간이기에, 이론상으로는 현경의 고수는 자연재해, 혹은 자연현상과 동급이다.

물론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못한다.

같은 불가해(不可解)라 하더라도, 그건 까마득히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이들의 시각일 뿐 자연재해와 자연재해 간에도 어느 쪽이 더 존재감이 큰지는 다를 수밖에.

드드드득---!!!

“크…….”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알게 된다. 유장위는 가공할 만한 압력을 버티며, 손등을 따라 핏줄이 퍽퍽 터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다시금 확신했다.

‘이걸… 버텨 내면 나는 극에 오른다.’

동시에, 그럴 일은 없으리라는 것 또한 확신했다. 그는 새삼 느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알게 됨을.

차원 간 게이트.

공간과 공간을 찢어, 이어다 붙이는 초자연적 현상. 한 번 이런 걸 경험하면, 그 파괴적인 힘과 이치는 평생 뇌리에 남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남은 생애 내내 이 힘의 이치를 연구하고, 손에 넣든 그러지 못하든, 평생 이를 추구하리라.

하나.

둑. 둑. 둑.

‘운이 없군…….’

너무 빨랐다. 혹은 이 초월적인 자연현상을 마주하기에, 아직 유장위는 너무 작았다. 힘이 몰려오는 순간 밀려나며 빠져나갈 생각이었지만, 그조차 불가능했다.

후우우우우---!!

휘말리는 그 순간, 그대로 차원과 차원의 경계에 내던져져 찢기고 말리라. 그는 자신의 그릇이 부족함을, 그리고 눈앞의 현상을 이해하기에 너무 우둔한, 자신의 모자란 오성을 원망하고 한탄했다.

“아아…….”

태양의 찬란함을 부러워할 수 있다.

화산에 끓어넘치는 용암을 보고 질투할 수 있다.

미련하다 말할지 모르지만, 세상에는 그런 인간이 있으며, 그런 인간 중 극소수가 유장위 같은 경지에 이른다.

자연지경. 개인으로서 자연현상에 필적하는 이에게 있어서 어차피 인간은 비교 대상조차 되지 못하---

빠지직!

“……?!”

그렇게 상념으로 빠져 가던 유장위의 뇌리에 대못이 박히는 듯한 충격이 있었다. 초월적인 깨달음을 얻음과 동시에 죽어 가리라 여긴, 초탈해 버렸던 그를 붙잡는 그건.

달그락달그락.

모래시계. 그리고 한 장의 쪽지.

“……!!!”

잠들었던 유장위를 비웃으며 남긴 서신. 두고두고 자존심에 상처를 남긴 그 서신의 주인이.

잠시 모습이 보인 듯했다.

-훗.

검은 머리. 검은 눈. 그리고 앳된 얼굴. 아직 약관도 되지 않은, 소년과 청년 사이의 사내.

분명 어디서 본 듯한 그는… 웃고 있었다.

“이…….”

두근.

두근두근!

그리고 그 얼굴을 목도한 순간, 유장위의 식어 가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온몸의 피가 용암처럼 열기를 뿜어냈다.

“놈---!”

빠드득! 와지지직!

아직.

아직 결판을 내지 못했다. 저놈과는.

그런데 이대로 죽음이건 승천이건 맞을 수 없다. 발바닥에 난 구멍이 있는데 어찌 머리 손질을 하고 있을 손가. 누군지도 모를 놈에게 비웃음을 당하고서, 탈속? 천도?

그건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설령 그게 금을 버리고 땅에 떨어진 돌을 줍는 것과 같다 하더라도.

“…으오오오오아아!!!”

유장위는 노기로 가득 차 포효했다.

그도 이 감정이 한갓 망집임을 알았다. 차라리 이대로 닥쳐올 무언가를 맞으면, 분명 죽든 살든 한 차원 높은 어딘가로 향할 것이다. 하나.

지금 이 순간, 그는 선택했다. 차원 간 게이트에 겹쳐진 충격에서 스스로 벗어났다. 그런 그가 갈라지고 터진 손으로, 검고 검은 구-차원 간 게이트를 내려 베는 순간.

아니, 막 베어 가려 하던 순간.

빠지직---훅!

겉과 속이 서로 뒤집힌 존재. 그래서 둥글고 거대한 구형임에도, 구멍이라고 불리는 현상. 그 현상이.

휘르륵.

“…….”

갑자기 사라지고 말았다. 검은 구 형상의 차원 간 게이트. 굴혈은 저절로 꺼져 버렸다. 그건.

“…끄윽…….”

스스로의 격의 상승. 그조차 내버리고 쫓으려 했던 유장위에게 지독한 충격이었다.

단 1초, 아니, 그 절반의 시간.

찰나라고밖에 할 수 없는 그 시간의 차이로, 그는 얻을 수 있는 것을 잃고, 얻으려 하던 것을 놓쳤다.

차라리 그대로 받아들일 것을.

혹은 조금만 더 일찍 마음을 정해 베어 버릴 것을.

두 가지 모두 하지 못했다. 꿩도 잃고 매도 잃고 다 잃었다. 눈앞에서 모든 것을 도둑맞았다.

“우----아아아악!!!”

닭 쫓던 개? 아니, 평생을 찾아 헤매던 비원을 놓쳐 버린 현경의 고수는, 피를 뿜어내며 울부짖었다.

* * *

큐우웅. 큐우우웅.

기묘한 소리. 어마어마한 파동을 흘리는 검은 구체.

유장위가 휩쓸려 내동댕이쳐지는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흑객은 전신이 긴장으로 바짝 곤두선 채, 전면의 자연현상을 보고 있었다.

큐우웅. 쿠우우웅.

-큭. 그래……. 오랜만이구나. 버러지 같은 놈.

까르르륵. 까르르륵.

검은 구체. 차원 간 게이트 너머를 향해, 흑객의 가슴 한 쪽이 냉소를 지었다.

찌리리릿!

그러자 몸이 떨렸다. 게이트 너머에서 섬찟한, 새카맣고 무수하게 겹쳐진 시선이 찌르듯이 날아들었다.

큐우웅. 큐우우웅.

-하, 내가 할 소리를. 그러는 네놈이야말로 거기서 뭘 하고 있는 게냐? 큰소리 칠 자신이 있으면 넘어오든가?

까르르륵. 까르르륵.

“…….”

가청영역 밖. 인간으로서는 들을 수 없는 소리의 전달.

드라쿨과 존재를 함께하기에 음파 시야를 얻은 흑객으로서도, 이 기묘한 소리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아니, 이건 엄밀히 말하면 소리가 아니었다.

감각.

그건 시각도 청각도 후각도 아닌, 그렇다고 미각이나 촉각은 더더욱 아닌, 인체의 오감을 넘어선 어떤 감각끼리 소통하고 있는 것이었다. 흑객이 그 아스라한 경계를 느낀 순간.

울컥.

피를 토했다. 거대한 고래와 고래를 잡을 수 있는 포경선이 충돌하는 여파에, 사이에 끼인 작은 새우는 존재 자체가 바스러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큐우웅. 큐우우웅.

-감히!

‘으윽…….’

느껴졌다. 검은 구체. 저 차원 너머의 거대한 존재가, 제대로 자신을 인식함을. 그리고 그 인식과 동시에 지금 이 세상에서 강제로 뽑혀져, 전혀 다른 곳으로 끌려가게 될 거라는 것을.

휘-----익!

확!

“……?!!!”

하나 그리될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갑자기 이 모든 거대한, 끔찍한, 어마어마한 현상이 멎고, 전신 모공의 솜털이 올올이 일어서게 만들던 압박감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이게……. 컥. 어떻게 된…….”

-으아아아아아!

십여 장 밖에서 유장위가 피를 토하며 울부짖는 것이 보였다. 대체 무슨 일을 겪었던 것인지, 자그마치 현경의 고수가 통분을 표하며 꺼이꺼이 울어대고 있었다.

스윽.

하나 흑객에게 깃든 존재는 조용히 시선을 돌렸다. 그는 무언가 짐작 가는 바가 있는지, 저 먼 방향, 늪지와 습지가 가득한 다른 언데드의 지역을 바라보며.

-…닫아 버렸나.

음산하게 중얼거렸다. 그게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 흑객은 알 수 없었다.

멀리서, 소리가 아직 닿지 않는 먼 곳에서.

뭉글뭉글.

거대한 구름이 피어나고 있었다. 이쪽에서 볼 때는 마치 거대한 버섯과 같은 형상의 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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