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화. 신과 악마 (1)
뭉실뭉실.
멀리서 피어오른 버섯구름을 본 것은 흑객-드라쿨만이 아니었다. 지형상 다소 높은 곳을 점한, 정찰조의 마법사들도 있었다.
“저건……?”
마법사의 다른 이름은 ‘준비하는 자’다. 준비만 충분하다면, 동급의 전사 열, 아니 수십도 상대할 수 있다.
그 준비라는 건 여러 가지가 있다. 캐스팅을 할 시간. 사용할 수 있는 촉매. 앞에서 적을 막아 줄 동료. 마법을 끌어내 형상화시킬 마나 등등.
하나, 고위급 마법사들에게 ‘준비’의 첫 번째를 묻는다면, 그들은 그리 말한다.
-아는 것. 바로 지식이다.
마법사를 흔히 지혜로운 자, 혹은 현명한 자라 부를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아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중무장한 철갑 보병 수십을 막으려면, 동수의 철갑 보병이 필요하다. 하지만 마법사에겐 작은 마법 셋-그리스(미끄러짐)와 워터볼, 그리고 라이트닝-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이것은 ‘금속이 전기를 잘 투과함’과 ‘물은 그 투과율을 더욱 올려 줌’을 알기 때문이다. 지혜와 재치조차 기본적으로 지식이 없으면 발휘될 수 없다.
물론 마법사가 가장 탐내는 것은 마법적 지식이지만, 굳이 그게 아니라도 그들은 지식을 즐긴다. 당장은 쓸모가 없는 그저 뜬구름 잡는 깨알 지식이라 하더라도, 그들은 새로운 지식 그 자체에 심취한다.
그래서 저 멀리 버섯구름이 치솟았을 때, 마법사들이 먼저 그 상황을 알아차린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저, 저것 보십시오! 4시 방향에 고에너지 반응!”
“버, 버섯구름입니다!”
“어억---?!”
누군가가 최초 발견해서 외쳤을 때, 마법사들은 ‘이런 말도 안 되는!’, ‘불가능해!’ 따위를 외치지 않았다.
그들은 이유와 상관없이 갑자기 떨어지는 현상에 익숙했으니까. 당장 마법이 그런 현상 중 하나니까.
싸아아악--!
버섯구름이 피어난 주변 풍경에 일렁일렁, 아지랑이가 끼기 시작했다.
마법사들은 눈이 크게 뜨였다. 그들은 서적으로만 보아온 현상을 직접 목도함에 감탄성을 내질렀다.
“오오… 저건?”
“강력한 열원! 그로 인한 대기굴절 현상이오! 저런 게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물질-반물질 간 교차 붕괴다! 우와아아!”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별이 떨어져 내린다면, 그래서 멀쩡하던 집이 불탄다면, 보통 사람들은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고 황망해하고 억울해할 것이다.
하지만 마법사라면 오히려 눈을 반짝반짝 빛낸다. 그들은 뜨거운 열기나 검댕투성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불타 버린 집터를 뒤지며 흥미진진해한다.
-이거 누가 마법을 썼나? 혹은 천체의 변화인가?
개중에는 아아, 그 순간에 내가 있었어야 하는데… 하는 사람도 있다. 당시의 위험 같은 건 생각지도 않고.
그런 것이 바로 마법사였다.
“온다!”
“우와아아!”
쿠구구구구!
땅울림이 먼저 왔다. 매질이 더 탄탄한 땅이 진동의 전달에는 더 빠르기 때문이다. 공기는 희박한 매질이라 전달이 늦다.
후으으으…….
인근의 색이 변했다. 지평선이 부옇게 흐려지는 것을 보고, 마법사들은 쌍수를 들며 환호성을 질렀다.
“충격파요! 어마어마한 충격파!”
“세상에! 쇼크 웨이브 쓰나미!”
“내가 이걸 직접 보게 될 줄이야!”
그들은 거대한 에너지의 충돌을 막연히 동경한다. 불꽃놀이 폭죽에 입이 벌어지는 보통 아이들처럼.
살면서 한두 번 볼까 말까 한 거대한 폭발을 직접 목격했으니, 그 기쁨을 만끽하느라 보통 사람이라면 응당 생각할 일을 잠시 까먹었다.
“어… 잠깐, 이럴 때가 아니지 않소?”
“아차! 대비를! 방어 결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저 멀리서 일어나는 신기한 ‘충격파’는 자신들을 딱히 배려해 주지 않을 거라는.
보통 사람은 보자마자 진작에 알아차렸을 사실을!
“그럼 준비한 물리 배척을…….”
“아, 아니… 그건 이미 써 버렸지 않소? 메모라이즈도, 촉매도 다 바닥났는데?”
“어찌하오. 그럼?”
데굴데굴.
눈들이 굴러간다.
지식욕에 반쯤 정신이 나간 이들. 호기심으로 인한 죽음이 가장 많은 직군. 그것이 마법사의 또 다른 별명이다.
“리플렉션! 반사 마법으로 튕겨내면…….”
“그럴 마나가 어디 있소? 이런 때는 비용 대비 효율로 디그(Dig: 땅파기) 마법을…….”
“그거 좋은 생각이오. 근데… 유 대협과 두 분 교관들은 어쩝니까? 아니지. 흑객 학관생과 매소봉 교관도…….”
우왕좌왕이었다. 서로 자기주장 하기 바쁘다. 하지만 그렇다고 혼란에 빠지지 않는 것은 마법사들다웠다.
-매소봉 교관! 거기 들리십니까? 유 대협과 사문강 교관, 그리고 사현영 교관과 학관생 흑객을 한곳에 모으십시오.
“디그! 디그! 디그! 디그!”
마법사 하나는 메시지 마법으로 말을 전달했고, 한 사람은 가진 마력을 다 퍼부어서 땅을 파냈다.
펑! 퍼벙! 펑펑! 펑!
“에… 충격파가 오기까지… 10초!”
그리고 남은 하나는 세밀하게 거리와 예상 시간을 재고, 있는 힘을 다해 인근 땅을 갈라 버렸다.
“어스퀘이크! 크레바스!”
쫘좍! 까가각!
대지와 대지 사이에 수많은 갈라짐이 일어났다. 이게 약간은 충격파의 파도를 막아주기를 기원하는데, 그들의 앞에 한 사람, 아니, 네 사람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후욱! 와당탕!
“헉……!”
“교관님들! 그리고 흑객!”
그건 부상당한 천무학관 교관 둘, 그리고 그들을 시프트로 옮겨 나른 흑객과 매소봉이었다.
“갑자기 어떻게 된…….”
“빨리! 몸을 피하십시다!”
“잠깐! 유 대협은!”
“그 양반이야 어떻게든 하겠지! 어서!”
“…….”
흑객이 뭐라 말하려 한 순간, 마법사 셋이 무인 넷을 집어 던지다시피 구덩이에 밀어 넣었다. 막 파헤친 구덩이에 마지막으로 마법사 하나가 들어서서 결계 마법을 시전한 순간.
쾅----! 콰드드드득!
저 멀리서 날아든 충격파가 작은 비탈을 허물다시피 하며 땅을 뒤흔들었다. 결계 안에서 마법사 셋과 무인 넷은 데굴데굴 굴러 다녔고, 그러기를 십여 초가량 지나.
드드득… 드드드득…….
“지, 지나갔다.”
“휴우… 큰일 날 뻔했군.”
충격파의 물결이 쭉쭉 뻗어 나가는 비탈 아래를 보며, 마법사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고는 대뜸 물었다.
“학관생 흑객, 뭘 봤나?”
“나는…….”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포션! 포션!”
“어이쿠! 이런! 위급 사태다!”
“…….”
흑객이 다시 뭐라 입을 열려 한 순간, 마법사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도객인 사현영, 권사인 사문강.
천무학관의 교관 두 사람은, 전신 모공에 잔뜩 상처를 입고, 입으로는 살점 섞인 피를 꿀럭꿀럭 게워 내고 있었다.
마법사들은 그들에게 포션을 먹이고, 치료 보조용 마법을 걸고 하며 한동안 부산을 떨었다.
“유장위… 그 개자식은 어찌 되었습니까.”
거기서 난데없이 매소봉이 사납게 말했다.
“……?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인가. 매 교관?”
“녀석은 우리 교관들을 어둠나무에게 미끼로 던져 주었습니다. 공격할 틈을 얻기 위해서. 멀리 계신 분들은 듣지 못했겠지만, 저는 들었습니다.”
“……!!!”
그랬다.
유장위가 여러 유난을 떨고, 멀리 있는 마법사들을 의식해서 기만질을 했지만, 가까이에서 몸을 숙이고 있는 매소봉의 귀를 피하지는 못했다.
매소봉은 흑객에게 물린 이후로, 비정상적으로 청각이 발달해 있었다.
거기에 그는 온전히 충성의 대상이 따로 있는 몸.
유장위가 아무리 현경의 고수라고 해도, 딱히 존경심이나 이런 걸 가지지도 않았다. 덕분에 그가 흘린 말을 ‘잘못 들었겠지’ 하고 놓치지 않고, 주의 깊게 본 것이다.
그 이후의 그의 행적들도.
“노, 농담이겠지… 그분이 그럴 분이 아니신데… 어쩌다가 그런…….”
“이런 걸로 농담하지도 않고, 농담으로 말할 사안도 아닙니다. 냉정하게 이제껏 그자가 해 온 일들을 돌이켜 보십시오. 사람 좋은 체하며, 죄다 제 욕심만 채운 것들 아니었습니까?”
“…….”
“…이런.”
매소봉의 날 서린 말에, 마법사들의 표정이 변해 갔다.
불신-당혹-냉정이라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경로로.
“과연. 그런 거였나? 애초에 천무학관과 별 끈이 있었던 자도 아니었지. 공적이나 그런 것만 탐해 왔던 거라면…….”
“…까맣게 속고 있었군. 이런 양두구육의 표본 같으니. 매 교관, 여차하면 증언할 수 있겠지?”
“물론입니다.”
가끔 어처구니없는 바보 짓을 한다고 해서, 마법사라는 이들이 진짜 바보인 건 아니다.
애초에 멍청한 자는 마법에 입문하기 자체가 힘들다. 아무리 마나의 재능이고 어쩌고가 있어도, 마법은 고도의 연산 능력과 지식을 필요로 하는 법.
한 번씩 지나치게 감정에 휘둘릴 뿐, 마법사는 기본적으로 머리가 영민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매소봉의 지적에 이제까지 가지고 있던 ‘선입견’을 내버렸다.
“…보이지 않는군. 도망쳤나? 일단 상황을 수습하세. 석필 교관, 두 분의 상태는?”
“좋지 않습니다… 포션으로 겨우 진정시키고는 있지만, 외부고 내부고 막대하게 갉아 먹힌 상태입니다…….”
“안정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데… 어쩐다. 이제 곧 찾아오지 싶은데…….”
까닥까닥.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손가락. 그에 흑객이 고개를 갸웃했다.
“찾아온다고요? 유장위 대협 말씀입니까?”
“…대협 같은 소리. 현 시간부로 그는 잠재적 배신자일세. 그리고 찾아오는 건 뻔하지 않나.”
스윽.
저 멀리, 반토막 나서 땅을 나뒹굴고 있는 어둠나무를 가리키는 마법사다.
“이번 레이드는 표적과 키퍼를 잘못 파악했지. 그리고 표적 중 하나가 파괴되었으니 키퍼가 날뛸 게 당연하지 않나?”
“…고룡 쉐이크.”
“그래. 애초에 필드 레이드의 표적 보스였던 존재지. 차원 간 게이트를 품은 어둠나무라면 그만한 놈이 키퍼를 하기에도 모자람이 없… 아, 오는군. 젠장.”
설명하다 말고 탄식을 터뜨리는 마법사였다.
구----우우욱!
하늘 저편이 크게 변한다. 널리 깔린 지평선이 움푹 베어 먹히고, 갑자기 작은 산 하나가 치솟는 듯한 광경.
궤----에에에엑!!!
“…….”
그건 멀리서도 소름이 돋는 광경이었다.
작은 산만 한 거체. 그게 솟구쳐서 머리를 길게 뽑아내는, 까마득히 멀리 있음에도 지척인 듯, 원근감을 혼란시킬 만한 존재라는 것은.
“…크기가 대체 어느 정도인 겁니까.”
그리고 그 거체가 천천히 다가오면서 커진다는 것은, 이미 최소 화경급, 이형의 힘을 가진 흑객조차도 가슴이 철렁해지는 광경이었다.
“문헌에 따르면 2백여 장… 하나 그보다 더해 보이는군. 이 정도면 이제까지 기존의 선행자들의 보고는 다 틀렸다고 보는 게 맞겠어. 현유 교관? 웨이 포탈 가능한가?”
“지금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하나… 두 분의 상세가 너무 안 좋아서 버틸 수 있을지…….”
현유라 불린 마법사가, 두 무술 교관의 상세를 보며 혀를 찼다.
웨이 포탈(Way Portal)은 공간 이동의 마법 중 하나다. 한 지역에 안정된 좌표를 심어 두고, 그곳으로 여러 명이 즉각 이동 하는 게 가능하다.
대단위 텔레포트(Mass Teleport)와 함께, 여차하면 내빼야 하는 보스 레이드 때, 마법사들이 반드시 필수인 이유이기도 하다.
다만 어떤 종류의 이동이든, 원래 중환자에게 이동이란 좋지 않은 법. 웨이 포탈을 사용해서 옮기다가 내부가 갉아 먹힌 두 교관이 영영 회생 불능이 되면 어찌하겠는가.
그런 질문에 마법사는 냉정하게 결단했다.
“상황이 상황일세. 어차피 여기서 무슨 조치를 한다고 해도 두 분이 생존하시기란 힘들어. 빨리… 이거 곤란하군.”
말끝에 마법사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구워어억!
저 멀리서 다가오는 고룡 쉐이크. 언데드 드래곤의 몸체가 커짐과 함께, 주변의 역장이 마구 뒤틀리는 것을 느낀 것이다.
“탈출… 불가인가?”
전원 몰살. 그런 의미를 담은 말을 하면서도, 마법사의 얼굴은 담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