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9화. 발각 (1)
휘이이익--!
생명이 없는 땅은 날씨가 거칠다. 낮에는 땀이 날 정도로 덥더니, 밤이 되자 스산한 찬바람이 불어왔다.
일행의 몸이 밤바람에 딱딱하게 굳지 않게 서문영은 신경을 써야 했다.
야간 행군. 패스파인더에게 가장 피곤하면서, 동시에 가장 그들의 필요성이 요구되는 활동이다.
“다들 조심. 앞에 돌 있어.”
“어어, 조심.”
“조심, 돌 있다.”
서문영의 말에 다른 이들이 주의 사항을 전달한다.
쭈르륵!
“이크, 발 조심. 미끄럼 주의!”
“미끄럽대. 조심들 해…….”
다시금 이어지는 주의 사항 전파.
“후우… 후우…….”
서문영은 긴장으로 땀이 줄줄 흘렀다. 그럼에도 피로한 눈을 부비며 다시 맑게 유지했다.
그는 파티의 눈이라 할 수 있는 패스파인더다. 눈이 밝은 그가 못 보고 놓친 지형지물을, 다른 일반 전투원들이 알아차릴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후우…….”
탁. 달그락. 타각.
그나마 그라서 이 정도지, 다른 사람 같으면 진작에 여러 번 골탕을 먹은 후 그냥 포기했을 터였다.
느릿느릿 밤길을 행군하던 중에 누군가가 투덜거렸다.
“어휴… 이게 무슨 고생이람.”
“그러게… 으윽…….”
사실 본래라면 이런 걸로 힘들어할 파티가 아니었다. 마법사야 어쨌건, 무인이 절반이나 되는 인원이었으니까. 여차하면 하나씩 업고, 경공술로 쭉쭉 주파하면 그만이었다.
문제는 부상이라는 변수가 발생한 거다.
불완전한 차원 간 게이트. 그걸 겪고 나서 파티원들은 크고 작은 내상을 입은 걸 뒤늦게 알아차렸다.
‘정말이지 죽을 뻔했다…….’
생각해 보면 그 정도로 끝난 게 천만다행이었다.
지진(地塵). 천무학관의 수업 때 배우기로는 땅속의 지각(地殼)이 비틀리거나, 혹은 비틀렸던 것이 바로 펴지면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했다.
꽈악 휘어진 활이, 화살을 쏘아 내고 난 뒤 투웅! 하고 크게 진동하는 것과 같다고.
깊은 땅 속의 거대한 바위 산맥 같은 덩어리가 그렇게 움직이면, 지표면에서는 산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자연재해급 현상이 일어난다.
그저 땅속에서 일어나는 흔들림에도 그 정도다. 한데.
차원 간 게이트, 아예 세상과 세상이 연결되어 있던 비틀림이, 갑자기 원래대로 돌아오면 무슨 현상이 일어날까?
‘버섯구름……. 이한이 막아 주지 않았다면…….’
무식해서 용감하달까. 당시에는 너무 놀라고 다급해서 오히려 몰랐다. 자신들을 비켜 간 충격파가 어느 정도의 위력인지를.
하지만 파티원들을 데리고 이동하면서, 서문영은 저 충격파의 물결이 대체 얼마나 끔찍할 수 있었는지 점점 알게 되었다. 대지가… 말 그대로 뒤집어져 있었으니까.
‘저 사람… 대체 뭐지?’
충격파의 위력을 새삼 알게 되며 서문영은, 아니, 운소령까지 점차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자신들을 보호해 준 건 이한-천마라는 걸. 그리고 그의 무위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걸.
‘최소 화경이야. 어쩌면 현경급일지도.’
천무학관의 수석 교두, 제운비라 하더라도 일격에 버섯구름을 일으킨 충격파를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그 충격파에서 자신들을 막아 낸 이한, 그의 무위는 대체 어느 정도라는 말인가. 아니.
애초에 저 사람이 이한이 맞기는 한가?
“운소령.”
까닥까닥.
선두에서 앞을 살피던 서문영이 손짓을 했다.
타박타박.
잔뜩 초췌한 얼굴을 하고 있던 운소령이, 피로한 기색으로 걸음을 빨리해서 따라붙었다.
“왜?”
“음.”
자박. 자박.
선두에서 요란하게 흙을 밟아 보다가, 서문영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의 짐작이 맞다면, 이런 건 아무 의미가 없을 터였다. 그래서 그는 다른 수를 썼다.
“손 좀 줘 봐.”
“손? 무슨… 서문영? 너……!”
운소령이 크게 당황했다. 갑자기 서문영이 그녀의 손목을 잡아채고, 그 손바닥을 간지럽힌 것이다.
“무슨 짓……?! 어? 음.”
갑작스러운 희롱에 화를 내려던 운소령은 곧 얼굴을 굳혔다.
-이한이 이한, 맞을까?
서문영은 그녀에게 장난을 치려던 게 아니었다. 그녀의 손바닥에 글을 써서 물은 것이다.
-왜 갑자기?
운소령은 그의 손바닥에 썼다.
두 가지가 합쳐진 질문이었다. 왜 이제 와서 새삼 이한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느냐, 그리고 왜 말로 하지 않고 이런 식으로 묻느냐고.
서문영이 기다렸다는 듯이 답을 썼다.
-소리를 죽이든, 전음을 보내든.
-최소 화경이니, 다 알아차릴 터.
“……!”
운소령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리고 조용히 끄덕였다.
그녀는 이 뜬금없는 말을, 정확히 이해했다. 사실, 그녀는 이한에 대한 의문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다.
태상고모. 제갈유진.
140년 전부터 무림맹의 군사를 맡은 시대를 초월한 거인이, 이미 여러 번 이한-천마의 존재를 극도로 의식하는 모습을 보여 왔으니까.
최소 화경.
그렇다. 서문영의 말대로 최소가 화경이었다.
고작(?) 화경의 고수 정도로, 제갈유진이 그렇게 극공경하는 태도를 갖출 리가 없으니까. 그러니.
스윽. 스윽.
-맞아. 아마도 탈마.
-탈마? 그건 무슨?
-마교의 무공 경지. 정파의 현경. 그중에서도 상위급.
“……!”
-그것도 아마 상당한 경지.
서문영이 눈을 부릅뜨고는 곧 한숨을 쉬었다.
“그렇구나… 역시…….”
하나하나 조각이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나름 확신을 가졌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운소령. 그녀에게 확답을 들으니 새삼 충격이 컸다.
덜덜덜. 휘청!
서문영은 새삼 등골이 오싹해 왔다.
현경. 그중에서도 상위급이라니.
천외천(天外天). 그야말로 까마득한 하늘 위의 하늘이다. 학과장 리그웨더와 같은 급 아닌가.
그런 그에게 자신은 어쨌더라?
이제껏 자신이 이한-천마에게 해 온 것들을 생각해 보면, 맞아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일들이 많았다.
‘현존하는 당대 최강의 고수…….’
하지만 대체 왜? 언제부터였을까? 수많은 의문과 두려움, 그리고 안도와 공포가 뒤섞여 어질어질해져 왔다.
탁.
“조심해.”
“아… 고마워.”
저도 모르게 휘청거리던 서문영은, 운소령이 붙잡아 준 덕분에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자칫하면 꼴사나운 모습을 보일 뻔했다.
“야, 거기 앞에 둘이 뭐 하냐?”
하지만 덕분에 뒤에 있던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아까부터 두 사람이 달싹 붙어서 손바닥에 글을 쓰고 있으니, 뒤에서 볼 때는 마치 손을 맞잡고 걷는 것처럼 보인 것이다.
“…벼, 별거 아냐.”
“아니긴? 별거구만.”
“이야~ 드디어 맺어지나 보네? 좋겠다. 누구는.”
하백운이 놀림 반, 질투 반으로 삐익, 삑! 휘파람을 불며 요란을 떨어댔다. 덕분에 서문영은 기겁을 했다.
“그, 그런 게 아니라……!”
“하백운, 좀 조용히 해 주겠어? 너무 눈치 없다?”
“……?”
그래서 운소령이 오히려, 자신에게 바짝 달라붙는 것에 더 당황했다.
-괜찮아. 오해를 사는 게 오히려 편해.
“…….”
-문제는 이한. 그의 의도야. 어째서인지 숨기고 있어. 그리고 그가 애써 숨기는데 우리가 아는 척하는 게 좋은 선택인지, 아닌지도 확실하지 않고.
삭삭. 사사삭.
운소령의 총기 어린 눈, 냉정한 얼굴에 서문영은 할 말을 잃었다. 괜히 머리가 복잡해지고 혼란스러웠다.
꾸욱.
‘손… 잡네. 진짜로.……?’
그저 그런 생각만 머리에 가득했다. 그러는 서문영에게.
“내상이 생각보다 깊어. 다들, 이번에 돌아가면 제대로 정양해야 할 것 같아.”
따끔하게 손바닥을 꼬집는 운소령.
“…그, 그러네.”
태연하게 다른 말을 하라는 의미다. 서문영은 북북 다른 손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정신을 다잡았다.
“그것도 그거고, 다음 번엔 취침할 경우의 채비도 차려야 할 것 같아.”
-그 말이 맞아.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지?
“취침 채비? 이런 곳에서?”
“이런 곳이라서 부상당할 경우를 생각 못 했으니까. 겪어 보니 이건 이거대로 문제야. 음… 여러모로 실전 경험이 되긴 하네.”
-빠르든 늦든 알려지게 되긴 할 거야… 주머니 속의 송곳은 결국 드러나는 법이니까. 숨긴다고 숨겨지는 게 아니니까.
겉으로는 일상적인 말을 하며, 손으로는 은밀하게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 두 사람.
-그… 러게. 요는 우리가 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거지.
쿵쿵. 쿵쿵.
서문영은 자기 심장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서 민망했다. 정말이지.
주머니 속의 송곳은 결국 드러나게 마련이다.
“쿨럭! 쿨럭! 으윽…….”
방윤이 고통스러운 기침을 토해 냈다. 뒤늦게 알아차린 내상이 제법 고통스러웠다.
“방윤, 괜찮아?”
“참을 만해… 너희들은?”
그 와중에도 마법사 두 사람을 살피는 방윤.
“어. 우린 괜찮아…….”
“센 척하기는. 아까도 아파서 쩔쩔매더니만.”
부담 주지 않으려 하는 이경. 그리고 그런 그를 놀리는 하백운.
일행은 크건 작건 내상을 입었다. 안타깝게도 내부의 기혈이 흔들리는 내상은 포션으로도 낫지 않아서 다들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으으윽… 으윽… 아파…….”
특히 당무련, 그녀는 들것에 실려 가면서도 조금만 출렁이면 죽는소리를 해대고 있었다. 당문의 오감 폐쇄가 해제되면서, 감각이 대폭 예민해졌기 때문이다.
사람이 발에 물집만 잡혀도 걷는 게 고통스러운 법이다. 그런데 당무련은 그런 물집이 전신에 주렁주렁 맺힌 것처럼 느껴졌다.
당연히 조금만 들것이 흔들려도 끙끙거릴 수밖에.
“아… 시끄러워 죽겠네. 그냥 재워 버릴까…….”
“하지 마! 죽는다! 너!”
마법사가 투덜거리며 하는 말에 당무련은 으르렁거렸다. 당문 사람의 살해 위협에, 하백운은 찔끔해서 말을 돌렸다.
“아니, 하도 힘들어하니까 그러지… 거참.”
“힘들어도 내가 힘들지! 네가 힘드냐! 하지 마! 했다간 죽여 버린다! 진짜!”
끙끙 앓으면서도 당무련은 고통을 악으로 버텼다. 지금 그녀는 벌모세수, 그 영향을 받는 중이었다.
천마-이한의 말로는 지금의 이 고통만큼, 나중에 신체의 잠재력이 더 상승한다고 했다. 그러니 절대 자거나 혼절할 수 없었다!
“끄으응… 끄으으…….”
그러니 아파도 버틸 수밖에.
그녀의 무위에 대한 욕구는 진심이었다. 차원 간 게이트 붕괴 때, 잠깐 기절한 것도 아까워서 다시 깨고 싶을 정도로.
“슬슬 주둔지가 보이는데…….”
“어디? 정말?”
“어, 너는 아직 안 보이겠지만. 저기 불이 밝아.”
소진이 발돋움을 해 보지만, 거기서 거기. 천마는 피식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들겼다.
“벽에 못 보던 게 써 있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白戰不殆)라고.”
“손자병법이네. 유장위 대협이 붙인 건가 봐.”
소진이 듣고 끄덕였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병법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손자병법. 혹 손자병법을 몰라도, 저 말 정도는 누구나 안다.
“유 대협이 손자를 엄청나게 좋아하거든. 그러고 보니… 손자도 참 기인(奇人)이야.”
“뭐가?”
“그 사람, 무장이 아니라 문사였거든.”
병법으로 유명한 손자. 그는 전국시대(戰國時代), 사방이 서로 싸우고 다투는, 피가 마를 날이 없었던 전쟁의 시기에 태어났다.
무장도 무인도 아닌, 한갓 문사였던 그는 고대로부터 있었던 수많은 전쟁의 기록을 찾아서 분석했고, 사람 한 번 죽여 본 적 없는 백면서생이 당대 최고를 논할 만한 전쟁의 전문가, 전략가가 되었다.
싸웠다 하면 지는 일이 없고, 그나마 손해를 본 경우조차 손자가 하는 말을 왕이 듣지 않았기에 벌어졌다.
-저자는 유리할 때만 싸우는 자다. 그러니 당연히 이기지 않겠는가.
그렇게 손자의 위명이 높아지자, 그를 헐뜯는 이도 나타났다. 억지로 까 내리려고 트집 잡은 말이었다.
-사실이오. 나는 이기는 싸움만 하지.
하나 기이하게도, 손자는 그 말을 듣고 오히려 쾌히 수긍했다 한다. 수많은 전쟁을 벌이고 많은 사람을 죽인 그는, 실제로는 전쟁을 최대한 피하는 사람이었다고.
-싸우기 전에 이긴다. 이겨 놓은 다음에 싸운다.
“허…….”
천마는 소진이 늘어놓는 장황한 손자 찬양을 듣다가, 턱을 쓸었다. 뭔가 생각할 거리가 많은 이야기였다.
왠지.
‘나하고는 정반대인데?’
그런 생각이 들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