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화. 발각 (2)
파티가 주둔지에 도착한 것은, 거의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 되어서였다. 급조한 도로를 지나 문에 다다르자, 바로 호각 소리가 울리고 불빛이 쏟아졌다.
자박. 자박. 삐이익!
“정지! 누구냐!”
찰칵. 쫘아악!
쇳소리가 들렸다. 그와 함께 랜턴이 강렬한 빛을 뿜어냈다. 컨티뉴얼 라이트(Cuntinuel Light) 마법이 걸린 물건인데 밝기가 굉장했다.
“천무학관! 2학년 엘리트 파티입니다! 파티장 서문영, 부장 운소령 외 7인! 순찰 마치고 복귀했습니다!”
서문영이 두 팔을 번쩍 들며 소속을 말했다.
“암구호! 지록!”
“위록! 입니다!”
찰칵. 두두둑.
소음과 함께 주변이 전체적으로 밝아졌다. 주둔지의 문을 여는지 쿵쾅거리는 소리도 함께.
그 와중에 천마는 문 위를 보고 턱을 쓸었다.
“호오…….”
방금 눈부신 빛을 뿜어낸 랜턴은, 뒤쪽에 금속 반사판이 달려 한쪽으로만 빛을 쏘아내는 물건이었다.
괜찮은 발상이었다. 보통 횃불이나 랜턴을 쓸 때는, 광원(光源)이 사방으로 빛을 뿌린다. 이 때문에 들고 있는 사람도 눈이 암적응이 되지 않아 상대가 잘 보이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관측자 본인이 빛에 노출되거나 하는 일이다. 하지만 저렇게 랜턴의 뒤에 거울을 장착하면, 빛은 한쪽으로만 쏘아진다.
관측자의 시야는 좋아지고, 대상은 더욱 눈이 부신다. 소소하지만 탁월한 발명의 조합이다.
‘확실히 학관이라는 곳은 배울 것이 많아.’
눈앞의 저 랜턴은 마법으로 만든 거지만, 그 원리는 그냥 등불을 쓰더라도 비슷하게 적용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언제고 천마학관(…….)이 세워지는 날에는 저런 조명 장비를 쓰는 것도 좋을지도.
“재미있네……. 근데 지록에 위록? 사슴을 보고 말이라고 주장한다는 거 아니었어?”
천마가 반문했다.
지록위마(指鹿爲馬).
사슴을 보고 말이라고 우기는 고사.
중원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바로 저 유명한 진시황… 의 아들 이야기니까.
호해. 아버지가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이라, 태어날 때부터 황제의 자리에 앉은 그는 아버지의 절반도 되지 못하는 어리석은 이였다.
그는 권신이자 간신인 조고에게 처참하게 농락당하는데, 그 대표적인 일화가 바로 지록위마다.
어느 날, 황제가 사슴을 사냥해서 잡고 내 솜씨를 봤느냐며 어깨를 으쓱거리자 조고가 말하기를.
-황제시여, 이것은 사슴이 아니라 말입니다.
하고 우겼다.
당연히 황제는 어이없어했다. 뿔도 달렸고 몸도 작으며, 무엇보다 몸에 난 반점이 사슴이 확실했으니까. 하지만 조고는 근엄하고 진지한 얼굴로, 동석한 신하들을 보며 일렀다.
-이것이 말로 보이는 자는 이쪽으로, 사슴으로 보이는 자는 저쪽으로 서 보시오.
대신들이 조고의 눈치를 보며 하나둘 우측으로 섰다.
조고는 진시황 때부터 입지를 천천히 잡아 나중에 그 권세를 크게 누린 공신이라, 감히 그의 눈 밖에 나기 두려워한 것이다.
이리하여 모든 대신들이 감히 사슴을 사슴이라 말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몰렸다.
백여 명을 넘어가는 대신이 모두 우측에 서자, 황제 호해는 급기야 자신이 잘못 알았나 하고 혼란을 일으켰다.
-…그래? 정말 말인가?
이 일 이후로 조고가 세력을 모아 기어코 반란을 일으키니, 충과 효를 으뜸으로 치는 유가에선,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어거지로 지록위마를 꼽는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입을 모으면 진실조차, 황제조차 속아 넘어가고 만다는 이야기.
“…하아.”
어쨌든, 천마의 물음에 서문영이 한숨을 쉬었다.
기분 같아서는 ‘당신 수업 시간에 뭐 했냐’고 묻고 싶었지만, 애써 다시 표정을 고쳤다.
“지록위마는 모르는 사람이 없잖아. 그러니 그걸 유도한 거야.”
“아하.”
애초에 암구호라는 건 숨기기 위한 것. 앞말을 듣고 뒷말을 추측하기 힘들수록 잘 만든 암구호다. 그런 면에서 지록위록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지록!
-위마!
-…너 이 새끼? 천무학관 소속이 아니구나! 쏴라!
-으악!
“…대충 이런 식으로 허가받지 않은 사람을 걸러 낼 수 있으니까. 언데드 천지인 이곳에서는 볼 일 없지만…….”
도플갱어처럼 사람 모습으로 둔갑한 몬스터들이 기어들어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는 그에 대한 안배라고.
“과연…….”
끼긱. 드드드득.
목책으로 두른 벽에 난 철문이 귀 거슬리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검을 찬 4학년이 하품을 하며 물었다.
“들어가. 왜 이렇게 늦었어?”
“부상이 좀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 알았다. 보고하러 가 봐.”
4학년이 귀찮은 안색으로 손을 내저었다. 말을 하려던 서문영은 머쓱한 얼굴로 고개를 숙여 목례했다.
“예, 수고 많으십니다.”
엘리트 파티든 뭐든, 어디까지나 이들은 2학년. 잘 봐줘도 3학년 수준. 4학년이 딱히 관심을 둘 리가 만무했다.
한데 그렇게 넘어가려던 4학년이 잠시 굳었다.
“…잠깐, 이거 뭐야. 부상자?”
들것에 실려 오는 당무련을 본 것이다.
“그러고 보니 너희들, 혹시 저주나 뭐 이상한 거 묻혀 온 사람 있어? 왜 꼭 이 늦은 밤에 들어오지?”
힐끗. 차라락.
눈짓하기 무섭게 문 앞에서 벌어지는 경계 태세.
찌릿. 찌리릿!
무기가 뽑히고 겨냥된다. 갑작스레 무인 특유의 살기와 마법사들 고유의 마나 파동에 피부가 저릿저릿해 왔다.
“있으면 지금 말해. 위험한 것이 주둔지에 전파되는 사태는 없어야 한다.”
주둔지 문을 담당하는 위병들은 전원이 4학년. 그들이 적의를 띠자, 2학년들은 전원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 갑작스러운 폭발에 휘말렸습니다. 부상 치료를 하려고 서둘러 온 겁니다. 저주나 이런 건 아니고…….”
“아아… 그렇군. 고생했다. 의무실로 가 봐.”
하지만 그런 살기는, 서문영이 말하기 무섭게 후르륵 풀려 버렸다.
조금 전까지 살벌하게 쏘아보던 위병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지루하고 귀찮은 기색만 역력했다.
변화가 너무 갑작스러워서 착각했나? 싶을 정도였다.
“…아니… 예, 감사합니다.”
주륵. 후드득.
하나 그게 착각이었을 리가 없다. 잠시 잠깐 솟아오른 식은땀이 미지근하게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서문영은 새삼 실감했다.
‘이게 바로 4학년과 2학년과의 격차…….’
고양이, 아니, 호랑이 앞에 선 생쥐가 된 기분이었다.
차라리 교관이나 교두였다면 이렇게나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초월적인 존재라는 생각이 강하니까.
하지만 같은 학관생. 고작 2년 터울 차이로 이 정도의 위압감을 느끼게 하다니. 대체 어떻게 2년 만에 저런 괴물이 된단 말인가?
“서, 서문영……! 그거!”
“어……? 허억!”
하지만 그런 경이의 눈은. 즉각 경악의 눈으로 바뀌었다. 운소령이 부르는 걸 돌아보자 같은(?) 2학년 이한이, 활짝 웃으면서 이마에 핏줄을 돋우고 있는 것이다.
“하하… 이거 진짜…….”
‘터진다!!!’
생각할 틈이 없었다. 자칫하면 최소가 하극상, 최악은 주둔지 전체가 날아갈 위기!
“너희들 아주… 어? 뭐 하냐? 서문영?”
와락!
천마가 버럭 하려는 순간, 서문영이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간발의 차였다.
“잠깐! 이한! 아주아주 잠깐만! 내가 할 말이 있는데……!”
그는 바로 돌입했다. 오는 길에 운소령과 상의했던 ‘이한 폭발 사태 대비’의 지침 중 하나대로.
‘저 사람, 터지면 큰일 나. 우리가 어떻게든 막아야 해.’
‘동감이야.’
딴에는 숨긴다고 숨겼지만, 이미 천마의 무력 수준은 파티원들 대부분이 눈치를 챘다. 그리고 그의 더러운 성미도.
그는 방금 4학년이 2학년을 무시해서 화난 게 아니다. 같잖은 것들이 자신을 무시해서 화난 거다. 그러니.
“그게, 우리가… 준비한 게 있거든? 오늘이 네 생. 일. 이잖아. 안 그래?”
“…오늘? 그랬나?”
천마가 주춤했다.
지금 몸의 주인, 이한의 생일이 언제인지, 거기까지 기억하고 있지는 않아서다.
“그래. 그래서 마침 맛있는 걸 좀 준비했는데. 생각 없어?”
운소령이 끄덕였다.
“음? 언제 그런 걸? 출발할 때 그런 얘기 없었잖아?”
“…생일이잖아. 당연히 놀라게 해 주려고 그랬지.”
서문영이 추가로 덧붙여 말한다. 그가 식은땀을 뻘뻘 흘리자 천마는 갸웃하다가 하하 웃었다.
“야~ 너무 심하다. 아무려면 내가 맛있는 거 준다고 다 까먹고 음식 따라가는 그런 사람 같아?”
“…….”
“…….”
“하지만 뭐~ 이번만큼은 넘어가 주지. 어디, 어디. 기대되는데?”
속으로 후유! 휴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운소령과 서문영은 눈짓을 주고받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오늘은 그의 생일이 아니었다. 이 안에 또 하나의 노림수가 있었다.
-무슨 소리야? 내 생일은 오늘 아닌데?
만약 천마가 그리 말했다면.
-아 그래? 잘못 알았네.
-어쨌든 음식 준비한 게 아까우니까 먹자.
그렇게 넘어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걸 쓸 일 자체가 없었다. 이게 뜻하는 바는 의미심장했다.
‘역시.’
‘겉은 이한인데 속은 이한이 아냐.’
거지나 고아가 아닌 이상, 보통 사람들은 자기 생일은 기억하는 법이다.
생일이란 주변 사람들이 알려 줘서 알 수 있는 것이다. 천무학관에 입학할 정도의 집안이라면, 관심과 기대를 받고 자랐을 테고, 당연히 자기 생일이 언제인지를 기억한다.
하지만 이한-천마는 자기 생일이 언제인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여기에 또 하나 더.
‘절대 고수.’
귀신이 씐 건지, 아니면 전생에 대단한 무인이었던 기억을 뒤늦게 떠올린 건지는 모른다. 확실한 건, 지금의 천마를 예전의 이한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
“그래서 준비한 음식이 뭐야?”
“어, 일단은 동파육.”
“오오~~”
동파육. 어느 지역에서는 삼겹살이라 부르는, 지방과 살코기가 서로 엉킨 부위. 그걸 솔잎으로 송송 구멍을 낸 다음, 간장과 각종 양념이 배게 하여 만드는 진미 중의 진미다.
“…가만, 동파육? 동파육이라고?”
“먼지 많이 먹고 다들 잿가루 범벅이니까 기름기 있는 것 좀 먹어야 될 거 같아서 준비했…….”
‘아차!’
말을 하다 말고 서문영은 섬뜩했다. 갑자기 천마의 얼굴이 심각하게 찌푸려져 있는 것이다.
‘제길. 너무 빠져들었다! 실수다!’
분명히, 출발하기 전에 준비해 뒀다고 말해 놓고 이게 무슨 모순인가. 뒤늦게 급조한 말이라는 게 너무 표가 나지 않는가!
이걸 어떻게 수습하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찰나.
“너네… 클클클. 마음에 든다. 아주 제대로 골랐는데. 이야~ 어쩌냐. 방윤? 공양물 버릴래? 아까운 음식을?”
“끄응…….”
“아! 너희들! 나한테 왜 이러는데!”
…다행히도 천마는 그런 어리숙한 부분은 짚지도 않았다. 그는 방윤을 놀릴거리가 생긴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워하고 있었으니까.
‘됐어, 서문영?’
‘알았어. 운소령.’
“뭐, 방윤이 먹을거리도 챙겨 볼게. 마파두부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눈빛을 주고받은 운소령이 파티를 인도했다.
“마파두부! 좋아! 난 그거면 됐어!”
“야야, 그러지 말고 먹어, 먹어. 삼불에 대해서는 이미 말해 줬잖아? 이야~ 오늘 좀 스님이 돼지고기 드시는 거 좀 보자고. 응? 응?”
“아악! 아파! 그만해!”
방윤과 천마가 드잡이질하는 사이, 서문영은 조용히 몸을 뺐다. 파티가 멀어져서 교수들의 주방으로 향하는 것을 보며.
‘교수님들께 보고해야겠어.’
천무학관의 수업 중에는 영혼 빙의나 전생자에 대한 내용도 있었다.
다만 기본적으로 방문좌도에 가까운 내용이라, 증좌 없이 전승과 전설만 읊으면서, 이런 초자연적인 경우도 있으니 참조해라, 는 성격의 교양수업이었다.
서문영은 대충 듣고 넘어갔지만, 관련 과목을 가르치는 교수들은 훨씬 더 많은 자료와 깊은 시각으로 이를 알아낼 수 있을 터.
‘최대한 은밀하게. 조용히 알려야 한다.’
서문영은 조용히 발을 옮겨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