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241화 (242/310)

241화. 발각 (3)

“아, 우선은 의료실로 가자.”

운소령이 일행을 이끌었다.

천마를 음식으로 꾀는 작전도 작전이지만, 다들 크고 작은 내상을 입었다. 치료는 나중에 어찌 다스리더라도, 우선은 진단을 받아야 했다.

의료용 막사는 제법 제대로 만들어져 있었다.

전투 인원들은 고작 가죽 천막을 쓰는 한이 있어도, 부상자들을 돌보는 의료 시설만은 최대한 공을 들이는 것이 천무학관의 방침이다.

덕분에 바깥의 찬바람은 전혀 들지 않았고, 오히려 약간 더울 정도의 따스한 공기가 감돌았다.

“2학년들이군? 이 시간에… 어디가 불편한가?”

안에 들어가서 대기하고 있자, 얼마 후 깔끔한 백의를 입은 의료 교관이 쓰윽, 피곤한 눈을 비비며 나왔다.

“어우, 어깨가…….”

“저는 속이 뒤틀려서…….”

하나, 둘, 자신의 증상을 말하고 교관이 그를 살폈다. 차례를 기다리는 일행들은 벽난로 옆의 열기에 뜨끈하게 몸을 녹였다.

타닥. 타닥.

땔감은 장작이 아닌 숯이었다.

어둠 땅 인근은 제대로 된 땔나무를 구하기도 힘들고, 장작이 타는 연기는 환자의 환후에 좋지 않다. 그렇기에 의료 막사는 기본적으로 숯을 때어서 온기를 유지한다.

한참을 진맥하고, 마법으로 내부를 살피고, 한 끝에 의료 교관은 고개를 갸웃했다.

“…다들 겉은 멀쩡한데 내부가 진탕되었군. 그것도 심하게. 뭔가? 골렘에라도 부딪혔나?”

“하, 하하…….”

파티원들은 애매하게 웃었다.

실제로 골렘을 만나기는 했다. 그것도 자그마치 황금 골렘을! 하지만 차마 사실대로 말하기는 어려웠다. 엮인 게 너무 많아서다.

“정작 신체는 위태롭지 않은데 내부에 자잘한 내출혈이 많아. 이 정도면 거대한 충격량에 노출되면서도, 충분한 방호도 함께 있었다는 건데……. 재미있군. 대체 무슨 일을 겪은 겐가?”

“그게,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서……. 아, 왜?”

방윤이 눈치 없는 말을 꺼내다 말고 운소령에게 꼬집혔다. 아무리 소림승이라도 여자의 꼬집기는 아팠다.

“흠… 말하기 힘든 사정이라도 있나 보군?”

“예, 죄송합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아니, 이해하네. 하도 듣는 귀들이 많아서 말이지. 그리고 병상에 누워 있으면 입들이 가벼워지거든.”

의료 교관이 스윽, 보란 듯이 주변을 훑었다.

스슥. 스슥.

귀를 쫑긋하며 뭐 재미있는 거 없나, 하고 듣고 있던 학관생들이 누운 채 몸을 돌린다.

아파서 누워 있는 사람만큼 입이 간지러운 사람도 없다. 그리고 삼인성호(三人成虎)라 하여, 말하는 입이 많으면 없는 호랑이도 만드는 법.

자칫하면 실제와는 다른 소문을 와전시키는 법이다. 의료 교관은 그런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작전의 중요한 기밀을 병동에서 입에 담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지. 오크 한 마리 잡았다는 소리가, 삽시간에 오거 한 무더기로 변해서 번져 나갈걸?”

“해량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운소령이 고개를 숙였다.

차원 간 게이트가 불완전해서 일어난 대폭발.

그건 어설프게 말했다간 난리가 나기 십상이다. 새로운 몬스터 웨이브를 의미하니까.

거기에다 하필이면 천마 일행이 겪은 일들은 어마어마하게 자극적인 일투성이였다.

황금을 바닥짐으로 쓰던 이국의 배. 벌떡 일어나서 공격해 오던 황금의 골렘. 그리고 배 전체가 살아 있는 생물처럼 변이하며 포화를 쏘아 내던 유령선 등.

들었다간 잔뜩 흥분해서 학관생들이 뛰쳐 나갈 사건들이다. 대부분이 혈기왕성한 청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흥분한 군사는 겁먹은 군사보다 더 통제하기 어려운 법. 자칫하면 선임이나 지휘자의 명령도 안 듣고 뛰쳐 나가게 된다. 그리고 그 끝은 거의가 죽음이다.

운소령은 제갈세가 출신이라 당연히 이런 군무에 관한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의 선조는 애초에 군무에서 이름을 날린 이들이니까.

“어… 으음……. 그렇군.”

방윤이 민머리를 긁으며 자신의 실수를 반성했다. 뒤늦게 자칫 무슨 일이 일어날 뻔했는지 알게 된 것이다.

“이 소저는 여기 있어야겠는걸? 주변을 가리고 소음과 빛을 차단하는 게 낫겠어. 통증은 중요한 신체 증상이지만, 심하면 사람을 죽이기도 하니까… 어쨌든 축하하네. 당문이 복이 많군.”

보통의 의원이 아니었다. 당무련의 증상을 보고는 바로 척 하고 진단을 내린 것이다.

하기야, 천무학관에서 필드 던전에 보내는 의료 교관이 보통 평범한 사람일 리 없지만.

“…네에.”

당무련이 간신히 고개를 끄덕여 인사했다. 그러고는 다시금 끙끙 앓았다. 잠깐의 가벼운 움직임에도 고통스러워하는 그녀였다.

“그리고 불행 중 다행으로, 다들 내상은 있지만 거동해서는 안 될 정도로 심하지는 않네. 기분 같아서는 부상이 치유될 때까지 누워서 죽만 먹으라고 하고 싶지만… 그랬다간 죽 때문에 죽을 수 있으니까. 후후후.”

“하하…….”

시시껄렁한 소리를 하고는 혼자서 웃는 의료 교관.

농담에 대한 감각은 영 이상한 것 같았지만, 그래도 그는 현실을 아는 사람이었다. 젊은 청년들에게 얌전히 몸 조리하라는 것만큼 힘든 주문도 없다.

병상에 누워서 정양해야 할 심각한 부상이 아닌 이상, 차라리 먹고 싶은 것 먹고 적당히 회포를 풀게 하는 게 낫다. 누르면 튀어오르는 용수철 같은 게 젊은 사람이다.

“좋아, 동파육이 기다린다! 당무련은 고생하고~.”

“으으…….”

아무리 거친 음식도 가리지 않고 잘 먹는 천마지만, 그래도 벌써 며칠째 야외에서 페미컨만 먹고 있으니 물리는 것이 당연했다.

그에 의료 교관은 한마디를 더했다.

“동파육이라……. 뭐, 간을 연하게 해서 천천히 먹으면 그것도 나쁘지 않지. 너무 많이 먹지는 말게. 자네들은 분명히 내상을 입은 환자들이야.”

“알겠습니다!”

학관생들은 희희낙락하며 우루루 빠져나갔다. 그런 그들을 보며 의료 교관은 고개를 내저었다.

분명, 저들 중 한 명 이상은 내일이나 모레쯤 과식으로 인해 탈이 났다며 찾아올 터다. 그의 월급을 걸 수도 있는 일이었다.

* * *

“아니, 근데, 그러고 보니까 진짜 동파육 있는 거야? 여기 야지잖아?”

의료 막사를 나와서 운소령이 식당으로 향하자, 천마가 뒤늦게 갸웃했다.

생각해 보니 그동안 보급받은 식량이라고는 페미컨이 전부였다.

이제껏 구워 먹고 삶아 먹고 죽으로 풀어 먹는 등, 맛을 여러 가지로 바꿔 보긴 했지만, 그래 봐야 페미컨이 페미컨. 군량으로 보급되는 만큼, 솔직히 맛은 좋다고 하기 힘들었다.

“그건 우리가 2학년이라서 그래.”

“…차별?”

“아니, 거기까지는 아니고. 가장 혹독한 상황을 한정해서 경험을 쌓게 하려는 이유라나.”

소진이 설명했다.

천무학관에 들어오는 학생들은, 대개가 귀한 가문이나 부유한 집안 출신이다.

그런 그들에게 페미컨, 극한의 상황에서 먹고 버텨야 하는 군량을 먹어 본 경험은 부족하다. 그러니 일부러 필드 레이드 나왔을 때 그런 경험을 쌓게 하려는 것이다.

“훈련은 실전같이, 실전은 훈련같이. 그런 말도 있잖아?”

학관의 학관생들은, 언제고 전쟁을 치르러 나가야 하는 예비 군인들이다. 혹은, 야지에서 몬스터를 처치하며 돌아다니는 헌터 예비생이다.

그저 괴롭히고 차별하는 수단으로 쓰였다면, 아예 1학년 때부터 삼시 세끼 페미컨만 먹였을 것이다. 사람을 길들이기에 가장 손쉬운 것이 음식이니까.

“학관생들은 필드 활동 때 페미컨 배급이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교수님이나 교관님들까지 그렇지는 않지.”

저벅저벅.

주둔지 중앙으로 가자, 본부 옆에 조금 떨어진 건물이 있었다. 늦은 밤임에도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고, 향긋한 음식 냄새가 풍겼다.

“교수 식당……? 우리 여기 들어가도 되는 거야?”

천마가 왠일로 눈치 있는 소리를 했다. 소도 뒷걸음치다 쥐를 잡기도 하는 법이다.

“당연히 되지. 쟤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소진이 핏, 하고 웃었다. 운소령을 턱짓하며.

“어서 오십쇼. 몇 분… 뭐야, 학관생이잖아?”

“안녕하세요, 저기…….”

일행이 식당에 들어서자, 조교로 보이는 사람이 인상을 썼다. 운소령이 손짓하며 일행을 자리에 앉으라 했고, 그러고는 주방쪽으로 가서 숙수로 보이는 사람에게 뭔가를 보여주며 말을 했다.

“아, 그래? 알았어. 동파육이……. 음, 남은 게 조금 있군.”

“죄송합니다. 늦은 시간에.”

“이런 걸로 뭘. 어차피 밤참 드시는 분들도 많은걸.”

“…허.”

간단한 실랑이랄 것도 없이 상황이 정리되자, 천마는 감탄했다.

“이렇게 간단하게?”

“제갈세가의 사람이잖아.”

소진이 뭐 대수냐는 식으로 말했다.

무림맹이든, 천무학관이든, 제법 큰 단체에 끼치는 제갈가의 영향은 무시할 수 없다. 운소령은 따로 특식을 먹고 싶다면, 그냥 말만 하면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제껏 그러지 않았다. 천마는 그에 감탄했다.

“…대단한데.”

운소령이 가진 권력이 아니라, 그런 권력을 가지고도 쓰지 않은 자제력에.

음식을 조금이라도 맛있게 먹고 싶어 하는 것은 사람의 본능이다. 아예 못 먹을 처지도 아니고, 손만 뻗으면 가능한 일인데, 그걸 연 단위로 참는다는 건 보통이 아니다.

“난 네가 더 대단한걸. 이한.”

그런 그를 보고 소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부잣집에서 자랐으면서, 이런 필드에서 페미컨만으로도 세끼를 잘도 때웠잖아. 남기는 것도 없고.”

“…음식을 버리는 건 죄악이니까.”

“그걸 누가 몰라? 알아도 하기 힘든 건데. 입맛이라는 게.”

“그건… 아니, 뭐. 됐다.”

소진의 말에 천마는 쓴웃음을 지었다.

마교는 무수히 탄압받는 역사를 겪었다. 항시 척박한 땅에서 살았고, 그들에게 먹거리는 곧 생명이었다.

적어도 그가 교주로 있었을 당시엔, 맛없다고 투덜거릴지언정 음식을 버리는 자는 없었다. 그건 너무도 당연한 일었다.

‘교단이 겪은 역사를 부정하는 일이니까.’

기아(飢餓)의 역사. 그것이 천년마교의 그림자였다. 그들은 한때 죽은 사람의 시신까지 먹었었다.

그런 선대의 역사를 기억하는 이상, 맛이 있건 없건 음식은 남기면 안 되는 귀물(貴物)이었다. 멀쩡한 음식을 내버린다는 것은, 적어도 천마신교에서는 품행이 글러먹은 망나니였다.

‘…벌레 끓는 양고기를 안 먹어 본 놈은 모르지.’

그건 천마 역시도 그랬다. 그는 미식가였지만, 동시에 악식도 잘 먹는 사람이었다. 마교가 태생부터 가졌던 궁핍함이 떠올라, 왠지 모르게 감상적이 되는 시간이었다.

“…저거 뭐야?”

그래서인가. 문득, 교수 식당 한쪽에 걸린 글자를 보고 천마는 갸웃했다.

승적익강(勝敵益强)

용사비등할 듯 훤칠한 서체로 쓰인 한 줄의 문구였다.

“…손자병법이네. 유장위 대협이 쓴 건가 봐. 그분이 손자의 추종자거든.”

소진이 보고 끄덕였다.

-적을 깨뜨리고 그 재물을 취해 더욱 강해진다.

1+1은 2가 아니다. 4다.

내(1)가 얻은(1) 만큼, 적(1)은 빼앗기거나(1) 약해진다. 적어도 손자는 그렇게 보고 있었다.

그는 수많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장수였지만, 동시에 전쟁을 극도로 기피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전쟁에서 신속한 승리만큼 귀중한 것은 없다.

-백전백승이 최선이 아니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이다.

“소 한 마리 잡아 본 적 없는 문사지만… 수많은 무장들을 이끌고 승리한 사람이니까.”

소진이 발그레한 얼굴로 말했다. 사실, 유장위보다 어떤 면에서는 훨씬 더 손자에 빠져 있는 것이 그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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