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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242화 (243/310)

242화. 발각 (4)

그런 날이 있다. 하루에 몇번이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자꾸 듣게 되는 경우가.

손자처럼 역사에 길이 이름을 남긴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 공산이 크다. 천마는 오늘이 마침 그런 날인가 싶었다.

“…그래서, 그때 오나라 왕 앞에서 뭐라고 했냐면…….”

소진이 발갛게 상기되어 떠들어댔다.

평소 같으면 시끄럽다고 닥치게 하겠지만, 동파육이 나올 때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그래서 심심풀이 겸 듣고 있자니, 의외로 제법 이야기가 재미있다. 그중에는 천마도 처음 듣는 이야기가 있었다.

“허? 오나라 왕 앞에서 그 애첩을 죽였다고? 진짜?”

“미쳤다… 완전 간이 부었어…….”

“대담한 거지! 자기가 믿는 것에 확신이 있었고!”

천마만이 아니라, 파티의 다른 사람들도 소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소진은 크게 기뻐하며 제가 아는 지식을 늘어놓기 바빴다.

“흐음… 대단하네. 무장이나 무인도 아니고 문사가…….”

“그렇지? 그렇다니까!”

“하하…….”

방방 뛰는 소진을 보고 천마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간 어지간히도 관심이 고팠는지, 조금만 호응해 줘도 저 난리다. 진작 좀 챙겨 줄걸 하는 생각도 들면서, 동시에 한번 챙겨 주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이 귀찮아진다는 생각이 함께 들었다.

‘손자병법……. 그러고 보니까…….’

천마도 예전에 병법을 익힌 적이 있었다. 손자만이 아니라 오자, 춘추, 고대의 전사에서는 배울 점이 많았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마교의 교주는 학식 없이는 오를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니까.

‘기억이 안 나네… 어째서지?’

그런데, 한때는 분명히 달달 외웠었는데 지금 와서 떠올리려니 머리에 안개가 낀 듯 흐릿하다.

애초에 병법은 조금 파다가 말았기 때문일까?

하기야 불패의 신장 손자와 무적이었던 천마는, 비슷하면서도 추구하는 방향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싸웠다 하면 무조건 이기는 장수, 손자.

그는 정작 싸움을 싫어했다. 싸우기 전에 먼저 이겨 놓고 싸우는 장수였다.

천마는 그 반대였다. 질지도 모를 상대. 승산이 희박한 상대에게 오히려 싸움을 걸었다.

까닥하면 죽는 위기. 그런 위기 속에서 자신을 불태웠고, 그걸 즐겼다. 그렇다고 천마가 그냥 부나방처럼 위험한 즐거움에만 빠져서 그랬냐면… 아니었다.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

천길 낭떠러지에서 한 발을 더 내딛는 것.

그게 진정한 용기다. 무인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다. 숨이 가빠 죽을 것 같은 상태로 한 번의 칼질을 더 하는 것.

그게 한계를 넘는 거다. 어마어마한 신체적, 심력적 소모를 가져오지만 그런 경험이 무인을 크게 성장시킨다.

애초에 천마도 처음부터 절세 고수였던 건 아니었다. 그 역시 수많은 싸움과 경험을 통해서 차곡차곡 성장했었으니까.

“…그래서 이한, 그런 전사에서…….”

“아, 이제 그만 좀 하자.”

천마는 이제 슬슬 질려 가던 참이라, 손을 내저어 소진의 입을 다물게 했다.

드르륵. 드르륵.

때마침 기다리던 동파육이 나오기도 했고.

“손자가 대단한 사람인 건 알겠는데, 그건 그 사람 길이지 내 길은 아니라고. 이겨 놓고 싸운다? 전략으로서는 좋을지 모르겠는데, 무인으로서는 내키지 않아.”

승패는 뚜껑을 열어 보기 전에는 모른다. 그래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손자의 생각은 천마 자신과 맞지 않았다.

이미 이겨 놓고 싸운다? 압도적으로 이길 자신이 있는 상대하고만 붙는다? 아니, 약한 놈 괴롭히기도 아니고 그런 놈하고 애초에 왜 겨루나?

싸운다면 강한 놈하고 싸우고 싶었다. 그 강한 놈을 약하게 만들기 위해 쓰는 술수라는 것이…….

“모략이나 암계 같은 건 싫다고. 이간계, 반간계, 첩자질. 그런 뒷공작이나 비열함은 나는 싫어.”

아, 말하다 보니 기억이 났다.

천마가 병법을 내던져 버린 이유. 그건 바로 저런 까닭이었다.

손자에게 있어서 승리는 지극의 선. 그는 이기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적국에 뛰어난 인물이 있으면 소문과 계책을 써서라도 약화시키고, 파벌 싸움을 유도해서 스스로 구국의 영웅을 내치게 만든다.

그런 것을 적극 권유하는 것이 손자다. 그리고 그 음습함이 담긴 사상이 혁신적인 전략의 요체라고 숭상받는 것이, 천마는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자서가 어떻게 죽었는지 다들 알잖아? 미인계에, 뇌물에, 이간계에 당했었지. 전쟁의 승리를 위해서 적국의 고결한 인물을 몰락시킨다? 뭐냐, 그게?”

오자서. 재야의 인사였던 손자를 오나라 왕에게 추천해서 장군으로 만들었던 이.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손자가 제창했던 암계와 모략에 당해 파국을 맞는다. 미인계와 이간계에 당해서.

역설적으로 손자의 가르침을 가장 잘 배운 이는 그가 키워 낸 오나라가 아니라, 오나라에 패배했던 월나라 소속이었었다.

오나라 왕 부차는 월나라 출신의 애첩에게 휘둘려 선대의 충신이었던 오자서에 대한 신임을 접는다.

또한 오자서 본인이 물심양면으로 키운 백비가 월나라의 뇌물을 받고 변심하여 오자서를 공격한다.

결국 한때의 풍운아였던 오자서는, 저잣거리에서 처형당하게 된다. 자승자박이라고 하기에는, 뒷맛이 지나치게 씁쓸한 이야기다.

그는 정말 영웅이라고 불려도 모자람이 없는 이였는데.

“…….”

“…….”

쩝쩝쩝!

분위기가 삭막해졌다. 천마가 동파육을 맛나게 먹어 치우는 동안, 아이들은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암계… 모략이라…….”

“흐음…….”

손자의 사상. 승리에 대한 갈망은 분명 무인만이 아니라 범인까지 포함한 것이었다.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전쟁을 빨리 끝내라고 하는 것은,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가 힘없는 양민, 국민들이기 때문이다.

하나 그래서 양민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때로는 비도덕적인 일, 타국의 왕을 타락시키고, 능력 있는 재상을 거짓으로 몰락시키는 일까지 정당한 것인가?

“아미타불… 아미타불…….”

얼마나 생각에 빠졌는지, 방윤은 불호를 연호하며 우물우물 음식-공양받은 것-을 씹고만 있었다.

“…….”

“…….”

그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들 생각에 빠져 있었다. 뒤늦게 방윤의 입에 마파두부만이 아니라 동파육도 몇 점 들어간 걸 보았지만… 차마 그걸 지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한은… 좋겠다.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서.”

그건 때마침 불쑥 튀어나온 말. 소진이 눈시울을 붉히며 작게 중얼거린 말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강한 사람에게 이길 수가 없거든. 비열하든 야비하든… 수를 가릴 형편이…….”

툭. 투둑.

소진의 눈가에서 결국 눈물이 떨어졌다. 모두의 입맛이 싸악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 * *

첨벙. 쏴아악!

“으아~~~ 좋다…….”

뜨겁게 데워진 물이 전신을 짜릿하게 자극했다. 식사에 이어 뜨거운 목욕이라니. 주둔지에서 맞기에는 실로 호화스러운 하루의 마감이었다.

첨벙. 첨벙.

맑던 물에 대번에 시커먼 땟국이 둥둥 떠올랐지만, 원래라면 대충 몸을 씻고 그다음에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는 것이지만, 그런 걸 신경 쓸 그가 아니었다.

“거참… 애새끼가 진짜… 어휴!”

뜨끈한 목욕물조차 아까의 꿀꿀하던 분위기와 상념을 날려 버리기엔 다소 무리가 있었던 것이다. 천마는 새삼 자신을 부러워하던 소진의 얼굴이 떠올라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생각해 보면 이한, 이 몸의 주인 역시 그런 생각을 했을 텐데 싶어서.

“…운이 좋았던 건가.”

그리고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다.

전생의 천마, 그가 차곡차곡 적수를 찾아서 무위를 올렸던 그 길이 정말 순탄했었다는. 그간 안 죽은 게 용하다 싶기도 했다.

본래 나 좀 세다고 나대는 놈은, 빨리 죽어버리게 마련이다. 극마입네 탈마입네 하고 깝치다가, 어느 순간 현경 끝자락의 은둔 고수가 튀어나와 목을 똑 떼 갈지도 모른다.

강호는 그런 곳이다. 숨겨진 기인이사가 강가의 자갈처럼 많은 곳.

당장 천마 자신도 말년에는 교단을 팽개치고 수련에만 빠져들었으니 그런 은둔 고수에 속한다.

‘애초에 승산을 따져 보고 싸우는 것도 아니었으니… 아니, 잠깐. 따졌었나?’

멈칫.

거기서 천마는 조금 헷갈렸다.

무럭무럭.

뜨거운 물이 피워 올리는 안개. 그건 지금 그의 머릿속의 혼란과 같았다. 난데없이 잊어버리고 있던 그림 하나가 떠올랐으니까.

-허억… 허억… 피해야 해…….

-제기랄. 갚아 줄 테다……. 반드시… 크윽……!

“…어.”

불끈.

갑자기 당시의 기분이 떠올랐다.

치욕. 분노. 설움. 막막함 등이.

차가운 눈보라 속에서 덜덜 떨며 몸을 숨기던 자신이 있었다. 부끄럽게도, 긴장감에 숨도 못 쉬고 시체인 척하며 적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그랬다. 떠올려 보니 분명 그런 적이 있었다.

패해서 도망치고, 훗날의 복수를 꿈꾸며 이를 갈았던 적이.

“…하하.”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하기야 어째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타고난 재능이 있다고 해도, 스스로 노력하려는 향상심이 없으면 성장할 수 없다.

‘무패였을 리가 없지. 내가.’

그리고 향상심은 자신의 부족함, 혹은 거대한 누군가의 그림자를 보고 가지게 되는 것이다.

무인에게 있어 좋은 적수가 좋은 친구만큼 귀한 것은 그런 까닭이다.

그리고 천마의 향상심은 유달리도 강했다.

‘강해지고 싶었지.’

한참 때의 그는 수련, 싸움, 또 수련, 또 싸움. 폐관 수련 한 시간만 수십 년이 될 정도였다. 싸운 횟수? 만 번까지는 모르겠고, 적어도 수천 번은 되었지 싶었다.

정말이지 무던히도 싸우고 다녔고, 이긴 것만 기억하지만 사실은 그중에 깨져서 도망친 적도 있었을 테고.

거기서 문득, 천마는 이치가 맞지 않음을 느꼈다.

“…어라?”

전생의 그가 가진 향상심, 강해지고 싶다는 열망은 활화산처럼 뜨거웠다. 그렇다면.

애초에 왜 그렇게 강함에 목숨을 걸었던가. 왜 지겨운 수련과 살벌한 싸움으로 수십 년을 보냈던가.

“…….”

분명 이유가 있을 터였다. 그런데 그게 떠오르지 않았다.

전생의 그가 끊임없이 강함을 추구했던 이유. 극마를 지나, 탈마의 통달에 올라서서도 여전히 만족하지 못했던 이유.

결국 신마경이라는 전대미문의 경지에, 그가 가진 모든 것을 털어 넣었었던 이유.

‘…처맞았었나?’

알 수 없다. 기억이 너무 흐릿했다.

애초에 이혼대법으로 백사십 년 뒤의 어린 소년의 몸에 건너온 영혼이다. 당시에 이한의 몸에 들어올 때, 천마는 최우선으로 무예와 심법만을 가지고 넘어왔다.

작은 찻잔에 한 바가지의 물을 부어 본들, 남는 것은 찻잔만큼의 물뿐. 그래서 당시에 천마는 거의 모든 기억을 흘렸고, 성격마저 애새끼처럼 변해 버렸다.

“으음…….”

첨벙. 첨벙.

생각해 보면, 그의 전생은 여러 가지로 말이 안 되었다.

천마는 마교의 교주였다. 그리고 교주는 그저 무력만 강해서 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말년에 모든 것을 내버리고 교단을 팽개쳤지만, 그건 거꾸로 생각해 보면, 한때는 교단을 애지중지해서 지키고 아꼈다는 이야기다.

그랬는데 대체 왜?

“…내 예전 삶이라…….”

그냥저냥 그렇게 태어나는 무공광은 없다. 천마가 그토록 열심히 싸우고 수련했던 데에는, 분명히 중요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아마도 정략, 혹은 암계나 모략이 관련되었을 것이다. 천마는 오랜만에 자신의 과거를 찾으며 오래도록 고뇌에 빠졌다.

“아, 젠장…….”

그러다 뜬금없이 탄식을 터뜨렸다.

“땡중이 놀려 먹을 기회인데 놓쳤다…….”

부그르르륵.

통탄하며 탄식하는 그의 얼굴이 물속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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