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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243화 (244/310)

243화. 발각 (5)

한편.

파티에서 떨어져 나온 서문영은 지휘통제실-주둔지의 가장 심처로 향했다. 그리고 제지당했다.

“뭐야, 너?”

교두들 숙소 앞에서 4학년 당번병이 물었다.

다크서클이 퀭하게 들어간 얼굴. 척 보아도 엄청 피곤해 보이는 행색이다.

“2학년 엘리트 파티. 파티 리더 서문영. 제운비 교두님께 보고할 것이 있어 왔습니다.”

서문영은 주저 없이 자신을 밝혔다.

“헐.”

당번병은 햇병아리를 노려보았다.

그의 귀에 들어온 건 엘리트 파티고 뭐고, 상대가 2학년이라는 말뿐이었다.

“너 인마… 개념이 없냐, 아니면 생각이 없냐? 지금 시간이 몇 시야? 자시(새벽 1시) 다 넘어서 축시(새벽 세시)인데. 고작 2학년이 하늘 같은 수석 교두님을 이 야밤에 찾아와? 정신 나갔냐?”

“…….”

서문영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따지고 보면 ‘수석’ 교두라는 말은 상리에 맞지 않는다. 애초에 교두(敎頭)라는 말 자체가 교관들의 우두머리급이라는 뜻이니까.

물론, 서문영은 여기서 그런 걸 지적할 만큼 맹탕은 아니었다. 그저 할 말만 했다.

“중차대한 일이라 긴급히 보고를 드려야 합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하이고~ 2학년 주제에 무슨 긴급한 일?”

당번병은 그저 헛웃음만 쳤다. 그는 서문영이 얼마나 진지한 얼굴을 하건, 자세에 각을 잡건, 그냥 우습기만 했다.

“뭔 일인데? 일단 나한테 말해 봐. 들어 보고 교두님께 보고할 일인지 아닌지 판단해 줄게.”

별거 아닌 일로 교두를 깨웠다가, 나중에 불호령 떨어지면 혼나는 건 그다.

그래서 웃으며 말했지만, 서문영은 진지했다.

“외람되지만 선배님, 이건 직보입니다. 교두님께 직접 상신할 보고를 먼저 받으실 권한이 있으십니까?”

“아니, 이 새끼가 진짜…….”

“아직 2학년이긴 하지만, 저는 파티 리더입니다. 원래 파티 리더의 판단으로 긴급 상황일 경우, 담당 교두에게 직보하는 것이 맞지 않습니까?”

“아… 미치겠네.”

당번병이 얼굴을 쓸어내렸다.

원칙상으로는 지금 서문영이 하는 행동이 맞다. 2학년이든 어떻든, 현장에서 직접 무언가를 목격한 이는 최고위 교두에게 직접 보고를 해야 한다.

험지에서 애들 통제하기에도 바쁜 고학년이나, 조교, 교관들은 때때로 중요한 보고인 줄 모르고 뭉개 버리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귀찮아서.

하지만, 과한 염려로 인한 피곤함이, 방심하고 있다가 맞는 재난보다 낫다.

모든 문제는 이런 사소한 귀찮음에서 발생하는 법이고, 그래서 천무학관은 이런 규정에 대해서 명확하게 규정해 놓았다.

“책임 소재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문책을 당해도 저희가 당하는 일입니다.”

“늬들 주제에 문책을 받긴 뭘 받아? 애초에 그럴 깜냥도 안 돼… 응? 뭐야?”

당번병은 짜증을 내려다가 서문영이 내민 표식에 안색이 변했다.

은박이 새겨진 목패, 거기에 상감된 뚜렷한 학의 그림.

“제갈세가… 너, 이거 어디서 난 거냐?”

이건 절대 무시 못 할 가문의 문양이다.

제갈세가는 대대로 무림맹의 군사, 혹은 그에 준하는 요직을 맡아 온 가문이다.

그들의 인맥은 장난이 아니고, 인맥에 의지한 부탁은 보통 무게가 아니다.

“저희 파티에 제갈세가의 사람이 있습니다. 운소령이라고.”

“아, 2학년 수석… 그래, 그랬었지…….”

조교가 끄덕였다. 2학년이건 뭐건, 지금 내밀어진 목패는 제갈세가의 보증이다.

이것까지 무시했다간 일개 당번병, 교두의 심부름꾼처럼 붙어 있는 고학년 하나쯤은 두고두고 고생한다.

“…너, 이거 진짜 별거 아니면 나중에 죽는다?”

“알겠습니다.”

어쩔 수 없어진 당번병은 서문영을 뒤로하고 투덜거렸다.

“아놔… 진짜, 오늘이 뭔 날이냐……. 무슨 급보가 계속해서 들어와…….”

그는 오늘따라 일이 많았다. 그래서 피곤했다. 그게 아니라도 그의 불평은 타당했다.

필드 레이드에 처음 나온 2학년이 발견하는 큰일? 그런 게 통계적으로 몇 개나 있겠는가.

그리고 2학년이 그런 걸 발견할 동안 3, 4학년, 혹은 조교나 교관들은 노나? 얼척이 없는 소리다.

연차에 따른 실력은 그냥 저절로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필드의 불온한 공기, 위험한 분위기는 경험이 많을수록 더 잘, 빨리 알아차린다.

그게 안 되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진급도, 그리고 조교 자리를 맡지도 못하고 도태되는 법이다.

대개의 경우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그래서 필드에 처음 나온 2학년은 요란을 떤다.

뭐, 햇병아리 수준에서야 처음 보는 대규모 몬스터 무리나, 혹은 주변 지형의 격변이라든가, 그런 게 심각하게 보일 수 있다. 장차 닥쳐올 끔찍한 일의 전조- 이를테면 몬스터 웨이브의 발생 조짐 같은 것으로.

하지만 짬이 차고, 연차를 먹으면 먹을수록, 2학년 햇병아리 때의 놀람은 점차 무뎌진다.

몬스터가 떼를 이루어 우글거리는 경우는 의외로 많고, 중원은 은근히 지진 피해가 잦은 지역이다.

그래서 바짝 긴장해서 요란을 떨지만, 그 시기를 넘어가서 경험 좀 쌓이게 되면 아무것도 아닌 그저 헛소동이 열에 아홉이란 걸 알게 된다.

이런 걸 타성에 젖는다는 것으로 말할 수 있지만, 규범과 규칙 다 지켜 가며 살기란 심히 피곤한 일이다.

“교두님께서 보자신다. 들어와.”

“감사합니다.”

얼마 후,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당번병이 말했다. 서문영은 절도 있게 인사하고, 제운비의 침소로 향했다.

파락.

두터운 가죽 천막. 그걸로 대충 마무리해 둔 야전막사. 그 안에 제운비는 서탁에 기대어 서류를 읽고 있었다.

완전무장을 한 채로.

“유장위…….”

부르르르.

주먹이 떨린다. 제운비는 뭔가 잔뜩 찌푸린 얼굴에, 고뇌에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얼마나 머리가 복잡한지, 서문영이 들어온 것도 모르고 있을 정도였다.

“음, 크흠. 2학년 엘리트 파티. 리더 서문영입니다.”

“오, 왔나.”

서문영이 인기척을 내자, 그제야 시선이 돌아왔다.

스윽. 스윽.

제운비가 서류를 내려놓고, 피로한 듯 손으로 얼굴을 비벼 마른세수를 했다. 그는 너무도 뜻밖의 일에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이제껏 잠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까닭은 그 때문이었다.

“지체할 수 없는 급보가 있다고 했지. 무슨 일인가?”

“예, 우선.”

팔락.

서문영은 보고서 한 묶음을 내밀었다.

습지대의 정찰 결과와, 조우한 몬스터 무리에 대한 정보. 그리고 그간 있었던 일들에 대한 특이사항이다.

“이건 지난번에 본… 으음?”

보고서를 훑어보던 제운비의 눈이 찌푸려졌다.

2학년 엘리트 파티의 실적. 그에 대해서는 자신도 한 번 살펴본 적이 있다.

아무래도 고작 2학년인 학관생들이, 3학년급 전력으로 활동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고무적이었으니까.

그래서 지난번에 본 그 보고서인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대략적인 내용은 같았지만, 이번에 서문영이 추가한 부분에는, 지난번에 쓰지 못한 내용이 있었다.

다름 아닌 천마의 활약이다.

“…이한? 기부금 입학생으로 입관한 2학년생이, 실제로는 현경의 고수로 추정된다고? 그리고 차원 간 게이트의 불완전한 형성 및 소멸?”

스윽.

그 구절에서 제운비는 고개를 들고 혀를 찼다.

“뭔가 착각한 것 아닌가? 이게 사실이면 자네들은 여기 이 자리에 올 수 없었을 게야. 차원 간의 간섭으로 인한 폭발력은…….”

“압니다. 저희가 이한이 실력을 숨긴 고수라고 의심하는 까닭이 그것입니다.”

서문영이 바짝 굳어서 대답했다.

버섯구름. 그리고 지축을 뒤흔드는 어마어마한 충격파.

주둔지로 돌아오는 길에 본 흔적은,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작은 언덕은 통째로 날아가고, 습지는 고열로 수분을 뺏겨 바짝 말라 있었다.

말 그대로 자연재해. 화산이 터지는 순간의 폭발력. 애초에 자신들이 거기서 살아나는 게 말이 안 되었다.

하지만 그 재앙에서도 서문영의 파티는 사망자 하나 없이 무사 귀환했다.

천마가 그들의 앞을 막아섰기 때문이다.

“자연재해급 충격파를 막아 내려면, 최소 현경의 고수는 되어야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그는 단신으로 그런 무위를 보였습니다. 목격자는 저만이 아닙니다. 하명하시면 저희 파티의 나머지를 불러서 진술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허, 이거… 믿기지가 않는군.”

제운비는 침음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일개 2학년 학관생이, 그것도 기부금 입학생이, 수석 교두인 제운비 자신보다 더 강한 고수란 말이 된다.

어처구니없는 보고지만, 절대 웃어넘길 수 있는 사항이 아니었다. 서문영과 운소령, 그들의 식견과 능력은 자신과 수많은 교관 교두들에게 검증받은 바 있다.

그렇다면 현실감이 없어도 그런 가정에 입각해서 생각해야 했다. 애초에 파티 리더의 직보는 이런 말도 안 되는 돌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니까.

그래서 제운비는 서문영의 보고서 나머지를 읽었다.

“검은 검사… 롤란드라. 그와의 승부에서 본신의 실력을 보이기 시작했고… 일부러 자네, 2학년 서문영. 서문세가의 뇌천벽력도를 복원하는 이에게, 대단히 중요한 실마리를 주었다?”

“그렇습니다. 잠시…….”

서문영은 제운비에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 그의 검을 뽑아 들었다.

지이잉… 구르르릉.

새파랗게 피어오르는 뇌전의 검기. 그리고 은은하게 울리는 뇌명.

서문영은 어마어마하게 실력이 진일보했다. 이 하나만으로도 강력한 증거가 되었다. 그리고 경지가 크게 상승한 것은 그 혼자만이 아니었다.

“마법사 하백운은 경지가 크게 상승했고, 사천당문의 당무련은 벌모세수의 상태에 들어섰습니다. 이한은 저처럼 그들에게 무언가 실마리를 알려 주고, 자칫 잃어버릴 수 있는 천고의 기연을, 시기적절하게 잡아 주었습니다.”

그래서 고민이 많았다.

천마-이한은 이제까지 자신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으니까. 그런 그가 뭔가 숨기고 있는 것을 밝히는 게, 어쩌면 그의 호의를 배반하는 일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점점 더 드러나는 그의 면모를 학관의 교관에게 보고하지 않는다면, 그거야말로 언젠가 더 큰일이 되고 말 터.

이한-천마는, 단신으로 천무학관을 박살 낼 수 있는 인물로 보였으니까.

“학관생 이한은 일반적인 2학년이 절대 아닙니다. 패스파인더인 제 소견, 그리고 제갈세가의 방계 운소령의 의견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는 자신을 숨기려고 해. 겉 모습은 이한이지만, 절대 이한이 아니야.

운소령은 그렇게 단정 지었다.

-강해도 너무 강해. 거기에 아는 것도 너무 많아. 무엇보다 우리 가문의 어르신이… 그를 극도로 공경하는 태도를 보이셨어.

그녀라고 제갈유진에게 정확히 무슨 말을 들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운소령은 2학년 수석이다. 이 정도 단서만 있어도 충분히 추론해 낼 수 있는 총명한 사람이었다.

서문영은 그런 그녀의 생각에 동의했다. 그래서 내려진 결론은.

“저희로서는 관련 지식이나 경험이 없으니, 관련학의 교관이나 교두님께서 확인해 주셨으면 합니다. 학관생 이한은…….”

서문영의 목소리가 저도 모르게 작게 잦아들었다. 여기가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으니까.

“빙의, 혹은 전생의 경험을 각성한, 최소 현경급의 고수로 추정됩니다.”

“……!!!”

제운비의 눈이 크게 뜨였다. 이제껏 꽁꽁 힘을 숨기고 있었던 천마. 그의 진면모가 조용히 발각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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