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화. 새로운 징조 (2)
“몬스터 테이밍… 공군이라니…….”
“대단하군. 전략의 폭이 넓어지겠어.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기존의 생각 자체를 달리해야 하는 건가?”
웅성웅성. 와글와글.
회의를 위해 모인 천무학관의 교두, 교관들은 한참이나 떠들어댔다.
시끌짝한 소란이 멈추지 않는 회의실.
리그웨더는 그 옆방에서 차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회의실에 아예 입장하지도 않고.
“저… 학과장님?”
교무부장 이중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지만, 그녀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내저었다.
“괜찮아요. 조금 더 있다가 들어가지요.”
리그웨더는 인간들의 입장을 이해했다.
아무리 두뇌 회전이 뛰어난 이라 하더라도, 너무 생경한 정보가 들어오게 되면, 대책 마련에 앞서 당황부터 일으키는 법이다.
문제의 해결은 문제를 충분히 인식하는 데서부터 출발하는 법.
리그웨더는 분명 골드 드래곤, 가장 지혜로운 이다. 그녀는 정보가 들어오자마자 여러 가지 방법과 책략을 떠올렸지만, 인간에게 그런 것을 요구할 수는 없다.
“학관은 저 혼자 운영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럴 일은 없어야 하겠지만, 리그웨더가 장기간 부재할 경우도 대비해야 한다. 그녀 혼자 모든 일을 끌고 나갈 거라면 각 학관의 교두와 교관들을 양성하는 의미가 없다.
아무리 뛰어난 인물이라 해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에는 낭패를 보게 마련이다. 그러니 낭보든 급보든 수습하는 경험을 이럴 때 쌓아 두어야 했다.
그리고 리그웨더는 새삼 반성했다.
‘그간 너무 독선적으로 끌고 나갔어… 차라리 잘되었지. 이번 기회에 돌아볼 수 있게 되었으니까.’
천무학관에서 그녀의 위치는 독보적이었다. 결코 실수하지 않는 상관. 모든 것에 대비가 되어 있는 지도자. 무슨 일이 터져도 즉각 대처할 수 있는 해답을 가진 사람.
그런 이를 보좌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타성에 젖는다.
윗사람이 다 해결할 수 있는데, 굳이 자기 머리를 써서 뭐 하겠냐는 태도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태도는, 당연히 좋지 않다. 어찌 보면 레이드 파티, 필드에 나간 천무학관의 교관들이 유장위 한 명에게 휘둘린 것도 그런 ‘관성’ 때문일지도 모른다.
“결코 어리석은 사람들이 아닌데.”
“…네?”
“제운비 교두, 뇌천벽 교두, 월산 교두. 천무학관의 최정예들이 투입되었죠.”
리그웨더가 이번 필드 레이드에 투입된 인원들을 짚었다. 이중구는 조금 긴장한 채로, 가만히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유장위 대협의 일탈은 저도 예견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공격대의 누구도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걸 제지하지 않았다는 건… 무슨 뜻일까요?”
“음… 그게… 음…….”
이중구가 조금 생각하다 말고, 곧 리그웨더의 눈치를 보았다. 그에 리그웨더는 싱긋 웃어 보였다.
“생각에 관성이 걸린 거예요. 하급자는 상급자의 말에 의문을 제시하지 않는, 정체된 분위기가 만들어진 거죠.”
이제껏 ‘잘못하지 않는 상관’을 너무 오래 두어서.
지나치게 뛰어난 리더는 때로 새로운 물결, 젊은 피를 수혈하는 데 방해가 된다. 너무 커다란 나무 옆에는 새로운 싹이 나기 힘든 법이다.
차라리 반항적이라도, 혹은 사리사욕을 위해서라도, 기존의 지도자에게 반발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런 이들이 있어야 조직이 더욱 능동적으로 움직인다.
이번 일에 대한 리그웨더의 해석은 그러했다. 그 말을 들은 이중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껏 왜 학과장님이 뇌천벽 교두를 제지하지 않으시나 했더니… 그런 까닭이었군요.”
천무학관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를 말하자면, 당연히 검성 제운비를 꼽는다. 그는 항상 매사에 리그웨더와 뜻이 같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 항상 그녀는 정답을 내어 왔으니까.
반면 그다음이라 불리는 뇌천벽은, 마치 시비를 위한 시비, 그저 트집을 잡으려고 드는 인물 같았다.
항상 리그웨더 학과장의 권위에 도전하거나, 아니면 제운비와 사사건건 충돌하거나 한 뇌천벽. 그는 이미 검증이 끝난 사안을 몇 번이고 재확인하려 하거나, 혹은 기존에 안정적으로 흘러가고 있는 구도를 괜히 시끄럽게 만들거나 했으니까.
당연히 그럴 때마다, 교무처장 구용천이나, 부장 이중구는 인상을 썼었다.
-아니. 학과장께서는 왜 저런 인물을 오히려 두둔하시는 거지? 나 같으면 그냥…….
그들로서는 잘 진행되는 학관 업무에 자꾸만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인물이 불편했으니까.
하지만 이제 보니, 그런 반골 기질을 지닌 인물이야말로 유사시에 가장 먼저 적응할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이번에 날아온 보고서가 그 증거였다.
당시 유장위의 일탈에 제일 먼저 위화감을 느낀 것이 다름 아닌 뇌천벽, 그였다고 하니까.
“학과장께서는 과연, 모든 일에 대한 대비가 다 되어 계시는군요…….”
이중구의 말에, 리그웨더는 싱긋 웃고는 고개 저었다.
“설마요. 제가 그렇다면 이런 일 자체가 일어나지 않게 했겠죠?”
땡땡땡.
그리고는 다탁 앞의 종을 두드렸다.
“학과장께서 드십니다!”
우르르르. 와르르르.
회의실에서 잠시 소란이 일어났다가, 멈췄다.
* * *
“실로 오랜만에 들어 보는 낭보입니다. 오가장도 대단하군요. 이런 일을 만들어 내다니.”
“공군, 공중에서 공격을 가하는 기병이라니. 이건 전략의 폭을 어마어마하게 넓히는 일이 될 것 같습니다.”
“예, 특히 마스터급 마법사나 화경 이상의 무인을 기수로 태우면 광역 공격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힐끗.
구용천이 방금 의견을 낸 교두를 보고 얼굴을 붉혔다.
그도 듣자마자 가장 먼저 떠올린 생각인데 리그웨더에게 지적 받았던 부분이다. 결국 사람 생각이 거기서 거기라는 건가.
“글쎄요. 나쁘지 않은 생각입니다. 하지만… 공군에 투입하기에는 지나치게 화려한 전력이군요.”
“같은 생각입니다. 제 소견으로는, 마스터급 전력을 쓰지 않아도 그리폰 라이더는 충분히 운용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후우…….’
그래서 다른 교두들의 첨언, 어찌 보면 자신이 냈던 의견과 반대되는 의견이 나왔을 때, 구용천은 오히려 안심할 수 있었다.
리그웨더가 내는 정답을, 인간들도 조금 시간이 지나면 낼 수 있다는 증명이었으니까.
“마스터급 전력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리폰은 안정적으로 확보가 가능합니다.”
제한된 조건하에, 그리폰 라이더는 마스터급 전력을 낼 수 있다. 그렇다면 마스터를 굳이 넣지 않아도 마스터가 되지 못한 이들을 기수로 삼는 것이 더 전력 증강이 쉽다.
이는 리그웨더도 이미 지적한 부분이다.
“폭약, 유류 등의 발화성 물질. 혹은 독이나 산성 용액의 살포를 노릴 수 있습니다. 여차하면 역병균 등의 살포도…….”
“흐음…….”
조금 놀라운 것은, 리그웨더가 생각하지 않은 부분을 짚고 들어오는 교두도 있었다는 것이다.
역병의 살포라니. 조금 위험한 방향이긴 했지만…….
‘과연, 이것이 인간의 가능성인가.’
리그웨더는 내심 끄덕였다.
드래곤이라면 이런 쪽으로는 생각도 하지 못할 터였다. 인간의 상위종이라 할 수 있는 엘프 역시 마찬가지.
조화와 균형을 지키는 그들의 속성상, 어디로 튈지 모를 대량 살육의 재앙을 ‘병기’로 생각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이는 선 성향 종족의 안정성이자 동시에 한계이기도 했다.
‘이러니 이따금 등장하는 초월자는 인간이 더 잦은 것일까?’
인간에게는 그런 것이 없다. 대신 필요를 위해서는 자칫 언제 악으로 치우칠지 모를 불안정함을 품고 있다.
하지만 그런 위험 요소가 있기에, 때로는 드래곤조차 때려잡는 괴물을 배출하기도 하는 것일 터. 당장 리그웨더 자신이, 그러한 인간의 가능성을 증명하는 처지였다.
리치왕. 그자는 마왕과 손을 잡기 전에는 인간이었다. 그가 드래곤과의 악연으로, 한없이 수련과 마도에 빠져든 끝에 한 차원의 최강 종족이었던 이들을 몰살에 가깝게 몰아붙였으니까.
‘적당히 조율만 할 수 있다면… 인간만큼 큰 발전 가능성을 지닌 이들은 없다. 역시 인간이야. 인간이었던 리치왕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인간뿐이다.’
리그웨더가 그렇게 상념에 빠져든 가운데, 크흠, 큼, 하고 수염을 길게 기른 한 교관이 입을 열었다.
“어, 이번 일로 오가장이 합류하게 된 것은 꽤 고무적인 일입니다. 다만… 이들이 이런 큰일을 벌이는 동안, 본 학관의 정보력이 전혀 미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조금 우려의 여지가 있습니다.”
“으음…….”
“과연…….”
좋았던 소식에 소금을 뿌리는 일침이었다. 이제껏 훈훈했던 회의장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보내 온 보고서를 보자면, 샐러 드레이크라는 희귀종 몬스터가 떼로 출현했다니까요. 오가장이 방비를 잘했다곤 하지만 그건 그들의 주장일 뿐입니다.”
던전 같은 마경은 그 자체가 생물이다.
그걸 겁도 없이 자극하면서 연구했다니. 결과가 좋게 나와서 망정이지, 자칫 일이 나쁘게 진행되었을 경우 어떤 사달이 벌어졌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
오가장의 실험 일지로 보아, 그들은 최소 20년,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이런 시험을 해 온 듯했다.
‘확실히. 위험하고 무모한 시도이긴 했지.’
리그웨더는 또 인간들의 정치질인가? 하고 듣고 있다가, 마지막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알기로, 이런 위험한 실험으로 한 세계가 멸망으로 치달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니까.
당장 그녀가 있었던 차원, 그라나다 대륙에서도 저런 정신 나간 시도로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나곤 했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수십만의 생명이 몬스터 밥으로 내던져진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리고 이번 성과를 내던 중에, 실제로 오가장의 광산 마을 주변에서 수백 -거의 천에 달하는 생명이 증발하기도 했었다.
그녀는 몰랐지만 말이다.
“또한, 라이더로 태울 수 있는 인물 구성에 제한이 된다는 점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보고에 따르면 -이조차 오가장의 주장입니다만- 부화할 때까지의 몬스터 테이밍에는 다른 무공도 아닌 마공이 필요하다고 하니까요.”
“…마공이라. 마교인가. 요즘 들어 자주 언급되는군. 어째.”
“그러고 보니, 얼마 전 파견되었던 임무… 그 수행자가 흑객, 본래 마교 출신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수군수군. 웅성웅성.
“그자가 어쩌면 보고를 누락했을지도…….”
“사실은 더 큰 피해가 발생했지만, 오가장이 그에게 큰 선물을 주어서 입을 막았다든가…….”
“흑객이라는 이를 소환해서 특별 감찰을 수행하는 것이…….”
‘이건 또 결국 정치질이군.’
교관과 교두들이 시끄러워지는 것을 보고 리그웨더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나 다를까, 딱 그녀가 예상했던 다음 장면이 튀어나왔다.
“놀라운 가능성을 지닌 그리폰 라이더를, 근본도 알 수 없는 마교 출신 무인으로 꾸린다는 것은 안 될 일입니다. 오가장에 경고를 해서 사전에…….”
“그 이야기는 나중으로 하지요.”
갑자기 확 터뜨리는 교관의 말을, 리그웨더는 적절하게 끊었다.
“아니… 학과장님, 하지만…….”
“출신이니 근본이니 하는, 방향을 정해 놓고 하는 연구는 결과 또한 정해져 있을 뿐입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오가장이 파격적인 시도를 했기에 결과도 얻었으니까요.”
분열과 배척. 이것이 인간의 양날의 검이었다.
합치되면 때로는 누구보다 파괴적인 시도를 해내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는 서로 다투다가 어정쩡하게 무너지고 말기도 하는 것.
“우선 오가장의 지원은 확정으로 하고, 다음 안건부터 확인하지요.”
“예, 절강성으로 침입해 오는 해양 몬스터에 대해서입니다. 탐색자들의 자료는 다들 숙지하셨을 터. 어떤 의견들이 있으십니까?”
시선을 받은 구용천이 발언했다.
잘못되면 분란의 싹이지만, 적절할 때 개입하면 청출어람.
리그웨더는 그런 인간들의 발상이 비뚤어지지 않고 잘 크도록 하는 것이 자신의 일임을 알고 있었다.
회의는, 그렇게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