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화. 새로운 징조 (3)
새날이 밝았다. 공격대 주둔지의 아침은 분주했다.
특히 천무학관 본관과의 소통을 담당하는, 담당 연락관 주호에게는 더욱 그랬다.
구구구. 구구구구-!
“어허, 시끄러워 이것들아.”
눈꺼풀을 껌벅껌벅. 대가리를 툭툭 들이미는 비둘기들. 연락관 주호는 부지런히 모이를 주었다.
그런데 고작 몇 초를 못 참고, 머리를 들이밀다가 철망에 목이 걸린 성질 급한 놈들이 있었다.
푸드득. 푸드득.
“아, 씨… 진짜 이 새대가리들이…….”
주호는 욕을 하며 녀석들의 목을 조심스럽게 빼냈다.
대체 이게 몇 번째던가. 참 어리석은 것들이다. 배고파도 몇 초만 참으면 될 텐데, 아니면 목이 철망에 걸려 아프면 가만히 기다리면 될 텐데.
그 잠시를 못 참고 저 혼자 버둥거리다가, 목에 상처를 입고 피투성이가 되어버리기까지 한다.
주호는 한숨을 쉬며 다시금 한탄했다.
그는 강호 어느 곳에 가도 대접받으며 중한 일을 할 수 있는 재원이다. 그런데 지금은 새대가리들의 똥 처리나 해야 하는 처지라니. 이게 너무도 개탄스러웠다.
“아… 야만스럽다……. 미개하다… 시발, 통신구 좀 쓰게 해 주면 안 되나. 정말…….”
통신구.
이번 천무학관의 레이드 공격대는, 학관 전력의 반을 투입한 대규모 원정이었다.
그런 만큼 원격 통신용 수정구가 있었다. 사용하는 마나가 막대해서 그렇지, 시간과 거리를 무시하고 바로 소통이 가능한 마법 아이템!
하지만 어쩐 일인지 어둠나무 인근에 주둔지를 마련하고 나서 얼마 후, 통신구는 갑자기 먹통이 되었다.
연락관은 당연히 이를 보고했고, 공격대의 마법사들이 어찌 된 일인지 알아본다고 가져갔다. 한데 그 뒤로 소식이 없었다.
이제나저제나 하고 기다리던 연락관은 엊그제야 비로소, 사유를 알게 되었다. 자그마치 현경의 고수, 유장위가 이제까지 야료를 부리고 있었다는 것.
“통신구 고장 낸 거 분명히 그 새끼다. 틀림없어. 개같은 놈. 현경이라는 새끼가 그걸 또 팔아먹어?”
…시기상, 통신구의 고장은 훨씬 전이었다. 유장위가 공격대를 장악하기도 전에 일어난 일. 하지만 주호는 분명 그놈이 뭔가 수를 썼다고 믿고 있었다.
아니, 사실은 믿든 말든 험담을 하고 싶은 거였다. 자그마치 현경이나 되는 고수를 씹을 기회가 어디 흔하던가?
푸드드득! 푸드득!
“어휴… 이 내가, 응? 천무학관 조교가 이런 데서 새똥이나 치우고 앉아 있어야 하냐…….”
전서구는 비둘기의 귀향 본능을 이용한 통신 수단이다. 보통의 학관이나 클랜에서는, 원거리에 소식을 보낼 때 전서구를 사용하곤 했다.
사람을 통해 소식을 전하는 건 한계가 있다. 아무리 경공의 고수라도 하늘을 나는 날짐승보다 빠르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그게 된다 하더라도 그런 고수를 고작 서신 전달이라는 소소한 일에 투입하는 건 낭비였다. 그래서 전서구가 쓰이는 것이다.
새 대가리답게 다소 멍청한 부분이 있기는 해도, 일단 속도만큼은 빨랐으니까.
“개자식, 은혜도 모르고. 하여간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니까… 아니, 근데 슬슬 올 때가 되었는데, 왜 안 와?”
투덜투덜.
모이에 이어 물을 주며, 주둔지의 연락관은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통신구라는 사기적인 아이템이 있었지만, 천무학관은 기물에만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았다. 그들은 전서구와 파발 등, 본관과 연락이 끊이는 일이 없도록 만사를 대비했다.
이제껏 인편으로 보낸 연락은, 죄다 유장위가 보고를 누락시켰지만, 그나마 파악하기 무섭게 어제 전서구로 전갈을 보냈다.
그러니 빠르면 새벽, 늦어도 한 시진 전쯤이면 대답이 올 것 같았는데… 예상외로 답신이 늦은 것이다.
“회의가 길어지기라도 하나? 어째 학관 쪽도 바쁜 모양이군.”
혼자 중얼거리는 그는, 자신이 정답을 맞혔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실제로 천무학관의 리그웨더는 자그마치 넷이나 되는 중요 안건을 맞아 꽤 고심을 하고 있었으니까.
삐이----익!
“어?”
갑자기 울리는 날카로운 소리.
빠르게 날아드는 하얀 점을 보고 연락관은 곧 눈이 커졌다. 창공에서 날카로운 기성을 지르며 매가 날아왔다.
삐요오오!
연락관이 팔을 내밀자, 바로 그 위에 내려앉는 매.
푸드드드득.
전서응(傳書鷹)이다. 천무학관은 중원 최고의 학관인 만큼, 긴급 상황 시엔 비둘기가 아닌, 훈련된 매를 통신 수단으로 사용한다.
그리고 지금 그게 날아든 것이다.
“어이쿠. 그래, 그래. 이놈아, 얌전히 좀 있어라…….”
콱. 콱. 콱.
뭣 때문인지, 잔뜩 흥분한 매를 달래느라 연락 담당관은 진땀을 뺐다. 조심조심 다리에서 서신을 회수한 그는, 저 멀리 하늘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 마리 더 와야 하는데?”
전서구든 전서응이든.
천무학관에서는 중요한 연락을 할 때 반드시 쌍으로 보내도록 하고 있었다. 동물을 이용한 통신은, 소실의 위험이 있다.
비둘기는 말할 것도 없고, 매라고 하더라도 사냥꾼이나, 다른 매의 공격을 받아 짐승 밥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안 왔다면 모르되, 전서구도 아니고 전서응으로 보낸 연락이다. 그럼 당연히 두 마리가 와야 하는데 한 마리뿐?
“…문제군. 뭔가 있어. 서신을 가로채기 당한 건가?”
번뜩.
생각이 거기까지 닿은 주호의 눈이 예리하게 빛났다. 일각가량 기다린 끝에, 그는 서신을 들고 바쁘게 달려갔다.
* * *
한편.
화르륵. 타닥. 탁.
“봤냐? 봤어? 이게 바로 일석이조다. 하하.”
“와…….”
모닥불을 앞에 두고, 천마는 깃털을 왕창왕창 뽑아내고 있었다.
하나는 청둥오리. 그리고 또 하나는 매.
돌 하나로 새 두 마리를 잡는다는 옛말을 고스란히 실현시킨 것이다.
‘아, 각도만 좋았으면 일석삼조도 가능했는데.’
천마는 고사성어를 뛰어넘는 업적을 못 이룬 것에 아쉬워했다.
아무리 그라 해도 새 세 마리를 돌 하나로 맞히기는 힘들었다. 특히 매는.
아무렴, 짱돌로 날아가는 새를 맞히고, 그 맞은 후의 각도까지 예상해서 겨냥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 * *
“서신이 사람의 손을 탔다고?”
뚜둑.
뇌천벽은 전달받은 서신의 봉인을 뜯으며 물었다.
“예, 그렇게 사료됩니다. 쌍으로 날아와야 할 전서응이 하나만 날아왔으니까요.”
주호가 대답했다.
두르륵. 펄럭.
뇌천벽이 둘둘 말린 서신을 펴며 다시 물었다.
“동물이나 사냥꾼의 오사(誤射)일 가능성은?”
“없지는 않습니다만… 매의 순간 최고 속도는 시속 400㎞에 달합니다. 화경의 고수로도 잡기가 쉽지는 않은 것이 급강하하는 매입니다.”
“음.”
그 말에 뇌천벽은 침음했다.
연락 담당관 주호. 천무학관 4학년을 졸업하고도, 수많은 비둘기나 가금류를 맡아 온 이의 말이다.
화경의 고수로도 쉽지 않다? 이게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충분히 예상이 가능한 것이다.
“그렇군. 공격자는 최소 현경급의 고수다?”
“속단일 수 있습니다. 그저 가능성의 하나일 뿐.”
주호는 말을 아꼈다.
전서응의 잔뜩 흥분한 모습만으로 이 이상의 결론을 내기란 쉽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그런 그의 생각은 어느 정도 사실에 가까웠다. 비록 그들이 의심하는 유장위는 아니었지만, 매를 때려잡은 천마는 탈마. 정종무공으로 치면 현경급 고수이기는 했으니까.
“음!”
“그럼. 저는 가 보겠습니다.”
주호는 뇌천벽의 얼굴이 굳는 것을 보고 급히 자리를 떴다.
‘뭔가 긴급한 안건이군.’
서신을 전달하고 의견을 표명한 것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할 일을 다 한 것이다. 그리고 그가 가기 무섭게.
“어이, 제운비? 있나?”
탕탕.
뇌천벽은 수석 교두, 달리 말해 레이드 공격대의 책임자 막사를 찾아 천막 앞의 현판을 요란하게 두드렸다.
“…들어오게.”
펄럭.
말 떨어지기 무섭게 천막을 젖히고 들어간 뇌천벽.
그는 잔뜩 흐트러진 제운비의 얼굴과 누운 기색도 없는 침상을 보고, 슬며시 인상을 찌푸렸다.
“기어코 밤을 새웠군. 그냥 자라니까 왜 이리 미련한 짓을 하나?”
“…상황이 상황인데 편하게 몸을 누일 면목이 있겠나.”
푸우욱.
제운비가 핏발 선 눈을 비비며 고통스러운 한숨을 내뱉었다. 모든 책임과 잘못이 자신에게 있다는, 죄인을 자처하는 태도였다.
하지만 뇌천벽은 차갑게 코웃음 칠 뿐이었다.
“그놈의 오만함은 고쳐질 기색이 없군.”
“…오만함? 내가?”
“아니면? 그 현란한 장광설에 속아 넘어간 건 너 혼자만이 아니다. 천무학관의 날고 기는 교두, 교관들이 모두 어어 하고 속아 넘어갔어.”
탁. 펄럭.
뇌천벽은 방금 전달받은 서신을 제운비에게 건넸다. 그러고는 말을 이었다.
“유가 놈이 뭔 생각이었든, 파악 못 한 사람은 너 혼자만이 아니다. 책임은 지통실의 교관 모두에게 있어. 그런데 이게 다 너 혼자만의 잘못? 너는 자식아, 너 말고는 다 사람으로 안 보이냐?”
“…그런 식으로는 생각한 적 없네. 하지만… 자네의 말도 맞네. 확실히 내가 오만했어.”
제운비는 길고 속 쓰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받아 든 서신을 읽기 위해, 핏발 선 눈을 다시 한번 부볐다.
“유 대협은 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유 대협이 아니라 유가 놈이다. 그리고 나는 몰라. 개새끼가 얼마나 처돌았는지 내가 알게 뭐냐?”
제운비의 물음에 뇌천벽이 악담을 내뱉었다.
“현경에 올라 놓고도 양 대가리를 매달고 개고기나 파는 염치없는 새끼.”
양두구육(羊頭狗肉). 양 머리를 매달아 놓고 개고기를 판다.
겉 다르고 속 다른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했던가.
유장위의 이중성. 그건 매사에 의심이 많은 뇌천벽도 예상 못 한 것이었다.
‘징조가 없지는 않았지만 그 정도인 줄은 상상도 못 했지.’
발각의 계기는 얼마 전이다.
어둠나무와의 전투 중에 그는 천무학관의 교관들을 미끼로 던져 주는 냉혹함을 보였고, 그게 발각 나자 면목이 없었는지 도망쳐 버린 것이다.
그래서 이자가 또 뭔 일을 저질렀나 감찰을 해 보니… 사태는 심각했다!
‘간도 크지. 어떻게 클랜도 아닌, 학관 공격대의 전력을 무단으로 남용해?’
애초에 레이드의 표적이었던 어둠나무가 아니라, 주변의 던전과 필드를 소탕하게 유도했다.
그리고 그 소탕의 성과로 얻어진 막대한 부산물을, 본인과 친분이 있는 다른 상단에 넘기고 있었다.
그 거래를 성사시킨 대가로 엄청난 뇌물이 오갔다. 이건 명백한 배임, 그리고 월권이다.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된 천무학관의 교관, 교두들은 분노로 어이를 상실할 지경이었다. 책임을 따지자면 자신들도 일조하고 말았다는 것이 가장 뼈아팠다.
‘의심을 못 한 건 잘못이지만… 솔직히 현경이라는 놈이 그딴 식으로 딴 주머니를 찰 줄 누가 알았겠어?’
유장위가 챙긴 사리사욕? 그거야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가 한 주장처럼, 천무학관의 교관과 교두는 고급 전력이다. 주둔지에 가만히 내버려 두기에는 너무 아깝다.
그러니 실전 경험 삼아, 남는 시간에 주변 몬스터들을 소탕하며 소소하게 전비를 충당하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었다.
정말로 그게 ‘어차피 남는 시간’이었다면.
문제는 바로 보고의 의도적인 누락이었다, 유장위는 학관으로 보내야 할 연락을 차일피일 지연시키고, 지시를 받아야 할 중요한 사항에 대한 보고를 의도적으로 배제했다.
그걸로 그는 시간을 벌었고, 천무학관은 시간을 잃었다. 어찌 보면 고작 며칠간이지만, 이번 레이드 공격대의 인원을 곱해 보면, 그건 수천, 수만의 시간이다. 그런 손해가 났다.
“이제껏 누차 말해 왔지만, 우리 학관은 학과장에게 의지하는 바가 너무 컸어.”
하지만 그건 뇌천벽의 생각으로는, 따지고 보면 천무학관 특유의 기형적인 권력 집중 때문이었다.
골드 드래곤이라는 중원 전체에서 가장 지혜로운 현자 리그웨더의 지시에 반문도 의심도 없이, 맹목적으로 따르기만 했던 마음 편한 시간에 대한 대가다.
“따르기는 하되, 꼭 방법이 이것밖에 없는지 항상 더 생각하고 반문해 보는… 어우 씨발! 깜짝이야!”
잔소리를 하다 말고, 뇌천벽은 거의 비명을 질렀다. 퍼뜩 고개를 쳐든 제운비. 그의 눈이 아주 활활 타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흑객…….”
“누구……? 아, 흑객? 그 친구가 왜?”
뇌천벽이 움찔했다. 예전에 어찌 손을 대려고 했던 4학년생. 마교라는 독특한 출신 때문에 기억하고 있었던 인물이 떠오른 것이다.
“지금 바로 불러오게. 그리고… 2학년 학관생 서문영, 운소령, 그리고 이한. 이 세 사람도!”
이글이글.
제운비의 갈피 잃었던 눈동자가 세차게 타올랐다. 그건 실패한 임무에 좌절했다가 다시 실마리를 찾은 사람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