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3화. 징조 (4)
당무련이 신위를 발휘하는 한편, 그녀의 동기들은 악전고투를 치르고 있었다.
“오라 플레어! 오라 플레어… 아악!”
지징! 지징! 파박!
무영창 마법으로 파리 떼를 격살하던 하백운. 그런 그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피드드득! 퓨퓩. 퓩!
쏟아져서 흩어진 괴물 파리들. 놈들이 마법사의 빈약한 로브를 뚫고 덮쳐 왔다. 방어가 취약한 마법사. 그의 전신에는 금방 피가 낭자했다.
“하백운!”
퍼억! 퍼억!
그런 그의 전신을 봉으로 후려치는 거한이 있었다. 방윤. 소림의 무승은 나한처럼 사나운 얼굴로 봉을 휘두르며 사자후를 토해 냈다.
“옴—사바사바 못지하— 움!”
우웅!
대기가 울렸다. 금빛 서기가 피어오르고 사방으로 터져 나가는 피. 그리고 살점.
타다닥! 파바박!
끈질기게 짝이 없는 파리들은, 제 머리통만 한 살점을 문 채 강제로 뜯겨 나갔다. 격체전력으로 수차례의 타격을 가한 후에야 방윤은 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됐어. 다 털어 낸 것 같아.”
“고, 고마워… 방윤…….”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된 하백운. 마법사라 빠르게 몸을 움직이지 못한 그는 끙끙대며 감사를 표했다.
겉보기엔 엄청 두들겨 맞은 모습이었지만, 실제 상황은 보기와 달랐다. 괴물 파리에 휩싸여 위급해진 하백운을, 방윤은 격체전력으로 최대한 피해 없도록 털어 낸 것이다.
그의 살점을 물어뜯고 있는 파리들에게만 충격이 가도록.
“빨리 치료받아. 피 많이 흘렸으니까. 흡!”
패액! 파바밧!
방윤은 말과 함께 다시금 봉을 휘둘렀다. 거센 바람에 사정없이 터져 나가는 검은 파리들.
퍼버버벅!
보통 놈들이 아니긴 했지만, 그렇다고 영 상대 못 할 괴물은 아니었다. 껍질이 좀 딱딱하긴 했지만 내공이 실린 일격을 맞으면 바로 박살이다.
특히나, 봉처럼 긴 장병은, 그 자체로 압도적인 살상력을 자랑했다. 휘둘렀다 하면 수십 마리가 그냥 터져 나간다.
왜애앵. 왜애애앵!
“불존이여! 용서하소서! 오늘 소승이 크게 살겁을 쌓을 것 같습니다!”
달려드는 파리 떼에 크게 봉을 휘두르는 방윤. 분명 말로는 통탄스러운 내용인데, 정작 행동하기로는 신이 나서 날뛰는 듯하다.
휘르륵! 파바바박!
소림이라는 무림의 태산 북두 출신이면서도, 그간 방윤은 크게 활약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가 가진 강건한 신체와 심후한 소림의 내공에도 불구하고, 주변 인물들이 워낙 뛰어나니 빛을 보지 못한 것이다.
무(武)에서는 같은 반의 서문영에게 밀렸고, 지(知)에서는 운소령에게 밀렸다. 이러니 정작 방윤은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겨도, 정작 그 사제들이 자격지심으로 날뛸 수밖에.
“방윤! 이쪽을 좀 도와줘!”
패앵!
한 가닥 검풍이 크게 파리떼를 베어 낸다. 운소령의 날카로운 쾌검이 검은 물결을 둘로 갈랐다.
왜애애앵……! 왜애애앵!
하지만 둘로 갈라진 검은 무리는, 다시 붙어 버렸다. 베어도 베어도 계속 이런 모양.
마치 검으로 파도를 베는 듯했다. 당장은 갈라 놓아도, 큰 타격을 주지 못하고 공력만 헛되이 낭비하는 꼴이다. 상성이 나빠도 너무 나빴다.
“운소령! 뒤로 물러서!”
그러다보니 방윤이 뜻하지 않게 활약하는 상황이 되었다.
패배배배백!
장봉을 바람개비처럼 휘두르며 방윤이 앞을 막아 섰다. 봉에 후드려맞고, 돌풍에 휩쓸린 파리 떼는 바닥만 벌벌 기며 무력화되었다.
후드드드득. 퍼석. 퍼석.
그나마 집요하게 몸에 달라붙는 파리들이 있었지만, 방윤의 피부를 파고들지 못했다.
금강신. 이름처럼 금강불괴까지는 되지 못해도, 방윤의 호심공은 동기들 중 최고라 불릴 만한 것이었다.
거기에 상성까지. 소림의 무공은 기본적으로 파사현정의 속성을 지닌다.
“후우! 흐읍! 후아!”
쐐액! 펑! 쐐애액!
장봉만이 무기가 아니었다. 격하게 움직이는 몸을 따라 방윤의 도포가 펑펑 소리를 낸다.
왜애애앵…….
그와 함께 우두두 쏟아지는 검은 파리들.
날벌레에게 날개는 대단히 예민한 기관이다. 한쪽이라도 부러지거나 찢겨 나가는 순간, 기동성을 잃고 바닥을 기는 버러지의 신세로 전락한다.
투두두둑. 꾸욱!
그 버러지가 발치에 밟혀 바스러진다.
신발 너머로, 수십 수백의 곤충들이, 우드득 하고 터져 나가는 불쾌한 감각이 전해졌다. 방윤은 크으, 하고 치를 떨었다.
사마이든 무엇이든, 생명을 앗아 가는 것이 불제자에게 좋은 기분을 줄 턱이 없다. 그 불쾌감을 털어 내기 위해 토해 내는 사자후신공.
“아미타불---! 반야바라밀다……!”
후우우웅!
강력한 음파. 항마의 기운까지 서린 범위 공격이다. 어떻게든 살갗에 대가리를 파묻으려던 파리들은, 곧 새카맣게 타들어 갔다.
왜애애앵…….
검은 물결. 파리의 홍수가 그를 피해 내듯 멀어졌다. 아무리 지능이 없는 반마의 생물체라도, 이 정도로 답이 없는 상대를 만나면 피하려 드는 것이 당연.
검은 물살이 거대한 파도를 쓸어 내지 못하고 갈라졌다. 그리고 그렇게 주춤거리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호기가 되었다.
“거리가 좋아! 필리아!”
“그러차아~! 이슬의 모임! 워터 스프레드!”
괴이한 탄성과 함께, 필리아가 물의 정령을 뿌려냈다.
쉬이익! 퍽! 퍽!
워터 스프레드. 물 뿌림이다. 사방팔방에서 허공에 난데 없이 분수처럼 뿌려지는 물.
쏴아아아!
그 분수에 파리 떼의 움직임이 둔해진다. 날개는 얇고 가벼운 기관이다. 거기에 수분의 무게는 몸을 무겁게 만들기 마련. 그렇게 습해진 벌레 무리에, 청천 날벼락이 내려꽂혔다.
“간다-! 뇌천벽력도!”
따앙! 파지지직!
번개가 일 장이나 되는 범위를 환하게 밝혔다.
흡사 빛의 구름이라도 일어난 듯한 광경. 수천수만으로 갈라진 작은 벼락에, 새카맣게 타 버린 벌레들이 쏟아져 내린다.
후드드득.
그와 함께 무럭무럭 일어나는 사기(邪氣). 벌레가 타 죽으며 피워 올린, 독이나 다름없는 기운에 일행이 급히 물러섰다.
“후읍… 후읍… 거스트 오브 윈드!”
후오오옹!
때맞춰 날아든 거센 돌풍이, 그 사기까지 날려 버린다. 돌아보니 잔뜩 초췌해진 하백운. 온몸에 덕지덕지 금창약을 바른 그가 창백한 얼굴로 수인을 맺고 있었다.
“하백운! 괜찮아?”
“무리하지 마! 그러다 죽어!”
“이런 걸로 안 죽어! 저기 봐! 3학년이 왔어!”
곧 죽어도 약한척은 절대 못 하는 하백운. 그런 그를 보조 마법사 이경이 부축하고 있었다.
“에야아아아!”
“우와아아아!”
그런 그의 손길을 따라 보니, 난데없이 마구 휘둘러대는 한 무리의 학관생들이 보였다. 복장으로 보아 3학년. 그런데 무장들이 희한하다.
“…저거 뭐야? 글래디에이터?”
한 손에는 삼지창. 또 한 손에는 그물.
이건 검투사, 한때 어느 제국의 검투장에서 승률로 깽판을 쳤다는 무장들이다. 분명 주 무기들은 검이나 창들인 걸로 아는 3학년들이, 뜨악스러운 검투 무장을 하고 달려들었다.
패리리링! 파박! 파박!
그런데 그 효과가 상상 이상이었다.
바람개비처럼 휘몰아치는 삼지창. 파리 떼를 상대하는 동안, 방윤도 저 방식으로 제법 재미를 보았다. 하지만 날벌레를 상대로는 굵게 한 줄로 후려치는 것이 고작이다.
“대열을 맞춰! 거리 유지!”
“거리 유지! 뿌려!”
“으아아아!”
촤아악!
삼지창에 이어, 드넓게 뿌려지고 휘둘러지는 그물.
촤아악! 촤아악! 휘이잉!
세차게 퍼져 나간 그물이, 한 순간에 반장 범위의 파리 떼를 쓸어 버렸다. 다른 병기와 달리, 그물은 수많은 줄들과 줄들이 촘촘히 짜여진 병기다.
촤아아악! 파앗! 파스스슥!
천무학관 2학년생만 되어도, 병기에 내기를 싣는 것은 손쉽게 해낸다. 하물며 이들은 3학년생들.
휘청거리고 낭창낭창한 그물에 진기를 불어넣어 휘두르자, 그물이 지나간 자리는 아예 벌레 무리가 삭제되듯이 휘말려 나갔다.
주르륵. 철벅철벅.
처억. 추르르륵.
한 번에 수천, 어쩌면 수만의 파리 떼를 터뜨리고 격살시킨 그물. 진한 초록의 줄들로 엮인 그물은, 곧 시커먼 파리의 사체와 체액이 묻어 무겁게 늘어졌다.
지익. 지익. 철벅.
3학년 학관생의 리더, 거구의 청년이 더러워진 그물을 내던지며 호통쳤다.
“그물 버려! 창으로 위치 이동!”
“그물 버리고! 창으로 위치 이동!”
차작! 차자작! 파바박!
군대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3학년생들.
그들은 벌레의 사체와 체액으로 질퍽거리고 무거워진 그물을 한곳으로 끌어모았다. 삼지창으로 걷어 한곳에 모인 질퍽한 그물.
펑! 파아아악!
그 위에 기름이 뿌려지고 불꽃이 붙는다. 그러고는 이어지는 호통.
“새 그물 장비! 전면 기동!”
“그물 새 걸로! 전면으로 이동!”
차차착. 우와아아!
순식간에 3학년의 재정비가 끝났다. 그들은 등에서 새 그물을 꺼내 들고 앞으로 달려 나가며 팔을 휘둘렀다.
쏴아아악! 쏴아악!
진초록의 물결이, 그물이, 검은 파리떼를 뒤덮어 버린다. 그런 이들이 무려 수십. 무한한 벌레들로 아우성이 나던 전면이, 삽시간에 진정된다.
“저게… 3학년……?”
“…대단하네. 이래서 여러 병종을 쓰게 하는구나.”
끄덕끄덕.
서문영이 한 말에 운소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주로 쓰는 무기는 검. 자고로 만병지왕이라 불리는 병기다.
세 자를 조금 넘는 단병이면서 찌르기와 베기에 유용한, 살상력을 최대한 끌어올린 병기. 진화의 정점을 찍었다고 할 수 있는 무기다.
당연히 사용한 이들도 많았고, 그러다 보니 검술가였던 선대의 무인들이 남긴 수많은 유산, 기예와 공부가 있는 것이다.
반면 삼지창과 그물. 중원의 전통 무기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기병들이다.
이제껏 운소령이나 서문영처럼 개인의 무력이 충분히 뛰어난 이들로서는, 굳이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병기들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두 눈으로 목격하게 되었다.
이제껏 은연중에 무시했던 저 기병들이, 집단으로 펼쳐질 때 얼마나 위력적인 모습을 보이는지.
촤아악! 촤아아악!
“그물 위치 이동!”
“새 그물 장비! 전방 1장 앞으로!”
좌악. 좌악. 좌악.
단체로, 일제히 뿌려지는 그물. 한번에 거짓말처럼 허공에서 베어 먹히는 파리 떼의 물결.
좌악. 좌악. 좌악.
주변을 돌아보니, 어느새 여기저기서 저런 글래디에이터식 무장병들이 나타나 있었다. 그들은 날아드는 벌레들을 ‘삭제’하고, 거침없이 안전한 구역을 넓혀 나갔다.
“정말… 이런 게 군대로군.”
군대. 개인으로서의 무예와 상관없이, 조직으로서 움직여지는 무인들의 위력. 그물과 삼지창의 조합은 천무학관 2학년생들도 가능하다.
극히 일부분-소진이나 이한 같은 기부금 입학생-을 제외한, 보통의 무인 정도 수준만 되어도 저런 간단한 대열 정도는 구성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수십 수백이 되면, 아까 느꼈던 절망스러운 공격. 괴물 파리들의 물결조차도 걷어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래도 서문영, 너라면……?”
“아니, 무리야.”
운소령의 말에 서문영이 고개 저었다.
뇌천벽력도. 자신이 운좋게 깨달은 뇌전 속성의 도법. 분명히 위력적이긴 하나, 그건 아직 완성되지 못했다.
아니, 설령 완성되었다 하더라도 저들처럼 효율적으로 쓰이지는 못할 것이다.
자박! 자박! 자왁! 자왁!
두려움 없이, 거침도 없이 앞으로 향해 나가는 선배들. 3학년들. 그들이 휘두르는 기병을 보고 서문영은 한숨을 쉬었다.
“…앞으로 다른 과목 강의도 잘 들어야겠는데.”
“동감이야. 우리 식견은 너무 짧았어.”
2학년 수석과 차석. 두 사람은 자신들의 식견이 짧았음을 인정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군대, 무인들이 모여서 이루는 공격대의 힘이라는 것을. 그리고 왜 천무학관이 온갖 병기와 기병들을 다 배우도록 권유하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