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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254화 (255/310)

254화. 징조 (5)

사삭. 사사삭.

사람 모형을 한 말들이 움직인다. 거대하게 펼쳐진 작전도 위로, 수십 개의 나무조각이 생명을 가진 동물처럼 이동한다.

타다닥. 파박!

허둥지둥 급한 기색으로, 몬스터학과 하청청 교두가 들어섰다. 그는 한 묶음의 작전 계획서를 들고 펼쳐 보였다.

“찾았습니다! 대슬라임 작전 계획을……!”

“그만! 설명은 됐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부터 말해!”

천마가 단박에 끊었다. 하청청은 즉각 입을 열었다.

“글레디에이터! 그물과 삼지창으로 무장시킵니다! 요구 인력은 3학년 30명! 그들을 전진시켜서 전면 방어를 시킵니다! 이후…….”

차르륵. 차르르륵.

상황판 위의 말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허공섭물로 수십의 말을 움직이며 천마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초반… 위명 이하 5인 투입. 다음으로 순차적으로 무장시켜 전방으로 고속 기동.”

“하지만 교주님, 그래서는…….”

“반론은 듣지 않는다. 다들 어떻게든 버텨 낼 걸로 봐. 지속 투입에 중점을 두고, 바로 실행.”

“명령 전달하겠습니다. 바로 실행.”

군대에서 흔히 쓰이는 농담이 있다. 전투와 더불어 제일 먼저 죽는 것은 ‘작전 계획’이라고.

아무리 잘 짜 둔 계획이 있다 해도, 가상의 전투와 실제의 전투는 다를 수밖에 없다. 칼과 창은 휘두르는 사람의 역량에 따라 바뀐다.

“으음…….”

꿈틀. 꿈틀.

몬스터학과 하청청, 던전학과 교두 월산이 초조하게 바라보는 가운데, 눈을 꾸욱 눌러 감은 흑객이 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글래디에이터 부대, 적 저지에 성공했습니다. 유효타입니다.”

“좋았어!”

“크아아! 역시! 대슬라임 전법이……!”

“요란 떨지 마. 다음으로 간다.”

두 주먹을 휘둘러 대는 늙은이들에게 일침을 가하고, 천마는 꾸욱, 눈 옆의 태양혈을 눌렀다.

지독한 피로. 어마어마한 압박감. 하지만 그 안에서 기묘한 희열이 피어올랐다.

지금 이 순간 그는 수백의 목숨을 떠안고, 수천수만의 적과 싸우는 것을 실감했다.

“투망대. 전진시켜라. 전선 고정.”

“투망대. 전진시킵니다! 전선 고정!”

“하청청, 상대는 본 드래곤이자 고룡이다. 예상 가능한 변수는?”

파라라락!

몬스터학 교두 하청청이 자료를 살폈다. 대략 10초. 그는 세상 모든 몬스터에 대해 아는 자다. 그럼에도 자신이 떠오른 바가 맞는지 확인한 후 대답했다.

“드래곤 투스(Dragon Tooth). 용아병입니다. 본래는 이빨에서 유래. 깨어진 용의 뼈들이 본 골렘이나 스켈레톤 나이트로 변이할 수 있습니다.”

“…얼마나 단단할지 미지수로군. 유장위는?”

“클레이보이언스(원격 주시) 마법으로 살피고 있습니다. 현재 닥치는 대로 부수고 있는 중입니다만…….”

파라락. 타다다닥.

실시간에 가깝게 전황을 표시하는 작은 말들. 천마는 자신이 유장위라면 어떻게 고룡 쉐이크를 부술지 상상하고, 그에 벌어질 현상을 추정했다.

“…검강, 아니, 강기에 숙련이 된 인원을 찾아 줘. 좌익으로 편성한다.”

“강기 숙련자. 알겠습니다.”

파락파락. 촤라라락.

교두 한 명이 인명록을 펼쳐 급하게 서류를 뽑아낸다. 그러고는 얼굴이 붉어져 팍! 하고 좌우로 손을 벌린다.

화라라락.

허공섭물로 뿌려진 수많은 용모파기.

본래라면 대외비 취급을 받았을 천무학관 알짜 전력의 표시다. 어제부터 급히 읽고 머리에 때려 넣기는 했지만, 천마는 아직 천무학관의 공격대. 그 전력을 다 파악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곤란했다. 지피지기는 전략의 기본. 굳이 손자의 말을 따를 것 없이, 아군의 전력도 제대로 파악이 되어 있지 않았으니까.

“…대열 변경. 역삼각으로.”

어찌어찌 해 보고는 있지만 머리는 과열되었고, 눈은 시뻘겋게 실핏줄이 도드라져 혈안처럼 보였다. 그런 그의 노력이 먹힌 것인지, 다들 죽어라 매달려 준다.

핏. 핏. 핏. 핏.

한 장 한 장 서류가 넘어갈 때마다, 빠르게 움직이는 그의 눈동자.

“대열 변경. 역삼각으로. 전달했습니다.”

“전력 보강하고. 흑객, 잠시 상황을 지켜본다. 이후 전황 파악 후 보고해.”

“전황 파악 후 보고. 집중하겠습니다.”

말과 함께 질끈. 다시 눈을 눌러 감는 흑객.

부르르르. 부들부들.

눈꺼풀 아래로 그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움직인다. 그런 그에 못지않게 천마도 격하게 한숨을 몰아쉬었다.

“후… 죽을 맛이네.”

레이드 공격대의 전권 대리.

그 말은 난데없이 수백 명 단위의 부대. 그 총대장이 된다는 이야기다. 당연히 천마의 부담은 장난이 아니었다.

그나마 천만 다행으로 흑객, 가장 믿을 수 있는 휘하가 옆에 있어서 천마로서는 큰 부담을 덜 수 있었다.

“고맙다. 정말 네 덕분이다.”

지표에는 새카만 파리들이 난리를 치는 가운데, 하늘 저 위에서는 구름처럼 펼쳐진 박쥐 떼들이 있었다.

바로 이 박쥐들, 흡혈귀 특유의 권능으로, 흑객은 인근의 박쥐 떼들을 불러들여 정보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파다다닥. 파다다닥.

하늘 높이에서 피해 없이 전 전역을 살필 수 있는 수천 개의 눈. 또한 그에게 종속된 세 명의 흡혈귀들이 있어, 지휘부에서 내리는 명령을 즉각즉각 전파할 수 있었다.

“공군이라… 그게 여기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괜히 아쉬운 소리를 해 보는 천마였다.

아생연후살타. 우선 내가 산 다음에 적을 친다. 이는 마교의 전략 전술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었다.

천마신교는 태생부터 사람 수가 적었던 단체다. 그렇기에 지금 이 상황에서 천마는 자신의 의향보다 적응이 더욱 빨랐다. 천무학관은 애초에 자신의 전력이 아니다. 최대한 살려서 리그웨더에게 돌려줘아 하는 재원.

‘우선은 방어다. 사람 목숨은 대체할 수 없는 자원이야.’

꾸욱. 꽈드드득.

검은색 일색의 반쪽자리 검. 브로큰 듀랜달.

태고의 언데드 기사에게 얻은 검을 손에 거머쥐며, 천마는 피어오르는 투기를 억지로 눌렀다.

‘이 차원을 노리는 놈들이 있다고 했지.’

천마 자신, 그리고 흑객과 그에게 종속된 3명의 흡혈귀. 어찌 보면 이들은 현 레이드 공격대에서 가장 강력한 전력이 될 수 있는 이들이다.

하지만 천마는 그런 그들을 전선에 투입하지 않았다. 그 대신 전령이자 통신망으로서 사용하고 있었다.

‘예비대. 최후의 최후까지 아껴야 하는 예비대. 이들까지 쓰게 되는 전투는… 이미 진 싸움이지.’

사람은 기계처럼 버티지 못한다. 제때제때 손을 쓰지 않으면 삽시간에 무너진다.

용맹하게 달려드는 전사 하나가 있으면, 그 주변의 전력이 크게 부풀어 오른다. 반면 겁먹고 내빼는 이들이 발생하면, 그 주변의 전선은 삽시간에 밀린다.

이것이 바로 사기(士氣). 인간은 다른 인간과의 관계. 사기나 명령의 적시에 따라 언제든지 전력이 늘거나 줄 수 있다.

현장을 알지 못하는 지휘부는 삽시간에 전력을 잃고 현실과 괴리된다. 그걸 알기에 천마는, 가장 최중요 전력을 싸움터가 아닌, 신경망으로 유지하고 있었다.

꿈틀!

“교주님, 유장위가 급속 이탈하고 있습니다.”

한참을 데굴데굴 눈을 굴리던 흑객이 헉, 하고 급하게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고룡 쉐이크 주변에서 정체 모를 대량의 몬스터가 발생! 유장위를 추적 중입니다. 한데… 놈이 이쪽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대량의 몬스터……? 용아병입니다! 쉐이크의 부서진 신체가 본 골렘으로 움직일 겁니다! 추정 전력은 개체당 위험 등급 9급! 미성숙 데스나이트 기준입니다!”

하청청이 듣자마자 질색을 하며 바로 고했다.

“…개새끼가 아주 벌집을 들쑤셔 놓고 있네.”

으드득.

천마는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 파악하고 이를 갈았다.

게릴라 전술, 아니, 어부지리라고 할까?

유장위에게 있어서 천무학관의 공격대는 아군이 아니다. 그냥 덤이다. 천마는 지금 녀석이 뭘 노리는지 짐작하고도 남았다.

아마도 격렬한 난전. 그중에서 최강의 일격을 연습하고 있을 터. 본 드래곤을 상대로, 놈은 공격만 하고 있을 터였다.

뒤탈? 수비? 그런 건 생각하지 않는다. 벌통에다 돌을 던진 다음, 날아드는 벌 떼는 천무학관의 공격대에 떠넘길 터. 천마는 놈의 심리를 손바닥 보듯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 역시 한때 탈마의 극에서 비슷한 경험을 한 적 있었으니까.

“전군에 전달! 유장위는 아군이 아니다. 발견하는 즉시 전력을 투사해서 밀어내도록!”

광마.

오로지 싸움에 미쳐서 다른 어떤 것도 생각 못 하는 상태의 마인을 이르는 말이다. 마교에서 워낙 극성스럽게 날뛴 인간들을 지칭했던 것으로, 한번 광마에 빠진 인간은, 적아를 구분하지 않고 그저 날뛰기만 한다.

상승한 자신의 경지에, 숙련도가 오를 때까지 미친 듯이.

“전군에 전달. 유장위는 적. 전력 투사. 전달합니다.”

흑객이 다시 눈을 감았다. 천마의 지시를 복명복창하며.

꾸욱. 바르르르.

다시금 눈꺼풀 아래의 눈동자가 격하게 움직인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이번에는 손도 발도 주춤주춤 떨고 있었다.

아마도 가진 능력을 최대한 쥐어짜, 전역 전체에 급보를 전하고 있을 터.

“난장판이 벌어질 텐데… 한 방이 필요해. 마법 병단의 회복은 아직인가?”

“잠시… 시간을 주십시오. 파악하겠습니다.”

차락. 차라락. 쉬이익.

전황판의 배치가 또 한 번 바쁘게 움직인다.

전쟁은 생물이다. 다음 수가 어떻게 튈지 모른다.

딸각. 딸각. 딸각.

특히 지금처럼 공격대가 고룡 쉐이크를 상대하는 중에, 유장위가 난입하여 마구 깽판을 칠 때라면 더더욱.

두웅! 두두둥!

멀리서 격렬한 굉음이 둔중하게 퍼지며 울렸다. 그와 함께 번뜩, 천마의 눈이 예리하게 뜨였다.

“이거 골 때리네. 3파전… 아니, 4파전이 될 수도 있겠어.”

“…예? 그게 무슨……?”

“느낌이 이상해. 4학년을… 준비시켜 봐. 무장은 대기병용으로 하고.”

직감. 한계에 달한 무인은, 때때로 과정을 뛰어넘어 결과에 닿는 경우가 있다. 이치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초월적인 감각이 그들을 인도하는 것이다.

짜리릿!

‘이런 생각 하면 안 되지만… 재미있는데?’

전율이 일었다. 천마가 그답지 않게 전선이 아닌, 지휘부에서 명령이나 내리고 있는 까닭이 바로 이것이었다.

보통이라면 싸움터, 그것도 검과 주먹이 오갈 때나 확장되는 초감각. 그게 지금 이 순간, 마구마구 피어오르고 있었다.

부르르르. 피이잇!

마치 호적수를 상대로 생사투를 펼치는 것처럼!

사사삭. 파바바박!

“교, 교주님?”

갑자기 전황판에 수많은 말들이 생겨났다. 그게 천마의 허공섭물임을 아는데도, 월산도 하청청도 기함을 터뜨렸다.

좌르르륵.

갑자기 돋아난 수십 개의 하얀 뼈 조각들. 쥐의 머리뼈처럼 작고 많은 수십의 말들이 새로 나타나 전황판 한쪽을 수놓고 있었다.

“이게 다 적… 교주님? 지금 뭘 하시는 겁니까?”

“…아아. 이게, 이런 식으로…….”

천마는 그에 대답하지 않았다. 너무 갑작스러웠다.

벽. 그리고 그 이상의 힘. 그는 갑자기 인과를 초월한 강렬한 힘에 황홀경을 느끼고 있었다. 천마는 살짝 열에 달뜬 눈으로, 상황판을 보며 한 무리의 뼈 뭉치를 향해.

쭈욱. 콰드득.

손을 뻗어, 으스러뜨려 버렸다.

두우우웅!

그리고 그와 동시. 백 장이 넘는 먼 거리에서.

과드드득! 우드드득!

“크아아아!”

“아아가가각!”

수십의 드래곤 투스가 산산이 부서지며 짜부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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