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5화. 징조 (6)
쿠쿵. 쿠우우웅!
굉음이 울렸다. 고대 광실의 서까래만 한 크기의 뼈 기둥. 하지만 실제로는 고룡의 작은 발뼈에 지나지 않는 토막을, 시퍼런 검강이 치고 지나갔다.
과드드득! 가가각!
반 토막이 나며, 거대한 다른 뼈에 부딪혀 깨어지는 발뼈.
좌르르륵.
충격으로 이리저리 산산이 흩어진 뼛조각들이 너저분했다. 그렇게 쏟아진 뼛조각들은, 질퍽한 땅에 뿌려진 후.
그우으우우…….
허옇게 부풀어 올라 사람의 형상을 취해 갔다.
스각! 파가각!
“아직… 아직이야. 조금만 더!”
솟아나는 뼛조각들을 다시금 박살내며, 유장위는 신들린 듯 검을 휘둘렀다.
허억. 허억.
그런 그의 모습은, 며칠 동안 씻지도 못한 거지처럼 꾀죄죄한 몰골이었다.
찌이익.
바짝 갈라진 입술에서 피가 번진다. 주르륵 흐르는 피를 핥는 유장위. 그의 턱을 타고 흐르는 땀방울은.
놀랍게도 진하고 탁한 검은색이었다.
끄---루루루!
신체 일부를 계속해서 파괴당하는 고룡 쉐이크.
마을만 한 크기의 본 드래곤이 소름 돋는 기성을 울리며 노호했다. 흡사 천둥처럼. 공간 자체를 뒤흔드는 굉음.
우르르릉!
“흐우우우---아!”
하지만 유장위는 그에 밀리지 않았다.
온몸에 탁하고 검은 땟국이 줄줄 흘렀지만, 숨을 몰아쉬는 그의 눈은 은은하게 신광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는 연달아 두 번의 검강을 뿜어내고, 마지막은 그냥 검날로 기둥 하나를 쪼개 버렸다.
채앵! 부우웅!
피----잇!
휘두르는 검에서는 기묘한 소리가 났다.
검명. 검의 울음. 하지만 일반적인 검명이 아니다.
휘르르르---씨익!
극한의 효율성. 헛힘을 전혀 넣지 않은 베기와 찌르기. 그에 검날이 바람을 가르며 기묘한 소리를 울렸다.
마치.
숨이 다해 죽어 가는 마지막 단말마처럼.
우드득! 뚝! 쨍강!
“아차.”
기어코 검이 부러지고 말았다.
사실 여기까지 버틴 것이 용하다고 할 수 있었다. 현경의 고수가 무아지경에 빠져 뿜어낸 내력. 그걸 계속해서 들이부었다. 이쯤 되면 아무리 잘 단조된 명검이라 하더라도 버틸 재간이 없다.
“부족해… 아직 부족해…….”
파박. 바바바박.
손이 비자 급하게 몸을 뒤로 물리는 유장위.
크루와아아아!
가가가각!
이탈하는 그를, 뼈다귀 병사들이 뒤쫓았다. 흡사 상처입은 벌레에게 달려드는 하얀 개미들처럼.
새로 태어난 적들 한 무리를, 유장위는 쭈욱 떨쳐 내며 달렸다. 아직도 신광을 뿜어내는 그의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어디… 어디… 어디냐…….”
완전한 몰입. 무아지경의 한 가운데에 빠진 그는,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지금 그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건 부족함. 그것이 간절할 정도로 피어나고 있었다.
휘둘러야 한다. 그러니 무기가 필요했다. 아니. 정확히는 검이 필요했다.
검사는 검에 자신을 바친 자. 아직 완전한 탈각을 이루지 못한 그는, 손에 검이 없는 상태를 한순간도 버티기 힘들었다.
타닥. 흐읍! 쐐애액!
바위 언덕을 걷어차고, 급강하에 가깝도록 달린 유장위. 한참을 이리 뛰고 저리 구르며 주변을 훑던 그의 눈에. 언뜻, 주인을 잃고 나뒹구는 낡은 검이 들어왔다.
최소 십 년. 운 나쁜 어느 무인이 어둠나무 지역에서 불귀의 객이 되면서 떨어뜨린 검. 검날은 물론이고 검 자루까지 녹이 가득한 폐검이었다.
하지만 유장위에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있다! 좋아. 이 녀석으로…….”
파악! 쉬이익!
손을 뻗어 잡아당기는 시늉을 하자, 삽시간에 십여 장을 날아서 유장위의 손아귀로 날아드는 검.
그건 허공섭물 같은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유장위는 저도 모르게 발휘하고 있었다.
어검의 묘리를.
우우우웅……!
사기가 피어오른다. 이미 켜켜히 곳곳에 낀 때와 진흙. 녹슬며 갈라진 흠집들이, 유장위를 노려보듯 시커멓게 색을 띄워 올렸다.
마검. 주인의 죽음 이후, 비틀린 영혼들의 외침이 너무 깊이 새겨진 검. 본래 생명이 없었던 기물이, 살아 있는 것처럼 잔잔한 실뿌리를 뻗어, 유장위의 손을 휘감았다.
“하, 귀여운 놈.”
꽈아악! 부르르릉!
하나 유장위가 그 마검을 손에 들고 내력을 불어넣은 순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파스슥. 파즈즈즉.
자잘한 불꽃이 튀며, 검이 변했다. 흡사 벌레가 껍질을 벗듯. 녹과 때와 흙먼지를 부스스 흘려내고 시퍼렇게 날이 되살아난 검.
우우우웅. 우우우웅.
더 이상은 마검도 폐검도 아닌, 새로 생명을 얻어 되살아난 검. 그 검신은 제법 오래된,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는 형식의 옛 모습을 하고 있었다.
“송문고검이라… 좋구나. 그간 많이 굶주렸지?”
휙휙.
키득키득 웃으며 검을 휘두르는 유장위. 그런 그의 몸에서 다시 한번 거무죽죽한 땀이 흘러내렸다. 폭발적으로.
휘청!
“어이쿠. 젠장.”
거기서 갑자기, 유장위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주르륵. 투둑. 툭.
뺨을 타고 조금 전보다 더 역한 냄새를 내며,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무… 물… 목이 말라…….”
마지막으로 물을 마신 것이 언제였더라?
탈수를 자각한 순간 목이 마르다 못해 갈라지는 듯한 통증이 덮쳐 왔다. 마실 것. 마실 것이 필요하다. 헐떡이는 그의 입은 바싹 말라 침 한 방울 흘려 내지 못했다.
그저 찢어진 입술에서 흐른 피를 겨우 삼킬 뿐.
“음…….”
초점을 잃었으면서, 신광을 뿜어내는 유장위의 눈이 바닥에 닿았다.
검고, 질척하고, 썩은 내가 잔뜩 피어오르는 물구덩이에.
철퍽. 벌컥벌컥!
유장위는 망설이지도 않고, 바로 그 웅덩이에 입을 대고 들이켰다. 쓴맛. 짠맛. 구역질 나는 냄새가 코를 찔러 왔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지금 그의 몸에는 수분이 필요했다. 이 검은 물이 어떤 독을 품고 있건, 그냥 물 자체가 필요했다.
“후우… 읍……? 으윽……!”
휘청. 쿠당탕!
그렇게 일어나려고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유장위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재차 여러번 넘어졌다. 흐릿해진 그의 눈에.
“……!”
물웅덩이에 비친 하얀. 백발이 성성한 거지 노인의 모습이 비쳤다.
“내가… 이게… 나……?”
한계였다.
물도, 음식도, 휴식도 취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고룡 쉐이크를 광적으로 따라다닌 결과다.
불에 달려드는 부나방처럼, 진원지기와 생명력까지 모조리 불태워 버린 지금의 유장위는 앞으로 일각도 버티지 못하고 쓰러져 시체가 될, 그런 몸이었다.
“아니, 아니야. 안 돼. 조금 더… 조금만 더……!”
하지만 실은, 이미 이 상태로 한나절 이상을 계속하고 있었다.
신체의 한계. 그건 이미 넘어서 있었다. 내력도 체력도 완전히 바닥나, 시체가 되어 뒹굴어도 이상하지 않을 몸이다. 지금의 유장위의 몸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우드득. 뿌드드득.
“크……!”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상태였다. 벽을 마주치기 전에는 벽을 넘을 수 없는 법. 육신의 고통 따위는 머리에 전해지지도 않았다.
지금 그의 머리에 남은 망집이라곤.
“벤다…….”
오로지 그 하나뿐.
베고. 베고. 베어서, 저 가증스러운 차원의 경계를 베어 버리겠다는. 단 한 가지 마음뿐이었다.
그르르. 그르르르…….
“호우… 좋아…….”
번뜩.
유장위의 눈에 서린 신광이, 다시금 빛을 발했다. 그는 어느새 자신을 포위한, 헤아릴 수도 없는 뼈 무더기 군단을 보고 히쭉 웃음 지어 보였다.
지이이이잉…….
그 수는.
수백을 넘어, 수천을 넘어, 수만에 달했지만.
“간---다!”
콰르르르륵!
한줄기 빛살이 되어, 검 그 자체가 되어, 송문고검을 든 현경의 고수가 뼈 무더기를 다시 찔러 갔다.
* * *
한편.
“방패- 들어!”
천무학관 4학년생 선임 조장 태유명이 고함을 질렀다.
“방패- 들어!”
“방패- 들어!”
조장의 외침에 이어 조원들의 복창이 뒤따른다.
찰칵. 찰칵. 좌아악. 좌아악.
전신에 두터운 중갑을 걸쳐 입은 4학년들.
단단한 철제 방패를 들고 그들은 전진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요란한 금속음이 울리기에 목소리는 자연히 더 높아졌다.
“대형- 변경! 좌우열- 완보! 중앙- 제자리!”
“대형- 변경!”
“변경이다! 대형 변경!”
차차착. 타다다닥.
쿵. 쿵. 쿵.
전장. 수많은 소음과 비명이 가득한 곳.
거기서 큰 목소리, 우렁찬 호통은 사기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바로 귀에 꽂히는 지시는 의사소통, 지휘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안정감을 준다.
그래서 조장이나 조원들이나, 다들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공포에 삼켜지지 않기 위해.
“완보! 완보!”
“제자리! 제자리!”
좍좍좍좍. 좍좍좍좍.
중앙은 발을 맞춰 제자리 걸음을 하고, 좌우는 크게 내딛는다. 그에 따라 2열 횡대로 라인을 구축하던 대형이, 형태를 변경한다.
역삼각형, 혹자는 반추형이라 부르는 진형이다.
일자진과 학익진의 성격을 같이 갖춘, 그래서 어찌 보면 어중간한 진형이다.
“방열! 방각! 너희 둘을 믿는다!”
“예!”
어느 진형이나 마찬가지지만, 이 진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은 이들은 중앙이다. 가장 담대하고 신체 능력이 뛰어난 소림 출신의 무인이 최중앙에 둘.
주르륵. 투두둑.
진땀이 흘러내렸다. 실전은 언제 겪어도 전율이 흐른다.
한 사람은 타워 실드. 또 한 사람은 카이트 실드를.
몸 전면을 가린 방패의 벽. 그 너머로 어마어마한 뼈 무더기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까라라락! 와다다다닥!
가히 군단. 겉모습은 그냥 스켈레톤 워리어였다. 하지만 일반적인 해골병들과 달리, 녀석들의 머리에는 짤막하고 예리한 뿔이 돋아 있었다.
바로 용아병.
용의 이빨이 땅에 떨어지면 일어난다는 하급 마물이다. 그러나 말이 하급이지, 저놈들의 모체는 자그마치 본 드래곤. 그중에서도 레이드급 몬스터인 고룡 쉐이크다.
과르르륵. 과르르륵.
생김새는 제각각. 어떤 놈은 그냥 머리에 뿔이 달린 스켈레톤이고, 어떤 놈은 골마를 탄 기사의 형상이다. 개중 간간히, 켄타우로스를 연상케 하는 반인 반마의 뼈다귀 괴물도 있었다.
“방패 내려!”
두우웅! 우드드득!
철과 땅이 맞닿는 굉음. 그리고 그 굉음을 묻어 버리려는 듯 격렬하게 골마들이 돌진하며 달려들었다.
“작대 세워! 팔 고정!”
“몸으로 버틴다! 충격에 대비!”
“충격 대비---!”
찰칵. 찰칵. 타다닥!
전면 방패수들의 방패에는, 위쪽에 작은 홈이 파여 있었다. 명령에 따라 그 홈에 장대를 끼우는 4학년들.
타다닥. 채채챙!
디딤점이 셋이 된 방패들이 견고하게 섰다. 어설프지만 낮은 담벼락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 뒤에 바싹 붙어서 방패에 체중을 싣고 대비하는 4학년들.
끄----루루루루!
고작해야 그거냐. 그런 걸로 우릴 막을 수 있겠느냐. 그리 말하는 듯 전면의 해골 기사가 눈에 붉은 불을 켜고 달려왔다.
두두둑. 우두두둑!
지축이 울렸다. 분명 상대는 뼈다귀. 분명 살점도 갑옷도 없어 가벼운 몸일 텐데, 어디서 저런 어마어마한 충격량을 가지는지.
“충격 대비! 30미터!”
“20미터! 대비!”
“으아아아아아!!!”
전면의 방패수들은 입안이 바짝바짝 마르고,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무인으로서는 창피하지만,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은 기분이었다.
“10미터! 온다! 모여!”
하나 실제로 달아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건 용기가 아니라 두려움 때문이었다.
-양떼라 한들 무리 지은 덩어리는 치지 못한다. 늑대가 달려들 때, 양의 우두머리는 무리가 적을 향해 머리를 내밀게 한다.
-등 뒤는 약점. 그 약점을 드러내지 않는 것만으로도 개채의 생존율은 올라간다. 운 좋게 뿔로 들이받는 경우라도 생기면, 포식자는 주춤할 수밖에 없다.
-살아남고 싶다면, 절대 혼자 달아나지 마라. 함께 있어라. 싸우지 않아도 된다. 그저 숫자가 여럿 몰린 것만으로도 적의 공격력을, 주의력을, 행동력을 감소시킨다.
수많은 수업으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그리고 경험으로 겪어 알고 있었다.
지금 여기서, 몸을 빼는 것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자살행위라는 걸. 그렇기에 피하지 않았다. 피할 수가 없었다.
눈앞에서 노도처럼 몰려오는 뼈 무더기의 돌격을.
“충격 대비……?!!!”
와드득. 콰드드득!
이변이 일어난 건 그때였다. 갑자기, 코앞까지 접근해 왔던 수많은 용아병들.
“어… 어어?”
바직. 바지직. 콰드득!
그들이 갑자기 허공에 붙잡혀, 보이지 않는 손에 벌레가 그리 되듯 으스러지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