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6화. 징조 (7)
끄루루루! 기기기기기!
수십 마리나 되는 뼈다귀 괴물들이 으깨지고 바스러졌다. 그렇게 죽어갔다.
애초에 언데드. 살아 있다고 할 수 없는 몬스터들이다. 하지만 허공에서 허망하게 부서지는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소름이 돋게 만들었다.
빠가각! 우직!
저놈들. 이제 정말로 죽는다고.
죽음을 모르는 언데드를, 그대로 죽여 버리는 강대한 힘. 그건 아군에게도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 대체 이게 어떤 힘의 행사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으니까.
“저거 뭐야? 마법인가?”
“…마법처럼 보이기는 하는데…….”
어느 조원이 외친 말에 선임조장 태유명이 힘겹게 입을 떼었다.
마법?
사실 그렇게 여기는 게 자연스럽다. 천무학관의 고위 마법사가 작정하고 펼쳐 낸 힘이라면 설명된다.
하지만.
“그럴 만한 마법사를… 남겼을 리 없잖아.”
“아… 리타이어.”
학관의 마법 전력은 초반에 이미 써 버렸다. 고룡 쉐이크. 산처럼 거대한 본 드래곤을 땅에 떨어뜨리기 위해, 마법사들은 대단위 합체 마법이라는 강수를 두었다.
우드득! 우드드득!
그 덕분에 효과는 확실히 보았다. 아직도 제대로 일어나지 못하고 나뒹구는 고룡 쉐이크. 대단위 중력 마법은 확실히 작용하고 있다.
다만, 그러느라 공격대의 쓸 만한 마법사는 전부 끙끙거리며 앓아누웠지만.
“숙련자 이상 마법사는 죄다 마나 고갈이래.”
“회복하기까지 시간은?”
“최소 1시간.”
“염병. 그 전에 우리가 죽겠는데… 우워!!!”
태유명의 말을 받은 조원이 투덜대다가 화들짝 놀랐다.
바즉바즉. 콰가가각!
또 한 무리의 용아병들이 허공에 휘말려 올라가 으스러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거… 뭔… 또야?”
“이해… 가 안 돼… 이건 무슨…….”
비현실적인 광경에 두 사람은 신음했다. 저 어마어마한 힘의 파동이, 마법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무엇인가. 정령술? 아니면 이능?
애써 짚어 보지만 떠올리자마자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광경. 보이지 않는 손이 수십의 뼈다귀 무리를 집어 들어 허공에서 구기고 바스러뜨리는 현상.
저건 솔직히 그냥 자연재해다.
태유명은 자신이 저런 힘에 휘말렸을 때, 어떻게 될까 생각해 보고 가늘게 몸을 떨었다.
“정말 놀라운 무공이군. 탈마는 확실히 다른 건가. 유장위도 저런 건 못 했던 것 같은데.”
흠칫!
뒤에서 들린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태유명이 돌아보았다.
“…제 수석교두님?”
거기 서 있는 이는 고요히 검을 뽑아 든 천무학관의 검성.
하나 담담한 자태와 달리, 그의 눈동자는 잔물결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쪽에 어떻게… 괴물 파리는요?”
“저지에 성공했다. 당문의 독은 대단하더군. 확실히.”
까닥.
턱을 들고 조금 전에 있었던 곳을 가리키는 제운비.
슈와아아아…….
그곳에는 오색의 구름 덩어리가, 검은 안개를 휘감으며 살라먹고 있었다. 지독한 독무. 한데 어찌된 독인지, 번져 나가며 희석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불처럼 더 크기를 키워가는 듯 해 보였다.
“정령사와 마법사로 바람을 지원해 주니, 일정 공간을 통째로 쓸어버리고 있다. 후. 어릴 적 고향의 놀이판 같군.”
덕분에 제운비는 기분이 이상했다.
괴물 파리로 난리가 난 상황을 당무련이 맡아 줘서 최악을 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어마어마한 독의 향연을 보았다.
그래서 다른 전선, 용아병들이 돌격해 오는 곳으로 오니, 이번에는 또 초현실적인 광경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게 아닌가.
콰드득! 와드드득!
또 한 번 한 움큼. 이쪽으로 달려오던 용아병들이 한 무더기로 작살난다.
덕분에 엉거주춤. 용아병도 주춤거리고, 이제나저제나 방어 태세를 갖추고 있던 4학년의 방패 진형도 뻘쭘해지고 있었다.
“…제 교두님 고향이 어디시길래 그리 살벌합니까?”
“산서다. 어릴 때 불 놀이를 자주 했거든. 혹시 바싹 마른 잔디밭에, 불씨가 떨어지면 어떻게 되는지 아나?”
“어…….”
태유명은 잠시 생각해보고 곧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래도 눈앞에서 퍽 퍽 퍼 먹히는 적 무리를 보며, 이야기에 집중하기는 쉽지 않았다.
힐끗.
그는 다시금 저쪽 하늘. 당문의 독이 죽음의 무지개를 띄우는 곳을 보고 한숨 쉬었다.
“본 적은 없지만… 상상은 갑니다. 저런 형국이겠죠.”
시커멓게 번져 간다. 마른 풀에 불이 붙은 것처럼.
검은 파리의 물결을 독연이 불 붙은 듯 살라 먹는다. 문득 대격변의 날 이전, 강호에서 돌았다던 소문이 생각났다.
“당문에 원수를 지면 살아도 산 게 아니라더니…….”
“삼 사(死) 말이로군. 확실히 당문은 그럴 만하지.”
“삼 사? 당문 같은 곳이 두 곳이나 더 있었습니까?”
“있지. 하나는 벽력당. 화기를 다루는 곳이네. 관부와도 연이 있어, 산서 사람 함부로 건드리면 쑥대밭이 난다고, 떠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입에 달고 살았어.”
“아하, 산서벽력당… 다른 하나는요?”
“황실이네. 동창이니 금의위니 하는 이들 있지 않은가?”
“…….”
태유명은 잠시 얼어 있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말인즉슨, 당문을 건드리는 건 황실이나 관부를 건드리는 것과 동일한 위험도라는 것 아닌가. 새삼 대격변의 날 이전에, 강호인들이 당문을 얼마나 꺼렸는지 알 것 같았다.
우드득. 콰드드득!
“…그런데 저게, 무공이란 말씀입니까?”
이미 여러 번 봐서 익숙해진 제운비와 달리, 태유명은 저 힘의 행사가 익숙해질 것 같지 않았다.
* * *
태유명은 저 어마어마한 힘의 행사가 익숙해질 것 같지 않았다. 제운비는 자그마치 화경의 무인인 데다, 이미 여러 번 봐서 익숙해진 모양이지만.
“그렇다네. 새 공격대장. 구옥경 대협인 듯해.”
“아, 그 마교주…….”
흠칫.
알은체하다 태유명이 얼어붙었다.
생각해 보니 이한-천마라는 이는, 분명 지휘부에서 공격대 전체를 통솔하고 있을 터였다. 그런데 거리가 십 리는 되어 보이는, 이곳까지 힘을 투사한다면.
“말을 조심하시게. 어쨌든… 탈마는 현경과 좀 다른 모양이야. 저런 자연재해가 가능한 걸 보면.”
“자연재해…….”
“어… 어울리기는 한다.”
“그러게.”
주변에서 4학년들이 웅성거렸다.
이제 보니 태유명만이 아니라 제법 많은 4학년들이 두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멀찌감치서.
“현경의 경지는 자연지경. 사람이 자연의 힘을 쓸 수 있게 된다는 것 아니었습니까? 저건 무슨…….”
“글쎄다. 크게 보면 다르지 않을 수도.”
제운비는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자연이라고 하면, 초원에 수풀. 평화로운 생명의 터전 정도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지진이나 태풍. 해일 같은 자연재해도, 따지고 보면 자연의 힘 아니던가.
“뭔 걸어 다니는 재앙인가… 하……? 이런……?!”
재미없는 농담을 하다 말고 제운비의 안색이 급변했다.
씨---아아아악!
그건 한순간이었다. 난리가 난 중력장 안에서, 강렬한 검강이 포환처럼 쏘아지더니.
와드득! 콰각!
용아병들을 움켜쥐고 으스러뜨리는 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기운을 그대로 직격한 것이다.
우르르릉.
마른하늘에 우레 소리가 울리고, 일진광풍이 일었다.
제운비는 직감했다. 놈이다. 유장위다. 이 대체 무슨 난장판인가. 마교 출신의 탈마의 고수는 돕고 있는데, 정작 정파의 맥을 이은 현경의 무인이 방해를 하다니.
“정말이지… 미쳤군! 진짜 우리를 죽음으로 몰기라도 할 생각인가!”
패애액!
노기가 충전한 제운비가, 검강이 솟아오른 곳으로 신형을 날렸다.
“제. 제 교두님? 혼자서…….”
“나는 괜찮네-! 자네들이나 조심하게--!”
대체 얼마나 빠른 건지, 말의 끝이 느릿하게 길어지고 있었다. 태유명은 그에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조심……? 우리가 무슨…….”
“어이. 선임조장!”
와라라락!
대답은 가까이에서 들려왔다. 다급한 얼굴로, 저 앞을 가리키는 4학년생.
“온다! 저기 저거! 데스나이트급인 거 같아!”
우르르르.
저만치 물러서 있던 하얀 뼈 무더기. 용아병들.
놈들중에 유독 크고 빠른 놈이 이쪽으로 돌격해 오고 있었다. 그에 태유명은 알아차렸다.
“씨발, 유장위 이 개새끼가…….”
자신들을 지켜주던 보호의 손길을, 미친 검귀가 흙발로 걷어차 버렸다는 것을.
* * *
끼르르르! 끄아아아!
용아병에 대한 전설은 리그웨더의 세상에 있었던 것이다. 고대 마도제국. 신계까지 위명을 떨친 마녀는 수많은 존재를 학살했다.
그중 용의 이빨을 땅에 뿌리며 주문을 외우자, 대지에서 건장한 전사가 솟구쳐 일어났다. 그들은 외견상 사람과 별 차이가 없고, 개중에는 시나 노래를 즐기며 술을 좋아하는 자도 있었다 하니, 어찌 보면 소환이 아니라 창조에 가까운 기적일 터.
기기기기기! 끼드드득!
하지만 지금 나타난 용아병들은, 그런 전승과는 전혀 다른, 추레한 뼈다귀 괴물일 뿐이었다.
겉보기엔 그냥 스켈레톤. 머리에 난 두 개의 짧은 뿔 외에는, 인간을 베이스로 한 언데드 해골과 다를 것이 없었다.
굳이 다른 점이 하나 있다고 하면 일반적인 스켈레톤보다 훨씬 강하고 빠르다는 것.
끼드드득! 끼드드득!
이름상으로는 분명히 병(兵)일진대, 뼈 말까지 타고 달려드는 놈. 이건 숫제 데스나이트(死靈騎士)에 가까웠다.
‘저 정도면 위험 등급 12급가량…….’
콰아앙! 콰드득!
“으아악!”
폭음이 일었다. 분명히 뼈다귀라서 가벼울 터인데, 방패로 막은 4학년은 쇠뭉치에 맞은 듯 튕겨 날아갔다.
“조심해! 뭉쳐!”
“대열 비우지 마!”
차차착! 차라라락!
빈 자리를 즉각, 다른 방패병이 채운다. 지시 하달과 동시에 움직이고 있는 몸.
수없이 많은 반복 숙달의 효과다. 그것이 귀중한 생명을 살려냈다.
끼르르르르! 콰창! 콰창!
“대열 더 좁혀! 겹쳐!”
“어깨 바싹 대! 으아아아!”
끼드득! 끼드드득!
켄타우로스를 닮은 반인 반마의 용아병. 놈은 체고가 거의 일 장에 달했다.
기민하게 움직일 뿐이지, 크기나 무게로 봐서는 본 골렘에 가까운 녀석. 그런 놈이 껑충 뛰어 랜스 차지로 날아들자, 받는 입장에서의 충격량은 어마어마했다.
콰드득! 콰쾅! 쾅!
“으득!”
“끄으윽!”
하지만 뚫지 못한다. 시기적절한 명령이, 방패 수십을 하나로 모아 거대한 덩어리를 만들었다.
끼르르르…….
조금 전처럼 인간을 튕겨 내지 못한 용아병이, 거꾸로 균형을 잃고 휘청거린다. 그리고 그 틈을 보고 넘어갈 정도로 천무학관 4학년은 만만하지 않았다.
“방패 들어! 때려!”
“으아아아!”
쾅! 쾅! 쾅!
일사불란하게 모여서 내려치는 쇠 방패들.
보통은 방패라고 하면, 수동적인 방어구로 인식이 박혀 있다. 지금의 4학년들도 한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무거운 철판에 제대로 후려맞고 얼얼해진 다음에는, 그 인식이 바뀐다.
꽝! 꽝! 꽝!
메이스. 충격량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병기의 대표 주자. 묵직한 쇳덩어리는 무게가 거의 7-8킬로에 달한다.
그런데 양손 방패. 타워실드는 철판을 여러겹 덧대서 만든 쇳덩이. 무게가 메이스의 두 배에서 세 배까지 된다.
꽝! 빠각! 빠가각!
끼르르르!
그런 충격이 수차례 이어지자, 용아병이 신음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다리뼈에 금이 가고, 얼마 후 더 버티지 못하고 부러진다.
기으으으… 쿠당탕!
“넘어뜨렸다! 조져!”
“으아아아! 하나! 둘!”
“하나! 둘! 찍어!”
콰앙! 콰콰앙!
쓰러진 용아병을 철의 방벽이 내려찍는다. 딱히 급소를 정해서 때릴 것도 없이, 그냥 가까운 자리를 힘을 실어 찍는다. 그것만으로도 타격은 충분히 갔다.
부드득. 우지지직!
“됐다! 잡았어!”
“숨 들이마셔! 다음이 온다!”
“숨 들이마셔!”
기사급 용아병을 쓰러뜨린 것을 기뻐할 틈도 없이, 4학년들은 뒤이어 달려오는 놈들을 맞아야 했다.
우두두두. 기르르륵!
뼈 말을 타고, 역시 랜스 차지를 해 오는 녀석들.
다행히도 급이 낮은지, 체구가 작고 속도도 느리다.
하지만 숫자가 숫자였다. 자그마치 수십. 선임 조장은 이 공세를 버텨 내기 힘들다고 직감했다.
“쐐기 대형 온다! 방패 진형 돌파 대비!”
“돌파 대비! 준비!”
“돌파 대비이!”
촤르륵. 차라라락.
견고한 방패의 진이 슬며시 열리고, 반으로 갈라진다. 그 일사불란한 움직임에 태유명은 침을 삼켰다.
‘먹느냐… 먹히느냐……!’
종심돌파진. 속칭 쐐기 대형.
기마대나 기사단의 전술의 극의다. 그런데 보병으로선, 그 무적의 전술에 카운터로 작용하는 단 하나의 전술이 있었다.
바로 좌우 협공. 이쪽의 허리를 끊으려는, 적의 허리를 끊는 것. 시기만 적절하면 최대의 피해를 줄 수 있다.
불끈!
태유명은 용기를 내며, 일부러 과장되게 큰 소리를 냈다.
“나는 쌈 싸 먹기를 좋아한다고! 가자아!”
우와아아아!
날카로운 뼈의 창에, 견고한 강철의 방패가 맞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