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화. 신화경, 혹은 신마경 (1)
콰드득. 콰가가각!
돌격은 매서웠다. 골마를 탄 용아병들은, 마치 쐐기 창처럼 찔러 들어왔다.
드드등! 콰가가각!
방패를 후려갈기는 창에서 불꽃이 튀었다.
어처구니없는 재질이다. 분명 생긴 걸로 봐서는 뼈인데, 쇠 방패와 부딪혀 불꽃이 튀었다.
“방패! 겹쳐!”
악에 받친 호통이 터져 나왔다. 명령이라기보다 비명에 가까운 소리.
“반걸음 더 붙어! 어깨 붙여!”
“스크럼! 스크럼!”
그래도 다행히 전달은 즉각이었다.
카라라락! 차각차각!
방패들이 겹쳐지며 강철의 벽이 되었다. 그 위를 날카로운 뼈 창들이 두드렸다.
땅! 따당! 따다다닥!
충격량은 무게에 속도의 제곱을 곱한 것. 강철의 벽이 움찔움찔 뒤로 밀렸다. 거대한 배가 쪼개지기 전 용틀임을 하듯, 방패의 전열 전체가 흔들렸다.
“으아아아!”
“끄아아악!”
다들 죽는소리를 냈다. 방패를 통해 전해지는 충격 때문이다. 거창의 돌격을 방패로 받으려면, 팔로는 막을 수 없다. 그랬다간 튕겨 나간다.
어깨를 대고 몸 전체로 버텨야 한다.
쾅! 쾅! 빠각!
그러다 보니 충격량을 흘리지 못하고 고스란히 몸 전체로 받아야 했다. 머리까지 몽둥이로 후드려 맞는 듯한 띵한 느낌.
따당! 따다당! 빠각! 빠각!
하지만 버텨 냈다. 모두가 하나로 연결되었기에 충격이 고루 분산되었다.
분명 달려드는 기병의 랜스 차지는 무시무시했다. 하지만 무게가 가볍다. 날카롭긴 해도 속이 빈 뼈다귀들이다.
“셋! 세고! 반보 물러서! 하나! 둘!”
“셋! 반보!”
“반보 물러서!”
차각차각. 차각차각!
긴 지네가 옆으로 걷듯이, 움찔움찔 물러서는 방패진.
따다당! 따다다당!
틈을 주지 않으려고 골마를 탄 용아병들이 뼈 창을 방패 위로 꽂아 넣는다. 그에 위태롭게 경련하는 방패의 대열.
“반보 뒤로!”
“반보 뒤로!!!”
따다당! 따다다당!
하지만 끊기지 않는다. 뚫릴 듯 뚫릴 듯 하면서도 뚫리지 않는다.
다들 죽는소리는 내지만, 실제로 죽는 이는 없었다. 적응. 어느새 용아병들이 공격하는 호흡에 익숙해진 것이다.
차각차각. 차각차각.
그에 맞춘 회피. 맞기는 하지만, 맞는 순간 반걸음을 빠져 최고 위력의 거리를 스스로 벗어나는 탓이다.
강철의 벽은 그렇게, 뚫릴 듯 뚫릴 듯하면서도 질기게 목숨줄을 이어 가고 있었다.
호되게 얻어맞는 해면처럼, 꼴이야 어쨌든 버틴 것이다. 그들은 날카롭던 적의 예봉을 고스란히 흡수해 버렸다.
끼르르르… 빠각! 빠가각!
그때부터, 승부는 천천히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서 정해지기 시작했다.
“생각대로야! 지능이 낮아!”
“셋에 반보 물러서! 하나! 둘!”
“셋! 물러서!”
차각차각. 차각차각.
방패의 벽.
얼핏 보기에 그저 수비에만 치중하는 이 전열은, 사실 그 어떤 공격 진형보다 많은 적을 죽인 전법이었다.
방패로 무장한 무림인들은, 천근추로 몸을 무겁게 하고, 내기로 충격을 버텨내는 살아 있는 성벽이었다.
땅! 따당! 와당탕!
그 성벽을 두드리는 용아병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랜스 차지의 충격을 제대로 적중시키지 못한 기수가, 땅에 떨어져 나뒹군다.
끼르르… 빠각! 빠각!
낙마의 충격 따윈 무시하고 다시 무기를 들고 방패에 달려드는 용아병.
콰지직! 꽝!
하지만 놈의 골통은 곧 산산조각으로 부서진다. 방패를 든 무림인이 아니라, 뒤에서 달려드는 아군의 창에 의해서.
끼르르르! 끼르르르!
공격 본능. 이들은 애초에 적을 죽이려는 의지 외엔 아무것도 없는 것들이다.
제가 죽는 것에도 거침이 없고, 그러다 보니 아군이 제 창에 박살이 나도 아무 거리낌이 없다. 오히려 적 방패열을 때리는 데 거추장스러운, 장애물로 인식된다.
퍼걱! 빠가가각! 퍼억!
말에서 떨어진 기수는 그렇게, 사정없이 내질러지는 아군의 공격에 박살이 났다. 마치 모루와 망치 사이에 끼인 호두와 같았다.
계속해서 갈려 나가고, 아군의 말발굽에 짓밟히는 뼛조각들이 쌓여 가기만 했다.
“셋에 반보 물러서! 하나! 둘!”
“셋! 물러서!”
차각차각! 차각차각!
그걸 계속해서 반복한다. 수없이, 계속해서 물러난다.
전신 모공으로 진한 땀을 흘려 내면서도, 호흡이 거칠어 어깨로 숨을 쉬면서도, 4학년들의 방패진은 아슬아슬하게 버텨 냈다.
거리는 곧 이들의 무기.
한 걸음 물러난 거리가 적을 잡아먹는 함정이 된다.
용아병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 따위는 없었다. 그래서 무모하고 의미 없는 돌격만 계속할 수 있었다.
인간이라면, 아니, 죽음의 공포를 아는 존재라면, 절대로 벌이지 않을 엄청난 낭비.
수백이 달려들던 와중에 수십이 갈려 나갔다. 하지만 수적인 피해보다 더 큰 피해가 있었다.
바로 속도였다.
“낚였다! 낚였어!”
“느려지고 있다! 2형 준비!”
달리는 기병은 치명적이다. 강하고, 빠르기에, 공격력 그 자체가 최고의 방어가 된다.
하지만 속도를 잃은 기병은 그저 표적으로 전락한다. 말 위에 올랐기에 체격이 큰 만큼, 맞히기도 쉽다.
“방패 세워! 전진 방어!”
“전진 방어! 분열 준비!”
차각차각! 차각차각!
강철 벽의 성질이 변했다. 이제까지는 흐물거리며 질긴, 때려도 때려도 뚫리지 않는 유기적인 느낌이었다면, 지금 일어서는 방패의 벽은 단단했다. 더는 물러서지 않았다.
끼르르르……!
그래서 오히려 뚫을 수 있어 보였다.
흐늘거리는 천은 후려치는 것으로 찢을 수 없지만, 팽팽하게 당겨진 천은 힘을 가하면 터뜨릴 수 있는 법.
드드드득.
따당! 땅! 따당!
제로 거리에서 억지로 박차를 가하는 용아 기병들. 그들의 공격이 단순간에 집중된 순간.
까드드득! 카창!
요란한 소리와 함께 강철의 벽. 그 한중앙이 기어코 쪼개지며 틈이 벌어지고 말았다.
끼르르르! 끄르르르!
생명이 없음에도 기사회생의 기회라고 느낀 것일까. 아니면 공격 본능 때문일까.
두두두두둑!
빈틈. 방패의 벽에 난 구멍을 노리고 십여 기가 몰려들었다. 상처를 헤집는 상어처럼, 그대로 뚫고 돌파하는 용아 기병들.
“크흐흐흐…….”
“카카카카……! 됐다! 됐어!”
하지만 그건 의도된 구멍이었다.
수백의 적이 서로 엉켜서, 돌진 속도를 잃은 기병들. 이제껏 틈이 보이지 않던 벽에 난 균열로 돌진한다.
그러나 그 구멍은 좁다. 한 번에 지나갈 수 있는 수는 너댓 마리 정도. 거기에 십여 기가 억지로 비집고 들어왔다.
당연히 속도는 느려지고, 움직임은 비틀거린다.
드드드득… 빡! 빠각!
이걸 못 잡아먹으면 천무학관 4학년생이라는 명패를 떼야 했다. 느려진 데다 방향마저 정해져 있으니, 아무리 기병이라 해도 돌격에 의미가 없다. 심지어 숫자조차 소수.
“잡는다! 잡아! 썰어 버려!”
“창대로 후려쳐! 이 새끼들 뼈다귀야! 날 안 들어!”
빠각! 빠가각! 와당탕!
조금 전과는 다른 뼈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둔기와 장대가 날고, 머리부터 골마의 다리까지, 사정없이 후려갈기자 비척거리던 놈들이 사정없이 박살 나 쓰러진다.
그래도 언데드라고, 어떻게든 일어나 보려 하지만,
끼르르르… 빠지직!
뒤이어 달려오는 아군들의 발굽에 아주 산산이 쪼개져 버렸다. 방패 진형을 이용한 죽음의 함정이다.
“전진! 전진! 방패 들고 앞으로!”
“방패 들고 앞으로!”
차각차각. 차각차각.
승기가 보이자 방패 군단은 바로 굳히기로 들어갔다. 중앙에 좁은 틈을 보이고, 전진해 나가는 방패들.
다들 지쳐서 입에 단내가 풍겼지만, 여기까지 사상자가 없었다. 이건 대승이라는 의미다. 지휘관은 승전을 예감했지만, 마지막까지 흥분하지 않고 침착을 유지했다.
“방심하지 마! 막판에 긴장! 잊지 말고! 최후에 어떤 변수가 있을지…….”
꽈르르릉! 우르르릉!
한데 입이 방정이지, 그 순간 저 멀리서 어마어마한 굉음이 울렸다.
* * *
드드드득!
지축이 울렸다. 대지가 요동치며 격변을 알렸다.
화아악!
갑자기 일어나는 돌풍. 눈부신 서광. 동시에 아릿아릿한 어둠.
멀리서 둘의 격돌을 보고 있던 제운비, 그리고 그와 함께하고 있는 일행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 저건?”
“맙소사…….”
아는 만큼 보이는 법. 화경의 경지에 오른 고수들이기에, 지금 이 현상이 어떤 것인지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벽을… 돌파한다……? 이 상황에?”
현경은 다른 말로 자연경.
자연의 힘을 쓸 수 있게 되는 경지다.
아무리 경지가 대단한 무인이라 해도, 인간인 이상 어찌 할 수 없는 ‘법칙’이 세상에는 존재한다.
중력처럼, 혹은 빛과 어둠처럼.
검강을 아무리 소나기처럼 쏟아 내도, 파도가 몰려오는 것은 막아 낼 수 없다.
지극히 명확하고 거스를 수 없는 현상. 그런 자연의 법칙에, 현경의 고수는 도전할 수 있다.
인간 또한 작은 우주이니, 무의 궁극에 도달한 자는 자연 현상으로서 ‘작용’하게 된다는 이론이다.
‘하나 그건 어디까지나 이론일 뿐인데.’
말이 자연경이지, 현경의 고수 중에서 정말 자연을 부릴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제한적이다.
검강을 다발로 뿌리고 화경을 씹어 먹듯 깔아뭉개도, 사람의 몸으로 산 하나 무너지는 것을 막아 내지 못한다.
사방 천지가 산불이라면, 천하제일 고수라 해도 내빼는 것이 상책이다.
사람이 불을 이길 수는 없다. 뜨겁게 몰아치는 열기야 어떻게 버텨 낸다 해도, 숨 쉴 공기가 없으면 어쩔것인가.
하나, 신화경. 인간이 그 껍질을 벗어던지고 신이 되는 경지까지 이르게 된다면, 그는 그런 환경에도 제약받지 않는다.
산사태는 제가 알아서 갈라질 것이고, 불은 손짓 한 번에 팍 하고 꺼지게 될 터였다. 현경의 극에 달한다는 그런 것.
완전한 자연경의 힘을 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쩌어억.
“하, 하늘이……?”
“가, 갈라진다!”
과르릉! 쏴아아악!
분명 마른하늘이었던 것이, 갑자기 먹구름이 끼고 뇌성벽력이 미친 듯이 울어댔다.
거기에 한쪽은 비가 내리고, 한쪽은 햇빛이 창창한, 기가 막힌 광경이었다.
그 모습에 제운비가 뭔가를 떠올렸다.
“우화등선… 기술된 바와 같아! 선계에 드는 거다!”
검선. 검을 수양하여 신선이 된 이들.
여동빈이나 장삼봉등, 강호에서 전설로 회자된 이들. 그들의 마지막 모습이 저러했다 한다.
마른하늘에서 우박이나 눈이나 꽃이 내려오고, 온갖 형용하기 힘든 괴변과 괴사가 일어나며 선계로 넘어갔다고.
“이보게! 어찌 된 게야! 분명 실패한다면서!”
뇌천벽은 괜한 매소봉을 붙잡고 윽박질렀다.
“그, 그게……?”
매소봉 역시 난감한 얼굴이었다.
이들 일행은 유장위와는 볼 장을 다 본 상황이었다. 그가 먼저 천무학관의 방어에 꼬장을 부렸고, 그에 화가 나서 죽이러 쫓아온 것이 일행이었다.
때문에 가장 바라는 상황은 양패구상.
유장위가 고룡 쉐이크를 상대로 치명타를 입힌 후에 같이 죽어 주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아니라도 저 본 드래곤은 어떻게든 천무학관의 전력으로 해결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갑자기 대치 중에 유장위가 자신의 한계를 돌파해 버리다니.
현경도 아니라 신화경에 올라 버린 고수를 상대로 어떻게 목숨을 부지할까?
우르릉! 쿠르르릉!
“조심해---!”
하지만 걱정할 틈도 없었다. 일순.
콰자자자작!
천지를 뒤집어엎는 엄청난 벼락의 폭풍이 몰아닥쳤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