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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265화 (266/310)

265화. 신화경, 혹은 신마경 (6)

따당. 땅. 땅. 따당!

벼락이 연이어서 떨어져 내렸다. 흡사 화살. 검은 본 드래곤을 겨누어 계속해서 쏘아지는 화살과 같았다.

꽈르르릉. 꽈릉. 꽈드드드득!

그 화살을 쏘아 내는 먹구름. 하늘 전체를 뒤덮은 거대한 활이었다. 폭음이 연이어지고, 공간 전체가 진동했다.

쏴아아아아…….

그리고 비가 쏟아졌다.

먹구름이 낀 하늘. 거대한 활은 화살을 쏟아 내는 만큼 큰 흔들림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흔들림은 곧 결합.

후드득. 후득. 두두둑.

한없이 흩뿌려져 있던 물방울들이, 격한 흔들림에 합쳐져 버렸다. 어찌 보면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꽈르르릉!

벼락은 저 하늘 아래 몇천 리에서도 폭음과 굉음을 일으키는 현상이다. 하지만 그 현상은 땅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지지직. 지지지직.

하늘 위, 수많은 전기와 충격을 품고 있는 검은 먹구름 안에서는 지상에 떨어지는 벼락과는 비교도 안 되는 엄청난 힘의 흐름이 있었다.

지이잉. 지이이잉.

짙은 안개.

구름의 정체는 대단히 농밀한 증기의 집합이다.

이따금 높은 산에서, 구름마저 아래로 내려다볼 수 있는 기암괴석의 뾰족한 산에서 그런 것을 볼 수 있다.

멀리서 보면 양털의 양탄자 같은 짙은 구름. 사람이 뛰어올라서 달릴 수도 있어 보이는 구름.

하지만 만질 수 있을 만큼 가까이에서 보면, 그건 그저 진한, 물기가 뚝뚝 떨어질 정도로 짙은, 그저 안개인 것이다.

‘금생수… 라 이리되는 거였나.’

벼락의 생성 원리. 절로 그것이 머리에 들어온 유장위는 잠시 고개를 내저었다. 지금은 전투 중. 오행에 대한 깨달음을 곱씹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흐읍!”

땅. 따당! 따다다당!

다시금 십여 줄기의 벼락이 사정없이 쏘아져 나갔고.

꽝. 꽈광! 꽈과과광!

그 벼락에 맞은 검은 본 드래곤이, 이리 튕기고 저리 튕기는 것을 보았다. 어떻게든 몸을 가누려고 애를 쓰고 있었지만, 그 안에 깃든 존재의 격을 생각해 보면 처량하기 짝이 없었다.

“훗, 크흐흐흣…….”

웃음이 나왔다. 비열하거나 악랄한 웃음이 아니었다. 그저 처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폭군의 허둥거림을 보고 터져 나오는 웃음이었다.

파직! 파지지직!

쏟아져 내린 비. 젖은 몸 위로 계속해서 여력을 투사하는 번개.

화르륵. 화르르륵.

강렬한 뇌기를 맞고, 거대한 검은 뼈에서 불길이 일어났다. 화기 또한 모든 것을 정화시키는 힘. 사령 마력과 그로 인한 결집력이 사라지자, 검은 뼈는 회색빛 흙이 되어 우르르 쏟아져 내렸다.

‘화생토…….’

그에 우뚝. 유장위의 손길이 멈췄다.

오행상생. 지고한 자연의 이치가 일순 머리를 가득 채웠다.

수생목.

물은 나무를 살리고 키운다. 모든 생명의 근원인 물. 그 물을 빨아들여 나무는 덩치를 키우고 과실을 떨어뜨린다.

목생화.

하지만 나무는 불을 일으킨다. 벼락을 맞든, 강한 바람에 서로 가지가 비벼지든, 분명히 불이 없을 곳에서도 일어나기도 하는 법이다.

거대한 산불이.

화생토.

그리고 불이 잡아먹은 천지는, 잿더미가 되고 그 잿더미는 흙으로 변한다. 한 줌 불꽃이 세상천지의 숲과 나무를 집어삼키고 나면, 남는 것은 흙더미와 곧 흙이 될 잿더미들뿐이다.

토생금.

그리고 그렇게 쌓인 흙은 눌러지고 눌러져, 한없는 세월을 지나는 사이 단단해지고 성질이 변한다. 무수히 많은 흙들은 암석이 되고, 암석은 그 안에 더더욱 단단한 결정을 품는다. 그것이 금속이다.

흔히 세상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부싯돌이다. 가끔은 철, 구리, 금이나 은이 나오기도 한다.

“그리하여 금생수… 인가……?”

금생수. 쇠가 물을 살린다. 오행상생의 부분에서 이제껏 이 부분이 다소 납득되지 않았는데, 지금의 유장위는 알 듯 말 듯 깨달음이 왔다.

금속이 녹아 물이 된다? 용암을 말하는 것인가? 아니었다. 용암은 나무를 살릴 수 없다. 죄다 태워 버릴 테니까.

그래서 지금 그가 ‘느끼는’ 바로는 이 ‘금’기는 바로 벼락이었다. 천지간에 가장 강한 기운. 그리고 금속을 타고 흐르는 기운.

이 뇌기를 금이라 하지 않으면 달리 무엇에 넣을 것인가. 수? 목? 화? 토? 터무니없다. 그렇게 인식하는 그의 시야에 보란 듯이 자연이 답을 해 주었다.

꽈---드드득! 빠직!

파---자자작!

벼락은, 그저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꽂히는 것이 아니었다.

“…아하.”

1초를 열로 쪼개고, 다시 그 쪼갠 것을 열로 쪼갠 짧은 순간, 유장위는 분명히 보았다. 그건 너무도 선명했다.

지지직.

하늘에서 수많은 물줄기. 수증기들이 전격의 바탕을 이루고.

크즈즈즉.

땅에서는 수많은, 흙과 암석의 사이에 흩뿌려진 철의, 금속의 기운이 한 줄로 집결되었다. 그리하여.

꽈---드드등!

내리쳐지는 것으로 보이는 벼락. 그건 사실, 땅에서 이끄는 것이기도 했다. 수없이 많은 금속의 입자들이 제각기 어느 방향을 가리키고, 그 방향이 가장 많이 몰린 곳에 바로 뇌기가 강림한다.

꽈르릉. 꽈르릉. 우르르릉.

그리고 그렇게 터진 우레 소리. 어마어마한 폭음은 땅을 뒤흔들지만, 하늘 또한 뒤흔드는 법.

솨아아아… 후두두둑.

금의 강렬한 폭음은 하늘을 덮은 먹구름을 통째로 뒤흔든다.

오밀조밀 제각각 거리를 두고 있던 작은 물방울들이 하나로 합쳐지게 되면 무거워져서 아래로 내려오고. 그러니 비가 쏟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금생수.

얼핏 생각해 보면 다소 억지스럽다는 느낌도 있었으나. 또 생각해 보면 이는 애초에 비유. 원리를 말하는 것에 일일이 딴지를 거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지금껏 맞춰 본 오행은 오로지 상생. 상극은 따지지도 않았다. 화극수. 금극목은 어찌 보아야 하는가? 개념에 맞춰 이치를 따져야지, 일일이 이치를 따져 개념을 파하는 것처럼 우스운 것도 없다.

“허허허… 이것참.”

어느 쪽이든. 중요한 것은 뇌운.

지금 유장위가 휘두르는 벼락. 그것을 제공하기에 먹구름은 가장 좋은 것이자 가장 필요한 것. 그냥 그것이면 되었으니까. 무엇보다……,

드드득.

“음?”

본 드래곤. 그 안에 깃든 이계의 마왕을 앞에 두고 이런 한가한 생각을 할 틈이 없었던 것이다.

부스슥. 부드드득.

눈앞에서 거대한 뼈의 용이 형태를 바꾸어 갔다.

산 정상의 바위도 벼락을 여러 번 맞다 보면 부스러지는 법. 유장위가 쏟아 낸 수많은 벼락은 본 드래곤의 내부 형질을 바꾸어 버렸다.

어설프게 악한 것들은 전부 정화되어 날아가 버리고, 남은 것은 더 정화시킬 수도 없는 강하고 끈질긴 어둠뿐이었다. 그로 인해.

파지직.

본체가 이 땅에 구현화되고 있었다. 원래라면 이 땅에 들어설 수 없는 너무도 거대한 것이.

“이런……?”

제일 먼저 거대한 날개. 길이가 이백 장을 넘던 뼈 날개가 흙이 되어 부스러져 내렸다.

끄르르르…….

그리고 그 뼈 날개에 머물러 있던 사령 마력이 본체로 집중되어 빨려 들어갔다. 위치는… 정강이뼈.

툭. 투둑. 부스스슥.

거대한 뼈가 가지를 뻗기 시작했다. 검고 검은 것이 위로는 가지를, 아래로는 뿌리를 뻗었다.

그 와중에 정강이뼈는 쩍쩍 벌어져 뒤틀리고, 검은 물 같은 벌레 무더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저건. 한 번 본 적이 있다. 하지만 보고도 믿어지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말도 되지 않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유장위의 목소리가 떨렸다.

“…어둠나무.”

-크흐흐흐흐.

마왕 바알, 더는 본 드래곤의 형체를 가지지도 않게 된 것이 웃음을 흘려 냈다. 양 무릎의 두 그루. 그리고 한 손에 깊은 어둠을 담은 어둠나무를 손처럼 내밀며 선고했다.

-가당찮은 필멸자야. 네 스스로 목을 뽑아 땅에 내려놓을지어다.

그드드득.

세 그루의 어둠나무.

이 땅의 모든 어둠이 한자리에 모였다. 터무니없이 거대한 악을 중핵으로 삼아. 그리고.

팟. 번쩍!

끔찍한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 * *

“…왔다.”

부스슥.

가만히 눈을 감고 있던 천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쁘게 전황을 지휘하고 있던 지휘부는 어? 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저벅저벅.

천마가 지통실의 천막을 걷어 내며 완전히 바깥으로 나갔기 때문이다. 그저 머리가 복잡해서 지휘부 안을 걸어다니는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구, 구 대협? 지금 어디로 가십…….”

“각자도생. 전원 신속 철수.”

교두 월산의 말에 천마가 즉각 대답했다.

“이의는 받지 않는다. 재앙급 적의 모든 주력이 출현. 신속 도주하라. 다시 말한다. 도주하라. 전략적 후퇴도 뭣도 아니다. 각자 도생하여 생명을 챙겨라.”

“……!!!”

월산의 낯빛이 하얗게 탈색되었다.

적전 도주. 그건 군대에서 가장 해서는 안 되는 일 중 하나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다 부서지기 때문이다.

전쟁에서 최악의 피해는 전투 상황이 아니라 패주할 때 일어난다. 천마 구옥경이 그걸 모를 인물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여기서 대놓고 도주하라. 라고 말한다는 것은.

“구, 구 대협…….”

“차원 간 게이트의 간섭. 감지하기로 그 세 개가 한곳에 몰렸다. 폭발이 세제곱으로 일어나면… 알지?”

척. 척. 척.

몸을 풀고, 전신에 가진 장비를 확인하고, 천마가 저 먼 하늘을 보며 피식 웃었다.

유장위.

녀석이 생각 이상으로 잘해 줬다. 너무도. 일이 이렇게까지 될 것이라고는 천마 자신도 내다보지 못했던 것이다.

“다들. 도망쳐라.”

파악!

그렇게 말하고 그의 신형이 사라졌다. 마치 쏘아진 살처럼.

* * *

콰드득! 쿠와아아악!

제일 먼저 도달한 것은 어마어마한 충격파. 유장위가 지난번에 얼핏 느꼈던 그것이었다.

“컥… 크흑…….”

화라라라락!

폭발에서 가장 압도적인 것은 충격파. 혹은 폭풍이다. 어마어마한 힘을 담은 바람은, 주변의 모든 것을 날려 버린다. 거기에는 당연히 구름도 포함.

유장위에게 최적이었던 환경은, 차원 간 간섭 게이트 하나로 완전히 소멸되고 말았다.

부즈즈즈. 그으으으으.

물론 마왕 또한 대가를 치렀다. 세 그루의 어둠나무, 그중 하나의 차원 게이트를 날려 먹었다. 하지만 날아간 것은 게이트뿐.

과르륵. 콰드득. 와드드득.

대체 뭘 어떻게 부린 것인지, 제각기 백 리 밖에 있어야 할 어둠나무. 놈들이 그 식생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고룡 쉐이크. 본 드래곤의 신체 일부로 치환되어 나타난 것이다.

파즈즈. 부즈즈즈. 위이이잉.

수천만, 아니, 수억을 넘는 벌레들과 함께.

“커헉… 이, 이런……?”

어마어마한 신위를 펼치던 유장위가, 신체의 이변을 느낀 것도 그와 동시였다.

스으윽.

마치, 유리처럼.

신체의 말단부터 서서히, 흐린 안개처럼 투명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감각이 사라지고 흐려지고 있었다. 당황하는 그에게 이계의 마왕이 이죽거렸다.

-필멸자야. 부족하기 짝이 없는 그 몸으로 신의 힘을 휘두르다니. 그것이 네 종말이다.

“…….”

-한 주먹 크기의 그릇에 호수를 담으려 하니 그 그릇이 버티겠느냐. 너는 이 자리에서 소멸될 것이다.

“…….”

분명히.

아까까지만 해도 그저 의지로, 뜻만 느껴지던 것이, 지금은 뚜렷하게 들렸다. 유장위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곧 알 수 있었다.

회광반조.

꺼지기 직전의 마지막 불꽃. 이제까지 휘두를 수 있었던 힘은, 초월이자 동시에, 생의 마지막이었다는 것을.

그렇기에.

“과연.”

타악. 처억.

“유장위, 이계의 마왕 바알에게 한 수 가르침을 청하오.”

그의 마지막은 진중하고 치열하게 날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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