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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269화 (270/310)

269화. 신화경, 혹은 신마경 (10)

콰아앙! 드드득!

검 끝에서 느껴지는 반동이 거세다. 살이 아니라 철을 가르는 것 같은 반발감이 느껴졌다.

심지어 그게 다가 아니었다.

찌리리릭!

검극이 달아오르고, 자루를 쥔 손에서 고기 타는 냄새가 났다. 천마는 불현듯 기시감이 느껴졌다.

느낌이 딱, 벼락 맞은 기분인 것이다.

‘이 뭔……?’

보통은 벼락을 맞고 이게 그거다, 싶은 경우는 없다. 맞으면 그길로 죽으니까.

하지만 천마는 예전에 정신이 반쯤 나간 광마 시절에 그런 적이 있었다. 비 오는 날, 높은 산 정상에서 칼 들고 난리 치다가 이끌려 온 번개에 그대로 맞았던 적이…….

지금 생각해 보면 자다가도 이불을 걷어찰 일이지만. 어쨌든.

빠지직! 빠직!

“으드드드득!”

강력한 전격이 튀고, 신체는 마비를 일으켰다. 천마는 멋대로 툭툭 수축하는 몸에 급히 의념을 보냈다.

‘대겁염마력!’

우드득. 우득!

격공섭물.

내기를 염력처럼 사용해서 물건을 움직이는 것. 대겁염마력은 그것을 극대화한 마공이다.

내기로 물체가 아니라 신체를 움직이는, 독이나 저주에 걸려 움직이지 못하게 된 몸을 강제로 움직이게 하는 심법.

드드드득! 휘잉!

급하게 몸을 빼고 나자, 허공으로 허연 붕대 같은 것들이 수십 개가 헛치고 지나갔다. 조금만 지체했더라면, 자칫 거미줄에 묶인 고치처럼 꽁꽁 묶였을 것이다.

“으거걱… 거으하으으으…….”

이놈 건방지다! 는 말을 하려고 했는데, 혀가 잘 움직이지 않았다. 근육이란 근육이 죄다 수축했기 때문.

전격은 이래서 상대하기 귀찮았다. 아무리 내력을 돋워도 인간의 몸인 이상, 근육의 수축을 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뻣뻣해진 몸을 풀며 천마가 짜증을 냈다.

“퉤, 어이없네. 무슨 놈의 마왕이 벼락을 다뤄?”

뇌는 천지간에 가장 강한 기운. 동시에 파사의 힘을 가진 기운이다. 감히 마왕 ‘따위’가 쓸 만한 힘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바알 또한 기막힌 얼굴을 하고 있었다.

“네놈이 할 말이더냐?”

영락해서 마왕이지, 그는 한때 한 지방의 신이었다. 풍요와 다산을 관장했던 신.

그러니 비바람은 물론이고 대지와 햇볕 일부도 자기 뜻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비록 전쟁 신 같은 투신 계열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연현상에서 무기화할 수 있는 현상 중 하나가 뇌전이다.

동시대의 다른 지역의 천신은 벼락 하나로 군신 위의 대신의 지위를 누렸다. 그런데.

“맞고 죽기는커녕, 멀쩡하게 입을 놀리고 있다니……. 확실히 보통이 아니구나.”

바알은 더는 방심하지 않기로 했다.

상대는 이미 그의 수집품이던 영혼들, 백에 달하는 영웅들의 군세를 단신으로 쓸어버린 몸이다.

자칫하면 기껏 현계한 채로 수치를 당할 수 있었다. 그는 이제껏 다른 곳으로 돌리던 힘의 일부를, 눈앞의 상대에게 모두 집중하기로 했다.

“일어나라. 나의 권속이여.”

브즈즈. 브즈즈즈.

바알은 신이었을 시절부터 생명의 번식에 대해 일가견이 있었다. 애초에 풍요와 다산은 탄생에 대해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작정하고 힘을 쓰자, 하늘이 새까맣게 덮일 정도의 벌레들이 피어올랐다.

부우우웅! 왜애애앵!

“…메뚜기?”

“집어삼켜라. 내 대적자를.”

부우우우웅!

폭우가 쏟아지듯, 어마어마한 벌레의 무리가 덮쳐 왔다. 천마는 슬쩍 뒤로 물러서며 다시금 극양의 열기를 피워 올렸다.

“멸절공.”

푸와아악! 콰르르륵!

자줏빛에 가까운 푸른 불꽃이 피어올랐다. 진녹색의 메뚜기 떼들은 가까이 접근하기도 전에 연기와 잿더미가 되었다.

파직. 파지직.

“…뭣?”

하지만 천마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빨랐다! 너무 넓었다! 멸절공의 화염은 분명 견줄 데 없이 강한 힘이었지만, 바알의 메뚜기 떼는 불타서 사라지는 것보다 더 빠르게 덮쳐 왔다.

파바바밧! 퍽! 퍽! 퍽!

어마어마한 질량.

아무리 강한 화염이라도, 이미 타 버린 재를 더 태울 수는 없다. 강철을 종이처럼 베는 신검이라도, 적을 베고 베다 보면 검날에 기름이 묻고 묻어 둔해지는 것처럼.

“제기랄. 그래, 한때 신이었다 이 말씀이지?”

천마는 자신의 방법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크게 뒤로 물러섰다. 극에 달한 양은, 질로 상대할 수 없는 것. 해일처럼 몰려드는 진녹의 메뚜기를 상대로, 그는 크게 두 손을 교차하고 다시 풀었다.

“화염대산.”

푸와아악!

불꽃의 색이 변했다. 보랏빛에 가깝던 푸른색이, 붉은기가 감도는 누런 화염이 되었다. 강했던 화력을 줄인 것이다. 대신 그 범위는 어마어마하게 넓어졌다.

쿠우우우!

밝게 빛을 내는 주홍색 화염은 사방으로 번지고 번져, 화산이 뿜어내는 용암 같은 모양새를 했다. 말 그대로 불의 강. 벌레의 해일에 대항하는 천마는 히죽, 입꼬리 한쪽이 올라갔다.

“재미있는 수를 쓰네. 덕분에 하나 배웠… 엇차?”

쉬르르륵. 푸와아악!

천마가 피워 올린 불길 위로, 어마어마한 양의 바닷물이 퍼부어졌다. 그 색은 붉은 색. 혈해(血海)까지는 아니지만, 뭔가 심상치 않은 기색의 물이었다.

“이건 또 무슨!”

“내 권역에 있었던 홍해의 물이다. 물은 생명이자 피할 수 없는 재앙! 필멸자의 힘으로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라-!”

쏴아아악!

벌레의 파도 다음에는 진짜 파도가 덮쳐 왔다. 말 그대로 미친 전장. 세상을 상대로 싸우는 기분에 천마는 송글송글 진땀까지 흘렸다.

“으아아아! 끄으으으!”

푸화아악! 파아아악!

용암의 강이 바닷물에 덮쳐지며 막대한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그와 함께 천마의 심력 또한 어마어마하게 소모되었다.

물을 상대로 불. 상성에서 밀린다. 그렇다고 그만둘 수는 없었다. 천마는 갑자기 엄청나게 쏟아부어 대는 바알의 맹공이, 결코 정상적인 게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대단하긴 한데… 이게 쉬우면 처음부터 했겠지!”

비장의 수가 왜 비장인가. 어지간하면 써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갑자기 출력을 급하게 끌어올린다는 건, 바알이 그만큼 전력을 다한다는 이야기.

푸화악! 콰아아악!

바다 한 귀퉁이를 뜯어서 퍼붓는 듯한 물결이었지만, 천마는 자신이 가진 전력과, 주변 자연의 기운까지 끌어모아 그것을 상쇄했다.

애초에 이 지역, 어둠나무 인근은 황무지. 아무리 신의 힘이라 해도, 메마른 땅을 한순간에 바다로 만드는 것은 힘의 소모가 클 터.

쏴아아악! 푸악!

“하핫! 역시……!”

아니나 다를까, 몰려오던 파도는 곧 힘을 잃고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그 뒤에서 호시탐탐 틈을 노리고 있던 진녹색의 메뚜기들은.

거대한 손의 형상으로 뭉쳐져 있었다.

“…뭐여?”

솨아아악!

맹렬한 바람과 함께 거대한 손이 날아든다. 그건 환상도, 신기루도 아니었다.

“이런 미친!”

꾸우우웅!

대지가 진동한다. 사람에게 노려지는 모기의 심정을 느끼며, 천마는 급히 이형환위로 몸을 날렸다.

드드드득. 두두두둑!

끔찍한 충격이 사위를 휩쓸었다. 천마는 그에 몇 번이고 이형환위로 도약해서 거리를 뒀다.

아슬아슬하게 비껴 나기? 그런 여유를 부리다간 된통당한다. 화산이 터지는 듯한 어마어마한 폭음과 폭풍을 피해 내고 나자, 그제야 상대가 눈에 들어왔다.

그건 자그마치.

“우와아……?”

체고가 삼백 장을 넘어갈, 거대한 우두(牛頭) 거인의 모습이었다.

“꿇어라, 미력한 자야.”

우드드득!

바알이 준엄하게 외치며 몸을 폈다. 천마는 그에 자신이 확 쪼그라드는 느낌을 받았다. 상대가 너무 커다랗게 되니 절로 그런 기분이 드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힘. 나의 육신이니라.”

거대한 뿔을 흔들며, 바알이 웃음을 흘렸다.

옛 신화에서 신에 대한 언급이 나올 때, 빠지지 않는 문구가 있다.

바로 거대하다는 것.

이는 오래된 전승일수록 그런 경향이 더욱 두드러진다.

크다는 것은 근원적인 압도다. 저항할 수 없는 강함이다. 같은 수준의 전사들끼리 싸울 때, 체급은 빠질 수 없는 중요한 힘의 척도다.

덩치가 크면 힘도 세고, 팔다리가 길어 거리에서의 이점도 있다. 작으면 작은 대로 빠르지 않나, 하는 반문도 있지만, 그건 기적이나 예외의 경우에만 해당된다.

작은 돌 하나로 거인에게 맞선 양치기 같은 경우.

크면 둔할 거라는 생각은, 곰 같은 야수를 실제로 겪어 보지 못한 이들의 허구다. 특히나 소는 바알의 우상화가 가장 강하게 형상화된 개념으로, 한 지역의 수십 수백 년의 전승이 모인 것이었다.

우우어어어!

전신에 강인한 근육을 품고, 두터운 가죽을 지닌 소. 황금빛 서기까지 두르고 있는 삼백 장짜리 거인은, 천마조차도 모골이 송연하게 만드는 압박감이 있었다.

“죽이는데…….”

부우우웅!

뭔가 번쩍하는 순간에, 벼락이 치듯 하늘 한쪽과 한쪽이 붕괴된다. 지나치게 빠른 움직임에, 시야가 일그러진다.

“……!”

천마는 반사적으로 이를 피해 냈다. 소리는 그 뒤에 들렸다.

빠우우웅! 콰르르릉!

삐---!

가히 뇌성. 그러고는 소리가 일시간 멎었다. 고막이 지나치게 큰 소리에 마비된 것이다. 천마는 이게 어떤 현상인지 알고 경악했다.

‘이런 미친!’

그저 허공. 그 자체가 폭음을 냈다.

어마어마한 덩치가 무시무시하게 빨리 지나가며, 그 사이에 진공이 발생한다. 그래서 생긴 공기압의 차이가, 폭음으로 터지는 것이다.

번쩍! 번쩍! 번쩍!

시야가 일그러지고, 다시금 바알의 형체가 일그러져 보인다. 놈이 드러낸 제 본체라는 것에는 기술의 묘리 같은 건 없었다. 그냥 깡으로 힘을 쓰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퍽! 와드득!

“큭!”

팔의 살점, 머리 가죽의 일부가 찢겨 나갔다. 속도는 그 자체가 압도적인 힘이다. 거기에 어마어마한 질량까지 담겨 있으니, 이건 스치기만 해도 중상이다.

-크흐흐흐. 어떠냐.

체고 삼백 장 이상. 본래 본 드래곤이었던 고룡 쉐이크, 그 육신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일까. 커도 너무 컸다.

흡사 사람과 모기와의 싸움.

바알은 자신의 거체를 보고, 그리고 천마가 든 검을 보며 비웃었다.

-네 재주가 이 몸에게 통할 것 같으냐?

브로큰 듀랜달. 고작해야 1미터 조금 넘는 검신. 어떻게 보아도 턱없이 부족했다.

상대의 묘한 힘-강기였다-의 권능으로 베어 낸다 쳐도, 자신의 지금 체급은 킬로미터 단위. 소실이든 뭐든, 미터 단위의 상처가 나 봐야, 그저 긁힌 정도일 뿐.

정말 많이 쳐서 거죽 좀 베인다 해도, 시간 좀 들여 치유하면 그만이었다. 예전의 신성은 사라졌지만, 그만큼 악마로서 더욱 끈질긴 생명을 가지게 된 것이다.

“당연. 통하지.”

-허.

그랬기에 바알은 천마가 비죽 웃는 것을 보고 이해하지 못했다. 정말로 어리석은, 자존심 때문에 뻔한 이치를 깨닫지 못하는 자라고.

“너 말이야, 커도 너무 커. 그게 네 약점이다.”

-뭐라?

주르륵.

피가 왕창 쏟아지는 머리에 적당히 옷을 찢어 둘러 싸매던 천마는,

“혹시 몸에서 기생충 뽑아 본 적 있냐?”

피슈욱!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바알의 몸을 찢고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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