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6화. 신화경, 혹은 신마경 (17)
꽈르릉! 쏴아아아!
비는 아침까지 계속 퍼붓고 있었다.
퉁퉁퉁. 타다다닥.
천무학관의 대회의실은 발칵 뒤집어졌다. 새벽에 레이드 공격대의 보고가 도착했는데, 그 내용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음, 다들 오셨으니 시작합시다.”
촤르륵!
벽 하나를 덮을 만큼 크게 쓰인 보고 개요가 걸렸다.
-천무학관 필드 레이드 출정 보고서.
-총인원 교두 제운비 외 345명. 귀환 243명. 작전 중 사망자 72. 실종자 33. 중상 42. 기타…….
-중요 자산 상실 1(외부 협력자 유장위 : 현경 - 내용 첨부)
-비전투 손실 35(상태: 경미 – 별도 상세 보고)
-전투 중 신규 주요 인물 7인 발생. (내용 첨부)
-기존 작전 계획과 다른 변수 발생. (보고 별첨 총 23)
…….
-최종 작전 결과: 전략 목표 달성.
“다들 별첨된 상세 보고서를 참조하세요. 일단 이번 필드 레이드 작전은 성공이었지만, 예상외의 변수가 지나치게 많이 발생했습니다.”
탁. 탁.
학과장 리그웨더가 탁자를 두드렸다.
시작부터 바로 본론. 회의를 여는 데 평소처럼 부드러운 인사말이 없었다. 그만큼 시간적으로나, 심적으로 여유를 부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는 어느 정도 의도적이었다. 리그웨더 본인은 긴장하지 않았지만, 회의에 모인 사람들에게 충분히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게 하려는 것이다.
부석부석. 웅성웅성.
학관의 각 교관과 교두들이 분주하게 출정 보고서와 별첨된 자료를 읽었다. 그러는 동안 구용천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최초 작전 계획. 그게 완전히 틀렸다. 작전을 입안한 교두와 교관들에게 책임을 묻지 못할 정도로.
이미 중간중간 보고를 받아, 사전 계획과 실상이 많이 달랐다는 걸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다 펼쳐 놓고 보니, 처참할 정도로 차이가 났다.
‘대체 무슨 일이 이렇게…….’
고룡 쉐이크와 그의 소환물 정도로 생각했던 어둠나무.
이미 죽은 존재들이라 거기서 더 진화를 일으킬 거라고는 생각 못 한 게 패착이었다. 발생한 변수들은, 하나같이 변수라고 이름 붙이기 힘들 정도로 거대한 사건들이었다.
성장. 그리고 변이.
본래 이번 토벌전은, 최대 위험 등급 15급 이하의 난이도였다. 그래서 아직 교육 중인 학관생들까지 동원해서 진행한 작전이었다.
실전 경험보다 더 좋은 교사는 없는 법.
학관의 의의는 유능한 무인과 마법사, 전투 가능 인원의 양성과 그 역량 상승이 첫 번째다. 그러니 당연히 해야 할 일이기도 했다. 원래라면 문제가 없는 계획이었다.
원래라면 말이다.
-추정 위험 등급 20(EX급) 이상의 불상의 존재 조우. 식별 코드 명명 ‘바알’
-추정 위험등급 변경. 어둠나무(13 → 17)
-추정 위험 등급 변경. 고룡 쉐이크(15 → 19)
…이하…….
“허어. 이것 참…….”
회의장 여기저기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보고서에 별첨된 추가 보고서는, 평소 분량을 아득히 넘어서는 양이었다. 말이 추가 첨부지, 오히려 이쪽이 본문일 정도의 분량이다.
작은 책자만큼 두껍게 붙은 자료를 읽으면서, 교두 교관들은 얼굴이 굳어져 갔고, 그러기를 한참이나 하다가 나중에는 아예 풀려 버렸다.
그저 정보를 받아들이기만 해도 벅찬 것이다.
“허.”
“아니, 아무리 제일 먼저 죽는 계획이라지만…….”
누군가가 자학적인 농담을 입에 올렸다.
병가에서 나도는 말 중에 그런 말이 있다. 아무리 잘 짜서 만들어도, 실제로 싸우게 되면 제일 먼저 죽는 게 바로 작전 계획이라고.
현장의 변수란 그만큼 다양하고 예상 못 할 일이 많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상부에서 작전을 짤 때는, 항상 비상시를 대비하여 쓸데없을 정도의 상황까지 고려해야 했다.
작전을 가볍게 생각하는 책상물림들은 몬스터보다 더 무섭다. 탁상공론으로 만들어진 계획은, 자칫 작전에 투입된 모두를 죽일 수 있다.
그래서 천무학관의 교관들은, 자부심이 있었다.
가장 많은 정보를 모으고 분석하고, 예상외의 경우에 대한 대책이나 비상시 매뉴얼을 구상해서 작전 계획을 짰다.
중원 최고의 두뇌들이 모여서 일을 하기에, 실패는 거의 없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분명히 조금 전까지는.
“후우우…….”
어느 순간부터 침묵이 흘렀다.
회의장을 작게나마 채우고 있는 것은, 교관들이 별첨 자료를 읽으며 나는 종이 소리가 전부였다.
“잠깐 휴식을 가질까요?”
사람들의 피로도를 적당히 재고 있던 리그웨더가 물었다.
“…예.”
“…그게 좋겠습니다.”
리그웨더가 잠시 퇴장하고, 회의장 여기저기서 한숨과 다 죽어가는 소리가 나왔다.
자료를 손에서 놓지 못하던 교관들이 와르르 의자에 몸을 묻으며 무너졌다. 몇몇은 목 언저리 옷깃을 풀며 숨을 몰아쉬었다.
“허억… 허억…….”
사태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그낭 교전 피해와, 발생한 당시 상황에 대한 기록만 읽어도 지칠 정도였다.
그만큼 이번 필드 레이드는 초장부터 끝까지 휘청거렸다. 천무학관의 유수한 역사 이래,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이걸 대체 전략 목표 달성이라고 할 수나 있는 건가?”
“그러게 말이오…….”
누군가의 말에 힘 빠진 대답이 돌아왔다.
사전 작전 계획과 실제 레이드 과정을 비교해 보면, 이건 그냥 딱 한마디로 재앙이었다.
냉정하게 볼 때, 이번 필드 레이드에 투입한 전원이 몰살했다는 결과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
그중에는 학관 최강의 전력인 11명의 화경급 고수도 있었다. 당장 현경의 고수 유장위는 사망했고, 화경급 고수 셋이 즉사를 피하기 위해 ‘흡혈종’의 제의를 수락했다.
아무리 세상에 완벽은 없지만 이번은 심했다. 틀어져도 완전히 틀어졌다. 이는 곧 천무학관 수뇌부의 책임이었다.
“유장위가 허어… 현경의 고수가 어떻게…….”
“바알? 대마왕 바알? 내가 아는 그 바알이 맞는 건가?”
“마교 교주라니. 뭔 옛날 동화를 찢고 튀어나왔군.”
“본 학관의 교관 중 세 명이 흡혈종으로 변이했소. 앞으로 이들의 처우를 어찌해야 합니까?”
누군가의 입이 열리는 것을 시작으로, 걱정과 물음이 아우성처럼 쏟아졌다.
산 넘어 산. 그 산을 넘어 또 산이다.
이 자리에 모인 교관들은, 폭탄이 무더기로 떨어져 내려 바닥을 뒹구는 걸 보는 기분이었다. 그것도 심지에 불이 붙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땡땡. 땡땡.
“음?”
드르륵.
종이 울리고, 일단의 사람들이 차와 다과를 잔뜩 가지고 들어왔다. 교관들의 눈이 돌아오자, 반백의 중년인이 고개를 숙였다.
“노고가 많으십니다. 휴식을 조금 더 연장하라는 학과장님의 말씀입니다. 다들 피로를 좀 푸시고 좀 더 머리를 맑게 유지하도록 하십시오.”
“아… 이렇게 감사할 데가.”
“고맙소. 감사히 받으리다.”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인지, 다들 목이 타고 단 게 당기던 중이다.
와작와작. 꿀꺽꿀꺽.
다행히 준비된 다과는 충분했고, 교관들은 넉넉하게 먹고 마신 후, 머리를 식혔다.
따악.
그러기를 얼마간, 작전과장이 탁자를 두드렸다.
“자, 숨 좀 돌렸으니 다들 일합시다.”
“학과장님이 아직…….”
“오시기 전에 우리끼리 시작이라도 해 두자는 말이오. 매사에 학과장님 없으면 일이 돌아가지 않는다니. 그래서야 천무학관의 교관이라 할 수 있겠소?”
작전과장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천무학관의 교관들은 우수한 요인들이다. 특히 작전 계획 입안에 관련된 이들은, 다들 두뇌가 뛰어나고, 몇 수 앞을 내다볼 줄 아는 사람들이다.
조금 전에 혼란에 빠진 것은, 너무 많은 변수들과 파급 영향력 산출까지 계산하다가 머리가 꼬인 것이다. 꾀 많은 여우가 도망갈 서른 가지 방법을 생각하다가 잡힌 것처럼.
“파장이 너무 큰일이고,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그렇지, 일단 이번 레이드 공격대에서 발생한 문제는 크게 두 가지요.”
척.
작전과장이 두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복잡한 문제와 외부 사항이야, 나중에 찬찬히 들여다볼 일. 우선 작전과에서 생각할 것은 무엇을 잘못했나. 어떤 것이 잘못되었나. 이것만 최우선으로 따지면 되는 일이다.
“첫째로 정보 부족. 레이드 대상과 환경에 대해, 사전 정보와 실제 상황이 너무 달랐소. 적을 알고 그에 맞는 준비를 하고 싸우러 가야 하는데, 전혀 엉뚱하게 들이댔지. 좀 심하게 말하면, 바다에 고기 잡으러 가는 사람이 곰 잡는 창을 들고 간 격이오.”
큭. 피식.
교관들이 실소하며 끄덕였다. 그만큼 적절한 비유였다.
곰 잡는 굵은 창을 들고, 바다에 가서 무슨 고기를 잡겠는가. 자칫 빠져 죽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일 따름이었다.
“둘째로 지휘권 혼란이오. 이건……. 나름 이유가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이번 레이드 공격대의 제일 책임자는 제운비 수석 교두였소. 필드 레이드의 진행 중에, 돌발 상황이나 변수에 대한 조처 매뉴얼은 분명히 있소. 하지만 제 수석 교두는 사전 매뉴얼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심지어 학관에 보고하는 일조차 누락되고 지연되었소.”
“으음…….”
“흐으음…….”
교관들이 신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들이 가장 고민하게 만든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수석 교두 제운비. 검성이라 불릴 정도의 화경의 고수이며, 문무를 겸비한 뛰어난 인재.
매사에 성실하고, 성품조차 진중하여 이제껏 큰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는 호인이었다.
리그웨더 다음으로 자타공인 천무학관의 2인자.
실력이나 명성이나 무엇으로 보아도 작전과의 교관들보다 아득히 높은 인물이다. 그랬기에 교관들이 머리가 어지러웠던 것이다.
이제껏 큰 잘못도 없고, 어지간하면 유능하고 일 잘하는 상급자를, 하급자들이 징계 논의를 한다?
머뭇거리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심지어 그가 처한 상황까지 다들 심정적으로는 공감이 되었다.
“그… 참… 그 나름의 이유라는 게…….”
“…어렵지. 어려워…….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현경의 고수 유장위.
이번 레이드 공격대에서 속 검은 것이 드러나기 전까지, 그는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다재다능하고 제법 세력이 있는 클랜의 클랜장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은근슬쩍 작전 지휘에 손을 보태며, 현경에 이른 자신의 심득이나 경험담 등을 입에 담는다면, 솔직히 누가 넘어가지 않겠는가.
특히 제운비는, 가진 무위에 비해 성격이 온후해서,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눈치도 못 챘다. 평시라면 장점이었을 그의 성품이 독이 된 경우였다.
“제 수석 교두 잘못이라고 하기는…….”
“그런데 분명히. 후우…….”
고작(?) 화경 주제에, 어디 현경의 고수에게 ‘지휘는 제가 하는 겁니다’ 하는 소리를 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새로 배운다고, 가르침을 받는 것이라고 감사하게 마련이다.
보고에 따르면 뇌천벽, 그가 그나마 유장위의 헛짓거리를 가장 먼저 알아차렸다고 한다. 그걸 읽는 교관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쓴 웃음을 지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평소에 학관에서 분란을 일으키던, 시끄러운 반골 기질이 이번 위기에서는 큰 활약을 한 셈이니.
땅. 땅. 땅.
작전과장이 어수선한 분위기를 읽고 탁자를 두드렸다.
“다들 기분은 알겠소. 제 교두로서도 대단히 난처한 입장에 있었겠지. 하지만 책임은 책임. 레이드 공격대 모두의 생명을 짊어진다는 위치를 망각한 것은, 분명 제 교두의 실책이오. 그 처우는… 복귀 후에 상세히 다뤄 봅시다.”
끄덕끄덕. 후우우.
교관들이 복잡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감정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문제는, 때로 뒤로 미루는 것이 상책이다. 그저 시간을 좀 더 가지는 것만으로도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비슷한 문제이니, 여기서 안건 하나를 내어 봅시다. 교관 여러분.”
스윽.
주위를 둘러보며 침중한 얼굴로, 교무처장 구용천이 입을 열었다.
“귀에 익은 사람도 있겠지. 2학년 학관생 이한. 그가 실은 천마신교의 교주라는 것을 이번 레이드로 알게 되었소. 자그마치 탈마의 고수를, 우리가 어찌 대하면 좋겠소?”
“…….”
“…….”
회의실에 침묵이 감돌았다. 한동안 아무도 말을 꺼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