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4화. 새로운 과목
사흘 뒤. 천무학관.
“와. 이거 얼마 만이야……. 낯설다.”
오랜만에 수업이 재개되었다.
교실에 모인 학생들은 다시 시작하는 실내 수업에 어색해하기도 하고, 혹은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안정을 찾기도 했다.
“난 편안한데. 익숙하고.”
“나도 그래.”
지루하고 심심한, 평범한 일상.
마치 공기처럼, 없을 때는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 평화가 담긴 삶. 그것이 학관 수업이었다.
“으아아… 안락해. 안락해…….”
“자고 있냐!”
평온을 만끽했던 시간은 총 1주일.
필드 레이드를 참가한 학생들에게는, 이례적으로 긴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학관이 한 주를 통째로 개인 정비 및 자유 시간으로 내준 것이다.
비록 이제까지 현장 실습을 몇 번 경험했고, 고학년들의 지도와 교두 교관들의 보호가 있었다 해도, 이번에 겪은 대규모 레이드는 작은 전쟁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전쟁 피로는 심신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타앙.
“…웃!”
사삭! 파밧!
뭔가 터지는 듯한 소리에 반사적으로 손이 나갔다.
“으하! 늦을 뻔… 왁! 뭐야!”
빡!
들어서던 학관생 하나가 기겁했다.
지각이다 싶어서 급하게 문을 박차고 들어왔더니, 필기구가 날아와 이마를 직통으로 찌른 것이다.
“야! 당무련! 미쳤어? 이게 무슨 짓이야!”
“미. 미안… 괜찮아?”
당무련이 급하게 사과했다.
이마를 맞혔지만 원래 눈을 노렸던 것이다. 마지막에 아차하고 급하게 손끝을 걷어 올렸으니 망정이지, 자칫하면 동급생 하나를 장님으로 만들 뻔했다.
“괜찮아 보이냐. 이게? 미안? 그냥 미안? 야, 너희들 다 봤어, 안 봤어? 이거 징계감이야! 당무련이 이유도 없이 나한테 공격… 악!”
따악!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따지던 학관생은, 뒤에서 후려갈기는 주먹에 또 한 번 비명을 올렸다.
“지각이다. 안 들어가고 뭐 하나.”
“윽… 교수님…….”
언제 온 건지, 허연 턱수염을 길게 기른 교수가 혀를 차고 있었던 것이다.
“다들 자리에 앉아.”
우루루루! 와다다닥!
학관생들은 저마다 자기 자리로 돌아갔고, 오랜만에 빳빳한 자세로 허리를 폈다.
“차렷. 경례!”
거기에 반장 방윤의 선창으로 오랜만에 인사를 합창하는 2학년 4반.
“안녕하십니까!”
“그래. 자네들도 안녕하신가.”
고고학과 교두 박진.
그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건강해 보여 반갑군. 오늘 수업은… 아니, 우선 이것부터 주지하고 시작하도록 할까.”
딱. 딱.
교수는 손에 든 분필로 칠판에 몇 자의 글자를 썼다.
/-PTSD./(이탤릭)/
“이게 뭔지 아는 사람?”
“……?”
“…….”
교실이 조용해졌다.
저게 무슨 뜻인지 모르는 사람이 절반이었고, 알 듯 말 듯 한 학관생들은 다른 학관생들, 분명히 알고 있을 수재들의 눈치를 보았다.
“…….”
“…….”
묘한 것은 그 학생들, 서문영이나 운소령 같은 똑똑한 학생들이 입을 꾹 다물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안색이 살짝 나빠진 것이, 뭔가 심히 불편한 얼굴이었다.
“서역어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그 줄임말이지.”
딱. 딱. 딱. 딱.
교수는 칠판에 적은 글을 박자에 맞춰 두드렸다.
주우욱.
그러고는 글자 전체에 동그라미를 쳐 보였다.
“주로 전쟁을 겪은, 끔찍한 전투를 겪고 간신히 살아난 사람들이 보이는 비정상적인 돌발 행동이지. 아마 2학년 생 중에서는 이런 이상행동을 보이는 이가 별로 없을 게야. 안전한 후방에서 대기하고 있었을 테니까.”
“…….”
“…….”
“하지만 전방에서 실전을 겪은, 음… 이 반에 엘리트 파티가 있었지? 아. 당 소저.”
“예. 옛!”
학관생들의 시선이 모여들고, 당무련은 새빨갛게 된 얼굴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교수님.”
“아니, 당 소저가 잘못한 게 아닐세. 잘못이라면 솔직히… 거기 자네가 했어.”
“…예?”
뒤통수를 주무르고 있던 지각생. 그가 오히려 벙찐 얼굴이 되었다.
그는 영문도 모르고 암기에 맞은 처지였다. 그리고 자칫하면 눈을 잃을 뻔했다.
천무학관은 기본적으로 학관생들 사이의 폭력에 엄격하다. 특별한 사유 없이 폭행을 가한 학관생은, 특히 학관 안에서의 폭력은 최소가 정학이고 자칫하면 퇴학까지 간다.
한데 교수는 어쩐 일인지 당무련의 편을 들고, 피해를 입은 지각생을 엄한 눈으로 보는 것이다.
“개가… 음, 표현이 좀 과할 수 있겠지만 그냥 말로 들어 주게나. 어쨌든 사람이 보기만 하면 걷어차고, 고함지르고, 그렇게 오랫동안 괴롭힘을 계속 당한 개가 있다고 치세.”
똑. 도르르르.
교관이 교탁을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그 개에게 오랜만에 맛있는 걸로 밥그릇을 채워 주고, 한참 찹찹거리며 먹는 중에, 툭 하고 가볍게 치면, 그 개가 어떤 반응을 보일 것 같나?”
“…….”
“…….”
“지각생?”
“아. 예! 물립니다!”
지적받은 학관생이 퍼뜩 일어나며 대답했다.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식사 시간에 방해하는 건 무례라는 뜻으로 쓰이는 표현인데, 동시에 개의 본능을 언급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무리 똑똑하고 순하게 길러도, 개는 기본적으로 짐승이다. 때문에 주인이라 한들, 한참 먹을 것을 먹고 있을 때의 개를 건드리면 작게는 으르렁거리고 심하면 콱 물어버리기도 한다.
학습한 것보다 본능이 우선일 때가 있다는 것.
“그렇지. 물려. 당연한 일이라네. 그럼, 이 경우 잘못한 건 그 개인가, 아니면 어설프게 건드린 사람인가?”
“…….”
“…….”
“대답은?”
“그… 사람이 잘못입니다. 교수님.”
학관생이 움찔움찔, 납득이 안 가는 얼굴로 대답했다.
“그래. 사람이 잘못한 거라네. 학관에서 왜 자네들에게, 1주일이나 되는 휴식기를 주었을까? 그걸 생각을 했어야지.”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이번에는 교수가 한참을 칠판을 분필로 두들겼다.
그 한 번 한 번이 묘하게 날카로워, 잔뜩 얼굴이 굳어 있던 당무련이 힘겨운 얼굴로 손을 들었다.
“저… 교수님.”
“음, 뭔가. 당 소저?”
“이 일은 제가 잘못한 것이 맞습니다. 굳이 배려해 주시지 않아도…….”
“저런, 저런. 오해를 하고 있군. 하긴, 무예를 주로 닦는 무투파들은 이걸 그렇게 여기겠지.”
당무련의 말을 끊고, 교수가 칠판에 적힌 PTSD. 그 글자 뒤에 몇 글자를 더 썼다.
/-겁쟁이. 두려움.(이탤릭)/
“……!”
“…….”
소리 없는 웅성거림. 교실의 반수 정도는 고개를 갸웃하며 끄덕이고, 극히 몇몇만 딱딱하게 굳어서 신음을 흘렸다.
다들 하나같이 엘리트 파티였다.
“그 정도는 당연히 털어 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나약한 거다. 그렇게들 생각하고, 그렇게들 받아들이지. 무예를 닦는 전사들은 그래서 말도 못 하고, 혼자 속으로 끙끙 앓는 경우가 대부분이야.”
딱. 딱. 딱. 딱.
끼익!
칠판을 두드리던 교수가, 갑자기 요란하게 분필을 그어 댔다. 겁쟁이와 두려움이라는 단어에 가위표를 그은 것이다.
“하지만 아니야. 절대 아니지. 그건 죽음 문턱까지 가 본 사람들이 입은 상처라네.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은 결코 이해 못 할… 당 소저.”
“아… 네!”
“축하하네.”
“……?”
영문을 모르고 눈을 껌벅거리는 당무련. 그런 그녀를 아랑곳하지 않고, 교수는 또 한 번 칠판에 한 줄의 문장을 적었다.
따닥. 딱딱. 삐익. 끽.
-전사에게 흉터는 승리의 훈장과도 같다.
주욱.
그 문장에 진하게 밑줄을 그은 후, 교수는 그대로.
“영혼에 상처를 입었다는 것은, 그만큼 강대한 적을 만났다는 것. 그리고 살아 있다는 것은 그걸 이겨 냈다는 것이지.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 라고. 다르게 말해, 당 소저, 자네는 더 강해질 기회를 얻은 것이야.”
당무련의 안색이 발개졌다 하얘졌다 하며, 수시로 바뀌었다. 교수가 하는 말이 잘 납득이 가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그 두려움. 수시로 울리는 환청. 갑자기 떠오르는 끔찍한 기억들. 그건 그저 가지고만 있어도 어마어마한 수련이 된다네. 이걸 축하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기억해 두게. 자네는 나약한 것도, 겁이 많은 것도 아니라네. 그건 근육통처럼, 그냥 강해지는 과정일 뿐. 나도, 그리고 다른 교두들도, 다 그런 과정을 겪었기에 알아. 음… 지금 많이 힘들지?”
“어…….”
안쓰럽다는 교수의 마지막 말. 그에 당무련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더니.
후드득. 주르륵.
“어. 아. 으.…….”
갑자기 눈물이 마구마구 쏟아졌다.
당무련은 당황해서 눈을 비비고, 급히 얼굴을 닦았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몸이 떨리고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으, 아윽, 흐… 흐윽……!”
“그래. 그래. 고생이 많네.”
“…흐으으윽!”
그러다가 갑자기 울음이 터져 버렸다. 더는 참지 못하고 꺼이꺼이 목을 놓아 통곡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아픈데도, 안 아픈 척하며 억지로 참고 있다가.
그래. 이제 괜찮아. 많이 아팠지? 하는 다정한 한마디에 갑자기 설움이 북받쳐 오르는 것처럼.
“어…….”
“으음… 음…….”
학관생들은 대부분 갸웃거렸다.
그게 그렇게 힘들 일인가 하는, 실감 못 하는 얼굴이 대부분. 그리고 아, 알지. 하는 씁쓸한 웃음을 짓는 엘리트 파티의 몇.
박진 교수는 그들 모두를 돌아보며 한마디를 더했다.
“자네들이 아직 몰라서 그런 게야. 지금 3학년들 교실 분위기가 어떤지 아나?”
“……?”
“……!”
구박은 받았지만, 위험은 별로 겪지 않았던.
그래서 철없게 와글거리는 2학년과 달리. 3학년 교실 중 몇몇은, 무어라 말하기 미묘한 침묵이 감돌았다.
서너 개씩 비어 있는 빈자리를 볼 때, 그들은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 레이드에서 돌아오지 못한 이들. 작전 중 실종자는 수십 명.
말이 실종이지, 어둠 땅 지대 같은 적대적인 환경에서의 실종이란 사망이나 다름없다.
때문에 사후 처리를 위해, 4학년과 조교 중 일부가 실종자들의 흔적을 찾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유해조차 찾아 오지 못했다. 당연히 진한 냄새가 감돌았다.
근처까지 다가와, 동급생을 앗아가 버린 죽음이라는 놈의 냄새가.
“희생 없는 전투란 없다. 그 어느 역사적인 대승에서도 항상 사상자는 발생한다.”
고고학과 교수 박진은, 어찌 보면 판에 박힌 평소와 비슷한 내용의 말을 했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이라 해도 방심은 치명적이고, 몬스터는 그런 방심을 결코 놓치지 않는다고.
특히, 3학년 실종자의 절반이 넘는 무리가 ‘무단 사냥’을 나갔다가 종적이 사라졌다는 것을 지적했다.
“몬스터들이 손쉽게 느껴지면, 오히려 경계해야 하네. 놈들은 동료의 목숨을 아깝게 여기지 않아.”
일부러 몇 번 패배해서, 방심한 틈에 일거에 전세를 뒤집는 것은 고대 전시에서도 수시로 있었던 일이다.
“이번 레이드에서 죽거나 실종된 이들이, 딱히 남은 이들에 비해 실력이 모자라서 그런 것일까? 제군들은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
“…….”
교실은 침묵으로 가득했다. 다들 새삼 깨달은 것이다.
그런 일이 자신에게 닥치지 않은 것이, 본인 실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그저 운이었을 뿐이라고.
“자, 그럼.”
모두의 눈이 진지해진 것을 알아본 교수가, 가볍게 턱짓을 했다.
“직접 전선에 나가 본 동료의 경험담을 들어 보지. 방윤 학관생,”
“…네? 네!”
벌떡!
방윤이 얼결에 대답하고 퍼뜩 몸을 일으켰다.
어리둥절해하는 그에게 교수가 턱짓으로 채근했다.
“자네가 말해 보게. 그간 겪었던 전투 경험을. 그리고 다들 새겨듣게. 잊지 말고. 그는… 생존자라는 걸.”
고고학과 교수는 당연히 알고 있었다.
방윤이 독실한 불제자라는 걸. 그리고 PTSD 경험자 중, 성직자나 신앙심이 강한 이는 그럭저럭 잘 버텨 낸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