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285화 (286/310)

285화. 새로운 과목 (2)

실내 수업은 기본적으로 이론이다.

아무리 실전 제일주의를 표방하는 속성 무관에서도, 바로 날붙이부터 들게 하지는 않는 법이다.

도검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 수련자의 체형과 체질에 대한 이해. 그리고 실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변수나 주의사항을 먼저 가르친다.

역설적이게도, 싸움을 전제로 하기에 이론을 먼저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목숨은 단 하나뿐이니까.

“…그래서 저희들은…….”

학관 시스템은 최소 시간에 최대의 병사, 혹은 지휘관을 양성하는 것을 지향한다.

한 번에 다수를 빠르게 가르치는 것.

일일이 실전이나 개인 지도를 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소모된다. 반면, 근본이 잘되어 있다는 가정하에, 이론은 습득이 빠르다.

이론 수업은 주입식 교육 형태로, 내용 암기를 우선으로 하기에 재능은 둘째다. 성실함만 있다면 누구나 빠르게 배울 수 있다.

당장 소진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비록 실전에선 빌빌댈 허약한 몸을 가지고 있어도, 지식상으로는 같은 학년의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다.

전방에서는 참모로, 혹은 후방의 보급관으로 활동할 수 있으니 몸이 약해도 쓸 수 있는 인재로 뽑을 수 있는 것. 그것이 이론 수업의 장점이다.

“그래서? 야지에서 가장 필요한 보급품은 뭐였나? 불편하거나 아쉬웠던 점을 말해 보게.”

혹자는 이론이 그저 반쪽짜리라고 주장하지만, 이번 레이드처럼 직전에 생생한 경험을 한 직후 듣는 이론 수업은 어지간한 실전 못지않게 생생하고 자세하게 습득된다.

“저는 보유한 무기의 양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암기의 경우에는 소모량이 많아서요.”

제일 먼저 당무련이 한숨을 내쉬었다.

“더 다양한 공격 수단이 필요했습니다. 칼이 들지 않는 금속성 몬스터를 상대로 하는 경우에는……. 그저 막막했습니다. 폭약이나 더 강력한 수단을 써야 할 것 같습니다.”

다음으론 운소령이 고개를 내저었다.

“어마어마하게 빠르더군요. 방어구를 왜 가볍고 얇은 것을 쓰는지 실감했습니다.”

서문영이 질렸다는 얼굴을 했고. 소진 또한 비슷한 얼굴이었다.

“오래 걷는 게 괴로웠어요. 발이 부르터서……. 가볍고 튼튼한 신발이 정말 중요했습니다. 발이 편해야 이동이 가능하고, 아무리 좋은 신발이라도 미리 길을 들여놓는 게 필요할 것 같습니다.”

다들 무인들이라, 그저 따라가기도 벅찼던 게 그의 부족함이었다.

“제 경우에는 식료였습니다. 음. 삼불의 계율이 있다 해도 아무래도 비린 것에 익숙하지가 않아서요.”

마지막으로 방윤이 민머리를 긁었다.

“좋아. 좋은 것들을 알려줬군. 그러면 다음에는…….”

박진 교수는 한 명씩 또 한 명씩. 엘리트 파티로 이번 레이드에서 활약한 이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물론, 박진 본인은 이미 보고서로 보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것저것 더 물어본 건 다른 학생들 때문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건 수업이니까.

교수는 상당량의 시간을 사용해서 학생들의 주의를 모았다. 특히나 2학년이 이번 레이드에서 담당한, 보급품 관리의 필요성에 대해서.

야지에서 겪은 불편함에 대해서 당사자만큼이나 절실한 말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적다.

‘흐음.’

하지만 수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욕이다.

박진은 엘리트 파티가 처음 지명되었을 때 흥미진진해 하던 학생들이, 점차로 무표정해지고 심드렁해지는 것을 보며 속으로 피식 웃었다.

저건 표면으로 드러내는 무표정, 가짜 감정이다. 아마도 진짜 감정은 질투 혹은 시기일 터. 불편한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싫어서 무감정한 척하는 것이다.

‘하기야. 열불이 날 테지.’

사실 아무리 엘리트 파티이고, 학년 수석이라고 해서 그러려니 하고 여기더라도.

같은 동급생이 활약하는 것에 자극받지 않을 수는 없다. 질투는 사람의 본성이다. 그것도 아직 어린 학관생들이라면, 당연히 그 감정을 관리하기 힘들다.

짝짝!

박진은 손뼉을 쳐 주의를 집중시켰다.

“서역의 정복 군주 중의 한 명이 남긴 말이 있다. 군대의 진군 거리는 보급량에 비례한다고.”

딱딱. 딱딱. 따닥.

박진은 칠판에 크게 글씨를 썼다. 누구나 보면 끄덕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생존 요소를.

“제군들도 방금 들었다시피, 이번 레이드에서, 가장 많은 불편 사항은 결국 이것들이다.”

-의(依). 식(食). 주(住).

“먹을 것이 제한되면, 기력과 체력이 급속도로 감소한다. 보호의가 허술하면, 체온 유지가 힘들고 부상 위험이 급상승한다. 그리고 집. 안전한 휴식 공간이 없으면, 피로로 인해 전력 전체가 급락하고 그 상태가 갈수록 악화된다.”

“…….”

“…….”

학생들 중에서 납득하지 못하는 얼굴들이 보였다. 박진 교수는 그에 그저 웃을 뿐이었다.

“잘 와닿지 않을 수 있겠지? 뭐, 그 정도야 내공으로 어찌할 수 있지 않겠냐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기억하도록.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건 낭비다.”

그저 재미있었다. 처음 들을 때는 어찌 된 게 다들 하나같이 똑같은 반응들인지.

그리고 어떻게 이 말만 하면 다들 아차, 하고 굳은 얼굴이 되는지.

“제군들이 현경, 혹은 화경의 극에 오른다면 철검이 없어도 상관없다. 강기로 언제든 검을 뽑아낼 수 있으니까. 근데 거기까지 오를 수 있다고 자신하는 사람?”

“…….”

“…….”

“혹은 수화불침이나 도검불침의 경지에 오르면 옷도 필요 없지. 극지에 가도 체온이 떨어지지 않고, 칼날에 부상도 입지 않는다. 그걸 달성할 수 있는 사람?”

“…….”

“…….”

“쉴 틈도 없이, 수백, 수천, 수만의 몬스터를 상대로 물러서지 않고 계속 싸울 수도 있을 것이다. 여러분이 오기조원과 삼화취정에 도달한다면. 이처럼 극에 달한 내공은, 어지간한 불편함이나 위험은 모두 넘을 수 있게 한다.”

박진의 말이 이어질수록, 학생들의 얼굴은 잔뜩 굳어지고 찌푸려져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그가 말한 것은 최소 화경 이상, 현경의 경지에나 이르렀을 때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기까지 가지 못하지. 극한에 다다르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고, 죽어라 노력한다고 해도 아무나 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당장 본 교수 또한 마찬가지다. 아무리 노력해도 초절정의 벽을 넘지 못했다.”

“…….”

“…….”

학생들의 얼굴이 우울해졌다. 몇몇은 실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교실에 앉아 있는 대부분은, 다들 자기 동네에서는 인재이고 기재이다. 하지만 천무학관은 그런 인재와 기재 중에서도 추리고 추린 인물만 모인 곳.

초절정의 벽을 넘는 것은 박진 교수도 하지 못했다.

그만큼 힘든 일이고, 극히 소수에게만 허락되는 것이 바로 화경의 경지. 그리고 그보다 더 좁은 것이 현경으로 향하는 문이다. 누구나 자신이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지만, 그건 안타깝게도 꿈이지 현실이 아니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지. 그 정도가 되지 않아도 여전히 싸울 수 있다. 나도. 그리고 오늘 주목을 받은 여러분들의 동급생도.”

“……?”

“…….”

따닥. 딱딱.

박진이 다시 돌아서서 분필로 칠판에 글을 적었다.

-내공 대신 아이템.

-강력하고 새로 개발된 장비와 무기.

-군략과 협동. 그를 통한 최종 승리.

“내공이 모자라면 아이템을 쓰면 된다. 극양의 화공이 없어도, 성능 좋은 벽력탄이면 몬스터를 구워 버릴 수 있다. 혼자 움직이는 내공 고수는 배고픔과 졸림을 참고 버텨야 하지만, 여럿이서 움직이는 조는 등을 맞대고, 서로서로 지켜줄 수가 있다.”

“…….”

“……!”

“애초에 인간은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생물이다. 더 효율적인 전투 방법이 있는데, 굳이 맨몸으로 때울 필요가 없다. 절정 고수는 소수지만, 제군들 대부분이 그게 되지 않아도 문제없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것이 강한 거다.”

딱딱. 따다닥.

-보급품.

-풍부하고 안정된 후방 자원.

“잘 먹고, 잘 자고, 든든한 방어구가 있다면, 절정 고수가 아니라도 활약할 수 있다. 필요한 것은 보급. 바로 제군들 대부분이 이번에 동원된 바로 그 잡무가 바로 보급품와 확보와 유지였고.”

삐기긱!

교수는 말과 함께 ‘보급품’이라는 단어에 원을 그렸다.

그와 함께 학관생들의 눈에 빛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박진 교수는 잠시 몇 초를 침묵한 후, 선명하게 말했다.

“제군들은 이번에 정말 성실히, 다른 고학년과 교수 교두들이 해야 할 일을 대신해서 해 주었다. 그 공은 모두가 알고 있다.”

“…….”

“……!”

쓸모없는 일을 했다는 생각만큼, 사람을 부정적으로 만드는 것도 없다. 후방에서 보급을 담당했던 일원들에게는, 자신들이 분명히 가치 있는 일을 했었다는 확신이 주어져야 한다.

이는 사기 유지를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조치다.

“독불장군. 혼자서 다 할 수는 없다. 이번에 활약한 엘리트 파티의 면면을 볼까? 운소령. 2학년 수석이지. 하지만 그녀의 검은 금속제 골렘 앞에 맥을 못 추었지. 서문영? 뇌전 계열 공격으로 내부를 진탕시켰지만, 내공이 부족했다. 언제까지나 쓸 수는 없었다.”

“음…….”

“…흠.”

학생들의 시선이 운소령과 서문영에게 향했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은 수긍하며 크게 끄덕였다.

황금 골렘이라는 상대는, 자신들이 상대하기에는 너무도 버거웠다. 그 당시 큰 피해를 줄 수 있었던 것은.

“오히려 방윤. 그가 방편산이라는 속성이 좋은 무기를 휘둘렀기에 큰 피해를 줄 수 있었다. 대인간, 다대다 전투에서는 최고의 위력을 낼 당무련은 암기가 바닥나면 위기에 처하고, 그녀에게 암기를 제공해 준 소피아는 파티원들이 아니면 그런 집중을 할 수 없었다.”

딱. 딱. 딱. 딱.

박진은 다시 칠판을 두드렸다. 이번에 그가 가리키는 구절은 ‘군략과 협동’이었고.

“기억해라. 모두가 일등이 될 수는 없다. 어차피 일등은 딱 한 명에게 주어지는 자리니까. 하지만 이 자리에 앉은 제군들 모두는 ‘최고’가 될 수는 있지.”

딱. 삐기기긱.

곧, ‘최종 승리’라는 글귀에 진하게 밑줄을 쳤다. 그에 약간 흔들렸던 학생들 모두의 눈이 사납게 뜨였다.

“조직력. 인간의 진정한 무기는 바로 같은 동료다. 전투 기록을 열람해 보면 알겠지만, 이번 엘리트 파티에서 본인 능력 이상으로 가장 크게 활약한 건 소진. 여러분들이 평소에 우습게 여기고 따돌리던, 기부금 입학생이었다.”

“어…….”

술렁. 수군수군.

교실에 혼란이 일었다. 몇몇은 여전히 부정하고, 몇몇은 박진의 말에 수긍했다. 어쨌든 시선이 좌악 몰리자 소진은 얼굴이 벌게져서 손을 내저었다.

“교. 교수님? 아닙니다. 제일 활약 많이 한 건 제가 아니라 이한이…….”

“격이 다른 인물은 논외다. 그리고 이한이 아니라 구용천. 천마신교의 교주가 환생한 인물이다만. 어쨌든 그는 특수한 경우다. 애초에 말이 되지 않아.”

소진의 말을 박진은 바로 끊었다. 이미 이한-천마의 사정은 학관 내에 널리 퍼져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 비교 대상도 안 되는 인물을 이런 데서 언급하는 건 바보나 하는 짓이다. 경지가 자그마치 탈마라고 하는 인물이니.

“제운비 수석 교두조차도 그분에게는 못 미치지. 당연히 질투할 수 있다. 부러워할 수 있다.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는 천재란, 화나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그래서?”

박진은 잠시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깐 숨을 돌릴 시간을 몇 초 준 후.

삐빅. 삐긱. 타닥.

다시 칠판의 여백에 큰 글자를 적어 내렸다. 그 글귀를 본 학생들의 얼굴에 울컥! 분노와 부정이 올라왔다.

-어차피 나는 안 되니까 포기한다.

“…….”

“…….”

“이러고 싶나?”

“……!”

“……!!!”

“제일이 아니면 의미 없나? 상대는 못 이긴다. 뛰어넘을 수 없다. 애초에 타고난 그릇이 다르니까.”

“…….”

“…….”

“그래서 그냥 무기력하게, 다 손 놓을 건가? 대답해라 제군들. 나는 여러분에게 묻고 있다. 정말 그런 건가?”

박진의 언사는 도발적이었다. 그리고 그 도발은 성공적으로 먹혔다.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남학생 몇이 눈을 부릅뜨고 목소리를 올렸다. 박진은 그에 더 자극했다.

“엘리트 파티가 당장 그렇다. 여러분이 아무리 노력해도 이들만큼 수훈을 못 낼 거다. 그래서? 다 포기할 건가?”

-아닙니다!

학생 십여 명이 일제히 소리 질렀다. 박진은 일어나는 불길에 더 기름을 부었다.

“앞으로 평생, 계속해서 이런 격차가 벌어지게 둘 건가? 노력하지도 않고?”

-그렇게 안 합니다!

조금 전보다 더 큰 목소리가 울렸다. 박진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순위는 바뀔 수 있다. 성과는 누구든 더 낼 수 있다. 그걸 똑똑히 기억하게 하는 것이, 그의 교육 방침이었다.

꽈악. 부르르르.

학생들의 주먹이 거칠게 쥐어졌다. 수업을 다시 시작한 첫날부터, 열의는 놀라울 만큼 뜨겁게 타올랐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