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6화. 새로운 과목 (3)
천무학관은 기본적으로 학교다. 교육 시설이다.
하지만 무력 양성이라는 측면에서, 군대의 형태를 많이 참조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실력 우선주의, 약자 도태, 그리고 계급제가 동시에 공존하는 것이다.
위 학년이나, 조교, 교관, 교두들의 지시는 절대적이다. 이런 군대에서, 일반인이 가장 먼저 배워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예상외의 사태, 혹은 부당함에 대한 적응이다.
“할 내용이 많으니, 수업을 조금 일찍 시작하도록 하지. 다들 착석하도록.”
“…….”
“…….”
5교시 수업. 원래라면 식사를 포함해서, 최소 반 시진의 휴식 시간을 가진 후에 시작되어야 할 수업.
그게 2각(30분) 이상 빨리 시작되었다.
당연히 불만으로 입이 댓 발은 튀어나올 상황이지만, 누구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아니, 내색을 못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수업 담당은 체육학 교두 뇌천벽.
자타공인 천무학관 서열 3위의 교수가, 갑자기 손수 교편을 잡고 들어온 것이다. 예고도 없이.
“외공의 고수들. 잘 발달된 근골을 가진 무인 중에는 오해를 사는 경우가 많다. 근육이 덕지덕지 달린 두터운 몸의 소유자는, 둔하고 무식하다고.”
따닥. 따닥. 딱딱.
덕분에 2학년들은 바짝 몸이 굳었다.
뇌천벽이 말이 서열 3위지, 실제로 서열 1위는 리그웨더, 2위는 제운비라는 걸 생각해 보면, 그는 학교에서 만날 수 있는 최고 무력이다.
척.
“학관생 방윤.”
그리고 그런 인물이 교편으로 가리키니, 지목받은 대상은 입에서 심장이 튀어나올 정도로 긴장했다.
“예. 옛!”
“잠시 앞으로 나와 주겠나?”
“예. 옙!”
덜컥. 우다다닥!
겨우 사람 하나 지나갈 정도의 좁은 자리를, 방윤은 눈 깜짝할 사이 재빠르게 지나갔다. 교실 안에서 경신술까지 써서!
덕분에 뇌천벽은 흡족한 얼굴로 미소 지었다.
“역시 민첩하군. 상의 탈의.”
“예…….?”
방윤이 되묻는 가운데, 뇌천벽이 다시금 미소 지었다.
“상의를 잠시 벗어 주게. 무례한 요구일 수 있지만, 이 반에서 자네만 한 사람이 없으니 부디 협조를 좀 부탁하네만?”
“어. 그, 저. 음.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 미소는 2학년이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말이 협조지 명령이나 다름없는 상황. 방윤은 잠시 고장 나서 버벅거리다, 일단 상의를 찢듯이 벗어 버렸다.
우우. 우우우.
“헉…….”
그리고는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협조(?)를 구한 것이 뇌천벽이라 잊고 있었는데, 그의 반에는 남학생만이 아니라 여학생들도 있었던 것이다.
얼굴에서 머리통까지. 핏빛이 되어 도망치려던 것을 붙잡은 것은 예의 교두 뇌천벽이었다. 그에게 방윤의 부끄러움은 하등 고려할 것이 아니었다.
“전신 근육. 휼륭하군. 아주 이상적이야. 그럼 두 팔을 허리에 두어 보겠나?”
“……?”
“어서. 빨리 진행하고 빨리 자리로 돌아가도록 하게. 두팔을 허리로. 그리고 근육에 힘을 주도록.”
“예… 예!”
빨리 끝낼 수 있다는 말에 방윤이 인내심을 발휘했다.
뇌천벽은 뒤이어 여러 동작을 시키며, 가슴팍이나 팔뚝, 그리고 뒤돌아서서 등근육에까지 힘을 주게 했다.
‘부처님… 아미타불… 부디 소생이…….’
얼굴이, 머리통이, 상체 전체가 부끄러움으로 시뻘겋게 달아올랐지만, 방윤은 속으로 불호만 거듭 외치며 지시를 따랐다.
“훌륭하군. 더 끌고 싶지만 불제자에게 이 이상은 무례겠지. 그만 들어가 보게.”
“예. 옛!”
후다닥. 화다다닥!
살면서 이토록 빠르게 움직인 적이 있었던가. 벗은 옷을 급하게 입는 가운데, 소림 칠십이종 절예인 반야장까지 썼다. 그러고는 빠르게 자리로 돌아가, 자기 자리에 쑤셔 박히듯이 앉은 것이 한 호흡 안이었다.
“…세상에.”
“와…….”
가히 ‘절대’라는 말을 붙여도 모자라지 않은 재빠름!
“기존 평가보다 훨씬 우수하군. 제군들. 앞서 했던 말을 다시 하지.”
감탄하는 학관생들을 보며, 뇌천벽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근육이 잘 발달된 좋은 체구의 무인을, 아니, 무인이 아닌 몬스터까지 포함해서, 덩치가 크면 느릴 거라는 선입견이 많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건 착각이다.”
탁. 타닥. 탁.
뇌천벽은 칠판에 몇 개의 숫자를 썼다.
“아주 치명적이고, 멍청한 착각이지. 과한 근육은 확실히 유연성이나 자기 제어에 불편함을 주기는 한다.”
-최대 0.5 ~ 최소 0.02초.
뜬금없는 글자. 그걸 써 놓은 뇌천벽이 탁, 끼긱! 소리를 내며 칠판에 원을 그렸다.
“덩치가 큰 무인의 반사 속도를 집계한 결과다. 보다시피, 사람 나름이겠지만, 그 차이는 천차만별.”
“…….”
“……!”
“최대 0.5초. 하지만 실전에서, 공격에 실리는 힘과, 그 힘으로 인한 가속도까지 생각하면 오히려 더욱 빠르다고 볼 수 있다.”
따닥. 따닥. 딱딱.
뇌천벽이 이어서 칠판에 몇 자를 더 썼다.
-공격력 최소 20퍼센트 ~ 최대 250퍼센트.
“우워…….”
“허어…….”
믿어지지 않는다는 얼굴의 학관생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뇌천벽의 말인 데다, 직전에 방윤의 섬광 같은 움직임을 본 터라, 아무도 의혹을 제기하지 않았다.
“여기에 방어력까지 생각하면, 더더욱 답이 없지. 내공도 내공이지만, 몸을 지탱하는 외공에 충분히 투자했을 경우, 그 근육이 제공하는 방호력은 이 정도로 추정된다.”
따닥. 따닥. 딱딱.
-방어력 최소 30퍼센트 ~ 최대 400퍼센트.
“잘 실감이 가지 않나? 비유를 들자면, 상시 풀 플레이트 아머를 입은 방어력을 가지고 있다는 거다. 무게는 제로. 거기에 공격력과 방어력까지 올려주는 사기급 신병이기. 이것이 잘 갖춰진 외공의 위력이다.”
우우우. 우우우우…….
교실에 잠시 어수선함이 일었다. 놀라는 학생도 있었고, 고개를 크게 갸웃하는 학생도 있었다.
척.
“교수님, 질문 있습니다.”
“음. 말하게.”
그 가운데 손을 들어 묻는 이가 있었다. 운소령이었다.
“외공 단련이 신체 능력을 증진시키는 데는 압도적으로 좋다는 것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교수님 말씀대로라면…….”
말을 하다 말고 운소령이 아차, 하고 살짝 얼굴을 굳혔다.
이제부터 이어지는 말은 자칫, 교두 뇌천벽에게 대들거나 도발적인 모습으로 비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내공을 쌓는 수련이나, 신체적인 한계가 있는 이들은 어찌해야 하는 것입니까?”
급하게 말을 순화하긴 했지만, 그녀가 원래 하려던 말을 짐작 못 할 뇌천벽이 아니었다.
그는 살짝 비뚜름한 웃음을 짓고는 되물었다.
“왜, 내가 방윤 학관생이 이 반의 최강자라고 선포하는 것처럼 들린 모양이지?”
“……!”
당연히 운소령은 살짝 안색이 질렸다. 속을 그대로 읽혔고 바로 일갈이 떨어질 것처럼 느껴진 것이다. 하지만.
“좋은 질문이다. 역시 학년 수석이군.”
“……? 과, 과찬이십니다…….”
의외로 뇌천벽은 기분이 상하기는커녕, 오히려 흡족해했다. 운소령은 어리둥절한 채로 슬그머니 자리에 앉았다.
“당연히 이런 반문이 나와야 한다. 열의를 가진 학관생이라면! 아마 운소령 학생은 이렇게 묻고 싶었을 것이다. 여자인, 몸이 약한, 혹은 체질적으로 외공이 맞지 않는 이들은 다 약할 수밖에 없다는 말인가? 라고.”
“…….”
“…….”
“지금 수업을 듣는 제군들 모두가, 본 교두의 말에 의문을 가졌겠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외공은 분명, 눈에 띄는 강력한 힘의 증가를 불러온다. 그런데 물리적인 힘, 방호력, 속도가 전력의 전부인가? 그렇다면 내공은? 마법은?”
끄덕끄덕. 흐으음.
학관생들이 긍정하며 조금 더 눈을 빛냈다. 합리적인 의문을 유발하고, 그에 대답을 내는 것. 뇌천벽의 강의 스타일에 빠져든 것이다.
“당연히 아니다. 당장 본 학관에서 제군들이 얻은 성적부터가 이를 증명하지. 그중 압도적으로 성취를 보이고 있는 학관생. 서문영!”
“예. 옛?!”
집중해서 듣고 있던 서문영이 지목에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뇌천벽의 존재감은, 학년 무과 수석이라는 그도 긴장시켰다. 방윤이 실태를 보일 때, 자신은 저러지 말아야지, 하던 생각은, 불리자마자 싹 하고 달아났다.
“타고난 재능. 거기에 성실함. 이번에 서문세가의 가전무공 복원에 큰 진전을 보였다고 들었다. 다른 학관생들도 인정하겠지만, 자네는 백수의 왕. 호랑이라 불릴 만해.”
“과, 과찬이십니다. 저는…….”
“하나, 그 호랑이라 하더라도 함부로 도모하지 못하는 초식동물이 있지. 바로 코끼리다.”
척.
겸허하게 뭐라 반응하기도 전에, 서문영의 말을 끊고 뇌천벽이 한 사람을 가리켰다.
바로 방윤을.
“……?”
이제 좀 주변 학생들의 시선에서 벗어나나 하고 안도의 숨을 쉬던 방윤은, 다시금 몰려드는 눈길에 거북이처럼 목을 움츠렸다.
“학관생 방윤은 불제자라, 폭력적이지 않고 스스로를 내세우는 것도 하지 않는다. 겸손하고 온순하지. 그를 동물로 치면 코끼리(象)로 볼 수 있다.”
“…….”
방윤의 얼굴이 붉어졌다. 코끼리라니.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칭찬하는 건지, 비난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는 모여드는 시선이 빨리 사라져 주기만을 바랬다. 하지만 뇌천벽의 말은 계속되었다.
“초식이지만, 질기고 두터운 가죽. 육중한 몸과 힘! 코끼리가 작정하고 화를 낼 때면, 백수의 왕 호랑이라도 피하게 마련이다. 서문영? 서로서로 전력을 다한다면, 자네는 방윤을 몇 초 안에 제압할 수 있겠는가?”
“…….”
서문영이 얼굴을 굳혔다. 그는 잠시 창백해졌던 얼굴이, 천천히 찌푸려지더니, 얼마 후엔 자신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최소 백 합……. 아니, 삼백 초 안에 승부를 보기 힘들 듯합니다.”
“과하군.”
“…예?”
“겸손이 과하다. 자네가 전력으로 살수를 쓴다면, 방윤 학생은 이십 초 내로 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자네는 도검을 사용하니까.”
“…….”
“삼백 초 내 무승부? 그건 서로 손발 묶어 놓고 벌이는 비무나 대무에서나 있을 일이지. 아무리 외공을 단련한들, 내공이 실린 검기를 버티는 것은 불가능하다.”
끄덕.
뇌천벽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것은, 정작 서문영이 아니라 듣고 있던 방윤이었다.
아무리 소림의 무예에 대한 자부심이 큰 들, 적수공권으로 병기를 다루는 이와 생사결을 벌였을 때, 이길 수 있다는 자신은 들지 않았다.
비록 소림의 무예 중에 공수탈백인(빈손으로 무기를 빼앗는) 수법이 있다 해도, 상대는 서문영. 어설픈 재주로는 통하지도 않을 터였다.
“으으음…….”
“흠… 확실히…….”
두 사람의 반응에 학관생들이 끄덕였다.
사실 2학년 3반에서, 수군수군 속으로만 점쳐 보던 암묵적인 서열이 있었다.
학년 무과 수석인 서문영과,
학년 전체 수석인 운소령.
그리고 반장 방윤이.
그럴 일은 없겠지만, 전력으로 생사투를 한다면 누가 이길 것인가. 하는 소소한 궁금증.
“검과 도는 다르다. 내공과 외공은 다르다! 당연한 소리다! 전투력은 애초에 하나로만 정해질 수 없다!”
“일반적인 전투 평가로는 서문영이 최고다. 그는 공방 모두의 밸런스를 잘 잡고 있다. 하나 망치를 들고 석상을 깨부수는 것이라면? 방윤이 압도적으로 이길 것이다!”
“빠르게 적 무리를 돌파해서 탈출하는 것이라면 운소령이 최고일 것이고, 독이 통하는 생물형 몬스터라면, 당무련은 악몽의 학살자가 될 것이다!”
끄덕끄덕. 끄덕끄덕.
학관생들은 이미 모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뇌천벽은 2학년 3반을 손에 쥐고 흔드는 사람처럼, 능란하게 강의를 이었다. 아무리 천무학관이라 한들, 애초에 그가 가르쳐 본 영재와 천재들이 한둘이던가.
“지식, 학력 또한 생존에 필요하다. 학식과 암기력만을 따져 본다면, 이제껏 신체 능력으로 무시받아 왔던 기부금 입학생, 소진 역시 운소령에 못지않는다!”
“예, 예엑?!!!”
“강함의 기본 규정에 얽매이지 마라! 내공이 중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하나 외공 또한 중요하다! 제군들은 이제까지 가져온 선입견을, 실전에서 확인했을 것이다!”
다들 강의에 집중하고 있었다. 중간에 잠시 가냘픈 비명이 울리긴 했지만… 그냥 자연스레 무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