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290화 (291/310)

290화. 천마학관(天魔學館) (2)

뚜르릉. 뚜르르릉.

가느다란 쇠막대가 굵은 철봉들을 두드리며 지나간다. 쇠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는 마치 악기를 두드리는 것처럼 높낮이가 있었다.

뚜르르릉… 티리리링!

“흠.”

개중에 요란하게 튀는 소리가 나자, 쇠막대를 든 3학년이 1학년에게 턱짓을 했다.

“야.”

“예!”

후다닥!

1학년은 재빨리 묘한 소리가 난 철봉을 빼어 따로 두었다. 그러고 나서 두드림은 계속되었다.

뚜르르릉. 따르르릉.

한참을 왔다 갔다 해서 총 60상자. 육백 개에 달하는 철봉을 살펴본 3학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번 거 품질이 영 별론데? 굳기도 굵기도 균일하지 않아. 이래서야 손이 많이 가게 생겼어.”

“…그걸 그냥 보고 아십니까?”

1학년이 놀란 눈을 하자 3학년은 코웃음을 쳤다.

“본 게 아니라 두드려서 들은 거잖아. 수업 시간에 잤어? 철봉 같은 단단한 매질은 음파가 전달되는 속도가… 아, 너 아직 1학년이지?”

“예…….”

“그럼 모르겠군. 뭐. 그냥 수박 살 때 생각하면 돼. 소리가 맑게 나고, 균일하게 날수록 품질이 좋은 거야. 쇠든, 수박이든.”

다음! 하고 외치고 3학년은 철판이 겹겹이 쌓인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또 쇠 두드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탕! 탕! 꽝!

철봉(鐵棒)과 철판은 중간 자재다. 봉은 조금만 손을 보면 바로 창 같은 무기가 되고, 철판은 갑옷, 방어 격벽의 보강 등에 빠지지 않는다.

천무학관처럼 무구와 방어구의 사용량이 많은 곳에서는, 어느 정도 자체 생산을 한다. 물론 무인들이 메를 들고 야장질까지 도맡는 건 아니다. 대부분은 외부에서 사들인다.

그럼에도 무인이라면 당장 자기 무기의 정비나, 방어구의 수선 등은 필수적으로 익혀 둬야 한다. 지척에 보급품이 있어도, 당장 눈앞에서 적이 달려들면 어쩔 텐가.

땅! 땅! 따앙!

그런 점에서 천무학관은 진지하게 근본부터 쌓았다.

무인이 자기 병기를 자기 몸처럼 잘 알아야 한다면, 병기의 7할에서 9할까지 차지하는 철에 대해서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때문에 수업 중에서 철의 물성에 대해서는 깊이 있게 다루는 과목이 있을 정도다.

병기와 방어구가 어떤 재질이고 어떤 때에 약점을 보이는지 숙지한다는 것은 중요하다. 특히 대몬스터 전투에서는, 화염이나 냉기, 때로는 전격계 속성을 지닌 초월적인 놈들도 있다.

그런 놈들과 상대할 때, 병사들 개개인이 빠른 판단으로 자기 약점을 줄이고 적의 강점을 방어할 수 있으려면, 깊게는 아니라도 옅고 넓게 관련 지식이 필요한 법.

탕! 꾸웅! 깡!

“소리가 엄청나네요…….”

“표면적이 넓으니까. 철은 밀도가 높은 광물이라, 충격을 받으면 그 전체가 떨어.”

“…떤다고요? 철이?”

“어, 진동. 그게 소리로 변하지. 가만있자, 너 아직 모르겠네? 아까 철봉이랑 소리가 많이 다르지? 이 판때기들.”

“예.”

3학년은 그래도 1학년에게 나쁘지 않은 선배였다. 잘난 척을 좀 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것저것 자신이 아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소리는 모양으로 정해져. 예를 들어 이렇게.”

삐익!

두 손으로 손 피리를 만들어 요란하게 부는 3학년. 그는 다시금 손 모양을 바꿔 다시 불었다.

삐요이!

“오.”

“다르지? 똑같은 숨을, 똑같은 속도로 내쉬어도, 모양이 다르면 다른 소리가 난다고. 피리 같은 부는 악기 생각하면 돼.”

속이 빈 나무에 여러 가지 구멍을 뚫은 피리. 피리를 불 때는 막은 구멍에 따라 울리는 소리가 달라진다.

그리고 좋은 피리의 요건 중의 하나는, 단단하고 위아래의 굵기나 크기가 일정한 것이라고, 3학년은 일러 주었다.

“네가 피리를 부는데 그 피리에 금이 가 있으면? 어떤 소리가 나겠냐?”

“…좋은 소리는 안 나겠죠?”

마침 1학년은 실제로 피리를 불어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 정도는 몰라도 대답할 수 있었다.

“그런 거야. 철봉도. 철판도 그렇다고. 안쪽에 크랙, 금이 가 있거나, 서로 덧대지는 부분에서 밀도가 다르거나.”

혹은 마지막 담금질에서, 열처리를 균일하게 하지 못했거나 할 경우, 두드릴 때 탁한 소리가 난다.

이 탁한 소리는, 비슷하지만 서로 약간씩 다른 음역이 섞여서 들리는 것이고, 그래서 이 소리를 통해 철재의 품질을 알 수 있다는 것.

“…아하.”

“네가 해 볼래?”

끄덕이는 1학년에게 3학년은 들고 있던 쇠막대를 내밀었다. 받아 들어 보니, 보기와는 다르게 가벼운 것이, 속이 비어 있었던 모양이었다.

“감사합니다. 해 보겠… 으악……?!”

퍼궉!

그런데 이게 왠 일?

분명히 선배가 하던 걸 보고 똑같이 따라 했는데, 1학년이 두드린 철봉은 괴상한 소리를 내고, 심지어 손에 들린 쇠막대는 왕창 우그러졌다.

“아… 으… 저… 선배님?”

겁을 잔뜩 먹은 1학년은 오들오들 떨며 3학년을 보았고.

“클클클클. 멍청아, 내력은 뒀다가 국 끓여 먹을 거냐?”

“아…….”

스윽.

다행히도, 3학년은 다른 쇠막대기를 품에서 꺼내어 건넸다.

이제 보니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 모양이었다. 하긴, 생각해 보니 아무리 쇠와 쇠라 하더라도, 저렇게 수백 번을 두드렸는데, 내력을 쓰지 않았다면 진작에 지금처럼 망가졌을 것이 당연하다.

“미리 말해 주지, 왜 이렇게 골려 먹냐 싶지?”

“헉… 아, 아닙니다!”

“아니긴? 야, 나는 뭐 1, 2학년 안 겪고 3학년 된 줄 아냐? 나도 뒤에서 선배들 엄청 욕했어. 성질 거지 같다고.”

싱글싱글 웃는 3학년에게, 1학년은 빽! 소리가 나게 대답했다.

“저, 정말 아닙니다! 속으로도 욕하지 않았습니다! 제 돌아가신 어머님을 두고 맹세합니다.”

“…와나, 씁. 갑자기 진지해지냐. 알았다, 알았어.”

설마 부모님을 건 맹세가 나올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무안해진 3학년은, 1학년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애를 너무 놀리면 벌받는 법이다.

“내 말은, 몸으로 익히는 것, 혼비백산하도록 놀라는 경험만큼 머리에 콱! 박히는 게 없더라는 거야. 뭐, 내가 그랬거든? 그러니까…….”

“이봐, 군위!”

어쩌다 보니 꼰대 비슷한 소리를 늘어놓던 3학년은, 갑자기 근처에서 들려온 고함 소리에 펄쩍 뛰어 올랐다.

“헛! 3학년 학관생! 이! 군! 위!”

후다다닥!

그러고는 급하게 달려갔고, 그 뒤에 졸졸 따라다니던 1학년도 기겁해서 날듯이 달렸다.

“뭐 하고 있었냐?”

철봉과 철판 무더기 앞에 선 거한.

민머리에 체구가 장대한 근육질의 사내가 인상을 쓰고 있으니 그 기세가 실로 흉악하다.

“예! 야하 철장에서! 납품된 철봉과 철판! 품질 검사 중입니다! 대산 조교님!”

“오, 벌써? 고생 많다. 결과는 어때?”

툭툭.

민머리의 거한. 대산 조교라 불린 이가 어깨를 두드렸다. 그때마다 휘청거리며 3학년이 이를 악물었다.

딴에는 가볍게 두드리는 거지만, 상대가 워낙 근육질의 거구이다 보니 몸이 휘청거리는 것이다.

“현재 초도 검사 결과로! 불량률이 3할! 아무래도 야하 철방에! 조치를 취해야 할 것 같습니다!”

“목소리 좀 낮춰라. 고함 지르지 말고. 그리고 조치를 취할지 말지는 3학년한테 결정권이 있는 게 아니다. 알지?”

“시정하겠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3학년 이군위는 그 말에 즉각 반응했다.

대산 조교의 성격은 그도 알았다, 생김새는 엄청나지만, 학관생들에게 딱딱하지 않게 너그럽게 구는 편이란 걸.

하지만 조교들 중에는 학관생들에게 엄청나게 엄하게 구는 이들도 있다.

갑질이 생활인 이들. 상대가 하급생이라고 따까리, 하인, 혹은 인간 덜 됨 등의 악의적인 호칭을 붙이는 이들.

대산이 그런 타입은 아니지만, 어느 순간 그렇게 돌변할지는 모르는 일이다. 겉으로는 잘 대해 주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일부러 꼬투리를 잡을 때를 기다릴 수도 있고.

‘그러니 알아서 기는 게 낫지.’

알아서 서 있다가(?) 나중에 큰코다치는 경우를 생각하면, 조교라는 인간들 전체를 상대할 때 각 잡고 조심스럽게 대하는 게 나았다. 이른바 사회생활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대산도 자신이 경직되게 구는 게 괜한 짓이라는 투로 말하지만, 한 길 사람 속을 어찌 알겠는가?

퉁퉁. 탕탕.

“흠. 이거.”

이군위의 쇠막대보다 훨씬 두텁고 긴 쇠막대로, 대산이 철봉과 철판을 두드린 후 고개를 끄덕였다.

“불량률이 3할이라고? 확실해?”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더 살펴볼 생각이었습니다.”

“자세 좋네. 하긴… 이 근래에 비가 좀 많이 오긴 했지. 조심해서 나쁠 것 없고.”

대산이 끄덕였다. 그는 이번에 이군위 옆에 딱딱하게 서 있는 1학년에게 턱짓했다.

“야. 너.”

“예! 1학년 파! 현!”

“파씨냐? 드무네. 방금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이해했냐?”

투닥투닥.

말과 함께 대산이 어깨를 두드리자, 1학년이 발작적으로 반응했다.

“일 학년! 파! 현! 일 학년! 파! 현! 잘 모르겠습니다! 일 학년! 파! 현!”

“아. 시끄럽네. 목소리 낮춰.”

“…시정하겠습니다. 일학년. 파. 현.”

“그래서, 알겠냐고.”

“저, 조교님. 아직 1학년이라서…….”

“너한테 안 물었다. 군위야?”

3학년 이군위가 뭐라 말하려 했다가 바로 찌그러졌다.

“시, 시정하겠습니다.”

“그래. 1학년? 오늘 처음이냐? 뭐 좀 배웠어?”

대산이 너그러운 얼굴로 미소 지었다. 물론 그 미소는 1학년에게는 흉악하게 비쳤다. 파현은 바짝 몸이 굳어, 버럭 소리를 지르려다가 조심조심 목소리를 낮춰 대답했다.

“철! 물은… 겉으로 보기엔 단단해도, 내부에 크랙이나 기포가 있을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두드려서 소리를 듣고 내부를 파악한다고… 또한 굳기 외에도 굵기나 두께가 중요하다고 배웠습니다. 야장이 손을 잘 대어 철물 내부의 밀도가 균일해도, 굵기나 두께가 일정하지 않으면, 유사시에 사용할 때 약점, 내지는 피로 파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오. 좋아, 좋아. 잘 배웠네. 이군위?”

“3학년. 이. 군. 위.”

3학년이 즉각 반응하고, 조교 대산이 푸짐하게 웃어 보이며 어깨를 두드렸다.

“잘하고 있다. 기껏 붙인 애들한테 고함만 버럭버럭 지르고, 제대로 일 가르치지 않는 놈들도 많은데 말야.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해라. 지금처럼만.”

“3학년 이. 군. 위. 감사합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근데 저, 뭐냐. 비는 말해 줬나?”

“그… 죄송합니다. 아직입니다. 물량이 많아 초도 검사 끝내는 것만 해도…….”

3학년이 바짝 긴장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조교는 딱히 성질 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가 말해 주지. 철은, 불을 먹고 자라는 놈이다.”

나무가 자라려면 물이 필요하듯, 그리고 온도와 햇볕이 필요한 것처럼, 철이 좋은 철물이 되려면 뜨거운 열기가 필요하다. 장작보다 목탄이, 목탄보다 석탄이 대장간에서 환영받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특히 열처리.

벌겋게 달아오른 쇠가, 뜨거운 열기와 차가운 물을 오가며, 여러 번 물성이 변화한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며, 철물은 밀도가 치밀해지고, 사이에 층이 생겨 충격을 일부가 아닌, 전체로 퍼뜨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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