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3화. 천마학관(天魔學館) (5)
대격변의 날 이전.
마교는 강호에서 악명이 높았던 단체다.
마교 특유의 독선적인 성격도 있지만, 정도무림맹의 지속적인 유언비어 때문이다.
-끼니 때마다 애를 잡아먹고 잠자리는 사람 내장을 바닥에 깔고 잔다!
그처럼 얼토당토 않은 낭설에, 마교는 변명이 아니라 무시를 택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말이 안 되는 것이기도 하고, 해소하려 하면 정파 놈들만 더욱 기가 펄펄 살아서 날뛸 테니까.
그리고 딱히 소문을 해소하지 않아도, 감숙성까지 입교하러 찾아오는 이들은 적지 않았다.
사유는 다양하다. 먹고살기 힘들어서. 혹은 먹고살기 힘들게 만든 탐관오리를 때려 죽여서.
산에 들어가 도적이 되었는데, 그 산채가 정파 인물에게 박살이 난 유민도 있고, 정파 내에서 규율을 어겨 척살령이 떨어진 경우도 있었다.
-그건 사실이 아니오! 모략에 당한 것이외다!
-어, 또 억울한 놈 왔군. 어서 오고.
-거짓말이 아니오! 나는! 나는……!
-알았다니까. 호북성이면……. 이 양반이랑 동향이지?
-오호. 이제 왔느냐.
-사… 사부님?!
웃기는 것은, 그중에서는 실제로 죄를 범한 이들보다, 그냥 줄을 잘못 타서 중상모략을 당한 이들이 많았다는 것.
정도무림맹이 마교에게 항상 한풀 꺾이게 되는 이유 중 하나는, 정치질로 쫓아낸 이들이 원한을 품고 마교로 흘러들어갔기 때문이다.
당대의 마교 교주가 강하면 중원에 관심이 없고, 약하면 전 정파인들이 까밝힌 극비니 기밀이니 하는 걸 이용했다. 이러니 결과적으로 균형이 맞아 버리는 것이다.
어쨌든, 원래 이유야 뭐였든 간에 일단 입교한 후에는, 마공 특유의 급성장에 매혹되어 배우려 들게 된다.
물론 당연히, 그 과정에서는 부작용이 속출했다.
“…이상이다. 지금까지 일러 준 혈도와 각각의 경락의 순서를 잊지 말도록. 열혈신공은 마공의 기본이다.”
탁탁.
천마는 칠판 가득히 인체도와 혈도. 그리고 수많은 화살표를 그려 놓고 손을 털었다.
열혈신공. 정파인도 그나마 익힐 수 있는 종류의 마공.
방대한 양의 자료 때문에, 몇몇 학관생은 바쁘게 필기를 계속하고 있었고, 대부분은 그냥 이해만 하려는지, 필기를 포기하고 눈만 부릅뜨고 있었다.
“특히 운공할 때 절대 서두르지 마라. 아무리 가장 기초적인 마공이라지만, 너희들이 이제껏 쌓은 것은 정파의 내공. 하루 아침에 전환이 쉬울 수는 없다.”
정파의 내공을 지닌 채로 마공을 몸에 쌓으려다간, 십 중에 팔구는 주화입마에 빠져 피를 토한다.
어중간한 심법을 익히고 있으면, 아예 싸그리 날려 버리고, 차라리 처음부터 새로 마공을 익히는 게 쉬울 정도.
“조금 갑갑하겠지?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상승의 무예일수록 지름길 같은 건 없다.”
아무리 열혈신공이 정파의 내공과 동시에 쓸 수 있는 마공이라도, 빨라서 좋을 것이라곤 없다. 그러니 천마는 신공에 직접 들어가기보다 먼저 심(心)에 집중하기를 권했다.
“투쟁심. 피 튀기는 싸움. 혹 본인이 그런 걸 좋아하는 성향이라면 아주 좋다. 본 교의 신공과 상성이 맞는 거지.”
마교의 역사는 투쟁의 역사다. 살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던 황무지에서 탄생한 무공.
그러다 보니 마공은 기본적으로 폭력성이 짙다.
원래 성격이 차분하던 사람도 마공을 익히면 사나워지거나, 혹은 반대로 음침해지거나 한다.
이는 정파의 내공과 반대 방향이다. 불가의 소림이나 아미, 혹은 도가의 무당이나 화산 같은 정파의 내공은, 마음을 차분하게 다스리는 것에 주안을 두고 있으니까.
하지만 마공은 거칠고 격한 감정의 변화를 오히려 반긴다.
“분노. 원한. 그런 부(負)의 감정에 몰두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해. 뭐하면 시기나 질투도 좋다. 안 그래도 이 반에 서문영, 그리고 운소령을 보고 지글지글 질투심 태우는 녀석. 적지 않지?”
“…….”
“…….”
새 교수(?) 천마의 말에, 갑자기 한없이 조용해지는 2학년 3반.
마공의 위력과 우수성에 대해서는 그냥 그러려니 했다. 워낙 유명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고 하니, 그림의 떡을 보듯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중간중간 이렇게 나오는 심득(…….)에 관해서는 실로 적응이 안 되었다.
같은 반 우등생을 보고, 대놓고 시기 질투를 가지라니?
노력 부족을 깨닫고 향상심을 가지라는 말이 아니라? 아니, 교수가 저런 말을 해도 되나?
“좀 이상하지?”
피식.
물론 천마는, 그런 당황한 학생들을 보고 웃었다.
그도 태어날 때부터 교주인 게 아니었고, 밑바닥에서 이런저런 잡것들을 많이도 가르쳐 본 사람이다.
당연히, 이런 파격적인 교육에 당황하는 정파인들이 처음도 아니었다.
“이제껏 너희들이 배워 온 무공은, 그 근본이야 어쨌든 유가(儒家)의 사상에 크게 영향을 받은 거다.”
다른 것 다 떼어 놓고,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
사부를 임금(君)이나 아버지처럼 여기라는 한마디만 해도, 제자가 스승을 깎듯이 섬기라는 정신 교육이 되기 때문이다.
무가나 문파에서 유가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이념이다. 그러다 보니.
“공맹의 성선설(性善說). 하지만 책 좀 읽어 봤다면, 그와 반대로 성악설(性惡說)도 있다는 걸 알 것이다.”
성악설은 따지고 보면 정통 유가라고 보기에는 힘들다. 굳이 말하자면 법가(法家)다.
하지만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제 이익을 탐하니, 법과 규칙을 통해서 바르게 계도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유가의 ‘널리 사람을 계도한다’는 점에서 두루두루 하나로 묶인다.
“대장부. 군자의 도리……. 나쁘진 않지. 남의 것을 욕심내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며, 하늘을 우러러 행실에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 분명히 좋은 인간상이다.”
천마도 공맹의 도는 인정했다. 사람이라면 인정할 수밖에 없는 도리다.
수많은 유학자와 제자를 거느릴 만큼, 공맹의 도는 논리적으로 완벽했다.
그저 논리적으로만.
“그런데 솔직히 보통 사람들에게 과한 짐이야. 실제로 그걸 평생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여기 모인 대부분의 학생들은 굶주림이 어떤지, 가난이 얼마나 끔찍한 형벌인지 알지 못한다.
당장 하루 벌어 하루 먹는 평민 빈민들이, 남의 재물을 슬그머니 챙기려는 것을 무슨 수로 꾸짖을 수 있겠는가.
그건 그들이 잘못인 걸 몰라서 하는 것도, 몇 마디 성현의 깨달음을 듣고 고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조금만 나쁜 짓 하면, 내 자식이, 혹은 나이 든 부모가 고깃국을 먹을 수 있는데. 부당한 이익이니 자제한다?
“무리지. 사람은 선하게만 태어나지 않는다. 애초에 그랬다면, 저 공맹의 가르침도, 법가의 철저함도 굳이 강조할 일도 없었을 거야. 당연한 일이니까.”
마교는 특히나 밑바닥까지 몰린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도망쳐 온 곳이다. 가난한 자. 약한 자. 억울한 자들이 천신의 자애를 갈망하며 마지막 도피처로 삼는 곳.
하지만 그렇게 몰려든 빈자들이, 약한 자라고 해서 악한 자가 아니냐고 하면 글쎄.
약하기 때문에 더 악랄해질 수 있다. 천마신교의 사람들은 그걸 철저히 겪는다. 외부에서 자비를 간청하며 들어오는 새 ‘형제’들에게서.
도둑질. 모른 척. 거짓말. 심지어 살인 시도 등.
이제껏 당신들은 잘 먹고 잘살았으니 나를 도와야 하는 게 당연하다는 뻔뻔함까지.
사람이 얼마나 이기적인 존재이고, 가면을 벗은 민낯이 얼마나 추한지. 계도한 경험만 놓고 보자면, 유가나 불가의 어지간한 구빈원보다 마교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
“진짜 대장부. 군자는 많지 않다. 세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 필부(匹夫). 그럭저럭 욕심 있고 그럭저럭 착하기도 한 사람들. 그게 너희들. 평범한 사람들이지.”
“…….”
“……!”
술렁임은 없었다. 하지만 심한 충격으로 학생들은 신음하거나, 윽 하는 반발하는 소리를 내며 교단의 천마를 노려보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 이 교실에 모인 전원이, 다들 자기 집안에서는 한가락하는 유망주들이다. 어려서부터 인재라고, 천재라고 떠받들어졌던 도련님들이다.
그런데 면전에서 너희가 평범한 사람이라고 말하는데, 자존심이 자극받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리라.
“인상 쓰지 마. 부정하지 말고. 다들 생각 안 하려 드는데, 어차피 너희들 중 1등은 단 한 명이야.”
“…….”
“…….”
“그리고 성적 우수한 몇 명은 그 주변이고, 나머지는 그 언저리에도 가지 못한 사람이 대부분이야. 안 그래?”
학관생들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없는 말을 지어내는 것보다, 있는 사실로 후려 패는 게 더 아프다.
애초에 학관에서 성적 평가와 등수가 있는 이상, 한 반의 모두가 1등이 될 수는 없는 법.
우등생이 한둘이면, 보통이 태반이고, 나머지는 열등생의 딱지가 붙는다.
“그냥 인정해라. 너희가 생각하는 멋진 모습은, 그저 필부지용(匹夫之勇)이라는 걸. 현재의 자신을 인정하고 나야, 다음 성장으로 넘어갈 수 있다.”
“…….”
“…….”
“자기보다 잘난 놈을 보고 겁을 먹는 것. 화를 내는 것도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다들, 노장사상에서는 인간의 의지가 개입하는 것이 없이, 자연스러운 것이 제일이라고 하지 않나? 그렇다면 원초적인 분노, 시기심과 열등감이 굳이 나쁘다고 할 이유도 없고… 아.”
땡땡땡땡!
말을 마무리하는 가운데 종이 쳤다. 천마는 그에 바로 책자와 자재를 챙겨 들었다.
“그럼. 다음 시간에.”
“교수님께……! 어…….”
드르륵. 쿵.
수업이 끝나자마자 말 그대로 칼퇴. 인사도 받지 않고 나가는 천마 때문에, 반장인 방윤은 버벅거렸다.
“…….”
“…….”
“와, 뭐야. 뭐.”
푸후---우.
그러고는 잠시 정적이 있었다가, 누군가의 황당해하는 말에 일제히 한숨이 쏟아져 나왔다.
“이거 상황 어찌 되는 거냐……. 누가 정리 좀?”
“새 교수가 왔는데 그 교수가 엊그제까지 동급생이던 사람이고, 심지어 은근히 따돌리던 놈인데, 그놈이 검왕 제운비도 찍어 먹을 사람이었다는 거?”
“…….”
“아니면 갑자기 학관이 미쳐 돌아가는지, 리그웨더 학과장님이 직접 옛 마교의 수장을 불러서 마공을 익히라고 하시고, 그 마공이라는 게 입문부터 괴이한 거?”
“…너어는 진짜. 쓸데없이 유능한 새끼다.”
“해 줘도 뭐라고 하냐.”
푸후우-!
또 한 번 긴 한숨이 터져 나왔다. 사실, 이렇게 보니 다들 충격을 먹지 않는 게 이상할 지경이다.
그간 모습이 보이지 않던 이한-천마가 갑자기 마공학 교수가 되어 나타난 것도 당황스럽지만, 그 전에 학과장. 또 그 전에는 뇌천벽, 천무학관의 스타 총출동.
하루에 겪기에는 너무 많은 일들이었다.
“소진, 소진아.”
“아, 맞아! 소진!”
우르르르!
누군가를 시작으로 학생들이 몰려왔다. 그때까지 분주하게 필기를 이어 가던 소진은, 잡아먹을 듯 눈을 강렬하게 빛내는 같은 반 학생들 때문에 기겁했다.
“왜, 왜, 왜들 그래!”
“너 필기 다 했지? 나는 내용이 너무 어려워서…….”
“나도! 한 부만 부탁해. 아니, 아니다. 그냥 잠깐 보여 주기만 하면 내가 써서…….”
“야! 소진! 내가 먼저야!”
“다들 동작 그만!”
콰아앙! 피피핏! 퍼퍽!
책상 두들겨 부수는 소리와 함께, 소름이 오싹 돋을 암기의 비가 사방으로 튀었다.
머리를, 혹은 등을 사정없이 후려갈기는 나무토막들.
쉭!
그중에서 몇몇은 학관생들의 눈앞을 바로 스치고 지나갔다. 창졸간에 눈이 멀 뻔한 학관생이 고함쳤다.
“와! 씨! 당무련! 너 뭐야! 미쳤어?”
“미치긴 누가 미쳐? 니들 지금 제정신이야? 어?!”
학관생 간의 폭력은 절대 금물. 하지만 당무련은 분노로 머리가 뒤집힌 가운데서도 냉정했다.
부순 책상 파편을 암기 삼아 사용하면서도 급소는 피해 줬으니까. 그럼에도.
“니들이 어?! 언제! 소진한테 잘해 줬다고! 어?! 염치가 없어도 정도가 있지, 이딴 식으로 굴 거야?!”
“…….”
“…….”
“필기가 필요하면 서문영이나 운소령한테 달려들어! 센 애들한테는 꼼짝도 못 하면서, 만만한 애한테는 그따위로 굴고. 니들이 사람 맞아? 빈대도 낯짝이 있다. 이것들아!”
“아니, 그…….”
“끄응…….”
학관생들은 침묵했다. 당무련의 말이 사실이었으니까.
그리고 따지고 보면 당무련 역시 이제까지 소진에게 잘 대해 주던 사람은 아니었으나, 지금 이 자리에서 과거의 그걸 캐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뭐. 왜. 뭐.”
“아, 아니… 그냥…….”
“잘못했어. 미안해. 그래도…….”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알 수밖에 없다. 어리바리하면서도 당무련에게 뭐라 하지 않는 소진. 그리고 그를 등 뒤에 숨긴 채 새끼를 지키는 듯한 당무련의 모습은.
“줄서! 줄! 필기가 필요하면 순서를 기다려! 필사로 받고 싶은 사람은 금자 열 냥. 그냥 보고 베낄 사람은 금자 한 냥! 외상 같은 건 없고 바로 현찰이야!”
“아니, 그걸 네가 왜…….”
“뭐? 불만 있어? 그럼 너 기각.”
어찌 보아도 대가 약한 남자를 지키는 여자. 본인은 인식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당무련의 태도는 명백하게.
“이것들이 어디서! 눈 안 깔아?”
자기 남자를 지키는 당문 여식의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