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294화 (295/310)

294화. 천마학관(天魔學館) (6)

다음 날.

1교시를 막 시작하기 직전, 갑자기 조교가 교실 문을 박차고 들어와 외쳤다.

“수업 변경! 다들 환복하고 체육관으로! 실내 체력 단련이다!”

“엥?”

“어……?”

갑작스러운 통보에 2학년 3반은 어둑어둑한 창밖을 보며 황당해했다.

“비… 오는데?”

솨아아아아.

고작 며칠 맑았던 하늘이, 다시금 시커멓게 변해 비를 뿌리고 있었다. 이런 험한 날씨에 체력 단련이라…….

뭐, 못 할 건 아니다. 천무학관의 교수들 중에서는 훈련을 실전처럼 하겠다며, 일부러 우중전(雨中戰)을 상정하고 폭우 속에서 모의 전투를 벌이는 경우도 가끔 있다.

학관은 기본적으로 병사이자 엘리트 지휘관을 양성하는 곳이니까. 더군다나 실전- 대몬스터 전투에서는 일부러 악천후를 노려서 적을 소탕하는 경우도 있다.

물에 약한 화염 속성의 몬스터라거나, 비를 맞으면 체온이 떨어지는 파충류 계열 몬스터의 경우, 쏟아지는 폭우는 움직임을 느리게 하고, 활동에 장애를 일으킨다.

유리한 전투를 이어 갈 수 있으니, 반드시 경험해서 숙달되어야 하는 환경이다. 혹은 반대로, 물에 강한 몬스터들을 상대로 할 때, 급히 피신하거나 퇴각하는 경험 또한.

“아… 오늘 좀 간만에 구르겠네…….”

“그러게. 눈 호강도 좀 하고…….”

흐흐흐흐.

남학생 몇몇이 소리 죽여 음충맞은 웃음을 흘렸다.

비가 오면 당연히 옷이 젖는다. 그럼? 여학생들은 젖은 옷이 몸에 달라붙어 고스란히 몸매가 드러나는 것이다.

물론, 딴에는 안 들리게 하겠다고 한 말이지만, 그런 작태는 여학생들의 눈과 귀에 고스란히 들어갔다.

“어우, 징그러워… 더러워…….”

“다들 속옷 조심해. 비치지 않게.”

잠시간 여학생과 남학생. 성별 교대로 교실을 비우며, 2학년 3반은 전원이 체육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러고는.

“웩!”

“으으… 이게 뭐야……?”

너 나 할 것 없이 인상을 썼다. 입은 체육복에서 고릿고릿한 발 냄새 같은 것이 났기 때문이다.

개중 몇몇은 가히 걸레 썩은 냄새까지 풍겼다. 좀 전까지 있었던 엿보려는 자들과 가리려는 이들의 신경전? 그런 생각은 악취를 맡자마자 깡그리 날아가 버렸다.

“저기, 조교님? 저희 체육복이… 왜 이렇죠?”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너희가 지난번에 입은 거잖아?”

“저희가 지난번에… 아차!”

학관생 하나가 손을 들어 묻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 체육 수업을 받은 게… 근 1달 가까이 전이라는 게 생각난 것이다.

2학년 3반은 얼마 전부터 강의 스케줄이 여러모로 꼬였다. 일단 필드 레이드. 실력 평가이자 대규모 실전을 했다 보니, 체육복이 아니라 개개인의 최상급 장비를 썼고.

다음으로는 학교 측의 배려로, 혹여 첫 실전 때문에 돌발적인 PTSD를 일으킬지 몰라, 1주 이상 요양 아닌 요양-자습을 해 왔다.

그리고 그렇게 근 한 달 가까운 시간 동안, 지난번에 입었던 체육복은, 관물대에 처박혀 잘 발효(?)된 것이다.

…중간중간 비 내리는 날들의 습기를 고스란히 먹었던 건 어디까지나 덤이고.

“환복 다 했으면 어서 가자. 실내 체육관이다.”

“…에엑? 실내?”

“체육관요? 실내에서 한다고요?”

그리고 뒤이은 조교의 말에 다들 경악했다.

“뭘 놀래? 처음부터 말했잖아. 체육관으로. 실내 체력 단련이라고.”

“그, 그럼…….”

“아니, 진짜야? 실화냐고. 이거.”

와글와글!

학관생들은 불평으로 떠들어 댔다.

차라리 밖에서 비를 맞으며 진흙탕을 뒹구는 게 낫지, 발 냄새, 걸레 냄새 나는 체육복을 입고, 환기도 안 되는 실내 체육관에서 체력 단련?

상상만으로도 토가 쏠리는지 몇몇의 얼굴이 굳어졌다. 특히 평소에 깔끔을 떨었던 학관생들, 주로 여학생들은 악취 나는 체육복에 안색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저기… 조교님, 실내에서 체력 단련이요? 진짜요?”

“진짜 아니면? 뭐? 내가 이런 걸로 장난하게?”

물었더니 으르릉! 질문을 받은 조교가 짜증 잔뜩 난 얼굴로 수첩을 펼쳤다. 그 역시 악취의 구덩이를 예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습해진 훈련복이 악취를 풍기는 건 당연하다. 입은 학관생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들을 가르치는 교수나 교두들 또한 구리구리한 냄새를 맡아야 한다.

팔락!

“불참할 놈은 이름 말해. 바로 빼 줄 테니까.”

“아니… 그건 아니고요.”

“이. 이동! 이동하겠습니다!”

투덜투덜.

조교가 저리 나오면 학생이 할 대답은 하나밖에 없다.

학관생들은 다들 자기 옷에서, 그리고 다른 사람 옷에서 풍기는 걸레 냄새에 잔뜩 불쾌해하며 체육관으로 이동했다.

“어우! 냄새! 어우!”

“으으… 최악이야…….”

“야, 우리 반 한명후 교수님한테 뭐 찍혔나? 아는 사람?”

“글쎄다… 분명 평균 성적은 좋은 편인데. 엘리트 파티까지 있었으니.”

이동하는 내내, 2학년 3반은 불안하게 중얼거렸다.

왜 하필 비 오는 날에, 체육관에서 실내 체력 단련인가. 그것도 이런 냄새 쩌는 체육복을 입고?

이건… 암만 생각해 봐도 그거다. 일부러 고생 좀 해 보라고 반 전체 기합을 시키는 거다. 그렇게 불안해하던 학관생들의 예감은.

“여, 어서들 와. 이번 수업은 2시간 연강이다.”

“…….”

“…….”

그대로 들어맞았다.

체육관에 먼저 와 있는 교수, 이한-천마를 보는 순간.

“아, 씨… X 됐네. 이번 시간……..”

누군가가 들리지 않을 만큼 작게 중얼거렸고.

끄덕끄덕. 끄으응…….

모두가 한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천마의 뒤에 산처럼 쌓인 쇳덩어리들을 보고.

“하나에 앉아! 둘에 일어서! 하나. 둘. 하나. 둘. 기합 맞춰서!”

“하나! 후욱! 둘! 흐읍!”

“하나! 후욱! 둘! 흐읍!”

쇠질. 누가 그렇게 불렀는지는 모른다. 어쨌든 학관생들은 속으로 욕질을 하고 있었다.

긴 철봉에 두꺼운 철 원판을 꿰어 놓은 쇳덩이는 작게는 열 근. 많게는 백 근에 달하는 무게였다. 그걸 어깨에 얹고 앉았다 일어서기를 수십 회!

“하체로 힘써! 하체로! 허벅지로! 허리에 힘 줘서 올리다간 척추 나간다! 허리 병신 되고 싶냐!”

서역 말로 스쿼트. 무거운 짐을 지고 앉았다 일어서는 동작. 처음에는 조금 생소하긴 했지만, 금방 적응했다. 애초에 중원의 무예에도 마보(馬步), 혹은 궁보(弓步)라 불리우는 하체 단련법이 있었으니까.

“거기 옥애! 양미! 내공 쓰지 말라고 했지!”

“으아아…….”

“으흑… 끅…….”

문제는 내공. 힘이 들어 반사적으로 내공을 끌어올리면, 어떻게 알았는지 바로 호통이 떨어진다.

지적되는 이들은 주로 여학생들. 상대적으로 남학생에 비해 근육이 적고, 필요한 힘을 내공으로 대체하던 이들.

나름의 자랑이었던 내공을 쓰지 않고, 순수 근력만으로 무거운 쇠를 진 채 힘을 쓰다 보니 눈물이 쏙 빠질 지경이었다.

‘대체… 이게 뭐라고…….’

숨이 가쁘고 눈앞이 흐릿했다.

대체 왜? 나는 누구? 여기는 어디?

밑도 끝도 없이 왜 이런 외공 단련을 해야 하는지, 학생들은 회의감 + 자괴감에 인상을 벅벅 긁고 있었다.

묘한 것은, 제일 무겁게 이백 근을 진 서문영부터, 가장 가벼운 소진(빈 봉)까지, 짊어진 무게가 다름에도 하나같이 저승문에 한 발 걸친 표정이라는 것이다.

허억. 허억. 허억.

“세 번 더! 세 번! 이것도 못 버티나!”

비척비척대며 막 누군가가 쓰러지려던 순간, 천마의 일갈이 정신을 바짝 차리게 했다.

앞으로 셋. 딱 셋만 더! 그렇게 끙끙대며 힘을 쓰자.

삐이익! 삐익!

“휴식! 5분간 휴식!”

“어우…….”

천마가 호각을 불며 외쳤다. 동시에 여기저기서 앓는 듯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와르릉. 쿠르릉. 챙강. 챙!

먼저 수십 근짜리, 심하면 백 근을 넘는 쇳덩어리들이 쏟아졌다. 다음으로 허벅지를 움켜쥐며 학생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으으… 아아…….”

“타들어 가는 거 같애… 으윽… 내 다리…….”

후들후들. 부들부들.

혹사한 다리 근육에서 불이라도 난 듯했다. 기교나 요령은 일절 없이 순수하게 근육만 혹사하는 훈련.

“다들 쉬어. 쉬면서 말을 들어라. 뭐, 듣고 싶지 않으면 굳이 안 들어도 돼.”

“…….”

“…….”

다들 대답 없이 숨만 겨우 쉬었다. 천마가 무슨 말을 하든, 한 귀로 들어가 한 귀로 나올 터였다.

분명히, 그럴 터였다.

“너희들은 약하다! 터무니없이 약하다! 몸을 쓴 지 고작 2각(30분) 만에 나가떨어지다니! 부끄러운 줄 알아라!”

부릅! 번뜩!

분명히 초점이 나갔던 학생들의 눈이, 사납게 변해 천마를 향했다.

‘아니, 씨… 이거 진짜…….’

‘확 그냥 들이받아? 아주?’

내공 쓰지 않고 순수하게 근력으로만 몸을 혹사하기.

사실 이런 교육을 처음 받아 보는 건 아니다.

당장 천무학관 1학년 때부터 그런 수업이 있었고, 학관생들 중에는 입교하기 전부터 이미 가문에서 기초를 닦을 때 그런 사전 훈련을 여러 번 받곤 했다.

하지만 오늘의 체력 단련은 맹세코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게 힘이 들었다.

바로 냄새 때문에.

내공 없이 근력만으로 무거운 물건을 드니, 체육복이 땀에 흠뻑 젖었다. 덕분에 안 그래도 퀴퀴한 냄새를 풍기던 옷이, 더더욱 지독한 냄새를 풍겼다.

숨 쉴 때마다 역한 악취가 들어오니, 저도 모르게 호흡이 얕아졌고, 제대로 힘을 쓸 수 없었던 것이다.

“아니! 틀렸다! 냄새 때문이 아니다! 너희들의 어리광 때문이다!”

“…….”

“……?”

사납게 뜨였던 학관생들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 새끼가 사람 속을 읽나? 아니, 그보다 어리광이라니? 살짝 의문이 섞인 눈초리가 몇 있었고, 천마는 그에 자기 자신을 척 하고 가리켰다.

“이런 단련! 해 본 적 있었겠지. 마보나 궁보 연습을! 한 번도 하지 않았을 리는 없을 거다. 기본 중의 기본이니까! 하지만 오늘따라 너희가 힘든 이유는? 바로 나 때문이다!”

“…….”

“…….”

이건 대체 뭔 개소리야? 네가 시켰으니까 너 때문이 맞지. 당연한 걸 왜 말하는 거지?

그렇게 서문영, 운소령부터 소진까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천마는 다시 한번 자신을 가리켰다.

“내가! 너희들과! 함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전을 떠올려 봐라! 그때 너희들의 앞에는 함께하는 교수가 있었을 것이다!”

“…어.”

“음…….”

학관생들의 눈이 조금 커졌다.

천마의 말대로였다. 천무학관의 1학년 수업 때는, 체육학과 교수나 조교가 함께 마보를 했다. 학관에 입교하게 전에는, 하늘처럼 무섭던 가주님이나 스승님이 손수 자세를 취해 주셨다.

반면 천마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턱짓으로 부린다. 심지어 얼마 전까지 자신과 같은 2학년이었던 몸.

시범도 보여 주지 않고, 힘든 걸 함께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저도 모르게 반발하고, 힘 쓰기가 싫었던 것이다.

“내가 왜 너희와 함께 쇠를 들어야 하나! 내가 지금 쇠를 들면? 너희보다 더 잘하겠지. 그건 당연하다! 너무도 당연하다! 그런데 왜 그런 모습을 보여야 하지? 고작 너희들의 비위를 맞춰 주자고? 어리광 부리지 마라!”

“…….”

“…….”

“그게 너희들의 나약함이다! 정신적인 나약함이다! 교관이 눈앞에 없으면 의욕도 내지 못하는 놈들을! 나약하다는 말 말고! 뭐라고 불러야 되나!”

침음이 흘렀다. 학관생들 중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침묵은 곧 긍정, 천마의 지적질은 거칠었지만, 동시에 자신들의 치부를 강제로 보게 만드는 것이었다. 천마를 향했던 원망의 눈길이 우르르 흩어졌다.

“너희들은 학생이다! 배우러 온 사람이다! 교수의 태도가 무슨 상관이냐! 의욕까지 떠먹여 줘야 하는 애새끼들이라면! 그냥 짐 싸고 집으로 돌아가!”

힘들고 고된 외공 수련을, 교수나 교관이 앞에서 시범 보일 필요는 없다. 전혀 없다. 단련도 되지 않으니까.

그럼에도 학생들 앞에서 먼저 본을 보이는 이유는, 그래야 ‘할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거기까지 고려해 주는 교수들이 천무학관의 교수들이었다.

하지만 천마는 달랐다.

“교수가 함께하지 않고, 입만으로 가르쳐서 별로다? 웃기지 말라지! 그런 말 하는 놈은! 교수가 천 근을 들어 올리는 걸 보고, ‘저 사람은 어차피 나랑 다르다’는 핑계를 댈 녀석이다! 주변 핑계! 교수 핑계! 입만 열면 남 탓으로 돌리는 놈들!”

“…….”

“…….”

“의욕은 스스로 만드는 거다! 탐욕스럽게! 경쟁자를 잡아먹고! 최정상에 오를 생각으로! 여자를! 황금을! 명예를! 그에 필요한 것이 강함이다! 의욕이 없으면 이 자리에서 때려 치워! 나는 그런 놈까지 끌고 가지 않는다! 휴식 끝! 다들 일어서!”

으윽. 끄윽.

정신적으로 한참을 후드려 맞은 기분이었다. 학관생들은 부슬부슬 후달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서려다가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려고 끙끙거렸다.

“허억……. 허억……. 허억…….”

그리고 그 학관생들 가운데서 가장 먼저 일어선 것은 놀랍게도.

소진이었다.

“…하.”

천마는 후들후들, 가장 가벼운 무게를 지었음에도 제일 힘들어하는 녀석. 육체적인 단련이 거의 불가능한, 삼음절맥을 보고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물었다.

“힘들지? 더 할 수 있겠나?”

“하겠습느드아악!!!”

당연히, 이를 악문 대답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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