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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 리치왕의 무림을 부수다-309화 (310/310)

309화. 마공과 정공 (6)

‘슬슬 시작이군.’

천마는 그런 기색을 읽고 있었다. 그가 오운풍에게 마음을 가다듬을 시간을 준 데는 이유가 있었다.

무림맹주.

분명히 싸워 보고 싶은 상대다. 기왕에 그가 만전의 대비를 갖추고 온다면, 싸움은 더욱 즐거울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쉽게 제압할 수 있는 상대를 일부러 어렵게 만드는 건 천마의 취미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하나라도 더, 상대의 경지를 미리 보기 위해서다.

현경.

그것도 막바지에 다다른 현경.

싸우면 무조건 본인이 이긴다고 생각하는 천마였지만, 그렇다고 상대가 뛰어난 점이 하나도 없을 리는 없었다.

분명 여유를 준 만큼, 한두 가지 정도는 그도 놀랄 만한 수를 가져오리라.

스스스스스.

‘허공에 떠올랐네? 완전히 빠져드는데?’

거리는 3장 하고도 조금 더.

천마와 무림맹주.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은 것은 두터운 차양막 한 장.

물론 이 정도는 간단하게 간파할 수 있다. 무림맹주 역시 그 정도는 충분히 알고 있을 터.

하지만 정작 그는 그러든 말든 개의치 않는다는 태도였다. 아마 알고 본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는, 정파 무인 특유의 당당한 자신감 때문일 터.

휘이이이이…….

맹주의 운공이 깊어지면서, 희미한 기류가 소용돌이치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저 희미할 뿐 강맹하지 않다.

그래서 천마는 더욱 감탄했다.

‘내기와 외기의 수발이 너무 자연스럽다. 마치… 아무 변화가 없는 것처럼.’

정파의 무공심법은 각 문파마다 추구하는 방향이 다르다. 천마가 최근에 본 현경의 유장위. 그는 화산의 내공을 이은 것인지, 매화의 기상을 떠오르게 했다.

차가운 바람과 눈 속에서도 피어나는, 고고한 매화.

반면 오운풍은 가벼운 한 줄기 바람이었다.

부는 듯 안 부는 듯, 가볍고 표횰한 바람.

이는 아마도 태극, 무당 특유의 자연에 대한 이해 때문일 것이다. 무당은 도가의 다른 어느 문파보다,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움을 제일로 치니까.

그렇기에 천마가 내린 판단은.

‘최상급. 심기체. 모두 완벽하다.’

상대가 이제껏 싸워 본 무인 중에서, 가장 완성된 존재라는 것.

전생에도 이번 생에도,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겨 온 천마였지만, 그건 상대가 강해서가 아니었다. 자신이 준비가 되지 않았을 뿐.

펄럭. 푸르르륵.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장막이 스스로 걷히고 모습을 드러낸 무림맹주 오운풍. 그는 정말 강했다. 정확히는 틈이나 약점이 보이지 않는 존재였다.

“준비되었소. 오래 기다리시게 했구려.”

살짝 먼 곳을 보는 듯, 반개한 눈의 무림맹주가 입을 열었다.

그 목소리에는 미약하게, 산울림 같은 우렁우렁함이 깃들어 있었다.

“와, 씨… 진짜 태극검이네. 이럴 줄 알고 있었는데…….”

천마는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상대가 모든 힘을 쓸 준비를 한다는 건, 쓸 수 있는 모든 방향을 하나하나 열어 젖힌다는 것.

그러니 가만히 앉아서 적수의 패를 미리 읽고, 이쪽도 그에 대비할 수 있다. 분명 그랬었는데…….

이건 뭐, 그런 수작질이 의미가 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휘르르륵!

왼손으로 검결지를 맺으며 오른손에 검을 든 무림맹주.

그가 자세를 잡은 순간 천마는 느낄 수 있었다.

‘완벽.’

어느 각도에서 어떤 공격을 하더라도, 저건 못 뚫는다고.

전생에서 치를 떨게 만들었던 무당의 태극검. 몇 년이고 악몽을 꾸게 만들었던 그 검이, 눈앞에 다시 나타났다.

“오지 않으시오?”

“하하. 젠장…….”

맹주의 채근에 천마는 투덜거리며 웃었다.

암만 봐도 엄두가 나지 않아 자신도 모르게 망설인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맹주의 검술이 얼마나 완숙한지 알 수 있었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야.’

그런 마교의 검술에 극상성으로 작용하는 태극검.

완벽한 방어야말로 그 자체로 최선의 공격이라는, 자신과 정반대의 대척점에 자리한 검술이다.

“그래. 그러니까 붙어 보고 싶었다고.”

스승.

천마는 검을 뽑아 들었다.

상성은 최악. 방어는 완벽. 상대는 아마도 무당파가 배출한 사상 최강의 태극검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기에 시금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천마가 이제까지 닦아 온 마검이, 얼마나 완성되었는지 똑똑히 확인시켜 줄.

스윽.

첫 시작은 가볍게, 하지만 여차하면 바로 목을 딸 수 있는 찌르기였다.

“독사출동.”

독사가 뱀 굴에서 머리를 들이밀 듯, 준비 동작 없이 바로 찔러 가는 의외의 일격.

휘르릉. 카강!

하지만 이름이 무색하게, 간단하게 빗겨 쳐진다.

오운풍의 태극검이 휘둘러진 순간, 천마의 찌르기는 천정으로 치솟았고, 동시에 가느다란 바람이 불어왔다.

“아놔. 이놈의 것!”

피빗!

천마는 이형환위로 바람을 피해 냈다.

예전에 경험한 검로다. 그러고도 두 걸음이나 더 물러선 천마.

파스슥.

청석으로 된 벽에, 검풍 하나가 부딪히며 사그러진다.

태극검이 추구하는 방향은 공수 일체.

수비가 바로 공격으로 이어지는 정신 나간 검법이다. 공격하는 동시에, 반격을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는 것.

“그래, 이 정도는 가볍지? 그럼…….”

구우욱.

천마는 묵직하게, 이번에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 베는 검로를 선택했다.

가볍고 빠른 찌르기는, 태극검 특유의 회오리에 너무 쉽게 휘둘려 버린다. 그러므로.

우우웅.

“태산압정.”

느리지만 그렇다고 피할 수 없는, 산이 무너져 쏟아지는 기세를 검에 담았다.

꿈틀.

무림맹주의 눈썹이 치솟더니, 양손을 빠르게 휘두르며 더 강맹한 회오리를 만들어 냈다. 그러자.

구국. 부부부북.

두터운 이불을 통으로 찢는 듯한 소음. 그와 함께 천마의 검기가 천천히 소멸되었다.

“세상에나. 그걸 씹어먹어? 진짜 말도 안 되네. 아주.”

천마가 혀를 내둘렀다.

방금의 일격은 만근의 거력을 담은 중검의 수법이었다. 하나 무당의 태극검은, 일검에 수십 회의 검초를 섞어 그 위력을 상쇄한 것이다.

마치 수십 년에 걸쳐 바위를 깎아먹는 바람처럼.

“좋아. 그럼.”

처억.

천마는 검을 잡은 손을 바꿔 역수로 잡았다.

역시 태극검. 가벼운 건 튕겨 나가고, 무거운 건 흩어 버린다. 그렇다면.

일변에 만변을 담는 환검술은 어떨까.

“환마혈겸.”

파바바밧.

본래는 거대한 낫으로 펼치는 무예가 검으로 펼쳐졌다. 사방으로 살기를 품은 검기가 쏘아져 나가고, 그중 몇몇은 휘우듬하게 방향을 틀어 무림맹주의 뒤통수를 노렸다.

“천마군림보.”

두두두둑.

그리고 동시에 열 명으로 늘어나는 천마의 신형.

하나하나가 허상이며 동시에 실체인, 이제껏 필승이었던 천마의 수다. 두 수법이 결합되자, 가뜩이나 변환이 많은 환검이 더욱 늘어나, 허공에 무수한 칼 그림자를 쏟아냈다.

“…천지환우!”

휘르륵!

과연, 이번에는 무림맹주도 가벼이 볼 수 없었는지, 장포에 진기를 가득 불어넣으며 전신을 방어했다.

타다당! 카카카캉!

분명 옷 소매와 검이 부딪히는데 쇳소리가 났다.

수천에 가까운 검기 중, 진짜 공격은 고작 스물.

타다다다. 파바박!

하나 맞부딪히는 순간 어느 것은 사라지고 어느 것은 충격이 남는, 진위를 파악할 수 없는 환검의 연속이다.

소나기 같은 맹공에, 무림맹주는 굳은 얼굴로 세 걸음이나 물러났다.

“으음…….”

궁극에 다다른 그의 태극검도, 이번만은 반격을 엄두도 못 내고 방어에만 힘을 쏟았다.

그러고도 여력이 남아 삼 보를 물러섰으니, 이는 명백히 그가 밀린다는 것을 의미했다.

“삼초를 양보했으니, 이번에는 본도가 가리다.”

휘릭! 척.

오른손의 검은 땅으로, 왼손의 검결지는 하늘로.

“오. 일부러 봐줬다는 식으로 말하는데…….”

“만변무변.”

우웅.

천마의 말을 아랑곳하지 않고 검을 내뻗는 무림맹주.

후우욱!

그와 함께 검기도, 검풍도, 그렇다고 강기도 아닌 공세가 들어왔다.

공세를 마주 보는 천마는 소름이 쫙 끼쳤다. 반구형으로 소용돌이치는 뚜렷한 태극. 그리고 거기 당했던 기억 때문에.

“와, 씨. 이거야. 이거! 진짜 엿 같았던 그거!”

찌르기가 일 점에 집중되고, 베기가 한 가닥 날카로운 선으로 그어진다면, 이건 면으로 들이닥치는 흐름.

피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하나, 그걸 알면서도 천마는 물러서지 않았다.

카가각. 파바바박!

“크으!”

버텼다. 정면으로. 만근 혹은 그 이상의 압력이 손목에 걸린다.

드드득! 드드드득!

마치 태풍과도 같이, 부딪히는 경로의 모든 것을 꺾어 버리는 회오리. 그걸 천마는 받아 막아 냈다.

만변무변. 태극검의 몇 안 되는 공세 위주의 검. 전생에는 피하기만 했을 뿐 막을 엄두를 못 냈던 무당의 파검기를.

“…그 검. 예사 물건이 아니구료. 어떤 이름의 신병이기인지?”

맹주도 뜻밖인지 공세를 멈추고 물어 왔다.

“뭐, 별로 대단한 건 아니고.”

주르륵.

천마의 손아귀가 찢어진 건지 축축해졌다.

“듀랜달인가 두랑달인가 하는, 롤랑이라는 사령 기사가 주고 간 검이야.”

만변무변은 태극검의 필살이라 할 수 있는 초식.

저 부드럽고 유순하던 검술에, 어디 저런 살초가 있었는가 싶을 정도로, 막아서는 모든 것을 꺾어 버린다.

당장 전생에 천마가 쓰던 검도 저 무식한 회오리에 두동강이 나 버렸다.

하나 듀랜달. 타락한 성검이라는 이명의 투박한 한 손 반 검은 부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쥐고 있던 천마의 손아귀가 찢어졌을 뿐.

“대단한 검이요. 그와 친분이 있으셨소?”

“친분? 음… 성질머리는 마음에 들었지.”

사실, 천마도 어느 정도는 이놈을 믿었기에 맞설 생각이 들었다.

듀랜달은 다른 신병이기들처럼, 화염을 내뿜는다거나, 전격을 가한다든가 하는 이능은 없다. 날도 예리하지 않고, 두텁고 무거워 모양까지 투박한 검.

하지만 부러지지 않는다.

그 어떤 충격을 받아도 결코 부러지지 않는 검. 그 하나가 어떤 신검명검보다 천마의 마음에 쏙 들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이 무식한 흑색 일변의 검은, 태극검의 파검기를 정통으로 맞고도 버틴 것이다.

“그나저나 피 봤네. 이거 어렵겠는데?”

찌익.

천마는 옷 소매를 찢어 손아귀의 상처를 싸매며 투덜거렸다.

전생에는 입어 본 적 없는 한심한 부상. 이한의 몸으로는 단련이 부족했던 걸까?

아니, 아니다. 저런 공격에도 대비하는 신체 단련이라면, 차라리 금강불괴가 되는 게 오히려 빠를 거다.

“하는 말씀과는 다르게 아직 여유가 있으시구려.”

“내가? 아닌데?”

“본도가 알기로 마검의 위력은 화염, 혹은 폭발에서 진가가 드러난다 하더이다. 하나 교주께서는 그런 절기를 쓰지 않으시니 말이오.”

“…….”

오운풍의 지적에 천마는 입을 다물었다.

사실, 그의 말처럼 천마신교 전통의 마공은 주로 화염이나, 혹은 화염이 일으키는 폭발을 쓰는 초식이 많았다.

이는 천마신교의 기원이 배화교. 원래 불을 숭상하던 종교였기 때문이다. 마치 무당파가 태극. 음양의 조화와 합일을 기존 사상으로 삼는 것처럼,

파괴. 그리고 탄생. 이는 불의 양면적인 속성이다.

산불은 끔찍한 자연재해다. 화염이 집어삼킨 숲과 산은 삽시간에 새카만 잿더미만 남는다.

하지만 동시에 그 잿더미는, 생명이 싹트기에 좋은 풍요로운 땅이 된다. 마교에 유독 화염에 치중된 마공이 많은 까닭은 이런 배경 때문이다.

“야, 말은 바로 하자. 나더러 여유 부린다는데…….”

천마는 씨익 웃었다. 사실 그도 멸화공, 업화공 등 불을 쓰는 무공이 장기였다.

하지만 이곳, 맹주의 개인 지하실에서 그런 걸 쓴다면? 당장 사방이 불에 휩싸이고 폭발하고, 맹의 장로들이 몰려오고, 기껏 찾아온 대망의 대결은 거기서 끝.

그건 천마 스스로가 자신이 밀린다고 인정하는 격이다. 그 정도의 힘 조절도 못 한다는 이야기 아닌가.

“그러는 너야말로 허리에 그 검. 안 써? 그거 진짜 신병이기 같은데?”

그래서 괜히 지적했다. 무림맹주가 아직 뽑지 않은 검.

척 봐도 대단한 존재감을 자랑하는, 검집부터 용과 범이 새겨진 화려한 검을.

그런데.

“보는 눈이 있으시구려. 위 무제의 의천검이요.”

“…의천검? 그… 조조의?”

그렇다고 전설로나 내려오던, 진짜 신병이기일 줄은 몰랐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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