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드디어 돌아왔다.”
한 청년이 분식집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특이한 것은 군복 차림이라는 것. 또 양어깨에 노란색 다이아가 박혀 있었다.
준위.
특수 직종이 아니라면 청년의 나이에 달기 어려운 계급이었다. 이등병부터 군복무를 시작했다는 걸 감안하면 더욱더 의외인 것이다.
“크흐, 정말 길었지. 암, 무척 길었어.”
간간이 휴가를 나오기는 했지만 20대의 절반 이상을 군대에서 보냈다.
이등병, 일병, 상병, 병장.
그렇게 유현성이 병장을 달았을 즈음, 대대장의 꼬임에 넘어가 ‘전시하사 지원서’에 서명을 하고 말았다.
그게 뭐냐면, 일단 전쟁이 나면 예비군을 소집한다.
평범한 예비군 병장은 그 계급 그대로 군대에 들어오는데, 특수 병과의 경우 전쟁 나면 자동으로 하사로 진급하는 거였다.
즉, 전쟁이 나지 않으면 아무 의미 없는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있는 듯 없는 듯, 아니, 담당자조차 그런 게 있는가 싶을 정도로 유명무실한 제도인 것이다.
하지만 우수 병사의 경우 종종 그런 거에 서명하라고 시키기도 했다.
하필이면 유현성이 서명하고 한 달도 되지 않았을 때, X발! 게이트가 터졌다.
결국 자동으로 하사 진급.
거기에 특수 임무에 투여, 특진에 특진을 거듭해 중사, 상사를 달고, 마침내 준위까지 달았다.
복잡한 속사정이 있기는 했지만.
물론 스스로 지원한 것이 크기는 했다.
당시는 그런 시대였고,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자그마치 7년이었다.
20살에 입대해 26살에 전역하게 된 거다.
“이제 그쪽으로는 오줌도 안 싼다고.”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유현성은 고개를 마구 저었다.
그런 뒤 정면을 쳐다봤다.
분식집은 무척이나 오래된 듯 간판부터가 달랐다.
원래는 파란색이었을 것이 분명한데, 햇볕에 오래 노출 되어서인지 허연색 패인트를 덧바른 것 같았다. 거기에 ‘분식’ 글자 밑에 부분이 떨어져 나가 ‘부식’으로 읽힐 정도였다.
어차피 단골 장사라 큰 의미는 없었지만 흉물스러운 것도 사실이긴 했다.
[행복 분식]
아니, 이제는 받침 일부가 날아가 [해복 부식] 으로 읽히는 상태.
유현성은 씩씩하게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딸랑.
종이 오래 되어서인지 청명한 소리가 아닌 덜그럭에 가까운 울림이 터졌다.
“엄마! 저 왔어요.”
환하게 웃으며 소리를 쳤는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전혀 모르는 아줌마가 황당하게 그를 쳐다본 것이다.
그때 옆의 꼬마가 아줌마한테 묻더라.
“엄마. 저 아저씨가 내 오빠야?”
* * *
“아, 그렇게 된 거군요.”
유현성은 이제야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그런데 무슨 연락도 없이 와?”
“아, 엄마 놀라게 해주려고요. 사실 몇 달 전에 이야기는 드렸거든요.”
마지막 휴가를 나왔을 때, 정확한 날짜는 일부러 알리지 않았다.
임무의 특성상 언제 어떻게 될지 몰랐기 때문.
“언니한테 전화는 해봤어?”
“검진 중인지 안 받으시네요. 동생들은 학교에 있을 시간이니 하기도 좀 그렇고요.”
“하긴, 지금 시간이 이르긴 하지.”
혜진이 이모는 얼마 전부터 간간이 엄마 일을 도왔다고 했다. 특히 요즘처럼 몸이 안 좋을 때는 대신해서 가게를 맡기도 했다고.
오늘도 그런 날 중 하나였다.
엄마, 강은하 여사는 하필이면 오늘 병원에 갔다고 했다. 허리가 불편하다면서 물리 치료를 받으러 다닌다는 거다.
“그럼 이거라도 먹고 있어.”
이모는 그렇게 말하면서 튀김 한 접시를 내놨다.
유현성은 튀김 하나를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확실히, 여전히 맛이 없었다.
이러고도 장사가 되는 것이 신기했다. 심지어 막 전역한 군인 입에도 맞지 않을 정도였으니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먹을 만해?”
“예. 괜찮네요.”
솔직히 대답하기는 쉽지 않았다. 이건 강 여사 솜씨가 분명했으니까.
“지금 두 시니까, 한 서너 시쯤 오겠죠?”
“아마도?”
“잘됐네요. 안 그래도 동네 한 번 돌아볼 생각이었는데.”
남은 튀김을 입에 쓸어 넣다시피 마무리한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뒤, 다시 한번 가게를 둘러봤다.
낡고 지저분한 동네 분식집.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수준이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물려주신 유산 중 하나이기도 했다.
* * *
빈집에 들어오니 썰렁했다.
여자 셋이서 사는 집치고는 가구도 몇 없었고 장식 같은 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걸 미니멀 라이프라고 하나?”
피식 웃음이 나왔다.
게이트 초기에는 이런 게 유행이었다.
최대한 덜 가져다 놓고, 최소한으로 지내는 것.
집이란 게 언제 어떻게 박살 날 지 모르니 최대한 간소하게 해놓고 살았다.
덕분에 부동산은 폭락했고, 아이러니하게도 경제는 더 살아났다.
집에 묶여 있던 어마어마한 돈들이 시중에 풀리게 되면서였다.
게다가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니 아끼지 말고 쓰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나마 다행인 건, 예상과 다르게 물가가 크게 오르지 않았다는 것.
그건 정부의 강력한 통제 때문이었다.
“에휴, 이젠 아예 자기 방이네.”
원래는 내 방이었던 곳인데, 곳곳에 둘째 흔적이 가득했다.
노란 책상에 핑크색 매트, 거기에 깔맞춤한 듯 핑크색 키보드와 마우스까지, 진심으로 오글거림이 느껴졌다.
침대도 마찬가지였다.
핑크 덕후인가 싶을 정도로 통일되어 있었는데 차마 눕기가 겁이 날 정도였다.
그렇게 천천히 집을 돌아봤다.
안방이야 당연히 강 여사의 공간, 내 방은 둘째가 차지했고 작은 짐방은 막내가 쓰는 것 같았다.
“진짜 방을 하나 구해야 하나?”
휴가 나와도 거의 집에 있지 않았고, 잠도 거실에서 잤으니 크게 불편한 건 없었다.
하지만 이제 완전히 제대했다.
적어도 편하게 누워 잘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 건 당연한 일.
“그래, 이참에 원룸이라도 하나 구하자.”
옷을 갈아입은 다음 서둘러 바깥으로 나왔다.
그런 다음 가까운 부동산을 찾았다.
“와, 그렇게 비싸요?”
딱 고시원 두 배 크기의 원룸이었다.
보증금만 ‘1억’이라더라.
“이 동네가 많이 비싸요. 카페 거리로 바뀌면서 사람들이 몰린 것도 있고, 아무래도 감지 레이더 안쪽이기도 하니까요.”
기억하기로 군대 가기 전엔 평균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50만 원 전후였다.
조금 깨끗한 원룸이 1,000만 원에 50만 원 정도였고, 신축이나 큰 것들은 3~5,000만 원 정도에 월세를 5~80만 원 정도 받았다.
지금은 월세만 그때의 두 배라고 했다.
“아파트나 빌라 같은 경우는 집값이 내려갔는데, 원룸 같은 경우는 오히려 수요가 부족해서 많이 올랐어요. 조금 외각으로 가면 저렴하기는 한데…….”
부동산 아저씨가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뒷말을 예상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대충 구역 바깥이란 말이었다.
번화가 외각의 구도심, 지금은 거의 슬럼가가 되어 절반 정도가 빈집으로 있는 장소였다.
한마디로 치안을 장담할 수 없단다.
“그편이 오히려 좋죠.”
“예?”
“상관없다는 말입니다. 혹시 그쪽으로 좀 알아봐 주시겠어요?”
“정말, 괜찮겠어요?”
“예.”
외각이라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사람이라면 두들겨 패면 되고, 그건 마수라도 마찬가지.
부동산 아저씨가 매물 몇 개를 보여줬다.
그중 마음에 드는 게 하나 있었는데, 이 층 주택이었다.
아래층은 카페로 썼고 윗층은 주인이 살던 곳이라고 했다.
하지만 외각이라 장사가 되지 않아 저렴하게 내놨다는 거다.
“얼만데요?”
“사실려고요?”
“가격만 맞으면요.”
부동산 아저씨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매물은 있는데, 미리 말씀드리지만 집값이 오를 가능성은 없습니다. 투자로써는 전혀…….”
“오히려 그런 곳이 더 좋죠. 일단 이사는 안 다녀도 되잖아요.”
“그, 그렇기는 합니다.”
“직접 보고 싶습니다.”
“하아~ 알겠습니다.”
저 한숨의 의미를 깨닫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 * *
“전망 하나는 좋네요.”
저 아래로 부산 최대의 번화가인 서면 일대가 한눈에 들어왔다.
여기가 전포-문현 고개였다.
마을 버스마저 켈켈거리며 겨우 올라간다는 바로 그쪽.
그나마 다행인 건 샛길이 있어서 분식집까지 직선 거리로는 얼마 안 된다는 점이었다.
빠르면 5분 안에도 가능할 정도로.
문제는 올라올 때 20분은 넘게 걸린다는 건데, 아직 체력 하나는 자신 있었다.
“후우, 정말 괜찮겠습니까?”
부동산 아저씨는 연신 땀을 닦으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다른 문제는 없습니까?”
“조금 돌아가도 이쪽 큰 도로만 다니면 사고는 없을 겁니다.”
“이 아래는요?”
“그게…… 빈집도 좀 있는 편이고, 솔직히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 모릅니다.”
“의외로 친절하시네요. 보통 그런 이야기는 잘 안 한다고 들었는데.”
“집 잘못 구해줘서 사람 죽었다는 소리 들으면 한동안 일을 못하거든요.”
살짝 섬뜩한 말이지만 이해가 되기도 했다.
그러면서 집 이곳저곳을 확인시켜 주는데,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전기, 수도, 가스.
기본적인 건 정상이었고 청소만 하면 괜찮을 것 같았다.
아! 살림도 사야겠구나.
“가격은, 집주인과 연락하면 조금은 조절이 가능할 겁니다. 매물로 나온 지 2년이 넘었으니까요.”
“한 번 연락드려 보세요. 가격만 맞으면 바로 입금해 드린다고도 하고요.”
“잠시만요.”
부동산 아저씨는 전화를 받기 위해 바깥으로 나갔다.
잠시 둘러보는데 저 아래쪽에서 수상한 기운이 순간적으로 느껴졌다.
거의 찰나라 착각인가 싶기도 했지만.
“흐음. 뭐. 아무래도 상관없지.”
유현성은 그렇게 중얼거린 뒤 다시 1층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 정도라면 친구들 불러서 회식해도 될 것 같았다.
한쪽에 화로도 만들어 고기도 훈제하고, 냉장고도 크게 만들어 소시지도 제작해 보고.
그 외에도 이것저것 해볼 것들이 많이 생각났다.
“참, 처음 입대했을 때는 내 집 마련이 꿈이었는데, 바로 제대하자마자 그걸 이루네.”
이미 대략적인 금액을 들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오히려 이렇게 후다닥 해치워도 되는지 모르겠다.
“가만? 이거 강 여사가 한 소리 하려나?”
* * *
짝!
진짜 힘도 좋으시다.
짝!
조준도 정확하네.
“진짜 세상에 겁도 없지. 뭐? 저 위에 집을 사?!”
등짝 때린 데를 또 때렸는데, 강 여사는 다시 삼연타를 찍으려고 했다.
가까스로 몸을 뺀 뒤 바로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 절을 했다.
“강 여사님. 소자 죽을죄를 지었습니…… 억!”
손을 비비며 삭삭 빌어도 등짝에 떨어진 건 강스파이크였다.
“당장 가서 취소하고 와!”
“벌써 도장 찍고 돈 다 줬어요.”
“아니, 이 녀석이! 너 미쳤어?”
“강 여사님. 좀 진정하시고, 아무 문제 없다니까요? 제가 지구대까지 가서 확인 다 하고 산 거예요.”
“뭐? 지구대?”
“거기 제 친구 하나 있거든요. 물어보니까 최근 1년 사이에 그쪽에는 사건 하나 없었대요. 신고 들어온 것도 없다고 하네요.”
사는 사람들이 별로 없으니 사고가 없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등짝에 또다시 스파이크가 떨어지겠지.
“그리고 큰길로만 다니면 안전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그 동네는…….”
“아이, 또 그러신다. 이 집도 제가 샀고, 가게도 샀잖아요. 저 위에 집도 얼마 안 하고.”
부사관에 지원한 이유가 이거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남긴 빚이 조금 있었다.
개같이 굴러서 열심히 돈을 번 게 그것 때문이었다.
빚도 갚고, 여기 집도 사고, 내친 김에 분식집까지 사버렸다.
그러니 다음 순서로 내 집 하나 마련하는 것도 잘못된 건 아니지!
“제가 군대 있어봐서 아는데 이제 안정기에 도달했거든요. 옛날처럼 여기저기 터지고 이럴 일 없어요.”
“정말이야?”
“예. 초창기도 아니고 시스템 개발도 엄청 진행되고 있어서 서울은 거의 자리 잡았다고 보면 돼요. 그다음은 광역시에 적용한다니까 안전하다고요.”
“믿어도 돼?”
“예. 아들 믿으세요. 갑자기 게이트 터지고 드래곤이라도 튀어나오지만 않으면 걱정할 필요 없다니까요.”
솔직히 인정한다.
나라도 그놈은 무리였다.
“에휴,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더니.”
간곡한 설득에 강은하 여사는 손을 들고 말았다.
내친김에 다른 것도 밀어붙이기로 했다.
“몸도 많이 안 좋으시다면서요?”
“물리 치료 한 번씩 받으러 다니면 괜찮아.”
“그래도 장사하시기에는 무리잖아요.”
“내가 안 하면 누가 하니?”
답은 하나였다.
“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