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젊은 놈이 놀면 뭐해요. 한 푼이라도 벌어야지.”
가볍게 웃으면서 말하자, 강은하 여사는 고개를 저었다.
“너 벌어놓은 거 많다면서?”
“집 사는 데 다 썼어요.”
“뭐?”
“따로 쓸 곳도 있고요. 그러니 이제 벌어야죠.”
아직 잔고에 여유는 있었다. 매달 들어오는 수익도 적지 않았고.
그렇다고 마냥 놀 정도는 아니었다.
일단 두 동생이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스스로 앞가림하기까지는 돌봐야 했다. 적어도 괜찮은 놈 만나서 결혼하는 건 봐야 하는 거다.
그건 당연히 나의 의무였다.
“진심이니?”
“예. 어차피 애들이 분식집 할 것도 아니니 제가 물려받아야죠. 아버지 유언이잖아요.”
유현성의 눈빛에서 장난기가 사라졌다.
그걸 본 강은하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그때가 생각나서일 거다.
“그건…….”
“에이. 괜찮아요. 아무 생각 없이 하겠다고 한 것도 아니고, 어느 정도 준비하고 나왔어요.”
솔직히 이제는 안다.
아버지가 그런 유언을 남긴 이유를.
* * *
-음식 하나만 잘해도 평생 먹고 산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노력하는 만큼 바로 보이는 것도 이 일이다.
-정성껏 음식을 내면 손님들도 알아주게 마련이다.
아버지는 틈날 때마다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 외에도 많은 이야기들을 하고 또 하셨다. 거의 고등학생 때부터 세뇌하듯 들어왔다.
졸업하자마자 군대를 간 게 그 이유 때문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도망간 거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직후, 철이 조금 들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집안의 가장은 나였다.
우리 강 여사와 두 동생까지 내가 책임져야 했다.
그건 아버지의 유언이기도 했지만 당장 마주친 현실이기도 했다.
남겨진 빚, 매달 나가는 월세, 동생들 학비.
고작 21살의 군인이 감당하기에는 무척이나 벅찬 일이었다.
때문에 아버지는 분식집을 물려받으라는 말을 남기셨다.
다른 말로,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몸 성히 군 생활을 마치라는 소리였다. 그리고 열심히 장사를 하다 보면 새로운 길이 보일 거라는, 그런 이야기였다.
그건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오히려 분식집을 포기할 수 없다는 고집까지 생길 정도였다.
더 웃긴 건 그 동기가 나에게 힘을 주었다.
그 치열한 사선에서 살아 돌아온 이유 중 하나가 됐으니까.
또, 하나!
현재 힘을 많이 소진한 상황이었다.
분식집을 해보려는 건 그걸 원래대로 돌리기 위한 방법 중 하나가 될 터.
무엇보다, 가게 이름처럼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엄마. 저, 잘할 수 있어요.”
“그야 우리 아들이 다 잘하긴 하지. 하지만 음식 장사는 또 다른 건데.”
“차근차근 하나씩 해보려고요.”
전역을 신청하고 주변을 정리했다.
이후에도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 나름 이것저것 알아보았다.
한 번에 고지에 오를 수 있다면 좋겠지.
하지만 한 발 한 발 딛고 올라가는 과정도 중요하다 싶었다. 오히려 그렇게 해서 살아남은 경험이 더욱 많았으니까.
“그럼 우리 강 여사님, 분식집은 이 아들놈이 하는 걸로 하고요. 저녁이나 먹으러 가요.”
“음식 다 해놨는데, 그냥 집에서 먹자.”
“에이, 그래도 오늘 제대했는데 동생들하고 외식해요. 기념이잖아요.”
남들은 휴가 나오면 엄마 밥을 찾는다고 한다.
그것도 좋기는 하지.
하지만 오늘은 꼭 외식이 하고 싶었다.
우리 강 여사님 솜씨가 없어서가 아니다.
암, 진짜라니까.
* * *
“학교는?”
“다닐 만해.”
“공부는 적성에 맞고?”
“그럭저럭?”
“너 좋다는 애 없냐?”
“있겠냐?”
“우리 현지 이렇게 예쁜…….”
“밥 좀 먹자!”
“어? 그, 그래. 먹자.”
여전히 어지간한 부산 싸나이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다.
동생이라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만큼 현지는 똑부러졌다.
불필요하다 싶으면 칼같이 잘라 버릴 줄 알고.
진짜 어릴 때는 참 귀여웠는데 어쩌다 저렇게 자란 건지 모르겠다.
“현아는? 학교 잘…….”
“오빠! 소화 안 된다.”
현지가 선수를 쳤다.
결국 현아에게 준비했던 질문들이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매정한 년.
“그래. 일단 먹고 이야기하자.”
항복 선언을 하자마자 현지와 현아는 불판을 점령하고 말았다. 가냘픈 소불고기들을 기어이 학살하고 만 것이다.
설마 내 말을 자른 게 고기 때문이었나 싶을 정돈데 이거.
“너도 어여 먹어.”
그나마 강 여사님께서 쌈 하나 챙겨주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당연히 고기보다 마늘과 고추가 많아서, 결코 매워서 우는 게 아니었다.
소소한 식사였지만 진심으로 행복했다.
가족끼리의 외식은 너무 오랜만이었으니까.
“근데 오빠!”
“왜?”
“육회 비빔밥은 안 먹나?”
지금 말하는 건 후식이다.
“먹고 싶으면 시켜.”
“오, 그럼 육회 비빔밥에 비빔냉면, 그리고 현아는?”
“나도 육회 비빔밥, 그리고 물냉면.”
“엄마는 됐다. 배불러.”
“그래놓고 한 젓가락 달라 할라고? 그냥 미리 하나 더 시킨다.”
현지는 알아서 교통 정리를 하더니 유현성을 힐끗 쳐다봤다.
그래도 오빠라고 동의를 구하는 모양이다.
“말 안 하나?”
“엉?”
“오빠 니도 주문해야지.”
신경 써주는 줄 알고 고마워했는데, 뺏어 먹을 걸 우려해서 나온 행동이군.
역시 우리 현지, 대단하다.
“난 괜찮은데.”
“그래 놓고…… 아니다. 오빠도 비빔밥 하나 시킬게.”
“차라리 물냉.”
“오케이.”
비싼 고기집이라 그런지 반찬도 정갈하게 나왔다.
그 뒤 육회 비빔밥 두 그릇과 냉면들이 나왔는데, 가급적 시선을 피했다.
다른 음식들은 다 괜찮았다.
하지만 육회만은 아직도 거부감이 남아 있었다.
게이트 사태, 초창기 때의 기억이 너무도 강렬했기에.
뭐, 그렇다고 토하거나 욕을 내뱉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냥 조금 불편하다고나 할까.
끄어어~
현지의 입에서 요란한 트림이 터졌다.
고기를 그렇게 먹고 비빔밥에 냉면까지 학살한 부작용이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부끄럼 따위는 없는 듯 태연한 표정이다.
무슨 저런 년이 다 있나 싶어 보는데 현지가 처음으로 웃었다.
“흐, 오빠, 줄 게 있다.”
“뭔데? 선물?”
“계산서.”
분명 소소하고 행복한 식사였다.
금액은 결코 소소하지 않더라.
* * *
고작 한 끼였다.
배가 부르면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고 했던가?
저녁을 먹고 집에 와서 가볍게 커피 한 잔을 마셨다.
그런 뒤, 현지가 옥상으로 따라오라는 눈빛을 보내더라.
조금 쫄렸지만 당당하게 먼저 움직였다.
아무래도 쪼르르 쫓아가는 건 폼이 나질 않았으니까.
“진짜 분식집 하게?”
“어, 일단은.”
“일단이고 이단이고 확실히 말해라. 옛날처럼 한다 해놓고 튀지 말고.”
“그건 입영 영장이 나와서 간 거고.”
“쓰읍, 내가 모르나?”
“알지.”
현지에게 마음의 짐이 몇 개 있었다.
그중 하나가 분식집이었는데 이 부분은 매듭지을 필요가 있었다.
그떄는 다들 그렇게 생각했었다.
내가 고등학교 졸업하면 한동안 분식집 일을 도울 거라고 말이다.
아버지가 몇 가지 신메뉴를 만들었던 게 그때였다.
라면, 김밥, 튀김, 볶음밥 등등, 언제 준비했냐고 말하기가 무섭게 여러 가지들이 나왔다.
덕분에 손님이 조금 늘고 가게가 바빠졌는데, 예상보다 영장이 빨리 나와 버렸다.
결국 현지는 나 대신 한동안 가게 일을 돕다가 성적이 미끄러지고 말았다. 원체 똑똑한 녀석이라 금방 복구하기는 했는데, 아쉽게도 장학금이 날아가 버렸다.
대신 열심히 일해서 몇십 배로 메꿔주긴 했지만.
미안한 건 미안한 거였다.
“오빠! 진짜 제대로 할 거지?”
“꽤 준비해서 나왔어.”
“장사는 실전이다.”
“내가 또 실전에는 강하지.”
“도망가면 죽는다.”
“이젠 달리 갈 데도 없거든?”
“대충하면, 내 가게 와서 불 질러 삘 기다.”
현지가 고개를 들어 내 눈을 쏘아봤다.
그래 봐야 꿈쩍도 할 것 같냐 싶었는데…….
은근히 쫄리는군.
“그래도 군대 가서 철든 건 맞네.”
“철만 드냐? 다른 것도 얼마나 많이…….”
“장난하지 말고.”
장난이 아니라 진짜지만, 차마 그 이야기까진 못 꺼낼 것 같았다.
잠시 심호흡을 한 뒤 입을 뗐다.
“생각 많이 했지. 평생 군대 있을 것도 아니고 제대하면 뭐라도 하긴 해야 하는데…… 또 막상 나온다고 하니 막막하더라고.”
군 복무 내내 피를 보고 피를 흘렸다.
그런 인간이 사회에 나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사실 몇몇 길드에서 스카우트 연락이 오기도 했다.
그 외 민간군사기업이나 외주용역업체에서도 간을 보듯 물어봤다.
하지만 그쪽 일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 어느 정도 사태가 안정기에 들어선 만큼 꼭 내가 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어릴 때부터 그랬던 것 같아. 말과는 다르게 나만의 방식으로 해보고 싶었거든.”
“그건 또 무슨 소린데?”
“아버지랑 같이 이런저런 거 만들어보면서 이야기 많이 했거든. 가게를 꾸미고 좀 더 다르게 장사해 보면 어떨까 하고, 뭐 그런 거 있잖아.”
“그래서 해 보겠다는 거가?”
“뭐,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는 거지. 중요한 건…….”
잠시 고개를 돌려 아래쪽을 쳐다봤다.
느긋하게 걸어서 10여 분 거리.
그 길 한구석에 작은 분식집이 있었다.
20여 년 가까이 한 자리에서, 묵묵히 아이들과 손님들을 받아주던 낡고도 낡은 가게.
이젠 간판조차 제대로 상호를 표현하진 못하지만, 분명 그 자리에서 오랜 시간 함께 존재했었다.
그걸 내가 이어가고 싶었다.
동시에 아버지의 유언처럼 소박하지만 행복한 삶을 추구하고 싶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어느 정도 진심이라는 거지.”
말하고 나니 갑자기 민망함이 밀려왔다.
군대 있을 땐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지금 영화 찍나?”
“현지야. 오빠 분위기 잡고 있는데…….”
“됐고, 결론.”
“확실하게 할 거라고.”
“그럼 됐다.”
현지는 그렇게 말한 다음 몸이 쑤신지 기지개를 켰다.
그러다 뭔가 생각난 듯 툭 내뱉었다.
“근데, 글씨 연습은 좀 해야겠다.”
“왜?”
“유언장 보니까 엉망이드만.”
순간 골이 띵해졌다.
분명 특수 임무 때문에 몇 번 쓰기는 했다.
그걸 사진 찍어 강 여사한테 보내면서 신신당부했다.
그냥 절차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설마 그걸 본 건가?
당황해하며 현지를 보는데 피식 웃으며 아래로 내려가더라.
“그, 그거 오해야. 그러니까…….”
뭔가 해명하려 하는데 현지는 쿨하게 돌아섰다.
그냥 한마디만 남기고.
“안 죽고 살아 왔으면 됐다.”
* * *
“으헉!”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마자 본능적으로 이불부터 갰다.
그다음 눈을 비비며 관물대를 찾았는데 이상하게도 보이질 않았다.
정신이 들기까지 대략 20여 초.
그 시간 동안 허우적거리다 이내 현실을 인식하게 된 거다.
“아…… 제대했었지.”
순간 허탈감이 밀려왔다.
하필이면 군대 다시 가는 꿈을 꾸다니.
머리를 긁적인 뒤 주위를 둘러봤다.
안방 식탁 위에는 어제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소주 빈 병이 네 개.
씹다만 오징어 다리와 땅콩이 보였고 메모지 하나와 열쇠가 있었다.
내용은 간단했다.
강 여사는 내가 코를 너무 심하게 골아서 혜진이 이모네 자러 간단다.
열쇠는 분식집 거라는 말도 덧붙여져 있었다.
그 밑에 현지가 남긴 글도 보였다.
[야, 술고래!
거실로 옮기려고 했는데 여자 셋이서 들어도 꼼짝도 안 하더라.
그냥 이불 덮어두고 나왔다.]
마지막으로 현아가 남긴 글도 보였다.
[어제 약속한 대로 오빠 지갑에서 용돈 좀 가져감.
엄마하고 언니한테는 말하지 말 것.]
“가만, 내가 그런 약속을 했었던가?”
조금 가물가물하지만 그랬던 것 같기도 했다.
비록 술김이긴 하지만 강 여사한테는 미리 준비했던 통장 하나를 맡겼다.
또 현지한테 봉투 하나를 건넸으니, 현아한테 뭐라도 주는 게 맞기는 하지.
“기왕이면 많이 빼 갈 것이지.”
확인해 보니 딱 만 원짜리 한 장이 빠져 있었다.
아무래도 학교 마치고 오면 따로 불러서 좀 더 줘야 할 것 같군.
“그건 그렇다 치고, 오늘도 바쁘니까 일단 움직이자.”
번개처럼 집 청소를 해놓고 후다닥 이삿짐을 쌌다.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일단 저녁에 나르기로 예약하고 바로 바깥으로 나왔다.
“오늘 해야 할 일은, 이사 갈 집 청소하고 살림부터 들이는 거네. 그다음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 분식집 앞에 섰다.
동시에 어제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저녁 늦게 강 여사와 소주를 마시는데, 확인을 받더라.
“자, 이거 열쇠니까 너하고 싶은 대로 해.”
“강 여사님. 진짜 이렇게 뚝딱 넘기는 거예요?”
“원래 이런 건, 미련 안 남도록 이렇게 하는 거야. 자, 받아! 오늘부터 난 손 뗀다.”
현지의 칼같이 끊는 성격은 아무래도 유전인 모양이다.
근데 아버지하고 나는 왜 그러나 모르겠다.
“안에 있는 재료는? 조리 기구는? 테이블도 그렇고, 가스랑…….”
궁금한 걸 묻는데 강 여사님께서 취하셨는지 아주 강력하게 마무리를 지었다.
“몰라. 네 마음대로 해.”
황당하게도 그렇게 분식집이 내 앞에 떨어졌다.
이제 남은 건, 이걸 어떻게 할 거냐는 것!
난 자물쇠를 따고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 뒤 눈을 감고, 차분히……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