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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는 분식집을 합니다-3화 (3/156)

3화

아침 9시.

아버지가 분식집을 여는 시간이었다.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기본 육수 만들기.

흔히들 들통이라 부르는 스테인리스 육수통에 물을 가득 담고, 내장을 제거한 멸치, 깨끗이 씻어 토막 낸 무, 양파, 대파, 건새우를 집어넣는다.

여기에 간장, 맛술, 액젓으로 간을 맞추고 다시다로 맛을 합쳐주면 된다.

딱히 특별할 것도 없는 평범한 야채 육수.

마지막으로 끓기 전, 감초 반 줌을 넣는 게 유일한 차이점이었다.

아버지는 이걸 각종 음식에 응용하셨다.

그렇게 육수가 준비되는 사이, 난 옆에서 자잘한 일을 거들었다.

제일 많이 한 게 어묵을 꼬치에 끼우는 것.

아버지는 그게 한 뭉텅이가 되면 뜨거운 물에 데쳐내 표면의 기름기를 날렸다. 그리고 그걸 통에 담은 뒤 떡볶이 판 아래에 놔뒀다.

장사 중에도 바로바로 빼기 쉽도록 말이다.

다 끓은 육수를 넓은 스텐 판에 넣고 몇 개의 어묵과 떡볶이용 떡을 불려두면 작업 하나는 끝이었다.

떡볶이 소스도 간단했다.

시판용에다 고운 고춧가루와 물엿, 거기에 적당량의 다시다를 섞어주면 된다. 여기에 만들어 놓은 육수로 농도와 간을 잡아주면 더 손댈 것도 없었다.

순대 역시 공장제라 데워서 찜통에 넣는 걸로 끝.

튀김도 근처 식품 회사에서 받아 와 반죽만 해서 튀겨 버렸다.

그렇게 장사 준비에 걸린 시간은 대략 두 시간.

진짜 지옥 레이스는 이제부터였다.

“확실히 그때는 그렇게 했었지.”

그 이후의 기억은 흐릿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생각만 해도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정말이지 혼돈의 아수라장 같은 느낌이랄까?

거의 11시 20분부터 시작해서 오후 1시 40분까지.

아버지는 주구장창 라면만 끓이셨다.

다른 메뉴들도 있었지만 메인은 라면이었다. 맹물로 끓이는데, 거기에 육수가 반 국자 정도 들어가는 걸 다들 선호했던 것이다.

나오는 건 5분, 마시듯이 먹는 것도 겨우 10분이었다.

고작 테이블 다섯 개짜리 가게라서인지 한 시간에 거의 3~4회전을 돌았다.

“라면 두 개 주세요. 오뎅 한 그릇하고요.”

“여기 라면 네 개요. 튀김도 한 접시 주시고요.”

“라면 세 개 순대 하나, 떡볶이 하나요.”

라면을 메인으로 시작하는 주문 러시가 들어오고, 옵션에 따라 멘탈이 뒤섞인다.

진심으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될 정도로.

하지만 희망 사항일 뿐, 테이블마다 통일은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공사장 아저씨들이 스타트를 끊으면 그다음은 학생들, 마지막으로 근처 공구 상가 아저씨들까지 빠져야 점심이 끝난다.

이게 그날 장사의 70%였다.

남은 건, 학교 마치면서 들르는 애들뿐.

솔직히 점심시간은 그릇 치우고 음식만 주문하고 나르는 데도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방학 때마다 하던 일이지만 적어도 며칠은 지나야 겨우 적응될 정도였으니까.

“확실히 라면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팔렸지.”

대략 10여 년 전을 기준으로 근처 김밥 전문점들은 기본 라면을 3,000원에 팔았다.

그것도 계란 반 개 정도를 풀어서 내는데도 말이다.

여기에 옵션 들어가면 어떤 건 5,000원에 가깝기도 했다.

떡, 만두, 치즈 사리 풀옵션 라면이라든가, 콩나물 팍팍 해장 라면, 모래 없는 바지락 고추 짬뽕 라면 같은 게 그렇게 했다.

하지만 우리 분식집은 라면 2500원, 공기밥 500원이었다.

여기에 튀김이 개당 500원, 떡볶이, 순대 한 접시, 어묵 한 그릇이 전부 2,000원이었다.

취향껏 먹을 수 있었고, 가격도 저렴했으니 손님이 많이 몰린 것이다.

때문에 다른 메뉴는 할 엄두도 내지 못했고 오로지 라면, 라면, 라면이었다.

“그래도 참 메뉴들이 다양하게 나왔단 말이지.”

라면에 어묵 넣어서 먹는 거야 그렇다 치자. 면발 호로록한 다음 바삭한 튀김 한 점과 맵달한 떡볶이도 괜찮았다.

어떤 손님은 아예 국물부터 마시고 떡볶이를 들이부어 비벼 먹기도 했으며, 고추 튀김만 시켜서 국물에 푹 적셔 먹기도 하더라.

그 둥둥 뜨는 기름이 좋다나 뭐라나.

하이라이트는 순대 라면이었다.

말로는 부족한 단백질 보충이라며 순대를 그대로 국물에 담가서 말아 먹듯이 하더라.

어쩌면 그분은, 순대 당면에 숨어 있는 삼겹살 맛을 느끼는 능력자일 수도 있었다.

“하하, 그것도 다 추억이긴 하네.”

가게를 둘러보며 옛 기억들을 꺼냈다.

그러면서 내 계획과 어느 정도의 괴리가 있는지를 고민했다.

확신은 아니지만 결론은 나왔다.

“충분히 해볼 만해.”

한 번에 잘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음식 초보는 아니지만, 장사는 처음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하지만 난, 성공할 거다.

* * *

“예. 냉장고는 이거 하고 이걸로 주세요.”

“허허, 식구들이 많은가 봐요?”

“저 혼자 사는데요?”

“예?”

업체 사장은 장사 경력이 짧은 모양이었다.

얼굴로 당혹스러움을 그대로 표현하고 말았으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내가 고른 냉장고는, 400만 원짜리 업소용과 180만 원짜리 가정용 하나였다. 새 제품 정가가 최소 서너 배인 걸 감안하면 혼자 쓰기에는 너무 과했던 것이다.

심지어 세탁기 역시도 코인 빨래방에서나 사용할 만한 600만 원짜리였다.

이건 아마 새 제품 정가가 네 배 이상은 될 거다.

물론 비싼 이유야 따로 있지만.

“호, 혼자 사신다면…… 조금 과하지 않을까요?”

“괜찮습니다. 써봤던 것들 중에 이게 제일 괜찮더라고요.”

“그, 그러시군요.”

그 외에 대형 에어컨 하나와 소형 두 개를 추가로 주문하자, 나머지 잡다한 건 서비스로 준다더라.

“배달은 언제까지 되겠습니까?”

“일단 분해 세척하고 테스트 돌리면 빨라도 모레 오전이나 될 것 같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죠.”

바로 배달 주소를 알려주자 사장 이마에 잠시 주름이 생겼다.

“저기 선생님, 여기는…….”

“일시불로 결제하겠습니다.”

“충분히 가능합니다.”

“다음 거래도 사장님하고 해야겠네요. 하하하하.”

“허허허, 감사합니다.”

서로서로가 만족스러운 깔끔한 거래.

그렇게 몇 가지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 나오는데, 마침 전화가 울렸다.

-따라라라 라라라라라~

번호는 익숙했는데, 받는 사람의 목소리가 예상과 달랐다.

“예. 유현성입니다. 누구십니까?”

-옙, 중통부 특수 9과 곽상일 중사입니다.

“아, 그렇군. 그런데 이상도 중사는 어디 가고?”

-다른 곳으로 이동 발령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듣자마자 감이 왔다.

-일단 업무 인수인계 확인차 연락드렸습니다. 유현성 준위님 맞으십니까? 이번에 신설된 관리청 외부…….

“자, 잠깐! 실례 같지만, 너 중사 언제 달았는데?”

-저번 달 특조부 훈련 끝나고 달았습니다.

“와, 비닐도 안 뗀 신제품이네. 그래도 그렇지, 이거 개인 회선이거든?”

유현성의 지적에 곽상일 중사는 침묵을 지켰다.

뒤에 이어질 내용은 국가 기밀에 해당할 터.

그걸 개인 전화로 이야기하는 건 규정에 어긋난다. 대외비를 함부로 취급하다가 걸리면 중징계를 받게 되는 거다.

“됐고, 옆에 있는 거 아니까 상도 바꿔봐.”

-없습니다.

“있는 거 안다고. 지금 이 통화도 스피커로 듣고 있잖아.”

-진짜 없…….”

“셋 센다. 하나, 둘…….”

-조장님, 상도입니다. 저 방금 출장 갔다 돌아왔습니다. 헉, 헉, 헉.

“이거 숨소리 봐라? 가슴이 아니라 목구멍에서 바람 소리 나는데?”

-아닙니다. 진짜 막 뛰어온 것 맞습니다.

목소리로 발연기 하는 새끼 같으니라고.

그쪽 부분 연기상 있으면 이놈이 대상일 거다.

“이 중사. 나, 제대한 지 고작 하루다. 근데 규정이 하루 만에 그렇게 바뀌나? 신제품이 훌쩍 건너뛰어서 전화하게 되어 있어?”

-까라면 까는 게 군대 아닙니까? 위에서 시켰습니다.

“누가?”

-부청장님께서…….

“그래서 바뀐 거란 말이지?”

-예, 저도 짬이 찼다고 조장님 관련 일은 부외로 넘기라고 하셨습니다.

“네가 빌었겠지. 내가 널 모르냐?”

-아, 아닙니다.”

목소리만으로 당황하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생각해 보니,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됐고, 어제 마무리해 달라는 거 어떻게 됐냐?”

-서류는 직원 보내겠습니다. 공식 기록상 조장님이 말씀하신 부분은 다 처리가 끝났습니다. 사업자 등록부터 보건증에 기타 세금 관련…….

한참을 듣다가 뭔가 이상한 게 걸렸다.

“뭐? 한식, 일식, 중식, 양식 조리사 자격증까지 처리했다고?”

-예. 저 잘 처리하지 않았습니까?

“야 이 미친놈아!”

갑자기 두통이 밀려왔다.

내 경우, 일부 사항이 정부 기밀로 취급된다.

때문에 직접 처리하다 보면 이상하게 꼬이는 부분이 생기게 마련이었다.

특히 주민센터 같은 곳에서는 최소한을 제외한 어떤 기록도 조회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공무원이 잡혀갈지도 모를 일.

결국 분식집 영업 관련해서는 잡음 없이 해달라며 맡기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하하하, 원하시면 조리 기능장 등록까지 해드리겠습니다.

이 미친놈이, 누굴 요리 장인으로 만들 일 있나?

“이, 씹새…… 아주 그냥 무형문화재로 등록해 버리지 그래?”

-그렇게 드릴까요? 국가 기여도 기준이면 자격은 충분히 가능…….”

“진담 농담 구별 못 해? 정글에서 목 위로만 꿀 발라서 일광욕 시켜 줄까? 다시 라자드 부락 똥 늪지에 잠수해 볼래?”

스피커 너머로 신제품의 신음이 들렸다.

바로 이상도의 다급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보, 복귀하시는 겁니까?

“돌았냐? 됐고, 서류는 우편으로 보내고 한식 조리사 하나만 등록해. 괜히 번거롭게 하지 말고.”

실제로 필기, 실기 다 합격하긴 했다.

하지만 무슨 전산상의 오류인지 뭔지 때문에 한동안 자격증이 발급되지 않았다.

알고 보니 정부에서 고의로 누락시킨 거였다. 자격증을 받으면 바로 제대 신청할까 봐 윗대가리들이 조작한 것이다.

나쁜 새끼들 같으니라고.

-예. 그렇게 처리하겠습니다.

“상도야, 당분간 보지 말자!”

-예. 살아서만 뵙겠습니다.

전화를 끊기는 했는데 조금 불안했다.

그래도 선을 잡아줬으니 넘지는 않겠지?

* * *

“일단 이렇게 해놓자.”

유현성은 짧게 한숨을 내쉬며 정면을 쳐다봤다.

인쇄 출력소에 가서 급하게 뽑아온 천으로 가게 정문을 가렸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그동안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조만간 새로운 모습으로 찾아뵙겠습니다.]

“확실히 생각한 거하고 너무 차이가 컸어.”

원래 계획은 일부만 수리하는 거였다.

외관은 간판만 갈고, 기본 설비만 바로 장사할 수 있게 고치는 정도로만 본 거다.

하지만 지난 이틀간 꼼꼼히 살펴보니 문제가 너무 많았다.

오래돼서 전기 많이 먹는 냉장고.

팬 돌아갈 때마다 할아버지 기침 소리가 나는 닥트 시설.

청소 때마다 물을 많이 쓰는데, 콘센트는 아래쪽에 설치된 게 많았다.

가스관 연결 부위는 잔뜩 녹슬어 있었고, 뒤편의 창고 역시 빗물이 들어온 흔적이 보였다.

배관 역시도 한 번 청소하든 새로 설치하든 해야 할 것 같았다.

물 내려가는 소리가 영 시원찮았다.

“이거 골치 아프겠네.”

저걸 언제 하나하나씩 다 하고 있겠는가?

솔직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게 정답이었다.

“그냥 확 갈아 버려?”

고민해 보니 그게 맞는 것 같았다.

안 그래도 건물 자체가 오래되어 조금 삐딱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으니까.

“그래, 리모델링을 하자. 이대로 장사하다 불이라도 난다면 그게 더 큰 손해잖아.”

막상 하기로 하자 고민이 생겨 버렸다.

기왕이면 제대로 해보고 싶었으니까.

문제는 그쪽으로 문외한이라는 것!

애초에 청춘의 대부분을 삭막한 군부대 안에서 보냈으니 미적 감각이 떨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한번 돌아볼까?”

이쪽에서 한 블록만 옆으로 가도 카페 거리였다.

카페, 빵집, 한정식, 브런치, 양식당 등등.

하나같이 최신 트렌드에 맞는 인테리어가 되어 있었고, 예쁘다는 가게들이 다 몰려 있으니 충분히 참고가 될 것 같았다.

“어차피 동네 인사도 드릴 겸 돌아보자.”

그렇게 분식집을 나왔다가,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행복 분식 위쪽으로 도로 건너편에 초중고가 다 몰려 있었다.

그중 하나가, 헌터 아카데미로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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