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초월자는 분식집을 합니다-4화 (4/156)

4화

행복 분식 맞은편 칼국숫집.

드르륵 소리가 나는 오래된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니 투박한 멸치 향이 코를 자극했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현성이 왔구나.”

덕순 할머니가 환하게 웃으며 손짓했다.

거의 칠순이 다 되셨는데, 할머니는 유현성의 가족과 깊은 인연이 있었다.

아버지가 분식집을 차렸을 때 육수 내는 방법도 알려주고, 몇 가지를 가르쳐 주기도 했던 것이다.

막 제대하고 잠깐 인사를 드리긴 했는데 이렇게 가게에 들른 건 처음이었다.

“칼국수 한 그릇 할래?”

“예. 감사합니다.”

“그럼 저기 안방으로 들어가 있어.”

할머니의 말에 고개를 돌리니 방에서 강 여사와 혜진이 이모가 마늘을 까고 있었다.

“우리 강 여사님, 왜 여기 있어요?”

“아들놈한테 가게 뺏기고 나니 할 일이 없더라고. 심심해서 놀러 왔지.”

칼국숫집은 오래 장사한 만큼 동네 사랑방에 가까웠다.

점심시간이 지나면 몇몇 분들이 찾아와 일손도 거들었고, 각기 싸 온 음식을 나눠 먹기도 했다.

당연하게도 강 여사가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너는 어째 이사하고 나서 코빼기도 안 보여? 가게는 또 어떻게 하려고?”

강 여사의 타박에 유현성은 가볍게 웃었다.

“어제저녁에 겨우 짐 정리 끝났고요. 가게는 아무래도 수리를 좀 해야 할 것 같더라고요. 이참에 리모델링해 볼까 하거든요.”

간단히 설명을 덧붙였다.

낡은 냉장고, 비효율적인 동선, 합선의 위험, 기름때에 찌든 닥트도 제대로 청소하려면 뜯어내야 하는데 그 일도 만만치 않았다.

가장 거슬리는 건, 바로 화장실이었다.

타일이 깨진 건 둘째 치고 몇 번이나 락스로 청소했는데도 찌든 때가 사라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쪼그려 앉아서 볼일을 봐야 한다는 게 너무도 불편했다.

“확실히 화장실이 좀 그렇지.”

“예. 그래서 하는 김에 싹 새로 하려고요. 알아보니까 보험도 새로 해야 하는데, 설비가 안 좋으면 허가가 쉽게 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다른 건 몰라도 화재 보험은 필수였다.

또 보상 문제도 있어 종합으로 영업 배상 책임까지 가입하는 편이 여러모로 유리했다.

아무래도 시대가 그런 시대니까.

그렇게 이야기하는 와중에 혜진이 이모가 마늘 바구니를 슬쩍 내밀었다.

입만 털지 말고, 손도 움직이라는 뜻이겠지.

마늘을 잡고, 과도를 들었다.

끝부분에 칼집을 넣고 슥삭 슥삭 하면서 껍데기를 벗기니 상태 좋은 생마늘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칼국숫집의 특징이 바로 이거였다.

마늘을 즉석에서 절구로 빻아 취향껏 듬뿍 올려준다는 것.

투박하지만 진한 멸치 육수.

할머니표 양념 간장.

여기에 다진 마늘 듬뿍.

이 조합의 시너지는 개운함의 끝판왕이었다.

우리는 ‘마늘의 민족’이니까.

“어머, 현성이 잘 까네. 많이 해봤나 봐?”

혜진 이모의 감탄에 강 여사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유현성의 과도는 손가락의 연장선이라도 된 것처럼 규칙적으로 삭삭 움직였다.

껍질이 가볍게 벗겨졌고, 마치 자동화 공장의 기계처럼 손끝에서 생마늘이 규칙적으로 탁탁 튀어나왔다.

“장사하려면 이 정도는 기본이죠.”

“몇 년 동안 마늘만 깐 사람들도 그렇게는 못 할 것 같은데?”

“하하, 제가 군대에서 몸 쓰는 거 하나는 최고였거든요.”

마늘 껍질을 까든 마수 껍데기를 벗기든 결국은 칼질이다.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이고, 누구보다 많이 했기에 익숙했다.

그렇게 마늘을 까면서 수다가 이어지는데, 의외로 강 여사가 욕망을 드러냈다.

“화장실에 비데 하나 놓자.”

“간판도, 저기 일식 돈가스 집처럼 고급스러워 보이는 걸로 하면 안 돼?”

“별건 아니고. 안쪽에 방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럼 동네 아주머니들 모여서 모임도 하고 좋잖아.”

“아들, 기왕이면 가게가 좀 예뻤으면 좋겠다.”

해보고 싶었던 게 많았는지 강 여사와 혜진 이모의 말은 끊이질 않았다.

그 많은 걸 왜 지금껏 참고 살았나 싶을 정도네.

“일단 참고할게요. 이게 제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서요.”

“현성아, 칼국수 가져가라.”

덕순 할머니의 말에 재빨리 방 밖으로 나왔다.

쟁반에는 이미 김이 모락모락 나는 칼국수와 배추 겉절이, 정구지 무침과 깍두기가 올라가 있었다.

아무래도 늦은 점심을 함께하려는 모양이었다.

한 젓가락 듬뿍 떠서 후후 불었다.

갓 끓여냈기에 바로 먹으면 큰일 난다.

입천장도 날리고 식도 구조를 확인하겠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아삭한 겉절이와 잘 익은 깍두기도 정구지 무침도 식욕을 가득 불렀다.

하긴 40년 장사 내공이 어디 가겠는가.

“우와, 오랜만에 먹어서 그런가. 진짜 맛있네요.”

“벌써 다 먹었어?”

강 여사의 놀람에 고개를 내려 보니 다들 절반 넘게 남아 있었다.

빌어먹을 군대!

나에게 이런 저주받은 습관을 박아버리다니.

“제가 좀 빨리 먹기는 해요.”

“모자라면 좀 덜어줄까?”

“할머니 괜찮아요. 이미 배불러요. 나중에 저녁도 먹어야 하는데 이 정도가 적당하죠.”

잠시 기다렸다가 다들 식사가 끝나는 걸 확인했다.

“설거지는 제가 할게요.”

“놔둬.”

“칼국숫값인데요. 뭘.”

이럴 땐 더 말 나오기 전에 후다닥 움직이는 게 맞았다.

쟁반째 들고 나가는데, 드르륵 소리가 들렸다.

당연하게도 손님이 왔다는 신호겠지.

“어서 오세요.”

“어, 형?”

“엥? 태수냐?”

얼굴을 보니 덕순 할머니 손자인 정태수가 맞았다.

어릴 때부터 현아랑 친하기도 해서 내가 반쯤 업어 키운 사이라고 보면 된다.

근데 표정이 영 좋지 않은 느낌이었다.

“야. 빨리 들어가.”

뒤쪽에 또래로 보이는 애 하나가 정태수를 가볍게 밀쳤다. 인상을 쓰는 걸 보니 아픈 모양인데?

“왜 입구 막고 있어. 들어가자고.”

태수 바로 뒤에서 들어온 학생이 눈에 띄었다.

마른 체형이지만 큰 키, 자세도 바로잡혀 있는 데다 생각보다 단련된 몸.

무엇보다 녀석은 헌터였다.

내 기준으로 치면…… 병장 정도?

* * *

“우리 태수 친구들이라고?”

“예. 중 3 때부터 같이 다녔어요.”

한 녀석이 그렇게 말하자 옆에서 말이 이어졌다.

“전 금치수라고, 고등학교에서 만났고요. 집도 근처라 자주 붙어 다녀요. 그리고 이 친구가 이번에 아카데미에 붙었거든요.”

“아카데미?”

“예, 얼마 전에 각성해서 내년부터 이 위에 있는 헌터 아카데미에 들어가게 되거든요.”

“오호.”

대충 들어 보니 태수 포함해서 넷이 절친인데, 임민혁이란 녀석만 능력을 깨우친 모양이었다.

조금 당황한 건 바로 이 옆에 헌터 아카데미가 있었다는 것.

내 표정을 본 태수가 슬쩍 물었다.

“올해 3년 됐는데, 모르셨어요?”

“나야 여기 없었으니까.”

정확히 말하면 그쪽으로 관심을 끊었다.

가만. 생각해 보니 뭔가 이상했다.

서울은 밤섬을 통째로 아카데미로 바꿨다고 들었다.

경상도 쪽은 포항 위쪽에, 전라도 쪽은 바닷가 섬 하나를 쓴다지.

강원도는 속초 쪽에 인공 섬을 만들었다.

충청 역시 난지도 섬으로 기억하는데?

그건 행여나 있을 사고 때문이었다. 그 외에 몇 가지 이유도 더 있었고.

“왜 부산은 도심에 아카데미를 만든 거지?”

“여기 학교는 터널도 쓰거든요.”

“아, 황령터널? 그 긴 걸 통째로 쓴다고?”

“다는 아니고요. 절반 정도라고 들었어요. 그 끝에 게이트가 있데요.”

하아.

집이 저렴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우리 강은하 여사가 내 등짝에 스파이크를 날린 것도 분명 그 때문일 것이고.

게이트 주변은 언제 터지고 박살 날지 모른다. 그 터널 위 산동네에 내가 산 집이 있었으니 괜히 집값이 똥값이 아닌 것이다.

안정화가 됐다면 아무 문제는 없는데, 어째 조금 불안하구만.

“그래. 왔으니까 칼국수나 한 그릇씩 하고 가.”

“형은 있으세요. 제가 하면 되니까요.”

“네가?”

“저 잘해요. 졸업하면 바로 여기서 일할 거거든요.”

“그래? 그럼 설거지는 내가 할게. 뭐, 부탁할 거 있으면 하고.”

슬쩍 방을 보니 할머니는 나올 생각이 없어 보였다.

세 사람이 대화하며 한참 웃음꽃을 피우는데, 진짜 태수한테 맡긴 것 같았다.

그럼 적어도 이런 일에는 익숙하다는 거지.

설거지를 시작하며 슬쩍 태수를 쳐다봤다.

얼굴이 칼국수에는 진심 같았다.

할머니는 언제부턴가 체력이 달려 기계로 밀었는데, 태수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반죽을 만졌다.

진짜 밀가루를 뿌리고 홍두깨로 쭉쭉 미는데 순식간이더라.

그 반죽을 사사삭 접더니, 바로 무쇠칼을 붙잡았다.

탕탕탕탕탕-

일정하고 빠른 칼질에, 두 뺨 길이의 반죽이 순식간에 면발로 바뀌었다.

“잘하네.”

“3년이나 했으면 이 정도는 해야죠.”

확실히 아까 들어올 때와는 달랐다. 뭔가 자신감 같은 게 넘친다고나 할까.

그사이 설거지를 끝내고 밑반찬을 덜면서, 임민혁이란 녀석에게 신경을 집중했다.

분명 나쁘게 느껴지는 기운은 아니었다.

하지만 녀석들의 말투에 담긴 치기에는 약간의 무시 같은 게 깃들어 있었다.

그걸 태수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는 거겠지.

칼국수 세 그릇이 나오기까지는 금방이었다.

할머니 버전과 다른 건, 간장 양념과 다진 마늘이 따로 준비되었다는 것.

“헤헤, 미리 넣는 것보다 취향껏 덜어 먹으라고…….”

“아직 감이 거기까진 안 되는 거겠지.”

“확실히 그건 잘 안 되더라고요. 분명 같은 양이었는데 미묘한 차이가 있다고나 할까…….”

“이 방식도 나쁘진 않지만, 그건 확실히 정량을 알고 난 다음에 해. 핑계 대고 미루다 보면 평생 못할 수도 있으니까.”

아직 고3이니 거기까지는 생각 못 했는지, 태수의 표정이 굳어졌다.

“일단 칼국수부터 갖다주고, 잠깐 심부름 좀 해라.”

웃으며 태수를 토닥거린 뒤 주방을 뒤졌다.

곧 주먹만 한 감자 세 개와 당근 토막을 발견해, 바로 준비에 들어갔다.

일단 깨끗이 씻고 껍질을 벗겼다.

그걸 대충 4~6㎜ 정도 두께로 얇게 썬 다음 스텐 볼에 넣고, 소금으로 간을 했다.

여기에 약간의 전분을 뿌리고 적당히 뭉칠 만큼 물을 뿌려 농도를 맞춘다.

팬이 적당히 달궈지는 사이, 녀석들을 쳐다봤다. 그러다 임민혁과 눈이 마주쳤는데 잽싸게 고개를 숙이는 것이 조금은 감이 있는 것 같았다.

치이이익-

식용유가 달궈지고, 그 위에 반죽이 올라갔다.

국자로 누르면서 얇게 펴자 거의 두 뼘 크기가 됐는데, 그때서야 불을 줄였다.

“형, 뭐 해요?”

“감자채전. 넌 빨리 막걸리 세 병이나 사 와.”

“예? 저 고등…….”

“할머니 드시게. 마트 아주머니도 심심하면 오시라고 하고. 오신다면 막걸리 더 사 와.”

“아! 바로 갔다 올게요.”

바로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내 건네줬다.

물론 법대로라면 미성년자에게 술 심부름을 시키면 안 된다.

하지만 문제가 생기진 않을 거다. 동네에서 할머니와 태수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무엇보다 마트 아주머니라면 직접 올 것이 분명했으니까.

오히려 말 안 하면 자기만 빼놨다고 서운해하시겠지.

첫 번째 감자채전이 부쳐지자 난 그걸 임민혁 앞에 내려놨다.

“이건 서비스.”

“아! 감사합니다.”

“태수랑 잘 지내라. 나도 곧 맞은편에서 장사할 거니까 종종 놀러 오고.”

“예.”

피식 웃어준 다음 임민혁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순간, 녀석이 움찔하더라.

드르르륵.

“형, 다녀왔어요.”

예상대로 태수 뒤로 마트 아주머니가 계셨다.

20리터짜리 파란 쓰레기봉투를 보니, 막걸리가 대충 여덟 병은 되어 보였다.

바로 인사를 드리고 방으로 안내하며 몇 마디를 건넸다.

동네 터줏대감 할머니와 20년 차 마트 아주머니, 거기에 강 여사와 혜진 이모까지.

기본 수다 스킬이 세 시간이니 시간 가는 줄 모르실 거다.

무엇보다 안주가 모자랄 듯했다.

있는 재료로 이래저래 뚝딱 만들고 있는데, 바로 뒤에서 임민혁의 목소리가 들렸다.

“잘 먹었습니다. 특히 감자채전 정말 맛있었습니다.”

“오, 그래? 입에 맞다니 다행이네.”

“그럼 저희는 가볼게요.”

태수가 배웅하고 녀석들이 입구로 나가려고 했다.

“너희들 어디 가는데?”

“아, 저희 약속 있어서요.”

“아니, 그 말이 아니라. 먹었으면 계산을 해야지. 감자채전은 서비스니까 칼국숫값만 내.”

“예?”

다들 어리바리한 표정으로 나와 태수를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난 씨익 웃었다.

“만이천 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