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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는 분식집을 합니다-5화 (5/156)

5화

“저, 그게…… 요.”

말을 꺼낸 건 금치수였다.

거의 일 분 가까이 서로 눈치를 보다가 압박감을 이기지 못한 것 같았다.

“말해. 괜찮아.”

“그게…… 야, 태수야. 네가 말해.”

“어? 어어. 그게 형…….”

태수도 이 상황이 난감한지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러다 조심스레 안방 쪽을 쳐다보는데, 할머니가 나왔으면 하는 눈치였다.

훗. 얘들아. 미리 다 손을 써놨단다.

마트 아주머니를 안내하면서 이미 말했다.

밖은 신경 쓰지 마시고, 곧 안주 가져올 테니까 편하게 이야기들 나누시라고도 했다.

이미 흥이 오르신 네 분은 당연히 좋아하셨고.

마지막으로 안방 미닫이문을 닫으면서 약간의 손(?)을 써놓기도 했으니, 밖의 소란 따위는 모르시리라.

“왜? 돈 없어?”

“아니, 그게요. 태수야…… 그런 게 아니라고 이야기드려.”

금치수가 재촉하고, 태수는 당황하고, 다른 친구는 임민혁만 쳐다봤다.

“왜? 먹고 째려고?”

“아닙니다. 원래 태수가 저희한테 한 번씩 칼국수를 해줍니다. 그런 줄 알고 온 겁니다.”

임민혁은 그렇게 말하며 태수에게 눈치를 줬다.

난 슬쩍 그 사이로 들어가며 물었다.

“왜?”

“그게…… 자기가 한 게 맛이 어떻냐 물어보려고 종종 부릅니다.”

“그럼 태수가 책임진다는 거네.”

“예.”

임민혁은 잘못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 귀여운 모습에 저절로 웃음이 나왔지만, 억지로 참았다.

“태수야. 잘 들어!”

“예. 형.”

“친구들 종종 데려오지? 보통 얼마나 와?”

“그냥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요.”

“돈을 낸 적은?”

태수가 입을 다물었다.

그건 곧 한 번도 없다는 뜻이었다.

“정신 차려. 너 졸업하고 가게 이어받는다고 했잖아. 그치?”

“예. 맞아요.”

“그때도 이렇게 할 거야? 친구들 오면 그냥 공짜로 해주고 보내고, 그렇게?”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친구들 사이라니까 크게는 말 안 할게.”

태수의 어깨를 가볍게 붙잡았다. 거기서 전해지는 건 미묘한 떨림이었다.

“어쩌다 한두 번이면 몰라. 그런데 그게 아니잖아. 네가 쓴 밀가루 반죽, 육수, 가스, 저 그릇들 설거지하려면 물도 써야 해. 그리고 너희가 먹는 밑반찬도 마찬가지지. 그럼 거기에 들어가는 돈은 누가 내는 거냐?”

“……하, 할머니요.”

“그럼 할머니는 왜 너한테 그런 이야기를 안 했을까?”

“그건…… 모르겠어요.”

“이건 내 생각이니까 정답이 아닐 수도 있어. 아마 네가 먼저 알아주길 바란 거겠지. 그리고…… 흐음, 뒷부분은 따로 이야기하자.”

태수는 뭔가 생각에 잠긴 듯했다.

불안함을 느낀 쪽은 금치수였다.

요리조리 눈치 보는 것이 특히나 더해 보였는데, 뭔가가 있는 것 같았다.

“자! 잡설은 여기까지. 깔끔하게 만이천 원!”

“저희가 돈이 없습니다.”

임민혁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럼 멀티 게임방 가자는 이야기는 뭐냐?”

“예?”

“태수가 칼국수 삶을 때 너희들이 그렇게 떠들었잖아. 저녁값 아꼈으니 그걸로 가면 된다고.”

“아, 아닌데요. 진짜.”

“내가 귀가 좀 밝다. 그것도 아주 많이.”

슬쩍 태수를 보니, 영 표정이 좋지 않았다.

임민혁도 그걸 봤는지 인상을 찌푸리더라.

역시 예상대로의 반응이 나왔다.

세상 물정 모르는 녀석들에게서 나올 수 있는 당연한 결과.

“형, 아니, 아저씨. 저 각성자입니다.”

“그래서?”

“무려 D급이라고요. 제 또래 각성자 중에서도 거의 최고 등급에 가까워요.”

“아니, 그래서 뭐냐고?”

“가볍게 손만 써도……!”

“뭐, 내가 죽을 수 있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거냐?”

솔직히 속으로 빌었다.

얘야. 선은 넘지 말아라.

“저, 그건 죄송…….”

너, 진짜 운 좋았다.

* * *

딱!

임민혁의 귓속을 파고든 건, 그 짧고 명쾌한 소리였다.

순간 세상이 시커멓게 변했다.

무엇도 보이지 않았고 오직 하나의 느낌만이 전부였다.

무한한 추락.

실제로는 몇 초에 불과하겠지만 거의 영겁으로 느껴질 정도의 압도적인 공포였다.

그리고 눈을 몇 번 깜빡이는 사이, 공간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그 광활한 곳에 있는 건 오로지 임민혁뿐.

“여, 여긴 어……!”

“그런 건 신경 쓸 필요 없어.”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임민혁은 다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 아저씨, 아니, 태수의 형이 서 있었다.

유현성이라고 했던가?

듣기론 어릴 때부터 친한 형이라고 했다.

근데 제대하기 직전 게이트 사태가 터지는 바람에, 재수 없게 군대에 더 묶이게 됐단다.

그리고 몇 달 전, 각성하기 직전에 이야기를 들었다.

형이 곧 제대한다고.

분명 몸이 안 좋아서 나오는 거라고 들었는데…….

‘이, 이건 말도 안 되잖아!’

공간 전이? 위상 결계? 심상 왜곡?

배웠던 그 어떤 지식에도 이런 무식한 능력은 없었다.

이 정도 급의 스킬 대부분은 굉장히 난해하고, 많은 마력이 필요했으며, 발동 시간이 길었다.

그걸 손가락 튕기는 걸로 끝낸다?

진짜 미친 거다.

“쓸데없는 생각을 참 길게도 한다.”

“대체 형은 뭐예요?! 이 스킬은 또 뭐고, 아니, 정말 태수 친한 형은 맞아요?”

“알아서 뭐 하게?”

피식 웃은 나는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네가 각성했다던 그 능력. 한 번 발휘해 봐.”

“예?”

“왜 각성자라며? 무려 D급이라고 했잖아. 툭 치기만 해도 사람 죽일 수…… 아, 거기까진 안 했구나.”

“그건…… 정말 죄송합니다.”

“됐고. 실력 한번 보자고.”

임민혁은 당황했는지 잠시 머뭇거렸다.

무엇보다 방금 전의 충격과 이 공간이 주는 이질감이 망설이게 만든 거겠지.

“네 말대로 무려 D급이면 이능 하나는 있을 거 아냐.”

“그건, 그렇습니다.”

임민혁이 순순히 대답했지만, 어느 정도 대단한 건 맞았다.

정부에서 정한 가이드는 단순했다.

F등급부터 상위로 올라가는데, E등급까지는 단순한 강화 인간에 가까웠다. 마력을 어느 정도 다룰 수 있느냐로 등급이 정해지는 것이다.

그 위 등급부터는 조금 까다로워진다.

이능 혹은 스킬.

D급은 그걸 구현할 수 있어야 했다. 그것도 실전에서 사용할 수준이 되어야 인정받았고.

태수랑 동갑이라고 했으니, 이제 고3.

20살도 안 된 나이에 그 정도라면 충분히 성장할 가능성이 있었다.

보통은 마력 각성 후 2~4년 정도가 지나야 자신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 뒤, 피나는 노력을 기울여야 이능을 겨우 발현시킬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어디에나 예외는 있는 법!

“그럼 해보겠습니다.”

“말하면 늦다. 너는 생각보다 본능적으로 반응해야 해.”

“예? 그게 무슨…….”

“그 수준의 마력 양인데 D등급이라면 분명 실전형일 테고, 나이를 생각하면 일반적으로 육체 강화 계열에 가까울 것 아냐?”

임민혁의 이마에 주름이 생겼다.

놀랍다기보다 자신의 이능이 단숨에 파악당했다는 것이 불쾌한 모양이었다.

보통 철이 없는 애들이 보이는 흔한 반응.

몇 번 실전 경험하고, 죽니 사니 하는 걸 겪고 나면 결코 저럴 수 없어진다.

“와라.”

“예, 갑니다!”

임민혁은 뒤로 물러나며 충분히 거리를 벌렸다.

그 직후 상체를 뒤로 젖히며 양팔을 활짝 펴자, 등에서 여덟 가닥의 촉수 같은 것들이 튀어나왔다.

촤라라락-!!

촉수 형태가 지네의 등갑처럼 변하더니 순식간에 임민혁의 몸을 휘어 감았다.

원래 말랐던 체형이 두껍고 탄탄해졌으며 근육질로 바뀐 것이다.

그건 마치 하얀 중갑을 입은 기사의 모습에 가까웠다.

“초기가 2초 정도면 양호하군, 강화형이긴 한데, 골갑형이라.”

임민혁이 앞으로 돌진했다.

체중을 실어 상대를 날려 보내겠다는, 일명 몸통 박치기.

더욱 놀라운 건 그 직후였다.

임민혁의 돌격은 그 무게가 무색할 만큼 빠르고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픽- 푸확!!

유현성의 열 걸음 앞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뭣……?!”

뭔가 공기 빠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강화 갑옷이 맥없이 풀려 버렸다.

임민혁은 달려오던 관성대로 몇 걸음을 더 걸었고, 그대로 풀썩 무릎을 꿇었다.

실로 허망한 상황.

임민혁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이게 너와 나의 눈높…… 아, 이거 너무 오래됐나? 쩝. 사회와 담 쌓고 살다 보니. 그래도 입대 전까진 꽤 재밌게 봤었는데.”

“이게…… 대체 뭐죠?”

“알아서 뭐 하게?”

“그, 그……!”

“됐고. 내가 알려줄 건 이게 네 현실이라는 거야. D급? 확실히 네 나이를 생각하면 충분히 자만할 만하지. 어쩌면 벌써 스카우트 제의 같은 것도 들어왔을지도 모르고.”

임민혁이 움찔거렸다.

“확실히 쓸 만한 능력이긴 해. 조금 더 성장한다면 공방형 탱커로도 써먹을 수 있겠지.”

“설마?”

“갑주 변형 가능하지? 쐐기 돌격 같은 거.”

“그게 보였다고요?”

“흐음, 보였다기보다 봤었다고 해야 하나.”

이 녀석은 아마 이해하지 못할 거다.

적어도 아직은.

임민혁은 인상을 찌푸리며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분하다는 표정이 아닌,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했다.

“아까 이게 제 현실이라고 하셨죠?”

“맞아. 그러니 매사에 겸손하게 살아.”

“그 일은……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알면 다행인데, 보통 각성자들은 처음의 너처럼 행동하거든. 마치 세상이 내 것 같고, 선택받았다는 우월감에 빠져서 병신지랄삽질을 다한다는 말이지.”

“형, 말이 너무 심…….”

“말로 들을 때가 다행인 줄 알아라. 정말 조금이라도 심사 틀린 놈을 만났으면 넌 피 한 방울도 못 흘려. 그냥 재가 되거든.”

“그 정도까지는……!”

“더 나쁜 놈 만나면 더 당하지. 산 채로 팔다리를 뜯고, 살아 있는 걸 알면서도 머리에 톱질하는 놈도 있다.”

“설마요? 그래도 사람일 텐데.”

“너, 내가 사람으로 보여?”

임민혁은 무슨 소린가 싶어 고개를 들었다.

그렇게, 유현성과 시선이 마주쳤다.

덜컥!

갑자기 움켜쥔 주먹이 풀리고, 무릎 꿇었던 자세가 흐트러졌다. 발가락이 안쪽으로 말리더니 뒤로 주저앉아 버릴 정도로.

몇 번이나 눈을 깜빡였음에도 유현성이 제대로 보이질 않았다.

“허, 흐어어…… 어어어…….”

자신의 입에서, 신음도 비명도 아닌 소리가 나온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했다.

그저 숨이라도 쉬고 싶은 단순한 욕구만이 남을 뿐.

“쯧.”

그 한마디에 임민혁은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그걸 본 유현성은 탄식을 내뱉었다.

“하아…… 이거 괜히 오지랖 부렸나?”

* * *

딱!

“헉, 허억.”

임민혁은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아니, 그러기 직전에 누군가 자신을 붙잡아 줬다는 걸 깨달았다.

“어, 고맙습니…… 헙.”

“왜 그러냐? 갑자기.”

“흐, 흐읍…….”

임민혁은 차마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자신을 잡아준 게 바로 유현성이었으니까.

“야, 정신 차려.”

누군가 말했지만, 임민혁의 혼은 반쯤 나간 상태였다.

금치수가 어깨를 두드리고, 다른 친구도 괜찮냐고 물었지만 연신 머리를 들락거리는 현기증에 의식이 돌아오질 않았던 거다.

결국 태수가 가져온 차가운 물 한 잔을 마시고 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다.

“어, 어떻게 된 거야?”

“뭐가?”

“나. 저기 저…….”

임민혁은 차마 유현성을 보지 못하고 더듬거리기만 했다.

바로 옆에서 금치수가 떠들었다.

“너 죄송하다고 하고 잠시 멍하게 있다가 갑자기 쓰러질 뻔했어.”

“뭐?”

“진짜라니까! 다들 깜짝 놀랐다고.”

“마, 말도 안 돼…….”

임민혁은 친구들의 얼굴을 하나씩 하나씩 확인했다.

다들 그게 진실이라고 하고 있으니, 마치 도깨비에 홀린 것같이 느껴졌다.

“내가 얼마나 멍하게 있었는데?”

“그냥 뭐, 1, 2초? 하여간 그렇게 길지는 않았어.”

“정말? 진짜?”

“너 어디 아프냐? 갑자기 왜 그래?”

임민혁은 몇 번이나 눈을 깜빡거렸다.

다시 태수가 가져다 준 찬물을 마시자 확실히 현실 감각이 돌아왔다.

방금 전의 기억도 점점 흐릿해져 갔고.

“에구, 각성자니 뭐니 하더니 이런 약골이었어? 그래, 이 형이 인심 썼다. 오늘은 안 받을 테니까 다음부터는 돈 내고 먹어.”

“아…… 그게…….”

“됐다. 치수야. 원래 남자는 한 입으로 두말하는 법이 아니거든. 만이천 원에 화들짝 놀라 각성자 소리 하다가 픽 쓰러지는데…… 나 참, 이런 경우는 처음 보네.”

유현성이 기가 찬 듯 말하자 금치수는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

“형, 죄송해요!”

“죄송이고 뭐고, 아픈데 무슨 게임방이냐. 그냥 가게에서 좀 쉬다가 저녁 장사나 잠깐 도와주고 가. 니들 때문에 벌써 시간이 다 됐단 말이지.”

“아! 그, 그러네요.”

“일단 저쪽 가서 쉬고 있어.”

“예. 죄송합니다.”

금치수는 그렇게 말한 뒤, 다 함께 구석 자리로 움직였다.

그 와중에 임민혁은 유현성을 확인했다.

정태수와 함께 육수 맛을 보고, 면 삶을 물을 보충하고, 또 고명으로 올라갈 야채를 다듬었다.

심지어 간간이 안방까지 확인해 추가 안주까지 뚝딱 만들어냈다.

그 능숙함은 누가 봐도 주방 일 하는 사람이 분명했다.

……그럼 방금 전의 일은 뭐란 말인가?

친구들의 말대로 정말 착각이었나?

“태수, 이 자식. 칼질 좀 칭찬했더니 바로 면 굵기가 달라지네.”

“아, 죄송해요. 형.”

“마! 매사에 겸손하게, 알았냐?”

“옙. 형님.”

갑자기 임민혁은 소름이 돋았다.

머릿속 깊숙한 곳에 박혀 있던 유현성의 목소리가 되살아난 것이다.

-매사에 겸손하게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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